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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5. 2021

SF 잘 몰라도 괜찮아? <승리호>

단점은 SF라기보단 이야기구조, 장점은 발전한 SF 기술

 <승리호>의 진입장벽은 SF라기보다는 이야기구조다. 모든 주요 등장인물이 비밀을 감추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한 시간이나 이야기가 진행된다. 관객은 그럼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다. 배경이 근미래 우주로 설정되어 있으니 이에 대한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고, 모두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짧은 대화와 표피만을 보고 서로의 관계, 대략적인 인물의 특성과 이야기 내에서의 배치를 파악해야 하고, 흩어진 단서들 속에서 잠시 헤메다가 다시 중심 이야기로 돌아와 집중해야 하는 일이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개 SF영화에선 그런 혼란한 관객의 주의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시각적 장치들을 활용한다. 너무나 유명한 저 <블레이드 러너>의 도입부, 어두운 배경을 스피너를 타고 비행하는 LA의 비주얼 쇼크는 영화 전체의 인상을 좌우할만큼 강력했다. 지루한 도입부, 데커드가 레이첼과 다시 조우하는 장면까지의 갑갑함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이런 SF적 상상력이 충분한 자극이 되어 관객의 흥미를 당기기 때문이다.

<승리호>와 <블레이드 러너>의 비교가 가당하냐고 따질 사람도 나오긴 하겠지만.

 <승리호>는 첫째로 그 점에서 성공했다. 도입부에서 통역기로 역정을 내며 책상을 두드리는 장면부터, 이순신 동상을 배경으로 완전히 망가진 지구의 모습과 궤도엘리베이터, 승리호의 등장씬까지 매끈하게 이어가며 김태호(송중기 분)의 캐릭터가 초반 흩어놓은 단서들을 잊어버리고 극에 몰입할 수 있다. 240억 정도의 제작비로 영화 내내 놀라운 CG기술, 탄탄한 설정과 SF적 디자인을 보여주며, 그런 다양한 장치들이 극의 서사에 충실히 접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호>가 SF가 아닌 스페이스 오페라의 이야기구조라 그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중심 소재인 과학기술이 그대로 이야기의 주제가 되면 SF로 이해할 수 있고, 중심 소재인 과학기술이 있고, 그와는 별개의 주제, 특히 휴머니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SF의 하위 다른 장르로 분류된다. 위에서도 인용한 <블레이드 러너>와 <인터스텔라>가 소재와 주제가 과학기술로 일치하는 SF영화의 사례라면, <승리호>는 <스타워즈>와 같이 SF의 배경을 차용하여 영웅들이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협력하는 그런 이야기에 가깝다.


 SF에서는 과학기술이 딜레마를 선사한다.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자녀들의 영상편지를 보고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페이스 오페라인 <승리호>에선 과학기술은 딜레마가 아닌 해결책이고 주로 데우스엑스마키나처럼 편리한 해결책이다. 호화스럽게 차려진 특수효과. 우주활극을 마음껀 즐긴 관객들에게 "그렇다면 과학기술이 과연 윤리적, 혹은 인간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각본을 세공하는 노력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가디언즈 갤럭시>에 갑자기 <윈터솔저>급의 딜레마를 불어넣는 것. 어렵다.

역시 <인터스텔라>를 <승리호>에 비비냐는 말을 할법 하지만.

그래서 이 지점에서 <승리호>는 한계를 보인다. 여러 과학기술은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에 관한 딜레마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고전적 악당과 현대적 영웅이 오히려 나쁜 대비를 이뤄 이야기의 호감을 희석한다. 지나치게 빠르게, 그리고 단순하게 마각을 드러내는 악당은 후반부에 여러번 나쁜 인상만을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주역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잘 뽑힌 캐릭터들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한시간 넘게 정체를 감추는 속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성격들은 지나치게...한마디로 시시껄렁하다. 쿨병 걸린 선장, 그냥 유해진, 쓸데없는 떡밥만 뿌리는 조종사, 투머치한 설정으로 가득한 기관사. 다행히 이들의 미장센이 딱 적당한 언저리에 걸쳐있기에 망정이지 여기에 캐릭터들의 외관까지 선을 넘어갔다면, 정말 관객의 몰입이 확 깨질뻔했다. 결정적으로, 넷플릭스 환경에 최적화되지 않은 그놈의 음향문제 때문에 대화가 통 들리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주인공 4인방에게 몰입하기 쉽지 않다. 다만, 꽃님이의 매력과 활력, 그리고 업동이의 신선함과 대사빨이 이 나쁜인상을 상당히 덜어낸다. 특히 업동이의 최후반부 변신은 그야말로 찬사를 보낼 수 밖에.


 고전적 악인과 현대적 영웅이 버무려지듯 이야기도 현대극과 클리셰를 오간다. 어떤 장면은 <택시운전사>이 속에서 송강호가 칼국수를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떤 장면은 깜짝 놀랄 반전들이다. 중심 이야기에선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애쓴 흔적으로 보인다. 과하지 않은 클리셰와 신파. 그 장면들이 비롯되는 미래 우주 세상. 결국엔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니까.


 정리하자면 SF의 하위 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로서 <승리호>는 성공적인 미래 우주 비주얼을 보여주어서, 상당히 나쁜, 지나치게 단순한 이야기구조의 단점을 상쇄했고, 그를 통해 불편함을 견딜만한 보상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그걸 넘기고 나면 쉽게 몰입해서 상당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대사빨이 나쁘지 않다. 함축적이고 재미난 대사들이 가득해서 영화의 장면장면들과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이를 이야기에 잘 활용했다. 인류를 위한 인류의 단결이라는 구태의연한 장면을 꽤 멋들어지게 이끌어낸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여러 나라에 판매되어서 상당한 수익을 올렸을 텐데 아깝기 그지없다. 업둥이의 새 비주얼과 함께 속편에 대한 요구가 반드시 나올 것으로 보인다.


 K-컬쳐에 대한 여러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하지만 한국의 문화산업이 여러 중간단계를 거쳐 웰메이드 SF활극까지 생산해냈다는 것은 우리가 유의미하게 바라봐야 할 지점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학력, 세계 최고수준의 문화적 개방성을 통해 축적한 컨텐츠 개발 역량이 지나치게 좁은 내수시장을 넘어설 플랫폼 혁신을 맞이하자 해외에서의 흥행을 목표로 한 영화산업 투자가 이루어지고, 리스크를 상당히 잘 통제한 <승리호>와 같은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자본력을 갖췄지만 특히 개방성이 비교할 수 없이 낮아 글로벌 컨텐츠 시장에서 한국보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보면, 국뽕이 아닌 순수한 우리의 국가 역량으로서 앞으로의 컨텐츠산업의 전망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니, SF도 잊고, 국뽕도 생각할 필요 없이 순수하게 웃고 떠들고 즐기면 되는 영화다. 꽃님이와 업동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김태리는 예쁘고 진선규는 빵빵 터지게 웃기고, 송중기는 중심 역할을 잘 한다.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가 여러 별로인 캐릭터를 충분히 지워낸다. 영화를 보며 음향이나 서사 등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딱 하나,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은 장선장의 비밀병기가 화력이 너무 약했다. 겁나 쎈 스페이스 바주카포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총 이거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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