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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08. 2021

극ENTP인 남편에게 반찬을 부탁하면 생기는 무서운 일

바깥양반이 구도 안나온다고 자기껏만 찍음. 혼밥 아님

 어제 비도 오고 해서 파전을 부치고 고기국수를 해 먹는데, 


"오빠 미안한데 반찬 한가지 만들어 싸줄 수 있어요?


라고 바깥양반이 말한다.


"그거야 쉽지. 같이 만들어먹기로 했어?"

"응 햇반 돌리고, 반찬 세개 놓고."

"응 잘 생각했어.

"냉장고에 두고 일주일 먹어."

"진미채 무침 가져가고...하나 더 해줄게."

"응 오늘은 부장님이 떡갈비랑 오징어볶음, 무말랭이 해오셔서 먹었지."

"응 그럼 복직해도 계속 그렇게 해도 될듯."

"넹."


 이렇게 대화는 끝났는데, 생각해보니.


"야 문제가 있다."

"응?"

"그런식으로 반찬 몇가지 싸가면, 밑반찬만 여러개 놓고 먹는 거잖아?"

"그래?"


 그렇지. 반찬을 만들어서 조금씩 가져온다면, 필연히 냉장고에 몇시간 들어갔다가 나올 것이고, 그럼 전자렌지로 돌릴 것이고, 그런 식으로 밑반찬만 놓고 먹는 것은, 점심으론 넌센스한 일이다.


 뭘 해야 할까. 진미채 무침은 전형적인 밑반찬이다. 밥 다운 밥이 되려면 메인디쉬가 있어야 한다. 보글보글 찌개, 지글지글 조림, 뜨끈뜨끈 국물, 중에 뭐라도.


"미역국 할까?"

"절대 싫어!"


 전자렌지에 데펴먹기엔 국이 딱인데. 실패.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산행을 하면서 나는 고민을 해보았다. 무엇이 좋을까. 두부조림을 하면 좋겠는데 두부가 없다. 저녁에 장을 봐올 문제도 아니거니와, 냉동실에 식재료는 넘쳐나는 판이니. 고등어조림을 할까? 아니지. 전자렌지에 데우면 냄새가 날지 모른다. 고등어김치찜 정도면 딱 좋은데...막상 고등어 고등어 자꾸 활용하려고 해봐도, 여러 사람이 먹는데 젓가락으로 고등어를 바르고 뒷처리도...마뜩치않다. 


 부침개? 음 부침개는 괜찮지. 반찬으로 애용되는 메뉴다. 부침개를 하자. 괜찮은 세미 메인 디쉬다. 해물파전을 하면 좋겠지만 아침에 쪽파 다듬을 시간까진 없다. 어제 국수와 먹기 위해 꺼낸 김치를 썰자. 그러고보니 어차피, 곧 김장철이기도 하고, 입덧으로 1년 내내 밥을 못먹어서 딤채에 김치가 제법 남아돈다. 김치전. 특히나 내가 잘하지. 


 그럼 남은 요리는...메인디쉬가 될 수 있는 반찬은...역시 그건가.


 제육볶음.

 나는 온몸이 땀에 범벅이었으나 샤워를 하지 못했다. 어차피 씻고 나와봐야 주방에서 일을 하느라 땀이 범벅이 될 것이고, 부침개를 하든 다른 요리를 하든 몸에 적지 않이 튈 것이다.


 우선 냄비에 물을 받아 편강부터 잘라 넣고 고기를 해동해서 함께 끓인다. 엄마가 직접 생강을 저며 만드신 편강인데,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만드셨으나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많아 이리저리 보관해서 요리에 쓰고 있거나 겨울엔 달여서 먹기도 한다. 지금처럼 아침에 바쁜 시간에 쓰기 알맞다. 


 이때가 출근 35분 전. 


 서둘러서 김치를 썰고, 제육볶음에 들어갈 고기를 조금 내서 고기도 종종 썰고, 겸사겸사 대파 흰쪽도 제육쪽에 넣고, 코에서 흘러 떨어지는 땀방울을 열심히 닦아가며 열심히 반찬을 한다. 


"오빠 얼른 씻어요."

"응."


 시계를 본다. 아직은 여유가 있다. 이쯤에서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이지 나는, 이라는 당연한 자기성찰의 시간이 돌아온다. 그냥 밑반찬만 해도 되지 않는가. 저녁에 계란장조림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겠는가. 계란 장조림이 뭐하면 고기라도 조금 섞어서 주면 되지 않는가.


 왜 나는 아침에 한시간 산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서 씻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내가 못되쳐먹은 ENTP 성향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는 그때부터 가설에 기반한 추론을 시작했다. 내가 이 사태를 벌이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메인 디쉬 없는 상황은 용납못해!"라는 나만의 기준을 바깥양반의 점심밥상에, 같은 교무실 몇몇이랑 나눠먹는 식탁에 적용한 사고과정의 결론이다. 


 가뜩이나 이런 내 고집으로 우리집은 밑반찬을 만들어도 소진이 되지 않고, 대개의 밥상은 메인디쉬 하나에 김치 정도. 그러니 매번 저녁 끼니마다 내 살림 시간만 늘어나고, 설거지도 거창해지고, 어쩌다 넉넉히 해둔 음식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식탐이 많으며 그 반대급부로 제일 입은 짧은 바깥양반과의 의사결정 속에서 남겨지기 마련이다. 최근엔, 오로지 바깥양반만을 위해 만들어준 스팸 짜글이가...결국 버려지고 말았다. 내 취향의 요리가 아닌데다가, 냉장고에 들락거리며 식고 데펴지고 한 음식에는 취향이 전혀 없는 탓이다. 


 음식은, 그때 해서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 것. 


 그런데 왜 내 그딴 막장 기준을 우리집도 아닌 바깥양반의, 학교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는 식탁에, 적용하겠다고 아침에 이러고 있는 것인가. 하며, 나는 당근을 썰었다.


 제육볶음...의...색상...당근과 고추...는...중요사항이니까...


 후라이팬에 네 덩이로 나눠 익힌 김치전은 저마다 지글지글 익어가고, 엄마표 재래식 간장이 담뿍 들어간 제육볶음은, 생강과 대파 흰대 등 제대로 된 손길로 점차 맛이 들어간다. 고춧가루도 넉넉히 넣어서 칼칼하니 깔끔한 맛.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오빠 빨리 아침!!"


 다 됐다. 출근 20분 전. 15분만에 제육볶음과 김치전을 대강 만든 나는 누구냐. 후다닥, 통들을 내서 김치전과 제육볶음을 담았다. 이정도면 넉넉히 먹겠지.


 그런데?

"아니 진미채는 뭐야."

"어? 왜?"

"아냐 많아. 과해. 진미채는 빼."

"아니 무슨말이야 진미채는 밑반찬이고."

"아냐아냐 아냐아냐아냐 이거 두개면 충분해."


라며 바깥양반은 식탁을 한번 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채비를 마저 한다. 나는 당연히 그 말을,


 쌩깠다.


 진미채는 밑반찬이고 제육볶음은 메인 디쉬고 부침개는 세미 메인 디쉬고 어허 어딜 감히.


 그러나,


"아아아 왜 또 진미채를 같이 담아. 빼라니까."

"아니...이해할 수가 없네."

 

 이해할 수 없긴.


 글을 쓰는 지금 자기성찰을 다시 해보자면, 어차피 바깥양반이 먹는 식탁이고, 빼달라고 하면 빼달라면 그만이다. 일이 줄지 않나. 애초에 두개에 만족했으면 꺼내서 굳이 비닐장갑 끼고 통에 담고 그런 절차도 불필요했겠지. 대체 왜 나는 굳이 진미채까지 꺼낸 것인가.


 참고로 이때가 출근 15분 전. 아직 못씻음.


 구시렁대며 그래도 억지로, 진미채까지 비닐에 각기 담아 흘리지 않도록 해뒀다. 그러나 여전히 바깥양반은 진미채는 빼라며 아우성이다. 당연히 바깥양반의 경우 그걸 들고가는 당사자이기도 하거니와, 자기가 보기엔 과하다 싶으니 과하다 말했을 것이고, 그러니 빼달라는 당연한 소리를 한 것이다. 그걸 나는, 또 내 기준에 맞추어 이것도 들고 가라고 강요에 가까운 행위를 한 것이고.


 이런 것이 ENTP 성향의 몹쓸 짓이라고 한다면, 적당한 추론일까. E 외부를 향하여 표출되는 N 이성적 판단과 T 자기 논리에 따른 P 지 멋대로의 자율성을...고집하려는 이 당찬 호연지기. 


 나는 결국 풀이 죽어 냉장고로 진미채를 돌려보냈다. 그러고도 할 일이 엄청 남아, 샤워도 뒤늦게 해야 했고 바깥양반과 내 아침도 먹어야했다. 제육볶음에도 조금 넣은 양배추. 보통은 계란후라이나 견과류를 함께 먹는데 그나마도 너무 바빠 양배추에 드레싱만 급하게 쳤다. 바꺝양반은 후르츠링에 우유.

"엑...질겨."

"질기다고?"

"너무 대충 잘랐나봐. 씹는데 한세월이네."

"얼른 준비해 늦었잖아."

"응."


 나는 먹다 남은 아침식사를 통에 넣고, 샤워실로 뒤늦게 들어갔다. 이때가 그러니까 출근 10분 전. 어떤 극 ENTP의 삶에는 포기해야 할 평이함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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