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안동 고택 숙박이랍니다. 1년 전 예약.
안동역에서 출발해서 꼬박 55분 가량을, 게다가 그중 30분 이상을 산 속을 달리는 내 마음은 구절양장처럼 복잡시려웠다. 미리 길이 험할 것은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길고 험난한 길이다. 달려도 달려도 오르막길은 끝이 나지 않는데 도로폭이 1차선에 못미치고 좌우로 나무는 무성하다. 대체, 이렇게 달려서 숙박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곳은 어디란 말인가 하며 마음 속으론 미심쩍음이 한가득이지만, 1년 전에 우리가 이곳을 예약했을 땐 예약 오픈과 함께 모든 좋은 계절의 좋은 방은 순식간에 다 차버렸으니 이 고생을 해서 갈 가치가 있긴 한 것이겠지.
굳이 차가 아니더라도 안동역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마도 체크인 시간과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하루에 딱 두번일 것이고, 버스를 놓친 사람들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택시도 안될 것이요 그 단 한대의 셔틀버스가 없으면 더더욱 안될 것이니 여러모로, 정말이지 까다롭다. 지도를 보아도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 앞은 댐으로 형성된 호수요 다른 곳엔 절도 길도 없는데 대체 이곳에 왜? 운전을 하는 내내 이런 나의 의구심에 대하여 바깥양반은 "400년 된 고택이라니까 일단 인기가 있겠지."라고 대꾸를 한다.
그 의구심은 지례예술촌에 도착해서 풀렸다. 방에 가서 짐을 풀고 나오자마자 발견한 안내판에 친절하게 쓰여있었다.
길고 긴 산길을 지나 차에서 내리니 말 그대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번듯한 대저택이 나타난다. 사랑채에 별채에 서당에...이게 건물이 몇채야. 여행의 코스는 대부분 바깥양반이 짜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 대해 사전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놀라운 감상 그대로 고택을 둘러볼 수 있었지만, 한떄는 예술가들이 기거하던 곳이라 하고 지금은 숙박업소로 운영되는 한옥에 빼곡히 사람들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다.
"일단 이리 들어오세요."
“와 제비 진짜 많네요?”
“난 제비 처음 봐.”
“아 많죠. 엄청 많으니까 이쪽은 조심하세요. 똥이 폭격이 날아옵니다.”
식당 겸 사무실로 우릴 이끌고서 경상도 특유의 성조가 섞인 말씨로 대표님은 속사포를 쏘아내듯 빠르게 안내를 마쳤다. 정말로 빠르게 숙박 체크인 겸 오리엔테이션이 끝났지만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마당 구석에 아무때나 누워서 잠들어 있는 흰둥이의 나이가 물경 열 네 살이라는 것과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까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안마당을 둘러볼 수 있었고 하늘과 산과 한옥의 색상과 어우러진 정원 가득한 여름꽃들까지 눈길로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래. 올만하구나. 나는 여름꽃을 좋아한다. 마침 장독대를 둘러싼 낮은 담장 앞에 루드베키아 한 송이가 저중에 홀로 피어있기에 따로 사진에 담았다.
구곡상류라. 아홉굽이 물길의 윗머리라니 종택을 지은 중시조 뻘인 그 양반의 기상이 또릿하다. 이 방이 지례예술촌에서 가장 먼저 동이 나는 네개의 방 중 하나다. 창으로 저 아래 호수를 조망할 수 있어서다. 안동댐으로 만들어진 호수인데 사실 창에서 보이는 좁은 풍경보단 저택의 곳곳이 워낙 아름다워 이 방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다만 바깥양반은 인스타그램을 하진 않지만 사진 욕심도 있고 이왕이면 가장 인기있는 컨텐츠는 함께 즐겨보자는 성격이라 어렵사리 이 방을 예약을 잡았다. 방에는 에어컨도 콘센트도 잘 갖춰져 있고 쾌적하다. 앞뒤로 문을 모두 여니 이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지만 옷을 갈아입기 위해 문을 닫고나니 탁 트인 그 조망도 이내 싱거워져서 유리문은 우선 닫게 되었다. 그리고 에어컨을 틀었다.
"너 모기장 안써봤지?"
"모기장이 뭐야?"
별로 나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바깥양반은 모기장을 써 본 일이 없다. 서른살까지 에어컨 없는 집에서만 살아왔던 나는 어릴 적 우리집에서든 시골집에서든 모기장에 몸을 쏙 집어넣는 그 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방충망이 보편화된 시대엔 우선 모기장이 사라졌다. 에어컨이 일반화되자 여름에 앞 뒤 창문을 열고 땀을 식히는 일도 드물어졌다.
옷을 갈아입고 산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우리 말고도 여러 커플이 저택을 둘러싼 ㄷ자 모양의 오솔길을 가벼운 차림으로 걷고 있다. 다행히도 화창한 날씨에 적당히 구름이 끼고, 바람은 솔솔 불어와 딱 걸을만은 하다. 조금만 늦어도 더워서 걷기 꺼려질 것 같고, 조금 일렀다면 만발한 여름꽃들은 보지 못했을 테다.
그리고, 산책로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서야 나는 이 지례예술촌 종택이 지금 자리가 아니고 바로 아래 호수에 수몰된 자리에 다른 마을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며, 400년간 머물던 자리에서 바로 뒷 산등성이인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음을 알았다. 아아. 이제서야 오는 내내 품고 있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본래 안동을 굽이굽이 끼고 흐르는 낙동강 물길에 따라 세워진 마을이 사라지게 되면서, 이 큰 저택을 옮기기로 했으나 멀리 움직이지는 못하고 본래 자리에서 조금 위로 올렸을 뿐인데, 그것이 물길도 사람길도 멀고 먼 길이라 그만 이렇게 외떨어진 곳에 집이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런 심증을 두고 저택을 바라보니 사립문이 찻길 방향이 아닌 호수방향 남동편으로 비스듬히 자리한 이유를 알겠다. 이게 본래의 옳은 방향. 그리고 사립문에서 아래 호수까지 길게 돌계단과 돌바닥까지 잘 다듬어져있다. 처음 집을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 찻길이 뚫릴 때까지 배를 타고 오갔을 것이다.
배를 타는 근처까지 내려와 저택을 올려다보니 한쪽으로 서늘해져가는 저녁하늘의 빛이 조금 섞이며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집이 옮겨지고 배로 이 저택을 오가던 시절에는 늘 이 장면을 바라보며 집으로 올랐을 거라 생각하니 그 또한 놀랍고, 이곳이 숙박 영업을 하기 전에 머물었다던 시인들과 예술인들의 감흥도 대강은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모든 풍광과 감흥이 물에 잠긴 고향을 사시 사철 바라보아야 하는 설움에 견줄까. 나는 조용히 침묵하는 호수와 나란히 걸었다.
"어릴 때 외갓집 앞에 감나무가 꽤 컸는데."
두해 전 추석날 성묘를 마치고 호반길을 따라 차를 몰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대전의 대청댐. 수몰된 자리에 아버지의 외갓집과 우리집안의 논밭이 조금 있었다 한다. 우리 시골은 대전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일대의 땅을 제법 소유한 넉넉한 집이었다고 한다. 지례예술촌과 비할바는 못되지만 네칸의 본채와, 소를 기르는 헛간이 붙은 두칸의 별채엔 삯일을 하던 청년들도 머무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제강점기 말엽 아들 둘 딸 둘을 얻으신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7년간 노동자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재산을 제법 모아 건강히 돌아오셨다. 그 덕에 셋째 큰아버지부터 아래 형제들이 위에 두 분 큰아버지와 두 분 고모님들과 터울이 제법 있으시다. 그래 모아오신 돈으로 해방 이후 마을 주변 땅을 조금 모으셨고, 대청댐으로 수몰된 곳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댁의 막내로 어린 시절엔 수몰된 동네의 외갓댁도 자주 오가고 그 땅에서 논일도 거드셨다. 어린 시절 마을을 나오면 마주보이는 대청호가 내겐 그저 어른들 뱃놀이나 하던 곳이었는데, 아버지에겐 그곳이 기억이 잠들어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이심전심, 그리고 수몰지를 바라보고 큰 내가 지례예술촌에 느끼는 이심전심. 그곳을 지키는 대표님의 마음도 그러할까. 대강 반절 정도 걸으니 예약된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고, 우린 발걸음을 재촉에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받았다.
공간 곳곳이 아름다우니 어디에 두어도 때깔이 곱다. 원래는 식당에서 제공하던 식사를 코로나로 인해 찬합에 담아 도시락으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설정샷을 찍고 마당으로 나왔다. 나는 이때를 위해 준비한 모기퇴치 미스트를 온몸에 치덕치덕 바르는 수준으로 뿌렸다. 덕분에 이틀 내내 둘 다 모기엔 한번도 물리지 않았다. 안동의 여러 음식이 간이 싱거운 편인데 이곳도 그렇다. 칼칼하면서 간간한 제육볶음과 여섯가지 찬합, 그리고 샐러드와 두부조림까지 대개가 신선하고 맛도 좋다. 간고등어 정식 한끼만 먹고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않고 보낸 하루, 게다가 분주하게 움직인 뒤라 배가 고팠다. 둘이서 싹싹 밥을 비우고 바깥양반은 노트북으로 TV를, 나는 논문을 조금 읽으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례예술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밤이 잦아들면서 채워졌다.
밤이 찾아오며 곳곳에 구슬조명이 켜지고 하늘과 목조의 빛깔, 대청과 꽃빛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낮의 풍경이 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이라면 밤의 풍경은 푸른 물감 위에 뿌려진 칼라잉크 같았다. 햇빛에 가려진 다양한 색이 밤이 되자 이것이 본래 자기 모습이라는듯, 은은한 빛을 뽐낸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자리에 앉아 우리처럼 차를 즐기거나, 와인 혹은 맥주를 마시거나, 느긋히 앉아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다. 본채 오른편의 서당채엔 두칸의 방을 숙박으로 쓰고 있는데 서당채는 호수가 보이는 방들은 없지만 마당 전체에 잔디가 잘 조림되어 있는 독립된 공간이라 이곳이 조용히 쉬다 가기 좋아보였다. 다음에는 이곳에 머무르리라 다짐을 했지만 곧 나올 아이 때문에 쉽진 않겠지. 대신 아이가 크면 이곳에 앉혀놓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런 마음을 품게 만드는 빛과 공기였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빛 속에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고, 시간은 꽃들 사이에 숨어서 조용히 사라질것만 같은 공간.
해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는 뒷산의 뻐꾸기가 소란스럽게 울기 시작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유리창문에는 환한 불빛에 꼬여든 벌레들이 다닥다닥. 이렇게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이 또 얼마만인지. 생각해보면 에어컨은 더위로부터 구원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벌레와 여러 미물로부터도 우릴 구원했다. 에어컨이 없어서 창문을 열어뒀어야 했다면 바깥양반은 분명히 개구리 소리가 들리자마자 소스라치며 창문을 닫으라고 했을 것이고, 모기장 속으로 개구리가 들어올 것이 아니냐며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온 집안에 가득한 제비소리. 아침 여섯시.
나는 어릴때부터 외가든 친가든 시골집에 가면 꼭 혼자 제일 먼저 일어나 마당을 돌아다니곤 했다. 자주 가던 몽산포 해변에서도 그랬다. 잠자리가 바뀌어서도 잠을 잘 자는데 남들보다 너무 잘 자는 탓인지 일정 시간이 되면 반드시 눈을 뜬다. 오늘도 그랬다. 요란한 새 소리에 여섯시에 똑 하니 눈이 떠졌다. 슬쩍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니 이미 환하게 밝아져있다. 임신 중기라 몸은 슬슬 무거운데 화장실을 밤마다 대여섯번은 가야 하는 바깥양반은, 내가 새벽에 세번째까진 따라가줬지만 그 뒤엔 어쨌는지, 당연히 잠이 부족해서 내가 창문을 열자마자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돌린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드디어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 다시. 어제 마치지 못한 산책을 아직 안개가 가시지 않은 호숫가를 바라보며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시골집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오랜 기억은 대청마루 아래에 누렁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누렁이를 따라 대청마루 아래 들어갔다. 당연히 팔다리에는 모래조각이, 옷에는 흙이 묻은채로 밖으로 나왔지만 엄마는 혼내지도 않으셨다. 본채 뒤에는 작은 우물이 있고 200년이 넘은 돌담길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 큰 우물이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 8남매가 자라던 시골의 큰 집은 몰락한 농가의 상징처럼 남아 돌담은 무너졌고 한옥의 형태는 개축으로 모두 사라졌다. 우리 시골집을 그리며 타인의 시골집을 휘 둘러보는 것도, 인터넷도 무선전화도 없던 시절의 옛날 사람인 나의 일이니 서울처녀인 바깥양반의 사정과도 멀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사정과도 멀다. 흘러간 것들, 사라진 것들은 저 수몰된 종택의 자리처럼 돌아오지 않을 일이다. 산책은 제법 길었고 한시간 남짓, 홀로 이른 아침 길을 나선 나는 온몸으로 그저 거미줄을 받았다.
"옛날 집자리는 훨씬 아름다웠겠어요."
"수몰된 데요. 그랬죠. 그런데 무슨 일 하세요? 엄청 책을 열심히 보시네요?"
"아...대학원생이라..."
마스크를 쓰고 나눈 대화라 대표님이 종택에 대해 품는 감상을 표정으로 읽을 수는 없었다. 어젯밤에 저녁식사자리에서라도 기회가 있으면 물어볼 것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가 넉넉히 들어간 야채죽을 먹으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쇠잔해진 시골집을 가진 옛 농가의 후손이 성쇠를 유지한 고택을 바라보는 부러움. 그것을 지키는데 아직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섭섭함. 물론 내 아이가 장성할 나이가 되면 이런 감정이 무의미해질만큼 혈통이라거나 가문이라거나, 모든 개념이 사라져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의 사라지는 것보다 현재 남아있는 것에 대한 감정이 요동을 치는 것은 손을 쓰기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하면 지킬 수 있을까.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이 분주해졌다. 바깥양반이 머리를 말리는 사이 나는 아침에 일어나 돌아다닌 덕에 부족해진 잠을 보충했다. 10시에 셔틀버스가 나간다고 하니, 그것을 타는 사람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는 대표님이 찍어주시는 커플사진 자리에서 한참 사진을 찍고, 또 다른 몇군데에서 사진을 남겼다. 나는 이 자리. 별당 앞마루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느껴졌다. 이 마루에 앉아서 호수를 내려다본다면 차가운 보리차를 마시고 있어도 좋을 것이고, 발톱을 깎고만 있어도 좋겠고, 누워서 모기를 쫓으며 음악을 듣고 있어도 좋겠다. 그럴땐 발가락으로 발에 붙은 흙을 긁어내고 있겠지. 이곳을, 가을에 온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늦가을에 호수에 비치는 검은빛 나무의 빛깔은 얼마나 적적할까. 겨울에 장작이 타는 소리는 얼마나 싱그러울까. 그런 그런 기대를 품고 차를 몰아서 출발했다.
아.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마당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동안 노트북에 한번, 논문에 한번 제비똥 폭격을 당했다. 머리나 옷이 아닌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