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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07. 2021

수란수란 도란도란

바쁘면 바쁜대로 늦으면 늦는대로

"으아아앙"


 낭패다. 


 수란을 진작 했어야 하는데, 하필 뒤늦게 수란을 올리는 사이에 동백이가 깨어났다. 게다가 지금 깨어난 것은 밥때라서, 쉽게 재울 수도 없다. 밥은 완성되었고, 뒤늦게 올린 수란은 익어가고, 나나 바깥양반이나 후다닥 저녁을 먹어야 아이 씻기고 9시 전에 재울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동백이가 배를 곯아 깨어난 것은 이래 저래 낭패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을 다 끓이고 나서 설거지를 하지 말걸. 밥이 다 되길 기다리는 사이에 진작 수란을 익힐걸. 나는 후회막급한 복잡한 신경 속에 침실과 주방을 오간다.


"일단 먹여. 각자 먹더라도 애기는 지금 먹여야 씻기지."

"응 알았어. 동백아 밥 먹자~."


 저녁식사가 다 준비되고나서 동백이가 울기까지 무려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면 충분히 따끈한 밥을 조용히 둘이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오늘의 저녁식사가 더욱 풍성했을 것이고, 진작 완성된 수란이 식은 콩나물국물에 버무려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제대로 한상을 차리는 날이었는데. 모든 채비를 제대로 갖춰놓고도 수란 하나에 발목을 잡히다니 이런. 

"아 뭔가 칼칼한 거 먹고 싶네."

"어엉?"

"콩나물국."

"어...콩나물...사야하는데...아니, 무국을 해도 되고 김치국도..."

"아니 뭔가 시원하고 얼큰한데 깔끔한 거요. 콩나물국."

"하아..."


 5주차 아이가 된 동백이와 주말 이틀을 보내고 난 우리는 여전히 밥심으로 산다. 바깥양반은 정오가 다 된 시간에 기침하시며, 밤새 쌓인 젖병을 설거지하는 날 보고 말씀하셨다. 칼칼한 거. 콩나물국이야 좋지. 그런데 콩나물은 사와야 하지 않나. 집에 김치도 있고 무도 있다. 게다가 아주 싱싱한 고춧가루도 있으므로 당장이라도 뭐든 끓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바깥양반은 콩나물국을 요청하시며, 뭣하면 저녁 때 해달라고.


 콩나물국이 어려운 요리가 아니니 당연히 거절하기도 어렵다. 내가 싫어하는 요리도 아니다. 무를 채썰고 황태에 콩나물에 같이 한소끔만 끓여도 시원하고 세상 깔끔하지. 그런데 바깥양반은 또, 얼큰한 콩나물국을 원하신다. 그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다. 산후도우미 없이 친정엄마도 시어머님도 없이 둘이서 혼신의 육아를 하고 있는 우리집에서, 끼니는 아이의 배곯음과 닮았다. 배가 고프면 깨서 먹는데 아이는 그 텀이 두시간이고 우리는 열두시간쯤 되는 것만 다르다. 그러니 자연스레 밥을 사먹는 것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어떻게든 기회만 있으면 밥을 하고는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바깥양반도 내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말을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차려낸 밥이 있어도 편히 먹기 힘들다는 것이고, 그렇게 한시간씩 밥을 하고 있으려면 그 사이 아이를 달래는 사람도 힘이 들고,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히 볶음밥을 만들면 될 것을 콩나물까지 사와서 이리 저리 일을 벌려야 하는 사람도 힘이 들고. 


 콩나물국은 쉬운 요리다. 그냥 멸치 팔팔 끓여서 콩나물 넣고, 소금 넣고, 마늘 넣고, 파 쫑쫑 썰면 끝. 그런데 왜 이게 일이 되냐면, 집에서 잘 해먹지 않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만드는 요리이고 게다가 모처럼, 바깥양반이 요청한 요리이니 나는 그걸 그렇게 집밥스럽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국을 끓일 때 글을 쓸 생각을 했더라면, 다시팩으로 국물을 내고 들기름으로 황태를 볶는데 그 황태가, 명절 성묘 때 조상님들꼐 올렸던 통 황태라서 내가 손수 가시를 빼고 손질을 한 것인데다가 매우 싱싱한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간을 하여 조미료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말 그대로 천연 그대로의 맛이라는 것을, 생생한 사진자료와 함께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그렇게 밥상은 완성이 되었다. 비록 동백이가 깨어서 지금 앙앙 울다가 맘마를 먹느라 조용해졌지만, 그러므로 우리의 모처럼의 황태콩나물해장국 밥상이 이 풍요로움과 달리 촉박하고 긴박해지긴 했지만, 동백이가 태어나고 가장 정성을 들은 밥상이다. 물론 그 사이에 갈치조림이라거나...냉삼 한상이라거나...해물라면이라거나...꼬치전이라거나...등등 많긴 했지만, 수란은, 수란은 특별하지.


"내가 마저 먹이고 나갈게 얼른 너 먼저 나가. 식기 전에."

"응 알았어."


 나는 바깥양반을 밥상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오오오" 하는 바깥양반의 리액션에 몇마디 보탠다.


"수란 먹는 법 알아?"

"먹어본 적 있는데, 알려줘봐."

"김 몇장 찢어서 넣고."

"응."

"국물 대여숫가락 수란에 넣어서 버무려 먹어."


 동백이는 잔뜩 찡그린 눈으로 날 올려본다. 외출을 하고 와서 저녁 잠투정이 심하다. 겨우 한시간 쯤 재웠나, 조마조마하며 밥상을 차렸는데 당연하다는듯 딱 이때 눈을 뜨고 밥을 찾는 딸랑구 덕분에 졸지에 엄마 아빠는 혼밥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질 내가 아니다. 아이를 안고 먹이다가 얼마 남지 않은 젖병을 물린 채로 식탁으로 나왔다. 허리에 아이를 끼고, 다리에 아이를 올린 채, 젖병을 문 아이를 둥가둥가 하며 나도 한 손으로 수란에 국물을 푼다. 한손뿐으론 김을 찢어넣지 못한다. 대신에 그럭저럭 밥은 먹을만 하여, 얼큰하고 시원한 황태콩나물국에 시어머님의 장조림과 알타리김치, 그리고 내가 점심에, 칼칼한 메뉴로 진상했던 김치제육까지. 하여튼 바쁘면 바쁜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열심히 차린 오늘 저녁, 힘드면 힘든대로 맛나게도 먹었다. 


 수란에선 참기름의 내음이, 황태콩나물국에선 들기름의 내음이, 맘마를 다 먹고 이제 내 무릎 위에 앉아 트름을 하고 있는 동백이에게선 정수리의 샴푸향과 우유의 냄새가. 그리고 드물게 바깥양반은 국물을 "완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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