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oy Meets a Girl

- 영화 <500일의 썸머>에 대한 이야기

by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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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별에 대한 경험적 통찰


흔한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여자의 사랑이 천천히 식어간다. 여전히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여자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다. 슬퍼한다.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견디지 못한다.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같은 케이스에 대한, 다른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어느틈엔가 남자가 더 이상 여자를 위해 변화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전히 남자의 사랑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여자는, 남자의 변화가 당황스럽다. 슬퍼한다. 고통스럽다. 그녀는, 견디지 못했다.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사랑의 파열은 대부분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서 찾아온다. 그러나, 사랑은 교통사고가 아니요 분리되어 추락하는 교각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그리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상대방과의 대화에, 상대방과의 미래에 투자해오지 않았는가. 사랑이라는 두 사람만의 공공재를 그동안, 함께 가꿔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옅어져가는 사랑에 슬퍼하며, 기어코 사랑의 파멸을 경험하는가. 왜 이별의 순간은 매번 그렇게 다시 우리를 베고 가는가.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보자. 이별의 원인일 수도 결과일 수도 있는 물음이다. 충분한 노력을 하고도 원치 않는 결말을 맞은 당신은, 세가지 선택지를 받아들게 된다. 그 첫번째는 수용이다. “그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라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두번째는 교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이었는가를 찾아내는 것. 세번째는 편견.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어 나쁜놈/년이라는 흉터를 가슴에 새기고 몇개월 혹은 몇년 아니면 몇주 정도를 살아내는 일이다.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지금까지 무엇을 택해왔는가?


1. 그 영화


<500일의 썸머>는 유쾌하면서 영리한 통찰이 담긴 영화다. “제니 벡맨 썅년”이라는 크레디트로 웃음을 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남자의 멘붕, 여자와의 이별, 두 사람의 지나온 인생들을 차차 보여준다. <졸업>이라는 고전을 인용하는 수미일관의 방식(이 인용을 이해하고 못하고가 영화의 테마를 이해하는 데에 제법 큰 영향을 미치니 검색은 필수.)에다가, 교묘하게 편집된 두 사람의 연애담, 그리고 일방적으로 남자, 톰 핸슨의 감정선을 따라가는(이 감정의 변화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가 영화의 테마를 이해하는 두번째 큰 변인. 나중에 가서 톰의 병신짓이 적나라하게 폭로되지만 이미 썸머는 썅년이라는 프레임에 낚여서 이거 이해 못하는 분들, 많다.) 서술의 방식으로 이 영화는 숱한 오독과 오해를 받아오곤 했다. 정작 영화의 주인공은 결말에 가서, 스스로의 잘못을 극복하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보였음에도.


2. 그 남자, 톰 핸슨


톰은 썸머에 비해 안온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지 않았고, 가족과의 관계도 매우 좋다.(여동생 레이첼은 13살 정도로 보이는데 두사람의 관계는 매우 친밀하다. 부모와의 관계는 어떻겠는가?) 덕분에 현실적이지 못한 면모가 있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수용적 태도와 동시에 모든 일은 잘 될 것이라는 이상론과 운명론을 내재한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결정적으로 <졸업>의 결말을 오해했다!


때문에 그는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찾아온 그 여자, 썸머와의 사랑을 그 자신의 운명이라고 “착각”했으며 사는대로 이끌려가는 느긋한 자신의 삶을 극복할 의지가 없는 우유부단함을 보여준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수용하는 인물이므로, 자신의 배려없는 말을 연인인 썸머가 잘 수용해줄 것이라 믿고 내뱉는 개념없는 언어의 향연까지. 어쩌면, 톰 핸슨이야 말로 우리 모두의 과거가 아닐까.


3. 그 여자, 썸머 핀


영화를 보며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런 톰 핸슨의 우유부단한 삶의 태도가 썸머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비합리적 태도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단 한번도 썸머는, 톰이 자신의 꿈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이해조차하려하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도 의아하다는듯이 묻는다. 그럼 왜 이 일을 하고 있냐? 이별 후 첫 해후. 그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건축을 하면 훨씬 잘 할 사람이? 그리고 대망의 엔딩. 취업준비생 처지가 되어 불안한 처지임에도 톰이 자신의 꿈을 찾고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짓는 그녀.


그것은 썸머가 톰과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 <졸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 잘려나가는 머리칼처럼 덧없는 인생. 그리고 단지 이쁘단 이유로 겪어왔을 질시와 편견, 껄떡임이라는 고단함. 그녀에게 삶이란 당면한 현실이며 언제든 잃을 수 있는. 그렇기에 운명보다 의지. 미래보다 지금이 그녀에게 중요하며, 톰과의 사랑 또한 그녀에게는 명백한 현실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링고스타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 남자에게 그렇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항변하는 장면이나, 포크락의 황제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좋아해 고양이의 이름도 브루스라고 짓는 이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라!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4. 너는 너 나는 나


비극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느끼는 현실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하는데, 남자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철없는 환상에 빠져있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열정이 기쁘고 고맙지만 이내 벽에 부딪히고 갑갑하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면과제인 썸머에게, 남들이 시키는대로나 살아가며 꿈을 포기한 철부지라니.


불협화음은 이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호르몬의 화학반응일 뿐이든, 진실된 영혼의 교감이든 두 눈의 콩깍지도 가을이 저물면 말라 떨어지는법. 처음부터 이별이 늘 현실이었던 썸머에게 그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영원한 운명을 꿈꾸던 톰에게 그것이 당혹스러웠을지언정, 그는 왜 자신과 썸머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그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이 당연히 이해하고 수용하리라 믿었던 것일까? 그런 결말을 알고 있던 썸머는, 왜 톰의 호감에 유혹의 휘발유를 부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톰의 희망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저버렸을까?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 것일까. 왜 서로 다른, 그래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고 운명이 아닌 약속을 만들어가는 것일까.


5. 성장과 이별


이 영화의 각별함은 우리 모두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의 성장과 내적 합일에 있다. 처절한 첫사랑의 파열을 경험하고 난 톰은 마침내 세상에서 영원하다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운명이 아닌, 우연의 일치임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반대편의 썸머는, 자신이 오랫동안 부인해온 운명적 이끌림을 마침내 일부 받아들인다. 물론 썸머의 운명의 상대는 톰과는 다른 유형의 사람. 만일 톰이 썸머를 만나기 전에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썸머가 톰을 만나기 전에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더라면 둘은 행복했을까? 난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영원성은 사랑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삶을 원한다. 나 자신의 더 나은 삶, 그리고 내 연인의 더 나은 삶, 연인과의 사랑으로 얻어진 자녀들의 더 나은 삶. 오늘에만 머무르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리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지난 시절의 많은 잘못들 중에서 특히나 뼈아픈 사랑의 상실을 반추한다. 가고 싶던 대학을 못간 것이나 사고를 쳐서 날려먹은 돈은 의외로 아쉽지 않은데, 그때 잃은 사랑은 왜 그리도 서러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원한다. 썸머와의 사랑은 비록 아프고 차갑고 쓰디썼지만 톰은, 그리고 썸머는 더 나은 내일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성장했다.


0.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


사랑이라는 섬세하고 내밀한 게임에 대한 이해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고민을 겪고서야 조금씩 나아지는데 그렇다고 흔하게 찾아오지도 않고 쉽사리 유지되지도 않는다. 어쩌다 얻은 기회는 이미 사회적 개인적 수십가지의 편견 속에서 조금씩 뒤틀려있다. 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흔히 이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톰이 했던 실수들을 흔히 하고 썸머가 했던 부주의함을 흔히들 한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랑을 하는가. 당신은 수용을 하는 편인가 교정을 하는 편인가 투사를 하는 편인가. 질문은 당신에게 남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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