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일일 : 결국, 봄

나와 수달이의 반달살이 / 세화

by 공존

하늘은 낮고 뿌옇게 드리웠다. 발걸음에 부딪히는 초록 풋잎도 잔잔한 파도에 흩어지는 빛줄기도 모두 회색하늘에 가려진 흐리멍덩한 차림새다. 이런날에 길을 나선 우리의 심정은 여행의 막바지에도 흥겨울 리는 없겠다. 커튼을 걷어 흐린 하늘을 보곤 꾸물럭거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느그적하게 차려입고 돌담집을 나섰다. 일기예보는 내내 흐린 먹구름에 간혹 비가 올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람 없이 온화한 날씨조차 이 하늘 아래엔 어떤 낭만도 줄 수 없다는 듯이.


세화해변의 오일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뒤에 소화를 시키기 위하여 또 걷기로 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올레길이 있다. 해안도로부터 시작해 구비구비 내륙의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코스다. 이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가고 싶은 카페에도 닿을 것 같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걷는 시간만 왕복 두시간이다. 피로가 쌓여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어찌어찌 그곳까진 걷자고 선선히 동의할 것 같은데. 나는 이내 아내의 거절을 수긍하고 적당히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타협하고 만다. 혹은, 날씨만 조금 좋았더라면.


설레임 없이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올레길 초입은 온통 공사판이다. 원래의 그 모습을 알 길이 없이 파이고 뒤집어져 있다. 반대편, 바닷길 쪽으로 걸었어야 할까. 인상을 찡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손에는 방금 들른 소품가게에서 산 제주도 민화 달력이 쥐어져 있다. 천연의 제주도 올레길이었다면 소품가게도 없었을 것이다. 개발이 되지 않았더라면, 물론 우리가 기거하고 있는 돌담집에서 단 하루도 머무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밤에는 쾌적한 재건축 현장에서 몸을 누인 후, 낮에는 낭만과 사유를 원하여 개발을 혐오하는 이율배반에 쓴웃음이 나온다. 또아리 진 마음을 풀고나서야 길가에 꽃이 보인다. 이 아이의 이름은 뭘까, 옹알진 우리말 이름을 상상하며 아릿하게도 길과 돌담의 틈사이에 피어낸 그 빛깔에 눈을 멈춘다.


온통 돌담길이다. 마을을 벗어나자 좌우로 넓디 넓은 평지가 열리고, 비옥한 검은 토양 아래에 당근이 어지러이 뽑혀있다. 드물게 좋은 토질이다. 그러나 뽑혀있는 당근들의 모양새는 영 옹골차지 못하다. 수확을 하는 가운데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을 남겨둔 것일 테지. 귤을 쪼아먹는 새는 여지껏 보아왔지만 당근을 갉아먹는 토끼는 제주도에 없는 모양이다. 저 야리야리 조그마한 당근 뿌리들은 그대로 흙먼지에 쌓여 잠들어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골똘이 바라보았는데, 재촉한 길에서 또 다시 뽑혀진 당근밭에, 또 다시 남겨진 조그마한 당근들이 속속 드러난다. 농사도 공산품도 과잉생산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저토록 버려지는 노동의 결실이 덧없다. 버려진 당근을 모아다가 무엇이라도 해볼라치면, 상품 당근의 값이 떨어질 뿐일 테지.


그때 나뭇가지를 문 까치를 보았다. 한쌍의 부부가 높은 전신주 끝을 차지하고 집을 짓고 있다. 얼추 반절은 지어진듯한 둥지. 아 봄이구나 그제서야 깨닫는다. 입추를 며칠 지나, 그리고 오늘처럼 흐린 가운데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그저 그저 온화하고 한적한 날씨. 2월 초입의 이 따수움은 영락없이 봄이다. 사람은 이성으로 계절을 판단하지만 동물은 본능으로 시기를 직감한다. 우리가 모르는 봄을 까치가 미리 알고 넌지시 일러준다. 전신주 아래로 무밭에 오종종한 무들이 실팍하게 익은 몸뚱아리를 땅위로 드러내보였다. 당근 다음으로 순서를 기다리기는 더는 지겹다는듯이. 무 이파리들은 겨울을 보낸 흔적으로 고스란히 말라붙었다. 저 아이들은 시장마다 팔려갈 순 있겠다. 제주도의 숯한 해장국집이며, 하루에 수백줄은 팔아내는 김밥집의 단무지들이며.


그러나 생각의 까풀을 벗어내자 비로소 돌담과 초록이 어우러진 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생기가 넘치는 무밭, 다시 돌담, 다시 그 뒤로 무밭, 그 너머엔 색색의 슬레이트 지붕이 있고, 저 멀리엔 눈 덮인 한라산. 하늘이 흐려 온통 구름인줄만 알았는데 한라산 정산 부근은 또 다르게 여러겹의 구름으로 휘감겨있다. 구름은 구름이되 다 같지 않다. 봄은 봄이되 모두 한날이 아니듯이.


이제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중충한 하늘 아래 봄을 만끽한다. 무밭 고랑에 유채꽃은 잡초처럼 피어있다. 산방산에 핀 얼갈이배추꽃과는 다른, 잎사귀며 가지대의 모양새가 똑부러진 유채다. 들풀도 노란색, 유채꽃도 노란색. 이제 개나리가 피려나 하니, 참말로 머지 않았다. 불과 스무레면 유치원생들처럼 그 노란꽃들이 지천에 필 테다. 이쯤이니 잿빛 하늘에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닐까. 회색 도화지에 오로지 노란색만이 찬연해, 길에는 분분이 노랑의 성찬이 숨겨져있다. 다시 포근한 계절이 되면 귤 조차 온색을 잃는다. 오로지 꽃들만이 봄의 빛이다.


돌아오는 길을 올레를 벗어나 바닷가 산책로로 잡았다. 흐린 하늘에 비친 회색바다에 파도는 고요히 잠들어, 이마저도 봄의 서정에 발목이 젖은 여행자에겐 따스함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없는 해안도로. 코로나로 관광객이 사라진 빈 가게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걷노라니 머리칼을 간지럽힐 힘조차 없는 이 바람이 살결에 와 닿는 것이 반갑다.


저 멀리 광주리를 들고 바다로 걸어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 하고 보니 풍덩 검은 바위에서 바다에 몸을 담구더니 탈탈 광주리를 털어내고 올라온다. 해녀로구나. 바위 틈새에 큰 짐뭉치가 보인다. 발걸음 따라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되니 머리엔 큰 수경을 걸치고 있다. 한바탕 조업을 마치고 손질된 나머지를 버리는 모양. 그러고보니, 오늘이 물질하기 참 좋은 날씨인듯싶다. 바람도 파도도 온데 간데 없이 고요하다. 공기는 푸근해, 이런날은 바다에서 육지로 오르는 몸이 덜 무겁지 싶다. 마침, 저기 형광주황색 테왁들이 둥둥 떠있는 바다에 해녀의 집이 콕 박혀있다. 트럭이 부아앙 하고 달려 해녀의 집 앞에 선다. 걷다 보니 낮 두시. 가장 날이 따스할 때이고, 분주히 물질을 한 수확물들도 날라야 할 모양이다.


해녀의 집을 지나 굽이를 돌자, 탁 트인 세화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가운데 저 멀리, 또 저 멀리 테왁들이 열댓은 떠 있다. 양식장 너머, 해안에서 족히 2km는 되어보이는 거리까지 헤엄을 쳐서 물질을 하는 것일까. 아무나 해녀가 될 수가 없다더니 정말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가보다. 사진을 찍어보려 해도, 작은 카메라의 화각에 담긴 화소로는 저 많은 테왁들이 오로지 티끌로만 보인다. 사진을 포기하고 눈으로만 담는다. 한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제주 앞바다의, 이달의 첫 봄을.


바닷가에는 온통 물새들이 헤엄을 치다가 날개를 말리고 있고, 물이 쏟아져나오는 한쪽에는 오리들이 잔뜩 자리를 잡고 있다. 무엇이라도 건지려나. 수십마리가 배수구 아래 만들어진 작은 호수에 몸을 띄운 것도 정다운 풍경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물새도 모이는 것이다보니, 테왁을 따라, 흐린 바닷빛을 따라 걷는 우리의 오후 산책도 거의 종점이다. 세화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스듬했던 지평선이 삐뚤빼뚤한 건물들로 자욱하다. 봄의 오솔길에 다시 사람의 숲으로. 그러나, 처음 걸음을 시작할 때와 완전히 다른 지금의 정취의 온기가 날 완전히 채워놓았다. 봄을 맞았다. 날이 흐려도 비가 온대도, 결국 봄은 봄.


간단한 요기는 간단한 산책으로 거두어졌고, 우린 사람의 숲이 저녁이 오기도 전에 서둘러 흩어지는 것을 보며 다시 길을 돌렸다. 잠시 달려 온실 안에 차려진 카페에 당도하였고, 그 곳엔 겨우내 봄빛을 품어낸 작고 소솔한 귤나무들이 커피향에 물들어 있었다.

이전 21화이십일 : 오징어와 당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