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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3. 2021

카카오톡은 친구 지우기가 불편하다

2700번을 두들기도록 만든 것은 섬세한 배려일까, 아니면.

 직업상 매년 100여명의 전화번호를 필수로 저장해야 하는 교사에게 있어서 카카오톡의 친구목록은 애매함과 고달픔 사이에 넌지시 걸쳐져 있다. 1,2년을 대학과 취업을 위해 함께 구른 제자들의 이름을 함부로 숨김 목록에 집어넣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어느 날을 하루 정해서 학생과 학부모의 이름을 싹 정리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인데 카톡이 친구 삭제 기능을 제대로 안내한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어느덧 스마트폰을 10년 넘게 사용하다보니 하염없이 한 해 한 해 전화번호는 밀물처럼 들어와 썰물처럼 나가고, 어쩌다가 한번 생각이 나 숨김친구와 차단친구 항목으로 정리하는 것이 고작이다보니, 그날은 드디어 닥치고야 말았다.


 이런. 카카오톡 용량이 14기가. 영화 몇편에 해당하는 용량이라니.

 나는 핸드폰의 여러가지 기능이나 앱을 사용하지 않는 옛날사람인 편이라 64기가 정도, 뭣하면 음악파일을 줄여서 32기가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20년 정도 모아온 mp3를 와장창 넣고 듣다가 철이 바뀔 때쯤 또 와장창 바꾸는 게 스마트폰의 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밖에는 딱히 뭘 하는 편도 아니고 불필요한 어플은 미련없이 지우는데 카톡 용량이 14기가라니. 이건 좀 문제다.


 업무용으로 유지하는 단톡방이 몇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방이 몇개, 아내와의 톡방이 하나. 그래도 틈만 나면 방마다 찾아다니면서 사진과 파일들을 싹 날려버리는데도 이렇다. 앱 자체의 용량은 1기가가 채 안되는데 말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침 한해 농사도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니 나는 아이튠즈의 음악과 동기화 시키며 잠깐 고민을 해본다. 전혀 나에게 소용되지 않는 무의미한 관계의 편린들이 핸드폰을 영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이 실태와, 그로부터 빠져나올 몇가지 방법을.


 가장 확실하고 편리한 방법은 폰에 있는 연락처들을 정리한 뒤, 카카오톡을 완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하는 것이다. 신경쓸게 참 없고 좋다. 그런데 당연히 문제는 있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단톡방 등에 다시 일일이 들어가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을 위해 내가 만든 방이 서너개 된다. 내가 카톡을 완전 삭제하면, 이 단톡방을 어떻게 할까? 관리자가 없어지고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 밖에 유령회원처럼 적만 두고 있는 소소한 톡방들에 대해서도 그런 군색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 나와버리면 다신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고,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에 대해서도 무신경해지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려버릴 것이고.


  다른 방법은 카카오톡 앱을 삭제 후 제설치하는 것이다. 그것도 데이터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방법인데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 "불필요한 관계로 인한 데이터"가 내 폰을 점유하고 있는 상태 말이다. 게다가 그 데이터들이, 벌써 10년 전 학부님들이 친구추가가 되어 있었다거나 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친구목록도 데이터고, 그것을 불러오는 데에도 로딩시간이 소요되고, 그러므로 방만한 친구목록은 곧 내 폰의 군살이다. 없애야 한다. 단 1바이트라도.


 그날 밤 카톡을 앱 삭제 후 재설치했다. 와, 많이 줄었다. 1기가를 겨우 넘는 용량이다. 무려 13기가나 덜어냈다. 홀가분하게 폰을 백업하면서 친구목록을 다시 봤다. 업무로 잠깐씩 연락을 주고받은 무수한, 불필요한 프로필 사진들이 한가득이다. 용량을 줄인 김에 우선 친구목록에서 불필요한 연락처들을 숨김처리했다. 당장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있는 사람들 말고는 몽땅. 그러자 친구목록엔 200여명이 남고, 숨김친구엔... 무려 970명이 남아있다. 내 10여년의 직업생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카카오톡이 이들 친구목록에 대한 대량삭제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정메뉴와 친구메뉴를 몇번 찌르고 후비고 뒤지고  나서야 나도 다른 여러 유저들이 도달한 것과 같은 결론에 당도했다. 지워야, 한다. 이 천여명의 카톡 친구들을. 하나 하나.


 카카오톡이 친구를 대량삭제할 수 있도록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경영상의 이유일 것이다. 메신저 서비스는 사용자간의 연결망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통화와 문자까지 통합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사람들이 손쉽게 친구목록을 지우게 열어줬다간 앱의 시장 지배력이 크게 감소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마주한 이용자,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세번의 탭으로 일일이 지워내야만 하는 이 상황에 대한 양심의 울림에 따라서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맞아. 대량 삭제는, 그렇게 무 자르듯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어내는 일이 있으면 안되지. 라는 생각.


 마찬가지로 경영상의 이유로 수백, 수천명의 친구를 추가하는 것은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준 카카오톡 덕분에 이제는 용도가 덜해진 연락처만 900개가 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하나로 잘라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그런고로 나는 그날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서 100명 정도를 삭제했다. 300번을 탭한 셈. 850명 정도가 남았다. 며칠 뒤에 또 한번 시도해봤다. 아내가 드라마를 보는 동안(펜트하우스였을까?) 옆을 지키고 앉아서 탭탭탭, 탭탭탭, 탭탭탭, 탭탭탭 아차 차단을 눌렀네 나중에 처리하자 탭! 실수로 잘못 숨겨놓은 몇몇 친구는 친구 목록으로 복귀를 시키면서.


 그 과정은 내 손으로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옛 제자들의 프로필 사진을 마지막으로 한번씩 살피기도 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 일찍 명을 다한 아이도 있다. 담임으로서 깊은 죄책감에 오래 붙들고 있던 대화방이 남아있던 아이인데, 이번에 그 이름도 삭제했다. 그렇게 나는 소용을 다한 관계들과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탭탭탭 세번에 지웠다. 이 역시도 실물의 관계를 지워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 것일까마는.


 그러나 2700여번의 탭은 아직 너무나 멀다. 한다고 해보는데도..770명.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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