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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10. 2021

대통령님이 다 해주실 거야

이재용 가석방과 민주적 유권자의 남은 과제

 20대 초반 시절의 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 해 왔고, 대학생 때는 고등학생 때보다 더 어려운 역할을 맡아햐 하는 우리 동아리 활동 문제로 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유능한 후배를 길러내는데 실패했다. 독서토론을 하던 우리 동아리는 월 1권의 도서를 골라 3시간의 독서토론을 하여, 1년에 최고 15번의 세미나를 진행했다. 고등학교 재학생은 책을 읽고 토론을 준비한다. 대학생 선배들은 사회를 주로 봐 준다. 그러나 <걸리버여행기>, <1984>까지 커리큘럼으로 정하곤 했던 우리 동아리의 특성 상 독서토론 사회를 보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다. 서점집 아들네미로 자랐고 대학에서 한창 학회활동을 하며 토론 실력을 키운 나는 동아리 역사상 속에 꼽힐만큼 뛰어난 토론 사회자였지만, SKY를 노리는 학생들로만 동아리원을 뽑아놨는데도, 혹은 그 탓인지, 실제로 SKY에 합격해놓은 후배녀석들이, 토론사회나 리더십적으로는 영 기량을 성숙해내지 못했다.


 실제로 그런 우리 동아리의 상황은 내가 대학 1,2학년 시기 동아리를 주도하던 때와 다르게, 이제 대학생에 오른 후배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자 휘청휘청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학생 후배들은 사회를 버거워했고 즐거운 토론을 이끌어나가지 못했다. 책을 소화하는 능력도, 학력에 비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대학교 3학년인 내가 1,2학년을 케어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내 빈자리를 알면서도 일부러 자리를 비워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쪼그라들어버린 동아리의 미래도, 나는 받아들였다. 동아리가 어떻게 되든, 나는 군대를 가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그 이상 나이를 먹으면 정말 동아리 활동 때 와서 밥을 사주는 이상의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 후배들이 남아서 스스로 자라나야 할 몫.


 그 결과는? 놀랍게도 우리 동아리 후배들은 끝내 자라나지 못했다. 나는 제대 후, 25세의 노구를 이끌고 고등학교 독서토론 동아리의 화석이자 고인물이 되어 3년간이나 더 동아리를 돌봐주었다. 내 밑의 후배들은 동아리에 코빼기를 비치지 않았다. 덕분에 동아리의 수명은 연장되었고 10살 아래 동생들이 아빠 아빠 하며 따르게 되었다.


 독서토론 동아리와 대학교 생활 내내 나를 고민케 한 것은 사람과 조직의 문제였다. 어쩌다 뛰어난 사람이 조직을 이끌게 되었다 하여 그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나는 실제로 그 당시, 그리고 직장인이 된 지금도 "너 다음 사람이 그걸 못하면 어떡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리더로서 내가 할 일은 스스로 역할을 한정짓고, 후배들에게 적절히 역할을 부여하며, 못할 일이 생기면 그 뒷처리를 하여 성장의 뒷받침을 하는 것이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부장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는 부서의 다른 선생님들이 그런 기준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 나의 대학 시절 내내, 나는 사회모순이 모두 "이게 노무현 떄문이다."라는 구호에 휩싸여가는 이상한 풍경을 내내 바라봐야했다. 파병도 노무현 , SOFA 문제도 노무현 ,  개방도 노무현 , 소득 양극화도 노무현 . 탓탓탓 온통 대통령 탓이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되면서 청와대와 국회가 모두 민주정당이 주도권을  상황에서 국민들은 보다 나은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열망을 투사하고 있었고,  대상은 자연, 시민들이 만들어낸 대통령 노무현에게 쏟아질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이었을까. 나는 스스로 고작 열댓명의 동아리 리더, 고작 백여명의 학과 학생회장으로서 어떻게 역할을 스스로 통제하고 다른 후배들과 배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입장을 겪으며 청와대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조직을 통솔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의 한계를 꽤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동아리의 모든 것을 떠맡아서는 안되듯, 대통령도 국가의 모든 과제를 떠맡아서도 안된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에 개입한다면 왜 정부조직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대통령에 끌려가는 정부조직이나 의회의 가치는, 그리고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이러한 한계들은 우리 나라의 정치제도의 취약점, 그리고 아직까지 낮은 유권자의식에서 온다.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끝나고, 임기가 끝난 뒤의 자신의 삶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세 사람의 당선자들이 모두 비극적 운명을 맞은 것에서처럼, 치열한 권력의 쟁투가 펼쳐지고 있는 한국의 민주정에서 대통령은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시도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 두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탄압을 당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취임 뒤 언론사의 비리 규모를 알고도 그것이 너무 커 덮었다는 일화가 있다. 4년 중임제로, 4년 동안 책임지고 당청이 함께 개혁을 추진하고, 그에 대한 평가로서 4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는 것이 더 올바른 길일 텐데, 아직도 국회에선 내각제 개헌론이 틈만나면 새어나온다. 내각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대통령의 국정부담을 줄여주긴 커녕 회피하는 일을 반복한다.


 유권자들은 정당과 대통령을 함께 고려하지 못하고 아직도 인물론 중심으로 사고한다. 이를 테면 현재 여당의 1,2위 후보인 이재명과 이낙연은 민주당의 정치철학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민주당의 정치철학을 견인해 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과 두 후보의 지지층은 얼마나 차이가 나고 있는가? 유권자들은 정당의 후보로서, 정당의 정치철학을 실천할 대통령을 선출하고 나서, 5년의 임기가 끝난 뒤, 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정당에서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지에 대하여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 이런 모든, 해야할 일들을 하기보다는 포기하고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는 시도에 대하여 어떻게 유권자는 판단하고 있는가?


 이재용이 가석방되었다. 박범계 법무장관의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 그리고 앞서 최재형과 윤석열, 김동연 등의 인사 문제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법무부장관이 승인한 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이 옳을까? 엄밀히 말하여 조국 전 장관이 윤석열의 쿠데타로 인하여 사임하고 후임으로 추미애와 박범계 장관이 선임됨으로 인하여 검찰 및 사법개혁은 당청의 협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의 책임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린 것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선임한 장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국회의원으로서 자기의 고유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검찰개혁의 고삐를 쥐게 되었으니, 그만큼 당청의 권력균형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윤석열의 쿠데타는 그 점에서 일정정도 성공을 한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인사를 하였고, 인사를 한 뒤엔 부여된 권한을 해당 정부조직원이 마음껏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윤석열이든, 최재형이든, 박범계든. 이 원칙을 어기는 것이 국가의 미래에 이롭지도 못하다. 이재용의 가석방을 막으면, 가석방을 심의한 자들의 문제는 소거되는 것일까? 이재용에게 고작 2년 반의 형량을 부과한 판사들의 문제는 사라지는가? 박범계의 문제는 없어지는가? 윤석열 최재형의 쿠데타를 대통령이 견제했다면 감사원이나 검찰의 조직적 문제는 사라지는 것일까?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대통령이 억누르고 있던 정부 각 조직원들은 다시 무엇을 할까?


 미진한 개혁과제들은 다시 우리 정치제도와 유권자의식의 문제로 이어진다. 총선에서 180석을 석권한 시점에서 민주당의 유력 후보들은 개혁보다 차기 대통령 권력을 향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 역시 단임제의 한계. 만약 한쪽 대통령 후보가 강한 개혁을 부르짖는다면, 그 개혁을 반대하는 진영에선 개혁을 반대하는 다른 후보를 자연스럽게 지지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개혁적 후보와 반개혁적 후보가 맞서는 구도가 생기니,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민주당은 180석을 손에 쥐고도 무얼 해볼 수도 없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정치철학을 고려하기보다는 인물론에 따라 두 유력후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작 민주당의 정치철학 실현이 답보되는 것, 경선이 민주당의 정치철학과 동떨어진 구석에서 이전투구로 꼬여가는 것을 어찌 하지도 못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민주당의 정치비전을 각 후보에게 요구하고, 그에 따라 지지를 결정하는 것일 텐데도 말이다.


 이재용 솜방망이 처벌과 그보다 더한 가석방에 사무치는 분노를 느끼는 유권자로서, 책임자에게 권한을 위임한 대통령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사법개혁 과제를 추미애와 박범계를 통하여 청와대로부터 위임받고도 방기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비토를 하기는 더욱 어렵다. 5년 임기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는 것은 쉬운 일이나, 국가를 개혁하고 적폐를 일소할 책임을 내가 위임한 정당을 택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대통령이 몇번이 바뀌더라도, 어떤 대통령이 오든간에, 우리 정부와 정당이 제 몫을 하게 만드는 것이 주권자로서 해야 할 일 아닐까.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통령님이 다 해주실거야 라는 허망한 기대보다는 이를 악물고 리더십의 한계선을 명확히 하고, 그를 벗어나 발생하는 일들에 대하여 다른 조직원들의 책임을 따지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 그것이 유권자의 역할이라는 사실도.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마지막 승리의 순간까지 언론개혁, 사법개혁, 부동산 개혁, 정치개혁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것.


 대통령의 시간은 곧 끝난다. 또 다른 누군가가 5년의 시간을 채울 것이지만, 50년짜리 100년짜리 정당을 주권자가 바꾸어내지 못하면, 그 어떤 국민의 기대도 정치가 이루어주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이 다 해주고 말고는 결국 어떤 정치를 우리가 만들어내느냐에 달린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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