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빚는 시간 밤 아홉시반

야근, 야식

by 공존

"여보"

"갑자기 만두국이 먹고 싶어요."

"떡만두국."


"흐음."

"해줄게 가서."


개학날에 하필 야자 감독이 잡혔다. 개학날에 하필 야자가 잡혔는데, 저녁 대용으로 방울 토마토를 사려 내려가는 길에 교장선생님과 마주쳤다. 교장선생님은 나와 다른 근무자, 둘을 태우고 해장국집으로 내달리셨다. 덕분에 내 저녁이 방울토마토에서 뼈해장국으로 승급을 했다. 바깥양반은 임신 9개월차. 33주가 되어 하루 하루 부쩍 커져가는 아이 덕분에 힘들게 퇴근을 해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신세. 그나마 우리 학교의 야자 근무가 9시에 끝난다는 점이 위안이랄까.


이래저래 바깥양반의 허기를 달래줄 이유가 생긴 셈이라, 나는 해장국을 먹고 돌아와서 다시 학교 앞 마트로 우산을 쓰고 총총 건너갔다. 만두, 를 만든다. 만두를 만든다.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밤 아홉시에 퇴근해서, 아홉시반쯤에 집에 도착해서, 야식으로 만드는 떡만두국에, 만두를 빚어서 넣는다는 생각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내가 그냥 이상한 거라고, 요즘은 밥을 차릴 때 이런 고민을 한다. 평범한 방식은 아니지.


그러나 만두는 모름지기 내가 빚어서 막 먹어야 제일 맛있다. 원래 바깥양반이 떡만두국 이야기를 하기 전엔 이연복 쉐프 레시피로 탕수육을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구마/옥수수 전분 믹스, 그리고 감자전분, 해장국을 먹었으니 선생님들과 나눠먹을 음료수까지 장을 보고, 반모 사이즈의 두부까지 산 다음에 마지막의 마지막에 만두피를 찾아냈다. 일반 마트가 아니라 식자재마트라 만두피는 아주 구석진 곳에 감춰져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성실히 야근 하는 동안 일을 했다. 생기부 담당이기도 한 나는 내일 고3 생기부 교육청 점검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바쁜 세시간을 보냈다.


집에 와 제일 먼저 한 것은 떡을 끓이는 것이었다. 냉동된 떡국떡은 충분히 오래 가열하지 않으면 딱딱하다. 만두 빚을 시간도 벌고 딱 좋다. 10분이면 만두는 딱이지. 내가 오늘 바깥양반의 떡만두국을 이왕이면 만두까지 빚겠다고 생각한 다른 이유가 있는데, 지난주에 만들었던 멸치고기국수 국물을 보강할 고기육수를 어제 세시간 가량 푹 고와놓았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멸고국수를 만들어 먹고 바깥양반은 어김없이 "또 해줘요!"를 외쳤고, 그렇다면 이 육수보단 좀 더 맛깔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어제 마트에 가서 돼지갈비살을 좀 사왔다. 왜 돼지갈비살이냐 하면, 찜요리에도 쓰이는 부위인 만큼 고기국수 고명으로 만들 수육으로도 딱이기 때문이다. 돼지갈비는 고소한 비곗살, 탱탱한 식감의 마블링살, 쫄깃한 붉은살까지 다양한 부위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부위라서 정말이지 수육엔 최고다. 게다가, 갈비뼈도 있으니 그걸 그대로 사골처럼 육수를 빼내도 된다. 그래서 어제 나는 돼지갈비뼈를 또 두시간 가까이 끓였던 것.


이만큼 훌륭한 육수가 만들어져있으니, 떡만두국에 넣을 만두가, 공장에서 빚어진 냉동만두일 수야 없지. 탕수육거리로 따로 빼서 참기름과 허브솔트에 버무려둔 고기를 김치냉장고에서 써내서 순식간에 다진다. 그리고 대파. 두부까지 셋이면 끝. 여기에 후추, 다시 소금, 그리고 참기름.

바깥양반은 아홉시에 퇴근한 날 기다리며 포카칩을 한봉지 완식해놓으셨다. 아침도 매일 거르고 점심도 대강 먹으니 만삭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나도 아낌없이, 오늘 내가 차려주는 첫 끼니를 제대로 만들어줘야 할 일인 것이다. 비닐장갑을 끼고 10초만에 빠르게 버무리고 만두피를 바로 뜯는다. 만두를 빚자 마자, 냄비에 넣는다. 냄비엔 그 사이에 어제 끓인 진한 육수를 두 국자, 그리고 수육도 함께 넣어둔 참이다. 내가 만두를 빚는 동안 떡은 팔팔 끓여질 터이다.


만두는 딱 세개만 빚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왔으니, 아쉽지만. 맛이 궁금하지만. 바깥양반에게 고스란히 양보하기로. 대신에 나는 맛을 보면 된다. 세개째 만두를 넣고, 그 사이에 졸아붙은 국물을 한 숟갈 떠 맛을 본다. 캬. 진해.

아침에 양배추를 먹기 위한 쌈장과 발사믹소스, 그리고 볶은 커피를 넣어둔 양철통.

그리고 거실에선 우리가 최근에 가장 즐겨보는 슈퍼밴드2가 하고 있다. 나는 주방에서 탭으로 소리를 완전히 죽이고 화면만 보며, 거실의 TV 사운드를 최대한으로 켜서(물론 아랫집이 야밤에 뛰어올라오지 않을 볼륨 정도로만) 화면보다 두박자 빠른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홉시반에 와서, 굳이 만두를 빚는다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그 시간에 노래를 한 곡 제대로 감상하겠다.


당연히 그렇게 했다. 마침 박다울 김한겸 팀의 무대이길래, 썰던 대파를 냄비에 붓고 인덕션의 화력도 확 죽여놓고 거실로 달려갔다. 양념까지 마쳐놨으니 이렇게 노래 한곡 듣고 올 동안 한소끔 끓이면 끝이다. 아차. 그 사이에 수육 고명은 꺼내어 두자. 그럼 썰기 좋게 식어있을 터다.


흐음. 생각보다 별로다. 박다울의 음악적 바운더리가 한계를 보이는듯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떡만두국은 완전히 완성되어 있다. 나는 주말에 바깥양반이 사고를 친, 빙수그릇을 골랐다. 이왕이면 그릇도 제대로 해야지. 실물도 보지 않고 인터넷쇼핑으로 산 빙수그릇이 하나는 육개장 그릇 사이즈, 다른 하나는 세숫대야냉면 그릇 사이즈다. 바깥양반은 두개를 놓고 반품을 고민했다. 나는 그냥 두라고 했다. 두면 언젠가 쓰겠지.


아슬아슬하게, 빙수그릇에 떡만두국을 담는다. 그리고 맞춤하게 식은 고명을 썰어서 그 위에 올렸다. 고기가 완전히 풀어져 있어 칼에 썰리기 전에 살살 부드럽게 녹았다. 이쁘게. 제대로. 나는 마지막으로 고기를 토핑했다. 시간은 밤 열시. 밤 아홉시반에 빚어서 넣은 떡만두국 먹기 딱 좋은 시간.


그 만두국의 육수며, 고명이며, 만두며, 그 맛은 또 말해 뭐해. 역시 내 손으로 빚는 만두가 최고다.


하나쯤은 남길 줄 알았던 만두, 그리고 고기에 떡까지 바깥양반이 싹싹 비워서 나는 만두를 만두속만 정말 아주 약간을 맛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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