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가능은 없구나 진짜
"치킨 먹고 싶다."
자정을 넘긴 시각.
"잠깐만 기다려봐."
"응?"
아니아니, 진짜 시키려고? 그냥 해본 말인데.
"아 문 닫았네. 여긴 열두시까지만 하는구나."
"응? 뭔데?"
다행이다, 하면서도, 호기심이 들어 묻는다.
"전참시에 나온 치킨집이 있는데 핫하대. 먹고 싶었는데."
"아냐 참자. 열두시 넘었어. 그냥 해본 말이야."
"아 시원한 거 먹고 싶다. 우유 있어요?"
우유? 음...얼려둔 건 있다. 사연이 있는 우유다.
"그럼 나 샤워하고 나올 테니까 쉐이크 좀요."
사실 어제 아침에 나는 맥머핀과 함께 쉐이크를 먹었지. 바깥양반에겐 한라봉칠러를 시켜줬고. 맥모닝 세트 둘. 하나는 딸기 쉐이크 다른 하나는 한라봉 칠러로. 이게 우리의 주말 아침 루틴이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안먹어도 되는데 바깥양반은 쉐이크가 드시고 싶으시구나. 사실 동네엔 전국구 급으로 유명한 평양냉면집, 정말 끝내주는 맛집도 있는데 몇해전에 딱 한번 같이 가서 먹어보고 그 뒤론 가지 못하고 있다. 슴슴한 평양냉면을 바깥양반은 좋아하지 않는다. 동네 칡냉면은 또 잘 드시면서. 이상한 녀석.
그흐러니까아 자정은 넘었지만 그래도 쉐이크 정도느은~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동실을 열어보니...이 얼린 우유로 말할 것 같으면 뭐시냐하면 집에서 빙수를 만들겠다고 제조해놓은 얼음빙수다. 제빙기를 검색하다가, 제빙기 없이 눈꽃얼음을 만들 수 있다는 블로그 포스팅을 발견하고, 연유 듬뿍, 물 약간을 섞어서 5분 가량 팔이 빠져라 흔들어서 얼린 우유 두 통을 만들어놨다.
그런데 막상 우유를 얼려놓고는, 나답지 않게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빙수를 만들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냉동실을 열었는데 너무, 너무 꽝꽝 얼어있던거라.
분명히 블로그포스팅에는 물과 연유의 효과로 우유 얼음이 사르르 부드럽게 녹아내린다고 했는데, 어찌 이리 꽝꽝 얼어있단 말인가. 나는 그날 그 얼린 우유를 한두번 싱크대에 꽝꽝 두들겨보다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영 가닥이 안잡혀 바깥양반에게 "실패!"를 외치고 그 길로 빙수를 사기 위해 옷을 걸쳐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제 쉐이크를 만들어야 하니...일단 우유를 녹여야하겠구나. 여전히 꽝꽝 얼어있던 우유를 꺼내서 전자렌지에 돌리려고 하는데, 삐죽하고 비비빅 하나가 함께 딸려나온다.
"바깥양반, 이거 먹어."
"응? 뭐야?"
"비비빅."
"아 나 씻게. 오빠 먹고 난 쉐이크나 줘."
쳇. 밤에 먹기엔 이 시려운데. 바깥양반 쉐이크나 해줘야겠다 하고 일단 냉동실에 돌려보내지 않고 잠깐 싱크대 위에 비비빅도 둔 채로,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려는데, 아 내가 우유를 얼려놓은 게 페트병인거라, 겁이난다. 겂이나. 혹시 페트병 쪼그라드는 건 아니겠지, 하며 1분을 돌리기로 해놓고 30초만에 조바심을 내며 딱 꺼냈다. 다행히도 페트병은 무사하다만,
"엉?"
뭔가 수상한 기분. 우유가 녹아있는 모습이...살얼음처럼 보인다. 아니 300ml가량을 30초 고작 렌지 해동한 거라 녹았다기엔 좀 수상쩍은데, 가운데에 힘을 주니까 푸스석, 얼음이 쪼개졌다. 어어 설마. 이거 서얼마.
어차피 쉐이커에 담을 거니까 녹이더라도, 접시에 담아 녹이면 되겠지. 나는 페트병 가운데에 과도를 힘줘서 뽁! 하고 박아 구멍을 만든 다음에 가위로 가운데를 휙 오려 반토막을 냈다. 페트병을 잘못 잘라냈다간 플라스틱 가루를 함께 씹을 수 있으므로 그것도 고민이 조금 되었다만은. 일단 깔끔하게 잘려진듯하다.
접시에 갈라진 얼음 두덩이를 내려놓고 보니 쪼개진 사이의 조각이...전체적으로다가 살얼음이다. 어 이거! 이거 이거 설마! 나는 숟가락으로 힘주어 얼음을 부셨다. 이거! 이거 설마!!
"바깥양반 바깥양반!"
"응?"
"띠디리 띠디디"
"우와ㅋㅋㅋㅋㅋㅋ"
바깥양반은 샤워실로 들어가다가 내 부름을 받고 희색이 만면해졌다. 나는 영구댄스를 추며 그릇을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재빠르게 냉장고에서 팥과 빙수떡을 꺼냈다. 집에서 빙수를 만들어보자! 하고 바깥양반과 샀던 물건들이다. 파삭파삭 눈꽃얼음이, 제빙기 하나 없이 나의 팔놀림으로 만들어졌다. 그 다음엔~ 마침 비비빅. 칼로 샥샥 발라내어 눈꽃얼음 위에 올린다. 그 다음엔 빙수용 팥 캔을 따, 듬뿍 올리고, 마지막으로 비주얼을 고려하며 빙수떡도 고루고루.
야 이게 되네. 이이게에 되에에네.
"얼른 와."
"요. 기다려주셨군요."
뜻밖에도 쉐이크가 팥빙수가 되었다. 포기했던 요리가 그녀의 자전거처럼 내 가슴 속에...너무 오래된 카피구나. 세상에나 역시 안되는 일이 없어! 그것도, 얼음을 먹어봤을 때는 그, 연유가 듬뿍 들어간 부드러운 얼음보숭이 그 자체다. 게다가 아낌없이 얹은 팥에 빙수떡까지. 자정을 넘어서 야식으로 즐기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음식이 있을까.
바깥양반은 임당검사까지 잘 통과한 참이고, 그럭저럭 체중관리도 하는듯하다. 치킨이 팥빙수가 되었으니 더욱 죄책감 따위 우리는 TV를 보며 불가능을 가능케 한 즐거운 간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