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옳으며, 옳고도 또 옳다. 멘보샤 고추잡채 조합

칼로리는 조금 주의!

by 공존

"배 안고파?"

"응 안고픈데."

"아이고오 뭐먹지이. 나 2시에 다시 팀플 시작이야."

"응 아무거나 해."

"무슨. 아무거나 하라고 해놓고 조금 있으면 오빠 내가 뭐 주문해놨어요 하고 초인종 울리면 음식 받아오라겠지."

"어허허허허 지난번에 뭐였지?"

"고추잡채.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던거."

"아 그럼 멘보샤 해줘."

"...아니 어떻게 얘기가 그리로 흐르는 거죠?"


아침 아홉시반에 기말과제를 위한 팀플이 시작되어서 세시간 넘게 꼬박 하고 1시간이 되어 밥을 먹기 위해 해산. 나는 안방 침대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2시에 다시 모이기로 했으니 시간이 없다. 아침은 맥모닝을 사다드렸고, 후다닥 점심을 먹은 뒤에 다시 팀플을 하러 가야 한다. 그러니까 점심 메뉴를 빨랑 빨랑 골랐으면 좋겠는데, 아 고른 건 좋긴 한데. 멘보샤라니. 멘보샤라니. 딱 10분만 더 누워있다가 나는 식빵을 사러 집을 나섰다. 이런 식빵. 그러나 어찌저찌 후딱 하면 2시엔 맞출 수 있겠지.


라고 생각을 했으나, 멘보샤 하나로 되나? 멘보샤가 밥일까? 아니 밥 만큼 만들 수는 있지. 먹을 수야 있을 거고. 근데 멘보샤만 먹으면 좀 그렇잖아. 그렇다. 그래. 멘보샤랑 같이 먹을 거를 뭘 할까. 짬뽕이 딱인데 멘보샤는 만드는 판에 짬뽕을 시키는 것도 이상하잖아. 바깥양반은 짜파게티를 해달란다. 멘보샤에 짜파게티도 뭔가 아닌데. 뭔가, 그, 얼큰하고 시원하고 알싸한, 멘보샤랑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은. 아 그러고보니 전분가루를 사야...음? 전분?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집에 오자마자 빵을 잘라서 멘보샤 크기로 만들고, 빵끝은 자르지 않았다. 막상 또 굳이 자를 이유가 없다. 그다음에...의외로 돼지고기를 자른다. 나는 멘보샤와 함께 먹을 그것을 만들 거니까. 이 때가 벌써 1시 30분은 되었다. 빨리 해야 하는데. 참쌀가루와 전분가루를 적당히 섞어서 돼지고기부터 조물조물해서 고추기름을 올린 팬에 살살 뿌리듯이...아따 근데 해동이 충분히 안되어서 잘 흩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어찌 볶아질만큼은 되네.

옷을 대강 입힌 돼지고기를 볶아두고는 잠깐 놀려두면서 냄비에 기름을 와장창 부었다. 집에서 튀김요리가 또 오랜만이로구나. 언제 해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겨울에 몇번 튀김우동을 만들어본 게 마지막이었던가? 그때 튀김우동 참 재밌었는데 말이다. 늦가을이 되면 해봐야지. 그래서 기름은 아끼지도 않았다. 오늘 튀기고 남은 기름은 비오길 기다렸다가 부침개에 재활용하면 될 일이다. 나는, 한쪽엔 새우를 다져서 담고 기름이 중저온에서 뜨거워지길 기다리면서 고추를 편으로 썰면서 동시에 새우반죽에 고기를 묻히고 남은 전분과 계란 흰자를 섞고...아아 바쁘다 바빠. 원래도 후다닥 대강대강 요리를 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빨리 밥을...아니 요리를 두개 해서 식사를 하고 줌을 켜야 한다. 근데 이미 시간이 꽤나 늦은 것 같지만!


기름이 뜨끈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멘보샤를 튀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굴소스 세스푼 가량, 그리고 오이고추 한웅큼을 집어 자른 것을 팬에 넣고 볶기 시작한다. 녹말을 개운 물을 살~짝만 팬에 섞으면 반죽이 어지간히 고추에도 달라붙고 할 텐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잽싸게 볶아내고 튀기면서 줌을 켰다. 벌써 2시가 되어가거든. 20분 뒤에 들어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요리에 전념했다.

그건 그거고,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말이다. 고추잡채에 멘보샤라는 아이디어를 말이다. 한달 전에 아직 입덧이 끝나지 않아 바깥양반이 중구난방으로 제가 먹고 싶은 걸 마구 시킬 때가 있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고추잡채를 굳이 배달주문을 하신 거다. 그런데 비싸고 양만 많고, 맛이 통 없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꽃빵과 어울리는 맛도 아니었다. 그냥 소맥 말아서 안주로 먹기에나 좋은 그런 요리였달까. 그걸 내내 고추잡채 고추잡채 하다가, 그날도 내가 멘보샤와 고추잡채를 함께 해준다고 말을 해뒀었는데 그걸 고추잡채 하날 잘못 시켜 망쳐버렸으니 오죽 서운한 일일까. 그러고보면 오늘 내가 그 배달 이야기를 꺼냈는데 바깥양반이 대뜸 멘보샤 이야기를 꺼낸 것도, 영 뜬금없는 일이 아닌 셈이다. 나도 바깥양반도 그날의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야 이거지. 옳고, 멘보샤는, 옳으며, 고추잡채와, 옳고도 또 옳은, 멘보샤와 고추잡채를 함께 먹는 아이디어. 꽃빵 대신에 두가지 요리를 즐긴다는, 사실은 만들기 쉬운 요리를 함께 만들어먹는 하우스 레시피의 즐거움. 고추잡채가 레피시도 확인하지 않아서 보통 파는 얼큰한 양념은 아니고 어딘지 기름에 볶아진 느낌이긴 하지만, 한젓가락 슬쩍 먹어보니 캬 맛있다. 어떻게 만들어도 맛있는 요리 중에 하나가 바로 잡채니까.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도 맛은 있다. 고추기름에 고추와 돼지고기와 굴소스, 여기에 전분과 찹쌀가루를 합친 튀김가루까지 딱 4+1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인데 맛이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자작하게 볶아진 얇은 돼지고기가 튀김옷에 매콤한 기름을 머금고 날 유혹하는데, 거기에 바삭하고 짭짤 탱탱한 멘보샤. 꽃빵 그 이상의 공합이고 조합이다. 멘보샤를 벌써 몇번이나 만들었을까. 그런데 고추잡채를 섞을 생각을 여태 못했다니 나도 참 멍청하군.

바깥양반이 느끼한지 탄산음료를 꺼내온다. 그래 느끼하긴 한다. 일부러 빵을 눌러서 멘보샤를 만들었는데도 저온에서 튀겨진 빵에 스며든 기름은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이따금만 만들어야 하나보다. 아니면 빵끝을 좀 잘라낼 걸 그랬다. 내가 좀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요리를 했다면 주의와 정성을 기울였을 테지만, 아니다. 그런 아쉬움이나 잡생각들은 아물허지 않을만큼 그냥 맛있다. 고추잡채에 멘보샤는 이건 그냥 무조건 맛있다.


벌써 20분이 넘겼고, 나는 후다닥 바깥양반에게 마지막 한조각의 멘보샤와 고추잡채 약간량을 남기고 노트북 앞으로 달려갔다. 등 뒤에는 산더미같은 설거지가 남았다. 저녁을 먹기 전에 설거지를 해야겠지. 그러나, 오늘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온다. 코를 간질이는 매콤한 고추의 향기에 새우의 탱탱한 풍미를 즐기기엔 오늘 같은 날이 또 없지. 멘보샤와 고추잡채의 조합은 옳고, 옳았으며, 옳고도 또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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