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공정함이 최선인가?

정시 비율 확대 주장, 그 공허함

by 공존

들어가며

이 글은 하나의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수능은 학종보다 공정하다."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이 아니다. 수능과 학종의 교육평가의 공정성 비교 연구의 결과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도출된 된 바 없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금수저 전형이라거나, 정시가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하는 여론은 특정한 목적을 가진 집단의 일방적 주장과 교육약자들의 집단적 피해의식, 그리고 장기간의 잘못된 여론조사가 빚어낸 하나의 유령일 뿐, 국가의제로서 국민들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대학 입시 문제를 결정지을 어떤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의 이론으로 체계화된 바 없다.


다만 내가 학문적 지향점으로 따르고 있는 진보교육 학계가 공교육 혁신, 미래교육 문제 등에 집중하여 정시 확대론자들의 주장이나 여론작업에 소홀하게 대처한 점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매년 확대되고 있는 학생부종합 및 수시전형의 질적 관리나 교육과정 연계에 부심하여, 정시 확대론자들의 주장에 맞선 학문적 논의에 소홀했다. 물론,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간의 공정성에 대하여 진보교육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이론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 글에선 정시 확대론자들의 핵심 주장을 수용키로 한다. 현 시점에서는,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는 주장이 여론에서 적지 않은 세를 입었고 지금까지 진보교육계에서는 이에 대하여 충분한 논의에 나서지 못하였다. 그 대신, "공정한 대학 입시가 최선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하여 대학 입시 정책 변동의 역사를 살피고 2019년 오늘날 학생부종합전형과 공교육의 관계성, 그리고 교육의 본래 목적에 타당한 평가 방안 및 진학 정책을 논하고자 한다. 대체적으로 현재 정부의 방침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시 확대 주장은 수용하되, 정책의 일관성, 정책의 영향력, 교육과정의 합리성 등 다양한 변인들을 검토해 앞으로의 입시정책을 확정해 나갈 것이다.


1. "공정한 입시"는 교육의 목적에 합치하는가?

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밝혀온 바 있지만, 수능을 위하여 습득하는 지식이 학습자의 삶에 기여하는 순기능적인 측면이 부재하고, 그 지식의 습득 과정 또한 암기와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반지성적인 것임에는 이견이 없다. 알파고쇼크로 현재 공교육 현장에서는 초중고 공히 창의성 교육, 메이커교육, 프로그래밍 교육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수능 교육의 어디에 창의성이 존재하며, 프로그래밍 과목이 있으며, 설계와 제작 경험이 있는가? 수능 형식의 교육의 부작용은 전 서울대 이혜정 교수의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통렬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최고의 교육과정을 밟아, 한국 내에 존재하는 최상의 교육적 성취인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그 학력에 걸맞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해결능력이 발현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공정한 입시가 최상의 가치일까? 교육의 본래 목적인 계획에 따른 학습자의 성장,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견인할 인재를 키워내고, 미래세대가 직무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과 함께, 한 인간으로서 전인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수능의 공정함은 중요한 것일까?


"학생부 종합전형은 그게 가능한 체제인가?"라는 질문은 이러한 질문에 타당한 반박이 될 수 없다. 십여년간 지속된 정책의 방향을 뒤흔드는 수준의 변화가 교육의 본래 목적에 반하는 수능교육으로 향한다는 것이 문제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단점이 있고, 공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정확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 수능과 같은 반지성적 교육체제로 회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 수능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국 교사들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교육과정과 한반도를 임시통치한 미군정의 미국식 교육과정이 신생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가치와는 상당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진단하고 전국적으로 연구회를 조직, 동시다발적인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이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우리나라 교육 역사에서 최초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의식 있는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육 내용을 우리 민족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려는 연구를 하고, 정책 제안을 하고, 의욕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 교육과정론의 조률르 크게 바꾸어 놓은 운동"으로서 "교육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후략) (이길상,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다> p.72>


1951년부터 시작된 교사 중심의 커리큘럼 개조운동은 4년이지난 1955년에 이르러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 공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남도, 그리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에 이르기 기까지 많은 지역에서 현장 교육에 영향을 미쳤고, 일부 교사들은 성공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같은 책, p.82)


이러한 배경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수능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선다형 일제고사 형식의 대학입시가 확립된 1968년의 사건이 얼마나 반교육적 행태였는지에 대한 접근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해방 직후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뜨거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노력이 이어졌고 그 노력은 이승만정권의 억압이나 한국전쟁의 참화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이어졌다. 미군정이 한국 교육에 심어놓은 민주주의교육이라는 지향점이 현장에서는 탱자가 아닌 귤로 무럭무럭 자라나 4.19 혁명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자치, 민주교육을 뒤엎은 것이 박정희 쿠데타 정권의 교육정책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당대의 교육현실이 학생 데모와 교원노동조합 설립운동, 사립대학의 정원 외 학생 입학을 둘러싼 혼란과 비리에 빠져있다고 규정하고(같은 책, p.177) 교육자치제를 폐지하고 국가가 직접 교육관리에 나선다. 정권이 수립된 직후인 1961년 6월, 대학정비의 일반 방침을 확립하고 7월에는 대학입학자격을 국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만 부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대학을 통폐합하고, 그에 따라 대학문이 급격히 좁아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거대한 퇴행은 7년 뒤, 마침내 현행 수능제도의 모태가 되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제"로 완성된다. 정부 수립 이후 20년간 학교에 부여되었던 학생선발권을 마침내 국가권력이 완전히 찬탈한 것이다. 대학별로 원칙과 절차에 따라서 서술형 평가 등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던 민주자체의 틀은 붕괴되었고, 교육정책의 난맥상을 모두 대학입시의 "공정함"으로 매조지시키는 기형적 제도는 이때 생겨난다.


선다형 일제고사를 통한 대학 입시는 이미 이승만 정권 시절에도 시도했다가 "커닝 경연 대회"라는 조소를 받고 이듬해 바로 폐지된 바 있다. 그 당시에는 정권의 시도가 교육자치의 저항에 번번히 가로막히곤 했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생선장사로 생계를 연명하면서 칠판과 책도 없이 아이들을 길러내던 이들이 그러나,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의 10년의 가까운 시도 끝에 교육정책에서 소외되었고 마침내 대학은 고유의 교육철학과는 일절 관련없는 선다형 일제고사로 학생들을 받기만 하는 기형적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게다가 이 8년 공정이 남긴 최악의 관행은 우리 교육정책이 모두 대학입시로 귀결되는 악습이다. 공교육혁신을 위한 각종 대책도 대학입시로 인해 망가지고, 혹은 실패한 교육정책으로 인하여 국민여론이 악화되었을 때조차 대학입시정책의 변화로 탈피하는 관행이 바로 이 시기 생겨났다. 지금은 과연 다를까?


3. 교육과정 연계 다면평가 VS 교육과정 왜곡 일제평가

학생부종합전형은 10년 넘게 논의되며 지속되었고 그 중 후반부 5년간 우리나라의 교육자치를 상당히 신장시킨 진보교육계는 학생부종합전형과 연계한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동시에 입학사정관제 도입 초창기의 문란함은 여러 교육주체들의 비판과 대안형성 노력을 통해 정돈되었다. 그 결과, 2019년 현행 학생부 종합전형은 학생들의 3년간의 성장을 다면평가, 과정평가하여 대학이 객관적으로 학생들을 파악하고 선발할 수 있는 체제에 근접해졌다.


이 시스템이 갖는 한계는 그러나, 교육의 외적 변인에 과도하게 취약하다는 점이다. 강남 8학군 학습자의 내신성적이 지방 소도시 학습자의 내신과 같을 수 없고, 이는 대학 스스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에 실질적 고교등급제를 적용하여 보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고자 하는 편법을 행사해 왔다. 바로 여기에서 교육강자와 교육약자 모두가 피해를 느끼고 제도에 대한 여론의 악화가 발생한다. 모든 전형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한, 모든 대학 불합격자들은 한편에선 대학 탓, 다른 한편에선 학종 탓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생부종합전형과 상호작용하며 발달해 온 교육과정이 입시의 공정함을 위하여 훼손되어도 되는 성격의 것인가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시확대론은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에 과도하게 편향된 주장이다. 수능 경쟁이 불가능한 학생들을 입시지도해야 하는 서울 바깥의 학교들에서는 수업을 재구성해서 학생들에게 개별화된 성장과정을 남길 수 있도록 지도하고, 그것을 생활기록부에 근거화하기 위하여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벌여왔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외우기 보다는 활용하기, 문제풀이보다는 가르치기를 통해 지식을 체득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입시의 공정성을 조금 확보하기 위하여 훼손되어도 되는 것일까?


정부는 특정 입시 강세대학에 한정하여 소폭상승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어떻게 유명대학에 단 한명이라도 합격시켜서 학생들을 수급해야 하는 지방 고등학교들의 입장에선 훨씬 더 불리한 처사다. 실질적 고교등급제에서도 매년 수십명씩 유명대학에 학생을 입학시키는 고등학교 입장에서는 정시의 소폭확대는 큰 변인이 아니지만, SKY 라인에서 발생하는 단 1명의 입학정원 감소에도 서울 바깥은 훨씬 예민할 수 밖에 없다.


4. 왜 대학은 학종을 확대시켜왔는가?

이런 배경에서 왜 대학은 학종을 확대시켜왔는지 또한 따져볼 문제다. 공정한 정시보다 불공정한 학종을 계속 늘려온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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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입학사정관제도, 대학에선 어떻게 인식하는가?(https://brunch.co.kr/@coexistence/23)"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아주 많은 대학과 학자들의 연구 결과 정시와 수시(교과 및 학종) 입학생 간에 유의미한 대학 학업성취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정시 학생들의 대학 생활 적응 정도가 다른 집단에 비하여 높지 않다.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과 수시를 선호하는 것은 자본과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충분히 논의가 끝난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시대가 많이 변했다. 대학 입장에서도, 정시가 아니라 학종을 통해서도 충분히 우수한 인재를 자기의 입맛에 맞게 선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불공정은 발생한다. 대학의 학생선발권과 평등한 교육권은 애초에 양립 불가능한 논의다. 대학의 학생선발권이 갖는 문제도 있지만, 이 문제를 그 선발권을 축소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에 역행한다. 학생선발권은 확대시키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을 시정토록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도리어, 학종이 불공정하니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문제를 은폐하고 눈돌리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5. 열린 체제와 닫힌 체제 그리고 교육정책의 주인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능이라는 닫힌 체제로의 회귀가, 열린 체제인 학생부종합전형의 단점을 해소하는 마땅한 해결책인가하는 점이다. 수능은 닫힌 체제다. 출입이 통제된 출제실에서 소수의 전문가들이 출제한 문제로, 엄정한 감시 속에서 학습자가 정답을 맞추었는지만을 평가한다. 여기에서 평가에 반영되는 것은 단 하나, 학습자의 지식의 암기 수준과 문제풀이 능력이다.


반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열린 체제다. 그 안에는 각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전반(교육목표, 교육체계, 교수법, 개설된 교과목, 창의적체험활동 등 비교과 지도) 모든 것을 평가에 반영한다. 학습자의 진로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을 평가하고, 2년 반의 점진적인 성장세를 평가한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한 사람의 대학입학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체계이고, 이 때문에 변수가 많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 학교 현장을 바꾸어내는 성과를 내 왔다. 21세기에, 고도로 민주화된 사회를 지향하는 지금 시대에, 열린 체제인 학종보다 닫힌 체제인 정시를 중시하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공정하다 할지라도 학생부종합전형에 비해 현저한 공정성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 닫힌 체제를 택해야 할까?


공정성을 위해 다른 많은 가능성을 배제하자는 주장을 현실의 다른 영역으로 옮기면, 그것은 오히려 극좌나 할 주장으로 보인다. 공정성을 위해 블라인드 면접. 공정성을 위해 임금평준화. 이것이 어떻게 민주적인 제도일까? 지금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측은 극좌와는 정반대의 세력으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책의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국가정책은 보다 많은 주체의 참여를 통해, 보다 민주적으로 토의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나, 민주주의 국가의 주체를 성장시키는 이 교육정책에선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불공정을 시정하고, 대학의 고교등급제 등의 불공정을 시정하고, 학습자간의 불공정을 시정할 수 있는, 그러한 폭넓은 가능성을 품은 체제인 학생부종합전형을 축소하고 오로지 학습자의 점수만을 평가하는. 학교를 불신하고, 대학을 불신하고, 학습자를 불신하는 체제인 수능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과연, 제대로 된 정책논의라고 볼 수 있을까? 교육정책의 특수성을 공고화하기보다는 그것을 경감시키고, 교육정책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다른 정책영역과 연계해서 열린체제의 틀 안에 우리의 교육문제는 해결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학 없이도 살 수 있는 국가. 직업의 귀천 없이 사람 답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말이다.


결론 : 잘못된 전제에서 제대로 된 정책논의가 가능할까?

사실 글을 시작할 때 세운 이 "잘못된 전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교육학의 한 갈래로 이미 체계화된 이론적 틀이 있다. 평등에 대한 세 관점. 조건의 평등, 과정의 평등, 결과의 평등이다. 애초에 잘못된 전제에서 제대로 된 논의는 불가하다. 정시 확대론자들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된 논의이기에 결론부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6990_3185_2126.png 수능이 보여주는 공정함은 어느쪽인가?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는 것은 교육 조건의 공정함을 검토한 주장인가? "아빠의 무관심 아래, 엄마의 정보력 아래, 조부들의 재력 아래"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며 인지를 형성하고 각종 선행학습을 받아 본격적인 입시교육을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몇년이나 일찍 시작한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하여 다른 학습자들과 공정한 조건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거꾸로, 편부모 가정에서 극빈층의 경제적 문화적 환경 아래 성장한 아이는 입시경쟁을 시작할 때 다른 아이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걸까?


그 과정은 공정한가? 대학 진학 희망자는 수능 및 내신관리에 있어서 모두가 공정한 교육적 과정을 밟고 있는가? 한달에 수천만원 쪽집개 강사들을 집으로 불러 과외를 받는 학생들과, 지역 소도시에서 밤새워 "자습(자기주도적학습이라는 개념은 자습과 다르다고 보기에 공식 용어인 자기주도적학습이 아니라 과거 용어인 자습을 채택.)"을 하는 학생들은 공정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과는 공정한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인해 양산되는 피해자들은 정시 확대를 통해서 경감될 수 있는가? 출제자들의 구성, 그리고 출제자들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매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과목의 난이도는 수능 횟수를 늘림으로써 안정될 수 있을까? 수능 만점자를 없애기 위하여 수십년간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심화되고 시험범위가 넓어질대로 넓어진 조건에서 시험범위 대비 출제에 적용된 지식의 임의적 선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자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시를 통해서 모든 대학 진학 희망자들이 조건의 불공정성, 과정의 불공정성을 딛고 학생부종합전형보다 나은 결과의 평등을 얻어낼 수 있을까?


진보교육계에서 정시 확대론자들의 주장을 등한시해온 것에는 학계 내에서 교육의 공정성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논의를 이미 해온 바 있고, 그 때문에 정시가 학종보다 공정하다는 그릇된 주장에 대하여 반박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상당한 이유를 차지한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을 고리로 한 언론권력 및 자본권력의 공세에 휘말려 대통령이 직접 정시 확대 주장을 수용해버린 정책결정의 역행 상황에서 이제라도 제대로 된 반박과 논의는 필요할 것이다. 평생 쓸 일 없는 암기지식의 바벨탑을 쌓아 먼저 하늘에 닿기 위한 경쟁에 단 한명의 학습자라도 휩쓸리게 한다면, 그 책임은 우리 세대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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