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원래 오늘은 국수를 하려던 참이다. 비가 와서는 아니고...고기국수 육수가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당연히 바깥양반은 그걸 그대로 차려주면 싫어할 것이고, 비빔국수. 비빔국수에 수육과 국물을 내면 되겠다 싶었지. 비도 오고 말이다. 오전에 그리 정하고 저녁메뉴를 바깥양반에게 통지했는데, 퇴근 쯤에 예정이 바뀌었다. 바깥양반이 옆자리 선생님께서 "비도 오는데 골뱅이 소면이 땡기네."라고 한마디 던졌다는 것. 그러므로, 아무렇지 않게 바깥양반은 나에게 골뱅이 소면으 대령하라신다.
아니 골뱅이 소면이라, 싫지도 좋지도 않은 흔한 음식이다만 그걸 주문하다니 별일이다. 바깥양반도 그렇지 않을까. 싫지도 좋지도 않은 요리. 있으면 먹겠지만 딱히, 술을 좋아하는 부부도 아니라서 소주집에 가서 안주로 먹을 일이라도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두해 전에 친구들과 태안에 놀러갔을 때, 생골뱅이를 사서 살짝 데쳐먹었던 일은 있다. 그날의 베스트안주였다.
어쨌든, 나는 퇴근길에 골뱅이를 샀고, 사는 김에 오이와 고추도 샀다. 요즘은 오이고추가 조금 작게 나와서 요리에 쓰기 좋다. 맵지 않고 아삭하면서 향도 씀씀하다. 그럼...준비는 다 된 것.
나는 골뱅이 레시피를 아주 잘 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치킨집을 하셨기 때문에, 엄마가 만드는 걸 보기도 하고 돕기도 했다. 치킨집 술안주로는 제격이지. 집에서 해먹는 게 별일이다만. 식초에 간장에 설탕에 고춧가루에 참기름이면...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언제든 집에서 비빔요리를 해먹을 수 있게 초고추장을 사뒀기 때문에, 비율을 크게 생각 안하고 간장과 참기름 식초를 아주 약간씩, 그리고 초고추장과 설탕을 대강 넣으면 될 테지.
그게 끝인 요리지만, 양념보단 고명이 중하다. 마침 딱 알맞은 분량의 황태가 있다. 술안주로 하라며 바깥양반이 친구들끼리 당일치기 횡성여행을 갔다가 사온 건데, 지난번에 황태비빔국수를 만들고서 1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물건. 황태. 황태가 골뱅이소면의 화룡점정이다. 그건 그거고, 원조라는 유동골뱅이는 동원골뱅이보다 가격이 두배가 넘는다. 거의 세배에 가깝다. 자연산이라는 것인가? 맛이 차이가 날 것이란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지만, 여러번 해먹을 음식도 아니고 자연스레 유동을 골랐다. 둘이 먹기에 조금 많은 양들이지만, 음- 아니다. 식사를 마쳤을 때...부족했다.
황태와 골뱅이는 이렇게. 야채는 뭐. 당근 채썰고, 오이 채썰고, 양배추는 대충 썰고, 양파는 까기 귀찮아서 빠졌다. 생각해보니 넣을 걸 그랬군. 대파 길쭉하게 썰어서 끝. 생각해보면 뚝딱인 요리다. 어릴 때 치킨집 주방에서 엄마는 면 삶는 짧은 시간만에 뚝딱 채소들을 손질했다.
그래서 대강 양념까지. 음...그런데 초고추장을 뿌리고 주둥이를 닦아낸 것을 입으로 빨며, 맛을 보니. 아 너무 단맛이 적다. 비빔양념은 아니고 초고추장이라서 그런 걸까. 설탕을 넉넉히 넣어야 할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더 좋은 게 있다. 이건 엄마에게 배운 적이 없는 재료.
레몬꿀차가 눈에 띄길래 집어와 뚜껑을 열었다. 이왕이면 밋밋한 설탕의 단맛보다는, 레몬꿀차의 향이 골뱅이무침의 풍미를 훨씬 돋워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넉넉하게 세 숟갈을 퍼서 고민없이 집어넣었다.
그럼 그 맛은 어땠는가...
나는 잘 버무려진 무침을 아래에 넉넉히 깔고, 그 위에 소면도 넉넉히 깔고, 마치막으로 다시 소스와 함께 재료를 부었다. 접시가 작아 모양이 조금 애석하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소면에 소스가 두루 입혀질 수 있다. 접시 위에서 비비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맛을 볼 수 있는데,
"음. 맛있어."
"비밀재료 두개 들어갔다. 맞춰봐라."
"응? 뭐지?"
"일단 하나는 황태."
"아. 맞아 황태구나."
"어 그리고 레몬꿀차 넣었어."
"아하 어쩐지 레몬향이 나."
비 오는 날에 골뱅이소면은 적합한 메뉴일까?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정확한 레시피를 알고 있고, 게다가 거기에 레몬향까지 입혀놨으니, 넉넉한 골뱅이, 8900원짜리 한통을 다. 그리고 황태도 넉넉히 넣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언제고 다시 먹어도 즐거울듯한 요리가 완성되었다.
이런 게 집밥을 하는 즐거움이러니. 좋은 재료를 넉넉히 쓸 수 있고, 사먹을 때는 부릴 수 없는 사치까지 내 멋대로 부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바깥양반에게 수요일과 목요일의 식단을 통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