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찜닭골목에서 식사 후 걸어서 디저트
"맛있다."
"응 괜찮네."
"오빠 껀 어때?"
"민트초코는 향 쎄서 좋아."
"그거 말고 대파하하하"
"움...맛있어. 대파맛 하나도 안나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은 1년 전 부터 예약을 했던 안동의 숙소에 마침내 왔다. 두시간쯤 일찍 조퇴를 달고 나와 얀센 백신을 맞고 출발한 길. 어지간히 배가 고플 무렵에 길고 제법 막히는 길을 지나 안동에 도착했다. 물론 저녁은 안동찜닭을 먹고. 찜닭을 다 먹어갈 무렵 바깥양반에게 숙소에 가기 전에 들를 곳 있냐고 물었더니 "젤라또 먹고 가."라고 한다. 마침 뜨끈뜨끈한 찜닭으로 뱃속이 가득 차서...아이스크림이면 딱 좋을 것 같긴 하다만 젤라또라.
그런데 요기가 재밌다. 안동구시장 찜닭골목을 빠져나와 5분 남짓 걷자 다른 점포들은 다들 불이 꺼진 시간에 환히 밝혀진 흰색 가게가 멀리서부터 한눈에 보인다. "아차가"라니. 이름을 재밌게 지었다 싶었는데 유리벽에는 블루리본 스티커가 주룩 붙어있고, 가게를 들어가자마자 한켠에 귀엽게 마스크를 씌워놓은 푸들 인형도 있다. 강남이고 홍대고 20대가 다닐만한 동네를 다니지 않은지 5년이 넘어가니 나는 여행을 오거나 해야 이런 구경을 한다. 어쨌든. 고맙네.
콘과 컵을 고를 수 있고 가격은 싱글 4천원. 디저트로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다. 실내가 깔끔하니 알록달록해서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맛보기 전에 눈으로 먼저 즐길만하다. 메뉴가 그런데 신기하다. 체리, 수박, 딸기처럼 무난한 젤라또가 있는가 하면...
...대파 크림치즈?
"어 이거 어떻게하지."
"응?"
"대파 크림치즈래. 아이스크림이."
"먼저 계산 도와드릴게요-"
"오빠 비켜봐 싱글 두개요."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는 계산대와 바깥양반 사이를 가로막은 채 대파 버터크림 젤라또를 한참 바라봤다. 야 이거 상당히 재밌겠는데. 대파 아이스크림이라니 신기할 것 같잖아 근데 맛은 없을 것 같잖아. 먹을까 말까 안동을 내가 또 올 일이 있을까 말까 이 대파 아이스크림은 나의 이런 설레임을 배신할까 아니면 끌어안아줄까.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우르르 손님들이 들이닥쳐, 나는 주춤 뒤로 밀려나서 다시 대파 크림치즈 아이스크림과 나 사이의 거리를 띄워야 했다. 이것을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오빠 빨리. 주문 밀리잖아 오빠 때문에."
"에이. 민트오레오랑 대파 크림치즈요."
"네 잠시만요..."
"..."
"..."
"혹시 궁금한 맛 있으세요?"
"어 설마 맛볼 수 있어요?"
"네 한숟가락씩 테이스팅하실 수 있어요."
"이런 젠장! 그럼 대파를 맛보기 할걸!"
그렇게 나는, 바깥양반이 받은 안동쌀 젤라또를 맛보기 스푼으로 받아왔다. 제길. 대파 맛 정도는 한숟갈이면 됐을 것 같은데. 한 스쿱은 아니고.
그런데 또, 민트초코를 한입 물고 머리를 식혀주는 에어컨 바람을 쐬니 샤라라 하며 습기에 지친 몸이 한풀 스르르 가라앉는다. 3시간 조금 넘게 운전을 했고 에어컨을 틀다 말다 하긴 했지만 차에서 비로소 내려 찜닭을 먹는 사이에 몸이 열기와 습기로 이리저리 노곤하다. 얀센 백신의 후유증이 아직은 느껴지지 않는데 별 다른 부작용은 없겠지.
바깥양반은 안동을 당일치기로 전에 한번. 나는 오늘이 처음 여행이다. 요 근처 풍기까진 몇해 전에 와서 일박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첫 끼니는 찜닭이어야 할 텐데 안동 옛시장의 찜닭골목이 그럭저럭 재미가 있다. 가수 영탁의 사진을 재밌게 전시한 가게도 있고, 눈으로 대충 보기에 한 20개는 넘는 찜닭집들이 저마다 활기가 있다. 내일 가기로 한 숙소에서 추천한 식당을 가면 3000원을 할인해 준다기에 별 고민을 하지 않고 들어가 주문을 했다. 보통맛으로 25000원이다. 그런데...
양이 무지막지 하게 많았다. 살짝 설익어서 심이 살아있는 감자의 아삭함 하며 미리 불려놓고 오래 삶진 않은 당근의 탱글함까지 살아있는 찜닭이, 안동 원조의 여유라는양.
양은 많지만 짭조롬하니 싱싱한 닭고기는 자꾸 손을 당긴다. 그래서 많이 먹었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실내에서 뱃속으로 방금까지 팔팔 끓던, 매콤하고 뜨끈한 국물과 고기가 들어가니 땀이 안나고 배기나. 식사를 하고 불과 10분 사이에 와서 젤라또를 먹고 있으니, 그 시원함에 상쾌함이란.
우르르 몰려든 손님들이 저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우르르 나갔다. 대파 버터크림 젤라또는 첫 숟갈부터 "아삭"하고 입 안에 대파조각이 씹혔다. 그 때 흠칫 놀랐다. 물론 나는 마니아라고 할만큼 대파를 좋아하지만 아이스크림에 넣는 건, 아니, 아니지! 그래서 대파 조각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살살 입안에서 녹이는데...어라 이건 멀쩡하니 맛있네.
맛있다. 크림치즈의 눅직한 맛도 대파의 매콤한 맛도 우유 아이스크림에 살짝 녹아든 모양새다. 대파의 식감은 여전히 사각사각하지만, 젤라또는 아주 맛이 좋다. 그래서 재밌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가게 이곳저곳을 다시 구경하며 스티커도 챙기고, 남은 아이스크림도 무엇이 있나 구경을 했다. 뭐어 떠 와서 다른 젤라또를 먹겠다고 할 건 아니지만서도. 대파를, 정말로 조금이지만 정말로 썰어서 넣은, 젤라또는, 처음 들른 방문자에게 그런 재미난 첫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