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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3. 2021

새해인데 한살을 더 먹지는 못한, <새해전야>

8년이면 자기복제든 재창조든 충분히 새단장은 해야하지 않을까.

 홍지영 감독의 <새해전야>는 제목부터 캐스팅까지 2013년의 전작 <결혼전야>의 기시감을 짙게 풍긴다. 동일하게 네 커플이 얽히면서 아주 약간의 교차지점이 생기는 이야기. 한 커플은 국제결혼이라는 점도 같다. 심지어 이연희의 배역의 스토리라인이 두 영화간에 상당히 유사하다. 전작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이런 점이 나쁘게 다가오진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심사가 극도로 지쳐있고 제발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이 들려오기를 절실히 바라는 이 때, 결혼이 아닌 신년으로 무대를 옮겨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계획은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감독의 전작이 쏠쏠하게 볼만했기에 만큼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러니까, 판이 괜찮게 깔린 영화다. 8년쯤이면 전자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왔어도 그걸 잊고 영화에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경쟁작도 딱히 없다. 다들 방콕에 익숙한 설 명절에 새해에서 이런 영화로 힐링을 한다는 방향으로 마케팅이 잡혔어도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서 2021년으로 건너오며 비정규직 문제나 변해가는 연애 및 결혼의 모습을 담아낸 점도 발전된 점이다. 


 그래서 영화가 괜찮은가? 볼만한 영화인가? 하면 그게 말이지. 


 (1) 결혼과 새해가 갖는 소재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혼전야>의 경우 네 커플이 이미 메이드되어서 심지어 결혼이 코앞인 상황. 거기에서 빚어지는 갈등들은 실제로 우리가 겪어볼만한 내용들이다. "혹시 이 여자가 날 속이고 있는 거 아닐까?" "이 결혼이 진짜 맞나?" "아하 이 시월드야"하는. 그래서 러닝타임 안에 네 커플의 이야기를 쑤셔담았어도 금방 배경을 이해하고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다. 반면에 <새해전야>의 네 커플 중 둘, 네사람은 생면부지가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다. 당연히 캐릭터의 배경설정과 상황설정을 관객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갈등구조 역시 <결혼전야>와는 딴판으로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감독은 그런 고려를 하지 못하고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다종다양한 것으로 채택해 극을 구성했다. 


(2) 그로 인해 러닝타임에 쫓기듯 극이 진행된다. <결혼전야>의 경우 그리 디테일한 설명 따위가 필요없다. "이 결혼을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에 어떤 개연성이 필요할까? 그러나 <새해전야>에서 네 커플이 각자 갖는 고민들은 저마다 얕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설명 없이 바로 납득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연인과 그가 장애에 대한 고려 없이 자기를 대해주길 바라는 사람의 복잡한 속내는 잘 만든 대화 한줄만으로 관객에게는 닿지 않는다. 굳이 네 커플로 해야 했을까? 게다가 네가지 이야기가 모두 장애, 국제결혼, 일상탈출, 이혼녀와 보호대상자라는 비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몰입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야기가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문제, 무거우면 러닝타임이 넘치는 문제. 차라리 한 커플 정도 줄여서 셋 정도로. 그리고 좀 더 디테일하게 접근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꾸렸으면 어땠을까.


(3) 러닝타임에 쫓기다 보니 온갖 서브플룻이 날아가버렸다. 오랫동안 각본을 다듬었는지 수영 배역의 농원, 염혜란 배역과 라미란 씨의 이야기, 이혼조정 중인 유인나 배역의 이야기 등 서브플룻이 꽤나 잘 짜여져있는데, 메인플룻을 쳐내는데에도 급급해서 서브플룻을 선만 보이고 다 날려버렸다. 그러니 전개가 뚝뚝 끊긴다. 가뜩이나 네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옴니버스인데 선만 보이고 날아가는 서브플룻이 가득하니 관객으로선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다. 결말부에 가서도 어? 이거 이대로 괜찮아? 하는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남는다. 국제결혼 결혼비용은 어쩔 것이며 유인나 배역의 남편과의 갈등은 그냥 이대로 끝날 수 있는 문제일까?


(4) 그러나보니 결국,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신선한 소재 네가지를 러닝타임 안에 우겨넣느라 연출은 간략하게 하고 심지어 서브플룻까지 다 쳐냈으니, 제대로 몰입이 되지 않고 후다닥 러브라인이 만들어지고 갈등은 해결된다. 국가대표, 농원사장, 아르헨티나 여행 중에 만난 사람과의 로맨스와 같은 비일상의 이야기에 개연성과 연출 부족의 문제가 겹치니, 이야기는 완전히 남의 것이 되고 만다. 남산 아래 2층 저택을 누나와 지분을 나눠 자가보유하고 있는 남성이 고작 몇천만원 때문에 스스로 결혼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소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니까, <새해전야>의 문제는 결국 <결혼전야>의 자기복제가 충분한 재창조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것들로 보인다. 8년이면 충분히 감독으로서도 나이를 먹었고 발전을 기대함직한데 말이다. 욕심을 조금 버리고 변하는 시대, 변화한 무대에 맞추어 말 그대로 "새해 전야"에 걸맞은 이야기를 풀어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잘 깔려있는 판에 안주한 것이라면 자기복제보다 그쪽이 더 게으르다. 때문에 매력적인 설정, 캐릭터, 배우들의 호연도 가려지고 말았다. 


 배우들은 전반적으로 매력을 빵빵 터트리며 제 몫을 했다. 감초캐릭터를 잘 활용했고 유머도 썩 괜찮다. 극적으로 극의 흐름을 뒤엎는 반전연출도 잘 활용해서 네 커플의 이야기가 비록 개연성을 부족할 지언정 모두 다른 분위기와 감수성으로 다가온다. 이런 장점들이 있어서 더 아쉽다. 넷플릭스 그 이상의 관람 가치가 있는 상영물, 그리고 영화가 타겟하고 있는 2,30대 젊은 계층에게 어필할만한 상품으로는 만들어지지 못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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