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Dec 25. 2020

내신

창작입니다.


명사

[교육] 상급 학교 진학에 반영하기 위하여 학생의 하급 학교생활 내용을 기록함. 학생의 성적, 출결 상황, 행동 발달 상황 따위를 기록한다.

    내신 성적  

    준기는 내신이 삼등급이나 올랐다.  


 정원은 에어컨 전원이 켜지는 소리에 창에서 눈을 떼었다. 거센 비는 대낮의 허공을 회색으로 물들이며 적막을 채웠다. 적막. 정원은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 뒤로 돌았다. 스물 다섯의 손이 조용히 펜을 놀리고, 다른 스물 다섯의 손은 시험지, 혹은 답안지 위에 단단히 못박혀 있다. 숨 마저 죽인 채로 교탁으로 가, 두 팔로 몸을 기대며 아이들을 둘러본다. 에어컨 바람을 의식한 것인지 조용히 어깨에 두른 담요를 추어올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정원은 나즈막히 숨을 들이마신 뒤에 조용히 교실 좌우를 살폈다.


 고등학생이 되어 보내는 첫 학기의 마지막 시험 첫날이라는 것은 정원에게는, 아이들의 절박함을 매년 마주하는 일이다. 시험은 줄다리기와 비슷해서, 학교 내신 시험을 어떻게든 파고들려 하는 학생들과 사교육의 입장이 있고 내신 유형이라는 밧줄을 손에서는 놓치 못하나 어떻게든 당기는 힘에 딸려가지 않으려 하는 교사들의 입장이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의 첫 시험, 중간고사는 교사에게 좀 더 어렵다. 본격적인 내신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학교, 해당 교사의 출제 유형과 평가 전략을 비로소 처음 공개적으로 알리는 장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말고사는 학생들에게 훨씬 어렵다. 이제 모든 아이들이 이 학교의, 이 선생님의 수업과 시험 방식을 파악하였으니 더욱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라는 변수가 제거되고 아이들은 진정한 암기력, 사고력, 정신력을 겨룰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더욱 절박한,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열일곱살 아이들의 첫학기 등급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시험.


 정원은 에어컨을 의식해 선풍기를 껐다. 호우에도 불구하고 차츰 실내 온도가 올라가자 아침에 잠깐 가동했다가 끈 중앙통제 에어컨을 다시 켠 모양이다. 아이들의 복장은 초록동색, 남녀 할 것 없이 체육복을 위 아래에 입고는 몸이 찬 아이들은 그 위에 담요를 덮고 있다. 지역에서도 학부모들의 성화가 요란스럽다는 학교에 복무하는 정원은 에어컨 하나, 시험 감독관인 교사들의 실내화 발소리 하나에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창밖의 빗소리에만은 군소리를 못하는 아이들은 사각사각, 쉴 틈 없이 낮은 데시벨로 전력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이에도 아끼는 아이들이 따로 있고 도드라지게 어여쁜 아이들이 또 있다. 한명 한명을 눈에 담다가 아끼는 학생들 몇몇에 눈길을 보다 오래 놓아둔다.


"새앰."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에 순식간에 정원은 혼자만의 생각에서 튕겨나왔다. 한번 움찔 하고 느리게 고개를 돌리니 앞자리의 단하가 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슬쩍 손가락으로 옆줄을 가르키더니, 다시 시험지에 코를 붙이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정원은 역시나 느린 몸짓으로 단하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체구가 크지 않은 아이가 책상에 엎드린 채 조용히 몸을 떨고 있었다.




 정원은 에어컨 전원이 켜지는 소리에 창에서 눈을 떼었다. 눈앞이 뿌연 것은 거센 비 때문일까 아니면 흐려진 두 눈 탓일까. 그러나 온통 회색으로 물든 세상보다는 헝클어진 머릿속이, 잡히지 않는 시험지의 글자들이 더욱 막막했다. 머릿속을 흐르는 수만가지 생각들은 무엇 하나 형상을 취하지 못하고 서열과 질서를 위해 형상을 얻어낸 회색 시험지는 그러나 목소리로써 정원에게는 닿지 않았다. 교실과 정원 사이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창을 두들기는 거센 빗소리, 그리고 멀어진 감각이다.


 찬 바람이 천장에서부터 내리깔리며 정원의 셔츠를 싸늘히 식혔다. 유일하게, 정원은 교복 셔츠를 입고 교실에 앉아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첫 학기의 기말고사는 긴박하게 흐르고 있었다. 학교에 와 수다를 조금 떨던 아이들은 앞자리에 옹기종기 앉은 아이들의 눈총을 넌지시 받고는 흩어져 폰으로 대화를 나눴다. 비가 거세지기 시작할 떄쯤 등교한 아이들은 우산을 걸을 떄도 조심하곤 했다. 우산을 어떻게 챙겼더라. 우산을 쓰고 온 기억, 자리에 앉은 기억, 책을 집어넣은 기억이 머리에 스쳤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의 장면들을 떠올리기는 힘이 들었다. 그리고 정원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시험. 정원은 회색 종이를 다시 바라봤다. 잠깐 눈을 부벼 시야를 밝게 하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흐리던 눈은 잠깐 맑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어지러움 속에 빠져들었다. 그 사이에도 단 한글자, 정원은 해석해내지 못했다. 앉아있을 수 없는 곳에서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에 잠기어 있다는 공포감만이 시시각각 정원의 폐부를 찔러댈 뿐이었다. 순간, 정원은 온 몸에 한기를 느끼며 어깨를 움추렸다. 그리고 그 움추린 자세 그대로 천천히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구다가, 이내 완전히 엎드리고는 잠들듯 느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내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정원아, 정원아...우는 거니?"


 정원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학생 옆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옮겨 쪼그려 앉아 눈을 맞췄다. 그러나 그것은 눈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최대한 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피하고, 몸을 떨며 흐느끼는 정원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소리를 죽이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흑...흐윽..."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정원은 내심으로 낭패감을 느끼며 정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가 다시 손을 거두었다. 정원의 울음이 아이들에게 새어나가는 것이라도 막기 위해 몸을 일으켜 아이를 가렸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리는 없다. 복도감독을 불러야 하나, 쉽게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단이 늦으면 그 댓가를 감당하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정원아 일어나봐. 이리와."


 책상이 끌리는 소리, 정원이 흐느끼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섞여나옴에 정원은 기겁했다. 간신히 아이를 끌고 나오는데까진 성공했다. 서둘러 복도감독에게 손짓을 해 부르고는 정원의 눈을 보기 위해 정수리 부근을 조심스럽게 밀어내서 아이의 고개를 들려고 했다. 계속 흐느끼며 정원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푹 고개와 어깨를 함께 떨궜다.


"흑...흐흑..."

"어 정원샘 왜 그래요. 얘 우는 거예요?"

"네네 샘 제가 달래서 들어갈게요 잠시만 저 대신 들어가주세요."

"네 무슨 일이 있으면 본부에 제가 데리고 갈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아이들 바로 복도감독에게 인계를 해 버리는 방법. 그러나 그것을 택하지 않은 것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아이에 대한 관심이었을까. 정원은 교실 앞문에서 몸을 비켜 복도감독을 들여보내고 정원을 데리고 몇발짝 옮겨, 대화를 나눠도 소음이 교실로는 전달되지 않을만한 창가로 갔다. 착한 아이다. 무슨 이유로 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정시켜서 다시 교실로 데려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었다. 정원은 조급하게 침착한 척 정원에게 말을 걸었다.


"정원아, 정원아 왜...말해봐. 힘든 일 있어? 시험 망쳤어 1교시?"

"아니...아니예요...어어...어어...허엉..."


 낭패다. 달래면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의 울음이 커지고 있었다.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라고 생각하며 다시 정원은 교실 방향으로 등을 돌려 어떻게 울음 소리가 퍼지는 것만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아이의 터진 울음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생각을 하며 고사본부에 아이를 넘길지 말지를 결단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고사본부에 넘기면 이번 시간 시험은 포기하는 것이다. 내신 비중이 큰 주요과목이다. 아이를 고사본부에 넘기는 것에 대한 1차적 판단을 자신이 해야 한다. 그 결과는 그러나 아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만약에 백지 상태라면, 아이의 내신 성적에 크나큰 흠결이 생긴다.


"울지 말아봐 정원아...답 좀 썼어? 좀 풀었어?"

"흑...흐흑...아니요..."

"아니...정원아 좀만 참아보고 일단 들어가자. 백지 내면 너 복구 힘들어. 기말인데 어떻게 일단 답이라도 다 쓰고 나와서 울더라도 울자."

"흑..."


 고개를 숙인 정원은 그대로 고개를 가로지으며 거부의 뜻을 드러냈다. 어렵지 않게 예감할 수 있는 상황. 정원은 뒤를 돌아보고 다른 교실에서 나온 선생님이나 다른 복도감독이 다가오진 않는지 경계하며 다시 말을 걸었다.


"정원아...그래도...힘든 건 아는데...일단 울음만 멈추자. 응? 울음만 멈추고 풀고 나와. 빨리 다 풀고 나올 수 있게 해줄게. 풀고 나와서 울어. 응?"

"흑...선생님...아니요...아니예요..."

"아...아냐아냐 정원아...자자 뚝. 응?"


 아이가 의사표현을 그래도 하는 것에 정원은 희망을 걸었다. 완전히 대화조차 되지 않을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조금만 더 설득하면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흑...못해요..."

"응?"

"못해요...못하겠어요..."

"아우...아냐...정원아 아냐...들어가자...커버 안돼....진짜야..."


 하필 비율도 큰 과목에서 애 멘탈이 터지다니, 마가 꼈지. 그러나 정원은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아이를 달랬다. 나중에 술 마시며 썰 풀 거리 하나 늘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었으니까. 벌써 5분은 정원이와 대화를 하고 있다. 우는 아이는 말을 느리게 토했고, 달래는 교사는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정원은 자신의 몸으로 그 상황을 받아내고 있었다.


"정원아...정원아...들어가야지. 선생님도 들어가야돼. 응?"

"아뇨...아니...못해요...못하겠어요..."

"아냐...자자 그만 울고."

"못하겠다구요!...흑..."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단호하고 빠른 말로 정원이 삽시간에 말을 토했다. 깜짝 놀란 정원이 다시 교실을 힐끔 훔쳐보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정원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보다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흐흑...흑...흐어엉..."

"아...아이고 정원아...울지마. 울면 진짜 큰일난다니까. 아이고오..."


 다급하게 정원은 정원을 달랬다. 마음이 급해 아이의 등을 두드리고 어깨를 쓰다듬었다.


"정원아 울지 말고...큰일나 진짜..."

"못해요...못하겠어요...흐헝..."

"후...정원아..."

"어제...흑...끅..."

"응? 어제?"


 난데 없이 튀어나온 "어제"란 말에 정원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어제...흑...동생이...죽었단 말이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천일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