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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13. 2021

행복한 시저네 : 우리네 밥상

정성 가득 밥상을 다른 곳에 복제하는 것은

 새벽 세시에 시작된 페이퍼 작성이 오전 10시쯤 끝났다. 눈이 떠졌을 때 몸을 일으켰기에 망정이지, 그냥 저 잠들었다면 저녁 먹을 시간에나 페이퍼가 완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페이퍼를 전송하고 바깥양반 옆에 누웠더니 이내 잠에 빠져든다. 몸이 지쳐있던 탓인지 까무룩 잠에 들었으면서도 몸이 흠칫 놀라며 깨기도.


 그러나 잠이 오래 가지 못했다. 오전에 잔다는 낮잠이다 그렇지. 눈을 뜨니 한 30분 잔 것 같은데 문제는...10시 45분. 그러니까...지금 일어나야 바깥양반 아침상을 12시 전엔 차려드린다...는 거다. 다시, 몸을 일으킨다. 냉장고를 확인해보니 많이 비워놨다. 여행을 다녀오기 전에 한번 어지간히 버리고 정리도 한 참이다. 그래도 짜글이 할 정도는 된다. 커다란 양파와 감자 두개를 꺼내 우선 손질을 한다. 그리고 김치와 함게 감자 한통, 양파 반통을 짜글이로 먹기 좋게 냄비에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행복한 시저네. 아- 이 집을 보니 조금 열이 받는데, 나의 아침 계획을 바깥양반이 망가트린 날의 사진이다. 나는 아침 8시에 혼자 숙소를 나와 올레길을 걸은 뒤였다. 외돌개까지 한시간을 걷고 나서 다시 서귀포로 돌아와 맥도날드에 들렀을 때가 10시 15분 쯤. 그러니까 나의 계획은, 10시 30분에 마감하는 맥모닝 세트를 산 뒤, 서귀포 시내에 하나 찍어둔 순대국집에 가서 혼밥을 한 뒤, 바깥양반에게 11시까지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 오빠 어디예요

- 11시까지 와요

- 맥도날드

- 헐

- 아침 먹으러 갈 곳 있는데ㅠㅠ

- 헐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 젠장. 그러나 순대국이 별거냐. 육지에도 순대국이야 많고도 많다. 과감하게 순대국은 패스하고, 책임감 넘치게 오는정김밥을 가서 방문예약까지 하고, 그러고 난 뒤 숙소로 갔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네. 11시를 조금 넘겨 샤워까지 마치고, 우린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이 행복한 시저네.

 서귀포는 제주시내보다 붐비지 않아서 정말 좋다. 중문방향으로 시원하게 차를 달려 주택가로 들어나니 아담하고 아름다운 정원까지 갖춘 식당이 있다. 조금 멀리 주차를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동네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오니 바깥양반이 웃으며 말한다.


"오빠 여기 시저 이름이 아들 이름인가봐."

"응?"

"애가 학교 가야해서 그 시간동안만 영업한대. 봐."

"헐...진짜 아들이야?"

"응 나도 강아지 이름인가 했다? 강아지 학교 가나 했는데."


 헐. 세-상에나. 아이 이름이 시저라니 간지 폭풍이다. 벽에는 아이 이름이 또렷이 박힌 상장도 있다. 이 시저.


"그럼ㅋㅋㅋ시저한텤ㅋㅋㅋ이름이 이시저시저? 하면 되낰ㅋㅋㅋ엌ㅋㅋㅋㅋ"

"어허허허허허허. 특이하지"


 행복한 시저네! 단숨에 호기심이 해결된다. 행복한 우리 아이 이름을 가게 이름에 붙이다니. 정말 멋지다. 마치 전주의 조점례 할머니 같은걸!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이 식당의 괴상한 영업방침이다. 처참한 회전율의 접객 방식이다. 반찬이 하나 하나 모두 집에서나 쓰는 접시에 담겨나오는데, 그게 다 계란후라이, 깻잎절임, 게다가 미니멀한 부추해물전...그리고 메인메뉴인 짜글이는 생고기와 생김치를 그대로 내와서 테이블 위에서 끓이는데, 한 20분 동안 끓이면서 그걸 손님이 다 가위로 썰어야 한다. 알아서 먹도록.


 처음 상차림을 받아보고, 해물파전을 먹을 적만 하더라도, 나는 좀 이해가 안갔다. 왜 이렇게 회전율을 떨어트리는 식으로 장사를 하지? 게다가 하루에 네시간만 영업을 하시는데 비싼 메뉴도 아니고 1인분 만원 고작 하는 짜글이다.. 테이블이 많지도 않은데 한 여섯개나 될까? 꽉 채운다고 치고 시간당 20만원 매출을 잡으면 하루 80만원이 고작이다. 순익은 훨씬 낮을 것이다. 술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 상차림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 누구랴. 제주도에서 갈치구이, 김밥, 전복솥밥을 먹는 것도 한도가 있다. 이번에 바깥양반과 나는 주로 백반을 많이 찾아갔다. 제주도에서 백반, 아니 백반을 넘어서 가정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행복한 시저네는 단연 최고다.


 그러니까.

 따라한다. 부침개를 하려고 냉장고를 찾아보니 감자와 양파. 채소 끝. 김치전을 하는 수도 있지만 어차피 짜글이를 할 거니까. 제일 먼저 감자전을 사각사각 갈아서는 녹물을 빼기 위해 물을 조금 부어놨다. 30분. 쌀이 밥이 되는 시간. 짜글이가 익어가는 시간. 내가 반찬을 충분히 만드는 시간.

 순서대로. 짜글이가 끓을 때가 되어 바깥양반의 요청대로 스팸을 넣어주고...동백이는 내 입맛대로 키울란다. 스팸은 안먹이기로 했는데, 편식을 안하려면 엄마가 편식을 안하는 걸 아이가 봐야 할 텐데 걱정. 그리고 밑반찬으로 이보다 좋은 게 없다는 멸치볶음이다. 먹다 남은 견과류를 대강 털어넣은 것이긴 하지만, 튀긴 옥수수가 색감이 괜찮다. 멸치를 볶고 볶아, 용기에 담고 팬을 한번 닦아낸 다음 감자전을 망설임 없이 굽기 시작한다. 기름을 넉넉히, 그리고 평소같으면 감자전에 또 고기도 넣고 오만 장난질을 칠 테지만 오늘은 조금 겸손하게 하리고 했다. 오직 소금! 소금만!

 감자전을 겨울에 몇번 해먹고서 몇개월간 안했다. 그 사이에 외식에서 두어번 사먹었다. 전분가루도 섞지 않고 오로지 감자로만 구운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밖에서 사먹을 때마다 돈이 아쉽거나 맛이 아쉽거나 둘 중의 하나의 감정은 반드시 겪게 된다. 해먹으면 아쉬울 게 없지. 일부러 바삭한 식감을 내기 위해 양쪽을 익힌 다음에 기름을 넉넉히 더 붓고 이제 튀기듯 굽는다. 부침개 잘 만드는 방법은 기름 넉넉히, 얇게, 뒤집기 쉽도록 작게.


"오빠아 미안한데요오."

"응."

"후라이도 해주세요. 시저네에서 후라이 했었어요."

"응 할거야."


 후라이까지. 그랬지.

 

 후라이까지 굳이 내주는 이유는 뭘까. 나는 짜글이 고기를 자르면서, 후라이를 찢어 밥과 함께 삼키며 생각을 했다. 아니 그래도 조금쯤은 편하게 접객을 해도 되지 않나. 내가 지금 가위로 굳이 자르는 이거 이거 돼지고기. 양파. 대파. 김치. 이거 그냥 미리 상에 나갈 때 잘라서 넣으면 훨씬 빨리 익을 거 아닌가. 게다가 이 계란후라이는 뭐야. 왜 이렇게 쓸데없이 이쁘게 구웠대. 아까 그 미니해물부추전은 왜 그렇게 제대로야? 진짜 내가 먹을 것처럼 만들었잖아?

-라는 생각은, 디저트까지 나오고 나서야 완전히 깨졌다. 아하. 여긴 회전율은 애초에 조금도 생각을 안하는 곳이구나. 그러네. 진짜 가정식. 겨우 돈 만원에 두루치기 먹는 손님에게(흑돼지 다릿살이긴 하지만) 더치커피레 체리까지 줄 거 있나. 매실청만 줘도 되잖아. 그냥 그거 홀랑 먹고 일어나면 되잖아. 그런데 체리는 왜 줘. 체리는 왜 그릇을 따로 담아줘. 무섭다. 이 집은, 진짜로 진짜다. 진짜로 찐으로 가정식을 해서 먹이는 곳이다.  


 행복한 시저네는 가정식을 식당에 복제한 곳처럼 내게는 보였다. 아름다운 한끼 식사를 오는 손님 모두에게 고스란히 Ctrl+C, Ctrl+V해서 파는 곳이다. 시저의 부모님, 주인 내외분에게 짜글이란 건 상에서 팔팔 끓이며 익혀 먹는 게 제대로 먹는 방식인 탓일 게다. 그런 밥상은 누구나 싫어할리가 없다. 다만 번잡하고 일이 많아진다. 회전율이 떨어진다. 그래도, 그럼에도. 집밥은 그래야 한다.

 집밥은 그래야 하지. 나는 상을 차리던 와중이라 행복한 시저네 처럼 계란후라이를 예쁘게 굽지 못했다. 그런데 집밥은 원래 후라이 저러지 않나? 그래도 밥은 내가 훨씬 잘 지었다. 공주에서 말린밥을 사서 함께 넣고 밥을 짓는데, 찰지고 달고 구수하다. 밤밥. 정말 맛있지. 여기에 잘 익은 열무에 갓 볶은 멸치까지, 그리고...김! 상차림이 끝났다.


"우와 엄청 제대로 아침상이군요."

"응 많이 먹어."


 바깥양반이 요즘 새로 생긴 습관이 있는데 맘에 드는 식사를 하면 코로 "응~" 하며 음미하는 소리를 낸다. 오늘도 어김없이 콧소리가 나온다. 행복한 시저네가 집안 식탁에서 가게의 테이블로 옮긴 가정식을, 나는 또 다시 우리집 밥상으로 옮겼고, 당연히 내 솜씨도 어디서 꿀리진 않으니까. 감자전은 슴슴하니 바삭하고 쫄깃. 멸치는 짜지않고 달달. 짜글이는 짭짤. 갓 지은 밥에 함께 버무려 먹으면 이만한 게 없다.


 재미있는 게, 이런 불편함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 행복한 시저네의 영업방식에 낯설어하는 손님들이 조금 있나보다. 리뷰를 보니 "예수님도 발을 돌리실 불친절"이라고 쓰인 게 보여서 한참 웃었다. 내 눈에는 가게가 요구하는 온갖 조건들- 주차부터 두루치기를 직접 잘라야 하고 온갖것이 셀프이며 불조절까지 알아서 해야 하는 그런 불친절보다는, 사장님 내외분이 꿋꿋하게 지키려고 하는 이 가정식 밥상의 모습이 훨씬 놀아웠기 때문이다. 집에서 내가 밥을 해먹는 것처럼 식당에서 상을 함께 차리고, 뒷정리까지 함께 한다면, 그 모든 과정도 "식사"의 일부이지 않을까 말이야.


 사장님은 따로 홀 직원을 두지 않고 두분이 모든 걸 하고 있다. 그래서 테이블 옆자리에는 후식이나 반찬을 올려두는 선반이 있다. 반찬은 상차림을 미리 해주셨는데 후식인 체리와 매실청은 선반에 두고 가셨다. 그리고 가게 벽에 걸린 팻말에는 접시 정도는 포개서 놔달라고 하니, 야, 나는 방금 아침 먹고 설거지까지 한 사라밍거든? 하며, 웃으며 그릇을 탁탁 치웠다.


 생각보다 바깥양반은 밖에서는 새지 않는 바가지다. 행복한 시저네에서는 내가 물을 마시는 사이에 자기가 우르르 그릇을 모아서 치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내가 차린 밥상에선 식사를 잘 하시고는, 상을 치우는 것에 협조하지 않고 쪼르르 가서 다시 누우셨다. 안에서는 조금 새는 우리 바깥양반. 그런 바깥양반과 나에게는 언제나, 우리집 밥상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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