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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13. 2021

딱히 누구도 미트볼까지 요청하진 않았다

그것도 7개의 묘를 벌초하고 온 사람에겐.

"오빠 토요일에 랄라 놀러온다는데, 괜찮아?"

"토요일 저녁? 음...그럼 오라고 해야지."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번엔 조금 타이트하게 시작이 되었다. 출산을 앞두고 그간 미루고 있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잡히고 있는데, 지난 토요일은 벌초, 그것도 새벽에 집을 나서 대전으로 향해야 하는 일정이 낀 상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일말의 고민 없이 나는 우선 방문을 수락했다. 나야, 벌초를 다녀오는 것은 우리집 사정이고 남자의 일인 거고, 바깥양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뭘 해도 해야 뒤탈이 없는 법. 어차피 일찍 끝내기 위해 일찍 시작하는 일이니, 저녁 전에는 집에 온다. 저녁엔 랄라 부부와 저녁을 먹고, 일찍 보내고, 나는 반신욕을 하고 자기로 했다.


 그러나 당연히, 약속히 잡힌 뒤에는,


"그런데 문제가."

"응."

"저녁에 요리는 내가 하는 게 좋겠지?"

"오빠 힘들면 시켜. 랄라는 다 괜찮대."


 손님이야 당연히 괜찮다고 하겠지. 먹이는 내 문제다. 우리집에 온 손님에게 주문음식 따위를 제공할 순 없지 당연히. 그래서 금요일에 바깥양반과 겸사 겸사 장도 봤다. 맛있고, 새롭고, 그러면서도 간단한 요리가 무엇이 있느냐...하면,


"아 오빠 그럼 아란치니도 해줘 맛있었어."

"...싫은데."

 우선 아란치니부터 만들었다. 시간은 저녁 7시 10분. 7시 5분에 집에 도착해서 후다닥 옷만 갈아입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거실에 상을 펴고,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랄라 부부는 7시 30분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나는 총무를 하는 정준하 급의 두뇌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조리 순서까지 미리 구상을 마친 상태.


 우선 양파를 채썰어 볶았다. 캐러멜라이징이 되도록 충분히 가열하는 동안 햇반을 하나 돌려 볼에 담고 벨큐브를 꺼내서 모조리 집어넣었다. 벨큐브는 몇개월 전 집에 온 손님이 술안주로 가져온 것이다. 딱히 집에서는 혼술을 하더라도 뭘 곁들여먹지 않는 편이라, 저 벨큐브가 몇개월째 소진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란치니에 벨큐브라니 정말 딱이다. 일일이 까는 건 귀찮지만, 풍미나 질감이나, 완벽한 간단레시피 아닌가.

 양파와 당근, 벨큐브에 허브솔트로 간단히 만든 볶음밥은, 물론 정규레시피는 리조또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때쯤 도착한 손님들을 맞이하며 후다닥 만들기 딱 좋다. 벨큐브가 잘 녹지 않아서 손으로 쥐어짜서 밥에 섞었다.


 그리고 나서 계란과 빵가루로 튀김옷을 입혔는데 여기서 오늘의 레시피의 순서를 밝히자면, 나는 잠시 뒤에 미트볼을 만들어야 하고, 미트볼엔 빵가루가 꽤 많이 쓰인다. 그러니까 내 계획은, 아란치니를 만들고 남은 빵가루를 미트볼에 활용하면, 공정도 단축되고 음식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작은 냄비를 꺼내 아란치니를 모두 집어넣었다. 퐁당퐁당. 햇반 하나에서 10개가 조금 넘는 아란치니가 나왔다. 그런 다음에 전날 마트에서 산 간 쇠고기를 볼에 담...

...너무 많은데? 500g 들이 두개를 산 것 같은데 꽤나 많다. 2kg은 아니겠지 설마. 볼에 가득 차서, 볶음양파가 부족해보일 정도. 이러면 너무 퍽퍽해지기 십상이라 나는 좀 아쉬움을 느꼈다. 음...아란치니를 만들고 남은 빵가루도 턱 없이 적다. 봉지를 들고 우수수, 고기에 부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부족하다.


 이제 와서 볶음양파를 따로 만들 수는 없고, 어차피 소스와 함께 만들것이라 최대한 빨리 속도를 내면서 요리의 완성도를 떨어트리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미트볼은 좋은 요리다. 호주산 무항생제 소고기라는데 이만큼 분량이 할인가격으로 2만 8천원 정도이니, 네 사람 먹을 메인디쉬로 훌륭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미트볼 자체가 폭 넓게 사랑받는 요리가 아니다보니, 그 훌륭한 맛과 손쉬운 레시피에도 불구하고 메인요리로 접해볼 일이 잘 없는듯은 하다.


 쇠고기의 퍽퍽함을 완화해줄 양파볶음(간마늘도 좀 넣으면 좋다.)과 후추 약간, 소금 약간, 빵가루를 함께 버무려서 겉면을 거의 태우듯이 바싹 굽고, 저온에서 속까지 익히기만 하면 되는 요리. 2년 전 북유럽 여행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미트볼 요리를 먹고 나서 내가 자주 만드는 요리가 되었다.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은 처음인데,


 물론 쉬운 길도 있었을 테다. 타코에 치킨 정도면 넷이서 즐겁게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틀째 수면부족인 내 몸은 이때쯤 연신 콧물을 쏟았다. 면역력이 떨어져있다는 신호다. 손님이 오기 전에, 뜨거운 물로 충분한 샤워를 해서 지친 몸을 좀 쉬게 했더라면, 그럼 대량의 콧물사례를 겪으며 이렇게 밥을 차리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미트볼은 완성이 되었다. 버터를 넉넉히 넣고 튀기듯, 태우듯, 바싹하게 글레이징 시킨 고기 완자들.

"뭐야 엄청 많은데?"

"오빠 왜 이렇게 많이 했어?"

"대식가다 대식가."

"어...그게...나도 판단 미스인 거라...의도한 건..."


 바깥양반과 랄라는 주방으로 오더니 팬에서 꺼낸 미트볼을 보고 놀란다. 음...많긴 해. 왕자두 사이즈의 미트볼이 접시에 한 가득이다. 이제 여기에 나는, 그리고,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이미 8시를 넘긴 시각이고 손님들이 배도 고프고, 나도 한시 빨리 주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버터를 충분히 볶지 못했다. 미트볼을 튀기고 남은 버터기름에 베이컨을 볶아 풍미를 냈어야 하는데 시간이 그러지 못했다. 후다닥 크림소스를 집어넣고, 몇일 전에 파전을 만들고 남은 실파를 집어넣었다. 미트볼이 익는 동안 손질한 실파.


 쪽파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생각을 했다. 실파인지 몰랐다. 실파는 실패야. 쪽파였어야지.


 영월 여행 때 살롱드림이 정말 훌륭하다고 느낀 것은 영월의 토산품들을 서구 요리와 정말로 잘 어우러지게 조합해냈다는 것이었다. 곤드레 맛이, 고추 맛, 나물 맛이 그대로 소스와 리조또와 고기와 어우러졌다. 나도 그런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실파는 택도 없지.


 만약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베이컨도 기름이 뽑혀나올 때까지 볶고, 쪽파도 파 향이 눅진하게 올라올 떄까지 볶았을 것이다. 그러면 소스 전체에서 고소하면서도 진한 풍미가...크림소스와...미트볼에 딱 얹혀지면서,

 완성된 이 요리가, 정말로 훌륭했을 텐데 말이다.


"어때요?"

"맛있다. 맛있어요."

"응 맛있네."

"아란치니도 먹어봐."


 그리고 아란치니엔, 토마토 페이스트 크림소스를 함께 살짝 끓여냈다. 늦은 밤의 손님맞이는 그렇게 . 손님들은 짧은 시간 즐겁게 놀다 갔다. 나는 남은 미트볼과 엄마표 수제 피클, 그리고 대전서 사온 성심당 빵으로 그날의 간단한 파티를 마치고,


 반신욕을 한 뒤 깊이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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