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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23. 2021

꼬치전도, 부부생활도, 꿰어야 말이 되지.

지금이냐 평생이냐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여

"수달이가 우리랑 있을 땐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닌데 오빠랑 있을 때 보면 많이 의지를 하는 것 같아 보이긴 해요."

"하핫…나도 그래서 수달이한테 얘기 가끔 해요. 사회성 자아랑 나랑 있을  자아를 너무 분리하는  아니냐."


 바깥양반의 친한 언니 부부가 집에 놀러와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2년 사이에 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라 이제 좀 깊은 이야기까지도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집에서 밥도 해먹이고 간식도 해주고, 그러는 사이에 만삭이 되어서 더욱 신경쓸 게 많아진 바깥양반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고, 우리 부부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들 꺼내는 그 이야기를 했다.


 바깥양반이 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는.


"근데 사람들이 내가 되게 고생하고 그러는 줄 아는데,"

"응."

"나는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하거든?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고 생각하고 나름. 너나 동백이나 나중에 내가 덜 신경 쓸 수 있게 되면 내가 더 개인시간 쓸 수 있을 거고."


 돌아오는 길에 둘만 남자 나는 내 생각을 바깥양반에게 꺼냈다.


"응 그렇게 되겠지."

"지금 내가 힘든 건 사실인데...결혼이란 게 평생을 보고 손익계산을 하는 거니까. 지금 네가 나에게 의지하고 그래서 내가 묶이고 하는 그 부분은 생각은 난 별로 안하거든. 그리고 너도 많이 변했어."

"응 그렇지."

"집 가서 청소기 좀 돌리시고요."

"헐."


 그러니까 결혼은 오늘을 보고 하는 것이냐 평생을 보고 하는 것이냐. 오늘은 평생과 분리할 수 있는 것이냐. 오늘을 얻지 못한다면 평생에 대한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 아니냐. 등등 이런 생각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바라보며 평생에 대한 기대를 확인하고, 결혼을 지속하거나 갈라서는 길을 택하곤 한다.


 나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걱정하는 이 독박살림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바깥양반이 집안 일을 팽개치면 나도 집안일을 적당히 팽개쳤다. 조금 집안일을 도우면 나도 좀 성의를 보였다. 설거지는 결혼 전에는 자기가 하겠다더니 결혼 뒤에 못하겠다고 마을 바꾸기에, 몇번 투닥거린 뒤에 그냥 내가 하게 되었다. 밥은, 내 입으로 들어갈 것이니 내가 성의껏 할 뿐이다.


 대신에 나는 내가 하고픈 것을 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결혼생활을 영위했다. 합의될 수 있는 부분 내에서 내가 얻을 것을 얻고, 그 밖의 영역에 신경을 뚝 끊고 살았으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달까.

 자...그러니까...명절을 하루 지난 오늘 아침에 내가 칼을 잡은 이유는...


"오빠 꼬치전 해주세요."

"싫어."

"해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

"야 난 꼬치전 극혐이야. 단무지도, 오양맛살도."

"아냐 단무진 빼. 맛살만 넣고 해줘."

"오양맛살은 내 관점에선 식재료도 아냐!"
"아아아아 해줘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만삭인 바깥양반을 집에 버려두고 어제 집에 혼자 다녀왔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갈비탕하며 부침개를 두루두루 챙겨 밥을 먹였는데, 뜬금없이 꼬치전을 해달라고 야단. 아니. 내가 왜. 내가 왜 꼬치전 같은 요리를 한단 말인가.


 맛살을 나는 싫어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걸. 크랩맛살이 나오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식재료인데, 어릴 때부터 그 애매모호한 맛이 싫었다. 나중에 대게를 먹어보고서야 맛살이 대게 맛을 카피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어쩔꼬 나는 외가가 태안이라 꽃게 맛에 길들여진 것을. 대게 만큼 고급은 아니어도 나름의 맛과 멋을 지닌 꽃게를 좋아하는 나라서, 맛살의 그 맛이 예전부터 싫었다. 그래서 ,


"야 나는 김밥에도 맛살을 안넣어!"

"아 해주세요 오빠랑 결혼해서 4년을 맛살을 굶었어!"

"아니...내가 맛살을 왜 구매씩이나 하겠니."

"난 진짜 좋아해. 계란에 부쳐서만 줘도 밥도둑이야."

 

 대화는 여기까지 치달아버렸다.


 그러니까...바깥양반의 경우 시시껄렁하게도 맛살부침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시란다. 그걸 왜 이제 알았지? 싶지만, 그냥 내가 해주는 대로 까탈 부리지 않고 4년을 밥을 먹었으니 모를 법도 했다. 9월에 결혼했으니 마침 꽉 채워 48개월. 아직 서로의 식성을 잘 모르는 게 좀 있다. 내가 순대국을 가장 좋아하는데 바깥양반은 못먹고, 카페인 면역인 나와 달리 카페인에 심각히 약해서 아예 커피를 못마신다는 그런 중차대한 문제 이외엔.

 부부에게 있어서 같이 산다는 것은, 판단 기준을 서로에게서 찾는 연습을 하는 것일 테고, 그런만큼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독박살림 및 바깥양반의 나에 대한 과잉의존 정도의 문제 이외에도 바깥양반에게서 찾아지는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고민들이 있어야 한다. 바깥양반의 입장에서 보면 나보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안을 택할 수 있었다는 근본적인 문제 지점이 존재한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쉬울 것이 있는 집안을 굳이 감당할 것도 아니지 뭔가.


 그리고 나는 놀랍도록 마이페이스의 B형 남자의 스테레오타입 성향을 갖고 있어, 출산 준비를 앞둔 바깥양반의 속을 제법 썩이고 있다. 출산용품을 챙기는 것도 바깥양반, 병원을 알아보고 산후조리원을 예약하고 있는 것도 바깥양반이다. 돌봄 도우미는 나에게 맡겼는데 마침 8말9초가 내 업무의 특성 상 학교에서 제일 바쁜 시기라서 2주 정도, 돌봄 도우미를 알아보는 것을 마냥 미뤘다. 세상에나, 출산에 임박했는데 돌봄 도우미를 해결 안하는 남편이 있다? 기타 등등, 보여지는 것 이외에 나에겐 부족함이 많다.


 대신에 요리는 잘하고, 살림에 있어선 무엇보다 부지런한 덕분에 바깥양반에게도 기브 앤 테이크를 할 수 있도록 결혼 생활의 거래품목을 조금 만들어낼 수 있을 뿐.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꼬치전을 만들기로, 결심을 한 것. 별로 뭐 어려울 것도 없는 음식이다. 귀찮기만 겁나 귀찮지. 꼬치를 삶고, 방금 마트에서 사 온 크랩맛살이랑 6천원 남짓 한 가격에 사 온 부채살을 쪽파에 꿴다. 쪽파까지 12000원 남짓 장을 봐 왔다. 아이고 귀찮아라. 아침에 몸을 일으키고서, 꼬치를 모두 꿰는데까지 한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꼬치전은 꼬치전. 결혼이라는, 꿰어감의 문제를 고민하기에 적당한 요리다. 미리 부채살은 조물조물 간장을 버무렸다. 색색이 다른 꾸미가 꼬치에 꿰어져 함께 지지고 볶으니, 이게 우리 삶의 모습인듯싶기도. 싫든, 좋든, 꿰어진 이상은 한 몸이다. 각각으론 색깔도 맛도 덜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꼬치전은 조상님이든, 손님이든, 날 위한 요리이기보단 누군가를 위한 요리이니까. 내가 먹을 거라면 누가 꼬치전을 할까. 마찬가지로, 내 위주로 살 것이라면 누가 결혼씩이나 또.


 그런데다가 굿이 오양맛살을 받아들이는 것, 단무지는 뺐지만. 굳이 김밥 햄이 아닌 부채살을 사는 것. 몇천원 차이가 난 것도 아니었지만. 굳이, 사서 내지 않고 내 손으로 음식을 한다는 것. 꿰는 것도 꼬치전의 문제로되 무엇을 꿰는가도 부부생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뭐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하고 살다보니, 그것이 우리 부부, 그중에서도 내 측의 미덕이 되었고 바깥양반에겐 결혼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내가 하는 밥이 없어도 살 순 있을 테지만, 누구에게나 자랑, 그것을 넘어서 체험을 시켜줄 수 있는 결혼생활은 흔하지 않으니까. 나는 나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그리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꾸미 챙기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귀찮음, 불편함, 부당함, 이런 저런 것들을 참고 견디다보면, 어쨌든 이렇게,  

 한 상 다리 부러지게 음식은 만들어지고, 바깥양반은 4년만에 맛살 요리를, 그것도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차림새로 먹게 될 수도 있는 법이니.


 오늘은 꼬치전에 정말로 바깥양반은 흡족했나보다. 웬일로 설거지 하는 사람 뒤에 와서 달라붙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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