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원 두번 붙은 사연(17)
"형 교수님께서 한번 오라시는데여."
"어어 나도 한번 시험 전에 찾아가봐야지 했어."
"이번주 금요일에 3시쯤 되세여?"
"응 갈게."
한창 업무와 대학원 시험 준비로 분주한 9월 말에 이규빈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교수님이 부르니 잠깐 건너오라는. 나도 당연히 시험 전에 한번 찾아뵐 생각이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으로, 오후 휴가를 쓰고 학교를 찾아갔다.
집에서 서울대까지는 늘 멀다. 원서를 내기 위해 처음 방문했던 곳을 2,3주만에 다시 찾으니 새삼 또 감개가 몰려왔다. 업무를 신나게 마치고 학교로 달려와 수업을 듣고, 다시 멀리 집으로 향하는 이런 삶. 다시 얼마나 빡세질지 알기가 어려운 나의 삼십대 후반부.
교수님과의 면담은 대학원 입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지도교수의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학생들을 몇가지 절차만을 보고 가려뽑아야 하는데, 그 사람이 학문분야에 충실한 연구자로 남은 삶을 살아갈지, 박사과정까지 들어올지, 의미있는 연구물 하나를 남길지 등등 확신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중히 가려 뽑아도 막상 충분히 훌륭한 연구자가 아닐 수도 있고, 신중히 뽑을만한 재원 자체가 달리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세부전공의 지도교수가 반드시 면접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치른 두번의 입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수님과의 면접이 그렇게 중요한데 대학생 시절의 단 한학기의 수업, 그리고 페이스북에서의 몇년간의 교류나 싱가폴 연수 뒤의 에세이 정도로 "나 뽑아줍쇼"하고 감감무소식인 것도 영 마땅한 일이 아니다. 언제 찾아갈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께서 출간하신 책도 몇권, 사인을 받기 위해 챙긴 참이다.
"어유 왜 이렇게 덩치가 커졌어."
"허허허허허 앉아서 책만 보다보니..."
사범대 건물의 연구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날 알아본 교수님께서는 걸어나오며 내 덩치를 보고 한마디 던지신다. 지난 겨울에 LA에서 뵈었을 때보다도, 내가 살이 좀 찌긴 했지. 나태함에 대한 반성, 쇠질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동시에 샘솟았다. 교수님은 나와 이규빈 선생님을 카페로 데리고 가 자리에 앉으신 뒤,
"필기에서 절대로 과락만은 안되요 김선생, 내가 그건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
"아하하...네...열심히 공부는 하고 있습니다."
나는 머쓱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렇군. 필기시험. 과락.
사실 교수님과 마주앉기 전까진 조마조마, 무슨 말을 하실지 걱정도 되고 고민도 되었다. 그런데 내 불안감이 문제가 아니라 교수님의 불안감 쪽이 조금 더 문제였던 것일지, 필기만은 절대로 떨어지면 안된다는 당부. 자기소개서 및 연구계획서(SOP)와 필기, 면접 이렇게 세가지 요소를 종합평가하는 것일 텐데...필기의 경우는 과락을 기준으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락 면제선이나 필기 1등이나 변별력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학 연구자를 뽑는 시험이니, 단 한차례의 일제고사형 지필평가의 변별력이 그리 높을 수 없다는 점 역시 당연히 인식된 결과다.
그리고 조금 대화가 이어진 뒤에는 연구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김선생한테 교육정책 관련을 좀 맡아보라고 할 생각이야."
"아...넵 좋은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교육과정 담당이다 보니..."
2018년의 나는 교육과정부장으로 3년째 일하고 있었다. 2016년은 2015 개정교육과정이 발표되면서 고교학점제와 과목선택의 자율화가 막 시작되고 있던 해다. 나는 연말에 매주 수원, 용인, 시흥 등지를 불려다니며 2015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연수를 듣고, 그것을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방학을 반 포기해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교육과 거리가 다소 먼 사람들의 인식에서 교육정책은 대개 "교복 자율화", "학생인권", "입시", "사교육" 등의 거대담론들이다. 물론 그것들도 무척 중요한 주제이지만, 교육정책은 실질적으로 학교 교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의 총체적 진단과 대책이다. 교과서의 토씨 하나, 아이들이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숟가락 젓가락이 모두 교육정책의 일부다.
그런고로, 내 수업에서의 전문성, 학교 단위 교육과정에서의 전문성, 정치나 사회에 대한 민감도 등, 페이스북에서 교류가 이어지는 동안 날 관찰평가하신 교수님께서는 교육정책 분야의 연구가 적절하다고 생각을 하신듯하다.
나는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사회학이라는 학문의 경계는 매우 넓지만, 특히나 학교에서 입시를 목적으로 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짜온 나의 그간의 교직생활이 모두 정책과의 치열한 싸움이기도 했으니까. 일례로, 내가 정교사로 채용된 2011년은 창의적체험활동이 도입된 첫해였다. 나는 학교에 온 첫해에 창의적체험활동을 담당했고, 전임자가 남겨둔 단 두페이지짜리 편성표만 가지고 혼자서 메뉴얼을 뜯어가며 자율활동, 진로활동,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이라는, 분량도 많고 자율성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비교과영역의 총괄책임을 맡기 위해 애를 쓰곤 했다.
교육정책은 교사 그리고 교육연구자로서 여러가지로 잘 알아야 하고, 잘 해내야 하는 분야다.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뒤의 대화는 굉장히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데, 나는 서울대 교수진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전혀 몰랐다. 정말 까맣게 몰랐다. 단지 나 역시 내가 그간 페이스북을 통해 관찰해온 단편적인 인식으로만, "동지애적 헌신으로 교수님의 해방교육에의 실천을 돕겠다!"라는 의지만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헛소리를 뿜어가며 교수님을 돕겠다고 떠들어댔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이불킥스러운 멘트들 뿐이다.
40여분 남짓, 이규빈 선생님을 동반한 셋의 짤막한 대화는 교수님의 다음 일정에 따라 끝났고 나는 교수님의 격려와 연구주제를 가슴에 품고,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마을버스에 탑승했다. 필기 준비는 순조로왔다. 하루에 세개 정도씩 답안지를 써내려가며 배우는 것도 많았고, 점차 개념이 머리에 싹트기 시작했다. 교육사, 교육철학, 교육사회학 세개 영역을 기본으로, 교육과정과 교육평가까지 총 다섯개의 출제영역에 대비가 되고 있었다.
파견을 위한 가산점도 매우 희망적이다. 나는 우선 나이가 많다. 20점의 가산점 중 경력점수가 15점인데 12점을 받는다. 그리고 5점의 수상점수 중, 교육감의 표창이 두개나 있어서 3점이다. 중복 인정이 되었다면 6점일 텐데 그게 아쉽다. 경력과 수상으로 15점이니, 서울대 파견을 노리는 교사 중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지역별로 쿼터가 있는데, 게다가 나는 경기도 교사이므로 인원 쿼터가 넉넉하다. 합격자 중에 10등 안에만 들면 된다.
과락만 아니면 된다. 그럼 적어도 합격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파견은 안될 수도 있다. 그럼 뭐 어때. 학교랑 병행하며 다녀야지. 근거가 없지 않은 긍정의 시그널 뿐이다. 나는 흥분은 하지 않고 차분하게 집으로 돌아와, 그날도 기출문제 답안을 작성하고 늦은밤이 되어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