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응이 없었을까만 궁금
영화를 반쯤 봤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이거 완전 탈코(르셋) 영화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히어로 샤를리즈 테론. 그리고 조만간 리뷰할 <나쁜 이웃들>과 <디스 이즈 디 엔드>의 훌륭한 배우이자 센스 넘치는 각본가 세스 로건이 공연한 <롱샷>은 심지어 두 배우가 제작비를 투자해서 만든 영화다. 우리 나라에서는 뭐랄까. 세스로건은 인지도가 0에 수렴하고 테론의 경우...국내에선 작품빨을 심하게 타는 배우라서 흥행은 영 좋지 못하다. 그러나 이 영화,
<롱샷>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대통령에게 지명된 샬롯(샤를리즈 테론)이 어떻게 권력의 최정점에 다가서기 위해서 각종의 코르셋으로 자신을 꽁꽁 싸매는지를 유려하게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하여, 소녀 시절 옆집 꼬맹이 프레드(세스 로건)을 만나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하나 둘 코르셋을 내던지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감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지킬 최후의 방어막마저 포기하는 과감하고 신선한 결단을 보여주는, 이 시대의 여성 서사의 어떤 하나의 롤모델로서 충분하다고 할만하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으로 "탈코르셋"에 있어서 <롱샷>은 여성해방의 양면적인 관점을 충분히 잘 다룬다. 영화 초반부의 샬롯은 아직 성공을 위하여 갈 길은 너무나 멀고, 그보다도 멀리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는 멀어진 상태다. 그리고 프레드를 만나면서 샬롯은 성인이 되기까지 스스로 택한 코르셋을 던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샬롯이 대선후보로서의 경쟁을 위해서 택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충동적으로 프레드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것은 프레드가 샬롯이 잃고 있던 진정한 소녀의 꿈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론 하찮은 소시민일지라도. 동시에, 샬롯은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사회적 코르셋에 전격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공한다. 여성이 남성위주의 정글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온갖 코르셋으로 자신을 싸매고서야 낑낑, 겨우 살아남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샬롯은 극 후반부에 그런 노력조차 포기하고 자신의 사랑을 추구함으로써, 여성 고유의 문제해결방식을 입증해낸다. 코르셋을 벗고 찾아낸 행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임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권력자라는 두마리 토끼. 이게 그런데 영화에서 설득이 된다.
재미있는 영화다. 본질적으로 유머가 훌륭하다. 말로 조지고 웃기는 정통 미국식 유머가 꽤 나오는데도 2/3 정도는 빵빵 터지는 타율을 보인다. 몸개그와 상황 개그도 매우 적절해서 꽤 큰 웃음이 여러번.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계속 코믹한 대사와 장면이 나오는데, 꽤 여러번 예측을 넘어선다. 동시에 정치적으로 참하다. 애초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섹시함와 기품, 지성과 유머를 두루 갖춘 최고의 여성 정치가가 뿜어내는 매력. 그리고 뭇 남성들이 품는 “옆집 누나 판타지”를 만족시키면서 본인의 개성을 잃지 않은 남자주인공 프레드. 그리고 백인 남성 주류 사회를 마음껏 조롱하면서 유색인종과 여성들을 활용하는 영리한 재주를 갖추었다. 사실 영화 초반부에 환경 정책으로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허황된 소리에, 에이 뭐야 겨우 환경? 이라고 헛웃음을 냈는데...영화 끝날 땐 반성하게 된다. 환경과 진실, 신념이 만나면 이렇게 좋은 메세지가 나온다.
“로맨틱 코미디가 뻔하지 뭐”라는 편견을 뚫고 아마도 세스 로건이 참여한듯한 각본은 상당한 퀄리티를 보이는데, 도입부의 황당한 상황부터 시작부터 결말까지 조금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만 영화가 흘러간다. 틈틈이 맥거핀까지 배치해서 계속 관객의 약을 올리는 영리한 각본.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선거 준비 스토리라는 좋은 소재에서 시작해 게으르지 않게 시나리오를 다듬은 티가 난다.
단점은...정치에 대해 꽤 진지하게 다루고 있고, 그것이 작품성을 높이지만, 영화의 발목을 잡는 역효과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로맨틱 정치 코미디>라 부를 정도로 정치의 비율이 큰 영화인데 그 정치 묘사가 그렇다고 “착한” 수준을 넘는 건 아니라서, 불필요하게 진지 빤다고 느끼거나...사족이라고 느낄듯. 영화의 몇몇 정치적 갈등이 대~강 처리되고 흘러가기도 한다. 지루한 장면도 대개 정치 묘사에서 나온다. 샬롯의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좀 더 필요했고, 보좌관들의 로맨스 같은 부분은 걷어내고 차라리 그 자리에 선거전략을 위해 부심하는 그들의 모습을 묘사했으면 좋았을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