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끝나지 않는 싸움
GOP에 들어가서 맞이한 가을, 진중문고로 소초마다 두박스씩 책이 두둑히 들어왔다. 황당하게도 그 목록에 <체게바라 평전>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담겨있었다. 노무현 정권 시기의 자유로운 풍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꽤 풍성한 양서들이 있어, 그 해 겨울이 심심지 않았다. 정말이지 멋진 책들로 영혼을 살찌우고, 매일 6.75km축선을 좌우로 왕복하며 심장은 단단히 했다. 그리고 그 책들 중에 <위대한 패배자>도 있었다.
<위대한 패배자>는 실패자들의 이야기다. 각자의 이유로 좌절을, 죽음을, 절망을 맞이한 이들. 저자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 불운한 실패자들, 실패를 극복한 이들, 아주 사소한 실수로 치명적인 비극을 맞이한 이들까지 다양한 실패자들의 경과를 탐색하며, 묘한 공감과 위로의 메세지를 완성한다. 몇몇 사례는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책장을 덮은 뒤까지 오래 여운이 남는다. 반 고흐처럼 죽음까지의 모든 과정 속에서 절망에 몸부림치고, 죽음 뒤에 불멸의 명성을 얻은 이의 이야기도 담겨있으니까.
즉 이 책은 실패자들의 이야기이되 우리들의 이야기다. 개개의 사유로 비록 비극을 맞이했지만 그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불멸의 것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우리가 패배한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언제나 좌절하고, 실패하고, 불안 속에 또 내일을 맞는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 패배하는, 그리고 패배를 견뎌내는 삶인 탓일 게다.
어쩌면 삶은 늘 패배의 과정이다. 죽음이란 영원한 패배의 시간에서 벗어날 단 한가지의 길조차 없으니,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늘 스스로를 속임으로써 완성된다. 부자는 빈자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고, 선인은 세상의 불합리에 좌절한다. 악인은 스스로의 부정으로부터 존재의 죽음을 마주하고 범인은 영웅들의 서사에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패배와 실패를 인지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느냐에 달린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배부른 몸을 안온히 침대에 뉘이는 이들 모두에게 양심의 은총이 있기를.
대선이 끝났다. 그리고, 삶은 이어진다.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새벽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 못하며 초조하게 인터넷 창을 수백번은 새로고침했다. TV 중계로 유시민 작가의 파리한 얼굴을 마주하고, 먼저 잠든 아내와 아기의 얼굴을 쓸쓸히 바라보길 수십번. 나는 과제를 위해 켜둔 노트북에 손도 대지 못했고, 이윽고 새벽에 따지도 못할 맥주캔을 가슴에 품고 수 없이 뒤척이다 신새벽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을 땐, 바라보는 모든 풍경이 잿빛과 같았다. 패배. 예견된 패배. 받아들일 수 없는 패배. 있을 수 없던 패배.
누구는 김어준을, 누구는 문재인 대통령을, 누구는 조국 교수를 걱정하는 말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검찰왕국의 성세를 예견하는 사람들, 2030에게 칼끝을 돌리는 사람들. 패배자들의 진영에 속해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홀로 패배자가 되는 일보단, 함께 패배자가 되는 일이 더 나으니까.
함께 패배자가 되고 나니, 세상은 또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패배자들끼리 모여서 작당질을 시작했고, 이를 갈며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도 보이고, 패장은 그런 목소리에 용기를 얻는지 또 어찌어찌 기운을 차린 모양이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나니 삶이 달라진듯 싶지만서도, 퍽 달라지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늘 그렇게 살아들왔다. 언제는 속 편하게 팔짱 끼고 정치에 참여를 했으며, 또 선거일마다 당연히 우리편이 이길것이라 믿으며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적이라도 있단 말이더냐. 광장에 나가는 일도, 끼리끼리 격려하며 시위를 통해 꼭 이 더러운 세상을 바꿔보자고 외치던 것도 너무나 익숙한 일들 뿐이다. 2002년에도, 2004년에도, 2008년에도, 2012년에도, 그렇게 그래. 그렇게 그래. 패배하고, 또 싸우고, 한번쯤은 승리도 하고, 그러다가 또 패배를 버텨내고 이를 악물고. 그렇게들 어찌어찌 살아는 왔다.
위대한 패배자. 번역된 제목은 "위대한"이라고 말하지만 독일어 원문도, 책에 담긴 이들의 면면도 위대한 패배자들만 뜻하지는 않는다. 대단한 패배자들 정도. 그런데 대단하다는 말도 좀 그렇고, 큰 패배자들 정도.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패배자가 되었다고 느낀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큰 뜻에 손 발 숟가락들 정도는 얹었던 사람들이라는 뜻도 될 터이다. 부동산 때문에 분노하기보다는 토건족들만은 막아야 한다는, 조금더 큰 뜻. 검찰제국의 총수가 대권을 잡는 것을 바라보기보단, 검찰권력을 해체하고야 말자는, 보다 큰 뜻. 야만적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나라가 아니라, 보편복지국가로 가자는, 보다 큰 뜻. 이런 생각들을 품고 한 표를 던졌다면, 그리고 지금 이 패배에 치를 떠는 이들이라면, 그렇다면 분명 우리는,
위대한, 패배자들일 것이다.
삶은 늘 이어진다. 뒤로 뒤로, 시간에서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옆으로 옆으로, 이웃의 삶, 우리편과의 삶, 함께 싸우자는 이들과도, 삶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패배를 맞았고, 영토는 좁아졌으며, 나눠먹을 알곡도 줄었으니, 더욱 그러니, 함께 부대끼며 서로서로를 의지할 뿐이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고달프게 민주주의 하겠다고 버티며 살고 있는지 참 모를 일이지만, 글쎄, 승리의 기억보다 패배의 기억이 훨씬 많은 현대사를 또 살아내고 보니, 그럴수록 승리의 기쁨이 참 크기도 했다. 가진 거 없는 사람들, 믿을 거라곤 옆줄에 선 사람들 뿐인데 그 사람들이 버티고 버텨서 한번씩 저 드높은 성벽을 한번씩은 무너트리고 있으니. 앞으로 또 어떤 패배의 시간들이 다가올지 모를 일이기도 하지만 괜찮다. 더 많은 패배의 시간 속에 더 많은 우리편들 또한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