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 드디어 쌀밥 드시다
어제 삼합을 만들고 국물이 적당히 남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할래? 졸여서 밥을 볶을까 라면을 끓일까?"
"라면."
"음. 라면 좋지. 근데 밥도 맛있을 것 같긴 한데."
"아직 밥은 아니야."
라는 대화를 바깥양반과 나눴다. 입덧이 끝난지는 조금 됐지만 원체 비위가 약하던 바깥양반은 입덧이 한창이던 시기에 쌀밥이 익으며 나는 냄새 조차 힘겨워했고, 그 여파로 아직 밥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그리 하여 2월 말부터 지금까지 4개월 간 쌀밥을 먹은 것은 저오학히 두번이다. 춘천 가서 닭갈비 먹고 볶음밥 한번, 동네 곱창집에서 볶음밥 한번. 원래 뭐든 가리지 않고 먹는데다 특히 굳이 쌀밥을 찾지 않는 나와 달리 쌀밥충 당신이었던 바깥양반이 말이다.
그런 고로, 어제의 텐동 주문은 나에겐 반가운 신호였다. 한사코 쌀밥을 거부하던 바깥양반이 드디어 먼저 밥을 먹겠다고 하니. 그것이 텐동이라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메뉴이지만 바깥양반이 쌀밥을 드실 수 있다면야. 그런데 귀찮으면 또 어떤가. 텐동은 못참지!
좋은 점은 어제 삼합을 만들고 남은 전복 다섯마리가 처치곤란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입덧 때문에 집밥 자체를 못하면서 냉장고에 각종 재료들이 남아서 꽝꽝 얼어붙어있었던 데다가 그 중에는 새우도 있었다는 점이다. 새우는 빨리 먹지 않으면 냉해를 입기 가장 좋은 식재료라 무조건 빨리 먹는 게 좋다. 어제 천원어치를 사왔는데 처치곤란이 되어버린 팽이버럿. 어제 천오백원에 샀는데 신선도가 떨어져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은 새송이 버섯. 내가 대개 신선도보다 가격을 따지기 때문에 새송이버섯은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 튀김은...아...김튀김은 잘 그림이 안나온다. 지난번엔 실패했다.
바깥양반이 텐동을 주문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구성을 해야 할까 앉아서 잠깐 고민을 해봤는데, 그러니까...버섯 두개. 해물 두개. 장어라도 사갈까? 그런데 최근 장어를 하나 잘못 집어먹었다가 그 흙내음에 확 입맛을 버린 적이 있어서 장어를 사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제대로 민물장어를 좋은 걸 사야 할 것 같은데, 텐동에 넣을만큼 사기엔 수지가 잘 안맞는다. 장어는 지금 기름이 들어가 있는 작은 냄비에는 크기도 안맞을 테니 패스. 전복과 새우면 충분하지. 버섯 둘 해물 둘...그럼 여기에 가지...가지면 딱인데.
"아 가지는 안넣어도 되는데ㅋㅋㅋ"
"안돼 안돼. 가지튀김은 필수지."
바깥양반 격하게 반데라스. 흐음. 가지 라자냐라거나 모르고 먹이면 잘만 먹는데 알고 먹으면 싫어하신다. 이걸 고집을 피워야 하나 싶긴 한데, 막상 퇴근길에 채소가게에서 꽈리고추를 사고 나니 대강 결론이 나왔다. 꽈리고추 봉다리가 적당히 크다. 텐동에 넣어봐야 가지 반토막이나 쓸까. 내가 메뉴를 지정하기 어렵고 바깥양반이 해달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은 가지를 언제 소진할지 추량하기 어렵다. 패스패스.
요렇게 대강 손질이 끝났다. 10마리 분의 게우가 모였으니 주말엔 전복돌솥밥이라도 할까. 다행히 바깥양반에게 그 말을 하니 좋아한다. 좋아 좋아. 이제 쌀밥충으로 돌아오셨군. 재료를 손질해서 모아놓기까지 15분 정도 안걸린 것 같다. 전복 손질하는 것도 반복할수록 빨라진다. 사실 나는 이걸 최대한 빨리 만들고 7시에 연구회 모임을 나가야 한다. 그 상황에서 튀기는 시간이 제법 들어가는 텐동을 요청하신 바깥양반의 센스에 대해서 아쉬움은 있지만 앞가림은 나의 몫. 미리 한번 튀김가루를 재료 위에 샥 뿌리고, 튀김가루와 물을 1:1 비율로 섞어서 튀김옷을 만들어 놓고, 튀기기 시작한다.
튀김은 17주. 4개월만에 바깥양반이 스스로 쌀밥을 요구하실만큼 참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골목식당 인천 신포시장편에서 처음 텐동이라는 음식을 접하고 인천가서도 먹고, 동네에서도 먹어보고 하고 있지만 들어가는 품이 적지 않지만 만족도는 그보다도 높다. 바삭거리게 튀겨내는 재미, 튀기면서 풍겨나오는 내음 하며, 손질해서 튀겨내는 새우가 허리를 곧게 펴고 오똑 서버리는 재미. 팽이버섯은 한 꼬집 집어서 살살 기름에 집어넣어서 풍치도록 한다. 그 순간 샤아아 튀겨지며 꽃처럼 피는 비주얼은 텐동에서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요리의 즐거움, 미식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굴소스, 고추기름과 함께 간단한 홈레시피 최상의 조미료인 참치액 한 스푼, 간장 두 스푼에 물과 설탕을 적당히 넣고 한소끔 끓여 간장소스를 따로 만들어두고, 뜨거운 기름에서 샤샤샥 튀기고 건져내고, 튀기고 건져내고. 고기튀김보다 진도가 빠르다. 재료도 얇고 튀김옷도 가벼워서 금방 금방 튀겨내진다.
완성. 밥이 질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어제 미리 해둔 밥을 그릇에 담아서 푸짐하게 텐동을 차리고 쪼르쪼르 간장을 위에 붓는다. 마지막에 만든 김 튀김이 이번엔 실패 까진 아니고 대강은 먹을 순 있게 되었다. 다음엔 크~게 오려서 튀겨야지. 가운데에 칼집을 넣어 ㅅ 모양으로 만든 전복 튀김이 마치 송이버섯 같은 비주얼, 혹은 가지튀김 같은 비주얼. 내가 이루지못한 가지튀김의 꿈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딱 하나 오늘의 텐도엥서 아쉬운 건 주말에 만든 멘보샤 때의 기름을 재활용한 거라 약간 그때 가라앉았던 아이들이 티티하게 달라붙어있다. 멘보샤는 저온에 튀기기 때문에 그때 과하게 탔거나 해서 몸에 해로울 것 같진 않지만 쩝. 어쩔 수 없지. 오늘 마음껏 기름을 튀겼으니 남은 건 조심스럽게 폐기처리한다.
"얼른 와."
"네에. ...요오! 멋지구만!"
침대에 누워계시건 바깥양반을 부른다. 그리고 우린 4개월만에 집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텐동,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