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 할아버지가 Dirty Granpa에선...)
그-으러니까. <미생>으로 시작해보자.
<미생>의 주요 인물들은 이상적이다. 이상적인 초짜 장그래. 이상적인 상사 이대리와 오팀장. 이상적인 인재 안영미. 이런 이상적인 인물들로 극이 진행되면서도 리얼함을 잃지 않는 것에 대해 이태호 작가는, "장그래의 선임들은 의도적으로 이상적인 인물들로 했다. 이런 사람들조차 극복 못할 만큼 사회는 어려운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라는 투의 설명을 달았다.
자, <인턴>의 주인공 벤 휘테커(로버트 드 니로)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정말이지 완벽한 노년이다. 신체와 정신의 완벽한 건강함. 경륜을 현실과 조화시킬 줄 알고 6살짜리 아이와도 균등한 대화를 만들 줄 안다. 심지어, 페미니즘을 체득한 1940년대생이다!! 다만 죄를 짓지 않은 그에게 노년이라는 시간이 징벌처럼 덮쳐왔을 따름이다. 완벽한 남자, 벤의 행보는 탄탄대로다. 너무나도 훌륭한 어른인 그는 쉽게 회사에서 적응해나간다. 모든 젊은이들이 그에게 의지하고 그를 존경하며, 문제는 순조로이 해결된다. 미모의 할머니들이 줄줄 따르기까지 한다.
영화의 다른 주인공 쥴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그런 벤이 필요치 않은 여성CEO다. 아하. 상투적이다. 젊은이는 곧 고난에 빠질 것이고, 벤에게 의지하며, 그에게 가르침을 받아 성장할 것이다 뻔한 이야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시 벤이다. 그의 행동은 예상을 벗어나 신선함을 안긴다. 적당히 흥미진진한 회사 적응기를 거쳐서 영화가 클라이막스로 향해 가는데 이 현명한 노인은, 인생이 걸린 고뇌를 하고 있는 쥴스에게 어떠한 해답도 주지 않는다. 거꾸로 그녀만큼 괴로워하고 그녀보다 주저한다. 한참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더니 하는 말이라곤, 문제와는 동떨어진 농담뿐. 결국 쥴스는 쥴스대로, 다른 인물들은 그들 나름으로, 모두 올바른 결론으로 향해가는 해피엔딩.
만약 쥴스에게 벤이 없었다면? 사실 말인데 아무일도 없었을 것이다. 벤이없어도 회사는 아무 문제 없고 물론 그녀의 고뇌도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 그러면 왜, 이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인가? 왜 둘은 만났으며 그들의 만남은 왜 흥미로운가?
영화는 말한다 벤을 통해서, 어른을 대하는 법을. 벤은, 물론 어쩌면 처음부터 모두의 문제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도 간섭을 하지 않으며 교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질문하고, 이야기를 들을 뿐. 인생이 걸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쥴스. 과연 그녀에게는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란 없는가? 그녀가 뛰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는 제 인생, 앞가림쯤은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벤이 보여주는 매너는 관용이나 배려가 아닌, 정말로 1:1의 성인 대 성인의 존중. 그래서 그가 얻어가는 존경도, 진심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이해한 사람이 얻어낸 결실로 읽힌다. 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쥴스 또한 벤처럼 존중과 신뢰로 문제를 해결하며, 상대 또한 같은 방법으로 화답한다. 결정적으로, 결말에 이르러 영화 또한 우리에게 무언가 가르치지도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들려주고 생각을 물어보듯.
우리는 모두 관계에 종속된 존재. 태어나며 엮인 가족이란 끈으로부터, 평생 이어가게 되는 수 많은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 그 속에서 나 한사람 줏대 지키고 살기란 여긴 어려워야 말이다.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성숙함에 대한 존중과 신뢰"는 어쩌면, 놀라운 통찰이며 보편성을 띈 관계의 해답일 수 있다. 당신 아니어도 그 사람, 알아서 할 능력이 있다는, 우리가 지금껏 수백번 들어오면서 실천하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겸손 떨면서 살아봐라. 위대한 벤 휘테커씨처럼 멋있는 인생의 황혼도 당신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젊은 감독의 지혜.
늘 그렇지만 상투적인 소재에서 예상 밖의 고민거리를 던지는 영화는, 참 귀하고 곱다. "그런 할아버지가 세상에 어딨나?"라고 물어볼 일이 아니라, 저렇게 한번 살아보자. 혹시 아나? 나이 70 먹고 취업한 직장에서 끝내주는 할머니/할아버지랑 썸타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