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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11. 2019

The Downeaster 'Alexa'

나는 못하는 바깥양반의 신묘한 능력 북유럽 편(1)

https://youtu.be/LVlDSzbrH5M

Well I'm on the Downeaster Alexa

자 나는 범선 알렉사 호에 올랐지

And I'm cruising through Block Island Sound

블럭 아일랜드 해협을 항해하고 있어

I have charted a course to the Vineyard

마사스 바인야드로 항로를 잡았는데

But tonight I am Nantucket bound

오늘밤은 난터켓 섬까지 가본다네


We took on diesel back in Montauk yesterday

우린 어제 몬터크에서 디젤을 채웠고

And left this morning from the bell in Gardiner's Bay

오늘 아침엔 가디너스만 입구를 빠져나왔지 

Like all the locals here I've had to sell my home

동네 사람들처럼 나도 집을 팔아야 했어

Too proud to leave I worked my fingers to the bone

기둥 하나하나 내 손길이 닿은 그곳을, 떠나기엔 너무나 사랑했는데 


So I could own my Downeaster Alexa

그 덕에 범선 알렉사 호를 샀어

And I go where the ocean is deep

그리고 깊은 바다로 향하지

There are giants out there in the canyons

깊은 해구 속에는 거대한 괴물들이 살기에

And a good captain can't fall asleep

훌륭한 선장은 잠들지 못하는 법이야


I've got bills to pay and children who need clothes

갚아야 할 돈이 있고 아이들에겐 옷이 필요해

I know there's fish out there but where God only knows

어딘가 물고기가 있다는 걸 알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신만이 아시지

They say these waters aren't what they used to be

어부들은 물도 물고기도 예전같지 않다하네

But I've got people back on land who count on me

그러나 내게 의지하는 가족이 땅 위에 있어


So if you see my Downeaster Alexa

그러니, 누구라도 내 범선 알렉사호를 보게 된다면

And if you work with the rod and the reel

당신이 나와 같이 낚시대와 릴로 일하는 자라면

Tell my wife I am trolling Atlantis

아내에게 말해줘 나는 아틀란티스를 건지려하고 있다고

And I still have my hands on the wheel

그리고 나는 여전히 키를 잡고 있다고


Now I drive my Downeaster Alexa

지금 나는 범선 알렉사 호를 몰고 있어

More and more miles from shore every year

매년 해안가에서 몇마일씩 멀어지는군

Since they tell me I can't sell no stripers

더는 줄무늬농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어부들이 말하기 때문인데

And there's no luck in swordfishing here

멀리 떠나온 이 바다에서도 황새치 잡이가 시원찮네


I was a bayman like my father was before

예전엔 나도 아버지처럼 근해어부였는데

Can't make a living as a bayman anymore

이제는 근해에선 더는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There ain't much future for a man who works the sea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미래가 없는데

But there ain't no island left for islanders like me

그렇다고 나같은 섬사람에게 섬조차 남아있지 않지


 여름, 바깥양반과 함께 북유럽으로 떠났다. 헬싱키로 향하는 직항을 택해 스톡홀름과 오슬로, 베르겐, 코펜하겐을 두루 훑는 여행이었다. 친구부부가 세계여행을 두루 다녀보아도 북유럽이 최고라며 추천하여 일정을 잡았는데 과연. 도시며 강이며 바다며 배며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난 바깥양반이 초능력자라고 생각해."

"응?"

"시차까지 계산해가며 어떻게 이걸 다 예약했지 호텔, 비행기, 기차, 배."

"으응 오빠는 영어도 못하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바깥양반은 북유럽 여행 책을 두어권 사서는 몇날밤을 공부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일정의 예약을 끝마쳤다. 대부분은 부킹 등 예약사이트를 통해서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것이 아닌데. 내가 가사노동의 95% 정도를 한다면 바깥양반은 우리 여행의 95%를 책임지고 있다. 그냥 "가고 싶어!" 수준이 아니라 모든 여행채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꽤나 굉장한 초능력으로 보인다. 바깥양반과 만나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삶은 가능했을까. 나처럼 집순이인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바깥양반이 아니었다면 평생 와보지 못했을 곳들이다. 정 반대의 성향과 취향이 어우러진 삶은 하루하루가 나에게 배움의 여정이다. 바깥양반은 배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듯하지만 아직은.

 첫날, 헬싱키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왔다. 거리의 모든 건물이 도시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매혹의 공간이었지만 나는 강과 수로를 가득 메운 요트에 가장 먼저 마음을 빼앗겼다. 파란 하늘, 맑은 강과 바다. 헬싱키의 해변엔 바다의 짠내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발트해의 깊숙한 안쪽 핀란드만의 바다와 강은 염도가 낮기라도 한 것일까. 불쾌감이라곤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청명한 공기를 즐기며 걷다가 빌리 조엘의 노래 <The Downeaster 'Alexa'>를 떠올리고 이어폰을 꽂았다. 아코디언(맞나?)과 현악기의 웅장한 멜로디라인, 그리고 현실적이면서 철학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명곡이다. 20대 초반에 빌리조엘의 음악을 접하고 그의 앨범을 여러 가지 들으면서 사랑하게 된 노래들 중 하나다. 


- 야 야 야- 호오 호 


 첫번째 음악 재생이 끝났다. 나는 1곡 반복재생 옵션을 탭하고 다시 폰을 주머니에 꽂았다. 바깥양반은 갈색 벽돌과 깔맞춤을 한 듯한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신나서 저 멀리 앞에서 걸어가고 있고, 나는 조금씩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태양빛을 맞으며 요트가 그득한 선창 길 위에서 빌리 조엘의 노래를 듣는 시간.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한 학기를 또 다시, 꽤나 힘들게 보냈다. 교육과정 개정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학교를 덮치고 있었다. 정말로 거-----------대한 파도다. 고교학점제가 완전히 정착되면 학급 체제가 사실상 무너지게 될 것이고 담임교사의 역할도 극히 작아지고 아이들은 교실을 오가면서 매 시간 다른 아이들과 수업을 듣게 되고...


"으응 오빠오빠 일 생각 스탑!"


 선창길이 막혀 바깥양반이 돌아왔다. 다시 손을 잡고 걷는다. 또하나 중요한 차이는, 나에겐 힐링이 필요 없고 바깥양반은 힐링을 굉장히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군인 시절엔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머리를 비우고 나서야 쉴 수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내 적성과 흥미가 일치하는 교사라는 직업에서는 힐링이 딱히 필요하진 않다고 느낀다. 찌개를 끓이면서도 수업 고민을 할 수 있고, 영화를 보다가도 단어를 이렇게 가르치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제주도의 바다를 보면서도 수업활동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반면에 바깥양반은 직장에서 완전히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오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일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바깥양반도 자기 일을 사랑하지만, 생활적으로 철저히 구분하는 걸 추구한달까. 그래서, 내 표정을 보고 바깥양반은 일 생각 좀 그만 하라는 말을 꽤나 자주 한다.


"아냐 지금 노래 들었어."

"또 이상한 노래겠지. 무슨 아저씨들 노래. 김광석 느낌에."

"...정답인데?"

"즈아아 우리 북유럽 여행 첫날입니다아. 머리 비우고 힐링! 갑시다! 저녁먹으러."


 ...아니, 정말로 딱 0.5초 일 생각 한 것 말고는 정말로 제대로 힐링하고 있었다니까. 다시 노래에 집중하며 바깥양반을 따라 걸었다. 날씨는 따듯하고 바람도 시원하니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여름의 태양을 만끽하는 여유로인 도시인들의 모습을 보며 미국 빈민층 어부의 걍팍한 삶에 관한 노래를 듣는 기분이 아이러니하지만 아무리 먼 곳에 와 있어도 나의 삶을 떠나있을 순 없다. 바깥양반은 생활로부터 분리하여 여행을 즐긴다면, 나는 생활의 연장으로서 여행을 즐긴달까. 같은 길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함께 걷고 있으니 결혼생활이 딱 이와 비슷하다는 감상이 든다. 


"여기 좋네. 완전 북유럽 느낌난다."

"오 그러네."

"우리나라 8,90년대 봄날에 캠퍼스가 이랬을 것 같아."

"우리도 맥주 한잔 하고 갈까?"


 헬싱키 시내의 번화가에 접한 에스플라나디 공원엔 청년들과 가족들이 삼삼오오 잔디밭에 가득 모여 음료와 간식을 즐기고 있었다. 요즘은 대학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2000년대 초반엔 잔디밭에 앉아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저녁까지 그대로 맥주를 마시기도 했는데 군대를 다녀오니 잔디밭도 오후의 잔디밭 술자리도 사라져 있었다. 학생들이 감히 잔디밭에서 술을 마신다며 대학당국이 한마디 하면 학생들이 찍소리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러나 이곳 공원은 활짝 열려있고 다행히 맥주는 비싸지 않았다. 오는 비행기편에 서비스로 받았던 카르후 맥주를 두개 사서 바깥양반과 앉았다. 


"근데 우리 돋자리 없잖아."

"잠깐만."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북 찢었다. 

 

"요."

"너는 어떻게 직장인이 가방에 책이랑 노트가 없어?"

"웃기네. 엉덩이 큰 아저씨 종이 많이 까세요."


 그 말은 사실이다. 나는 노트를 여러장 찢어 앉았다. 바로 옆에선 재즈밴드가 버스킹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즐겁게 오가며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에 들어서면서 이어폰은 뺐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으론 멜로디와 가사를 읊조린다. 야 야 야- 호오 호-.


"우리 여기서 스톡홀름까지는 크루즈 타고 간다고?"

"응. 두시에 타서 다음날 아침 7시에 도착."

"크루즈니까 큰가."

"응 그 안에 식당도 있고 카지노도 있고 다 있대."


 그럼 배 위에서 또 이 노래를 듣겠군. 속으로 딴 생각을 하며 팔을 뒤로 하여 바닥에 대고 몸을 살짝 기울였다. 꽤 멋진 곰 일러스트가 그려진 카르후 맥주는 상큼한 포도향이 나는 청량한 라거다. 향과 산뜻함을 모두 갖추었으니 한국에 좀 사들고 가면 좋겠는데, 그런 말을 아까 꺼냈다가 바깥양반이 '어차피 우리 맥주 엄청 사 마실 거야.'라며 날 달랬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지역 술을 마시는 걸 바깥양반은 좋아한다. 국내여행에선 막걸리를 꼭 지역마다 마시고, 해외에선 맥주를 꼭 지역마다 산다. 물론 바깥양반은 그야말로 맛만 보는 수준이니 결국은 내가 마시게 된다. 그런데 내가 술고래도 아니어서...이 글을 쓰는 지금, 작년 여름에 북유럽에서 사 온 맥주가 아직 한두캔 냉장고에 남아있다.


"근데 해는 진짜 안진다."

"노을 보기 좋은 곳 좀 찾아놔줘요 그런 건 오빠가 전문이니."

"알았다. 내일 동선만 미리 알려줘."

"응 밥 먹을 때 보여줄게."


 그날 저녁식사의 소소한 해프닝으로, 내가 시킨 토마토소스 라구파스타가 오버쿡되어 서빙되었다. 나는 '이게 북유럽 스타일인가봐.'하면서 먹다가 식사가 끝난 뒤 점원에게 원래 북유럽은 이렇게 먹냐고 물어보았고, 점원은 내 파스타를 먹어보더니 미안하다고 오버쿡 되었다며 다음에 또 오면 서비스를 잘 해주겠다고...됐네요 우리 내일모레 갈거거든!


작은 항구도시 헬싱키의 첫인상은 아름다운 선창의 요트들이었고, 이틀 뒤에 떠날 때는 거대한 크루즈 범선을 타고 간다고 한다. 배 위에서 또 실컷 이 노래를 듣겠지. 맥주에 파스타에 배부르게 먹고 식당을 나오니 노을 시기를 놓쳐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어두워진 거리를 가로등이 밝게 밝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우리는 즐겁게 첫날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한다. 

노출 조정이 잘못되어 하늘이 밝아보이지만 상당히 어두워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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