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가득한 감독이 잘못 꿴 구슬들
영화를 보다보면 이 영화가 어떤 부분에서 실패한 것인지 눈에 띌 때가 있다. 소재는 잘 뽑는데 연출을 못하는 감독이 있고, 올드한 센스로 관객의 어이를 날려버리는 감독이 있고, 욕심이 너무 많아서 갈팡질팡하는 영화가 있다. 아니면 모두 다이거나. 진로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이 메세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분량을 언제나 고민하라는 점인데, 극장에 찾아온 관객에게도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도 "2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이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많은 영화가 여기서 실패한다. 10분짜리 기가 막힌 시퀀스, 30분짜리 창의적인 스토리라인까진 짜보았는데 그 나머지. 그리고 영화 전체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지 몇몇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룸> 역시 짜임새가 좋지 못한 영화다. Haunted house 장르에 "소원과 댓가" 이야기구조를 얹었다. 수백번은 변주된 소재들이다. 외딴 집을 사서 이사 온 젊은 부부, 그 집에 얽힌 기이한 사연, 제약이 걸린 소원, 소원으로 인한 파국. 흔한, 그러나 안정적인 이 밑바탕에 감독이 창의력을 발휘한 영역이 있고, 제법 괜찮다. 입소문도 조금 났고 호평과 기대도 모은듯하다. 반면에 감독의 창의력이 장르와 소재와 내내 연결되지 못하고 겉돌았고,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도 그 한계는 극복되지 못한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끼며 새 집에서 새 출발을 꿈꾸는(클리셰적인) 젊은 부부. 그들은 소원을 들어주는 방을 만나게 되고, 그 방을 이용해 무한정 욕망을 성취한다. 이 장면이 영화의 매력이 드러난 부분이지만 바로 다음 시퀀스와 충돌한다. 아내가 하루 아침에 허무감에 빠져들더니 방을 이용해 아이를 만들고, 방을 발견하고 아내와 욕망을 마음껏 발산한 남편은 아내와 아이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며 거리를 둔다. 물론 남편은 (역시나 클리셰에 따라)그 저택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접근해 얻어낸 근거가 있지만 저택을 떠나야 한다는 합리적인 판단에 이르지 못한다.
소원을 이루는 방, 그 방으로 이뤄낸 소원, 소원을 이룬 사람들의 관계가 이처럼 설명이 부족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주제를 붕괴시킨다. 공포영화나 스릴러에서 명확한 주제를 세워두지 않으면 주인공들이 처한 재난과 공포가 일차원적인 것으로 머물고 영화에서 표현된 폭력은 피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부산행>에서 가족이란 주제가 없다면 영화는 2시간 동안 그냥 좀비로부터 도망치고 때려눕히는 피곤한 달리기 대회가 되고 <쏘우>에서 기회와 선택이라는 주제가 없다면 그냥 가학적 고어물이다. <더 룸> 역시 초반에 주인공 부부가 마음껏 욕망을 채운 끝에 충분한 고려 없이 아이를 만들었다는 원죄를 심음으로써, 이후에 그들에게 덮치는 비극에 대하여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기는 분명히 부모의 욕망과 강압적 육아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성급하게 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한 다음 첫 장면에서부터 복선이 될법한 눈길을 아버지에게 보내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엄마에게 대든다. 계란을 벽에 던지고 우유를 넘치게 붓는 등 피해자이고 비극적 존재여야 할 아이가 지극히 평면적인 악으로 연출된다. 오히려 잠시 보이는 훈훈한 장면들이 거짓으로 보일만큼. 이 아이가 만들어낸 방 속의 또 다른 공간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더 신중히 연출되었어야 한다.
미래에 피해자가 될 것이지만 그 전까지는 명백히 가해자인 부모의 무책임함을 보여주다가, 명백히 피해자인 아이가 초반부터 기괴하게 묘사하니 영화의 매력은 반감된다. 후반부의 호러 장면들 역시 김이 샌다. 예산의 한계로 시각효과까지 심심하게 묘사되며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 저택의 존재 마저 희미해진다. 감독의 창의력 바깥이 이렇게 엉망이다. 검증된 장르와 각본에, 스토리보드까지는 잘 뽑혔는데 실제로 영화 촬영 단계에서 2시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채운 결과다. 연기 디렉팅도 제대로 못한 것인지 주인공들의 감정선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특히 클라이맥스 바로 다음 씬에서의 엄마의 연기가 너무 요상하다.
거기다 감독은 최후의 최후까지 잘못된 선택을 하는데...반전이라고 집어넣은 장면이 영화의 주제와도, 장르나 소재와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 불필요한 사족이다. 여기서도 엄마의 감정선을 전혀 납득하기 어렵고, 반전 자체의 개연성이 없진 않지만 이것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에게 전하는 적절한 마지막 인사인지는 심각한 의문이다.
한정된 제작 기간, 한정된 예산, 한정된 러닝타임에서 감독은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딱 예고편에서 눈길을 끌게 되는 몇몇 장면들에 의해 영화가 제작되고 끝내 관객의 소중한 2시간을 모두 책임져주지 못하는 영화들을 보게 될 때면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