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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26. 2022

반딧불이 총총한 무주의 여행가방 펜션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하는 곳 같은 기분.

 졸졸졸 흐르는 세찬 논물 소리. 반가워 한걸음 다가서 사진을 찍으려다 깜짝 놀란다. 턱 바로 아래 수십마리의 올챙이가 더운 헷살을 받으며 헤엄쳐 달아난다. 올챙이라. 여름철이 되면 개굴개굴 밤 새 시끄럽겠구나. 이만큼이나 많은 개구리들도 여름을 지나, 가을이 지나, 살아남는 것은 불과 수십마리. 그러니 또 겨울잠을 깨고 살아남아 알을 낳고 봄을 맞겠다. 


 5월 셋째주의 일요일, 모내기를 마친 논에 부서지는 헷살이 눈가를 간지럽힌다. 그것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줌으로 공부모임을 하며 천천히 천천히 좁은 계곡 사이 난 길을 걷는다. 길 위에도 삶이 있고 나 자신에게도 나의 삶이 있다. 점점이 떨어진 농군들은 손에 장갑을, 그 위엔 삽을 쥐고 느리게 움직이고 있고, 나는 손에 쥔 핸드폰이 점점 아침의 햇살처럼 뜨거워져 가는 것을 느끼며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일요일, 아침. 무주. 

 서산만이 아니라 태안에도 마애삼존불이 있다. 우리 외갓집은 그 산 아래, 절과 군부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태안 읍내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가는 거리다. 우린 시절 항상 사촌들과 모여서 읍내에서 외갓집으로 걸어서 가는 것이 일이었는데, 각기 서울에서, 대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거나 하니 늘 일찍 올 수만은 없었다. 하여 밤 늦게 태안에 도착할 때가 있으면, 그 밤에 읍내에서 산 아래 외갓집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밤에 산등성이를 넘어야 했다. 


 귀신이며 도깨비며 하는 것보다는 망태할아버지가 더 무서운 어린나이였기 때문에 여름, 어두컴컴한 길은 앞뒤에 함께 가는 사촌형들, 엄마의 온기가 있기에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꼬맹이가 산길을 따라가다가 어느 해엔, 길 바로 옆에 무수히 작은 불빛들을 보았다. 


 반딧불이. 성충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도 빛을 발한다. 여름 장맛비를 맞아 길목에 길게 자란 풀들 끝으로 반딧불 애벌레들이 타고 올라온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고 외갓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애벌레는 잃어버렸지만, 어린 시절의 그 한자락은 평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삶의 무게를 한결 가벼이 해준다. 어두운 밤길을 걷는 시간이 있더라도, 그 길목에 반딧불들은 늘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 생각에 하루 하루 견딜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어제는, 반빗불이를 관측하기 좋은 지역의 코 앞에서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잠에 들어버렸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산책은 길지 못했다. 아마 펜션으로 돌아가면 아기는 깨어 있을 테지. 아이를 보며 짐을 챙기고, 또 집으로 돌아가야지. 뭐어 산책 잘 했다. 나는 아침의 산 속에서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온 길을 따라 내려가,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펜션을 바라본다. 


 여행가방. 여...행가방이라. 세상에 별별 컨셉이 다 있다.

 사실 이 펜션엔 지난해 9월 말쯤에 올 뻔했다. 동백이가 태어나기 대강 열흘 전 쯤이었다. <구해줘 숙소> 방송을 보던 아내가, 글쎄 방송에서 이 숙소를 보더니 아이 낳기 전에 마지막 여행 어떻겠냐고. 나야 뭐, 너 알아서 하라고 말했고 당연히 아내는 숙소를 예약했다가...출산이 정말 코앞이 되니 아내는 스스로 겁이 나고 해서 그만 두었다. 그리고 이제 아기가 7개월이 되었으니 시간 참 빠르지. 우리끼리 온 것은 아니고 아내의 친구 부부가 가족여행으로 무주에 오기로 하여, 별도로 그 부부와 하루 만날 약속을 잡고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 아내는 득달같이, 출산 직전 오려던 이 펜션을 예약했다. 가격이 꽤나 저렴하다.   


 무주처럼 먼 곳까지 아내가 가자는대로 오기로 한 것은 나에겐 그보다 앞서 아~주 어린 시절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전에서는 무주가 퍽 가깝다. 고속도로가 깔려있지 않던 그 옛날에도 두시간이면 닿았을 것이다. 여섯살인가 일곱살 쯤, 부모님 서점의 직원들까지 함께 무주 구천동에 놀러왔다. 하루 어른들은 잘 놀고 이튿날 아침 등산을 했는데, 나도 구천동 관광단지에서 출발해 덕유산 정상까지 올랐다. 정상에 올라 안개인가 구름인지 모를 칼바람을 맞으며, 민소매 셔츠로는 도저히 그 추위를 버틸 재간이 없어 함께 정상에 오른 누나와 함께 바위 뒤로 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구천동 단지가 해발 650m라고 해도, 덕유산 정상이 1600m를 넘으니 1000m 이상을 예닐곱살 꼬맹이가 어른들을 따라 오른 것인데, 나는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어른들이 나와 누나를 보고 박수를 쳐주었다는 이야기도 아버지로부터 듣는다. 그날 이외에도 무주는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 종종 들르곤 했다. 그러니, 무주는 나에게 썩 좋은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여기 여행가방펜션으로 차를 몰고 당도하기 전까지는 썩 위치도 좋지 못하고, 차로 들어가려면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 유턴을 해서 들어와야했기에 탐탁지 않기만 했다. 그런데 의외로 차에서 내려 숙박을 시작하니 매우 매우 매우, 훌륭하고 만족스러웠다. 


 어쨌든간에 캐리어 모양을 딴 각 동이 이채롭다. 막상 가서 보면 단지가 크지 않고 건물도 군데군데 낡은듯 보이는 것이 볼품이 없지만 사진을 찍기엔 딱 좋다. 입구 부근에서 나무를 다듬고 계시던 사장님은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주셨고, 방은 쾌적하고 깔끔. 


 그러나, 13만원의 가격에 지하 노래방이 1시간 무료이고, 간식을 아무때나 가져다 먹을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있다는 점이 이 숙소의 각별한 점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친구 부부와 주변을 돌아보고 났을 때는 이미 시간이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씻기고 수박과 함께 술을 조금 나누어 마신 뒤 밤 10시에 노래방에 가보기로 하였는데, 술도 먹고 각자 방에서 한번 정리도 하고 나오다보니 한 5분 정도 늦었다. 내가 먼저 옆 건물 1층의 휴게실로 갔는데, 사장님이 그 시간까지 노래방 앞에 버티고 서 계신다. 

"사장님, 이 시간까지 기다리고 계세요?"


 나는 야밤에 사장님이 펜션을 지키고 있는 것이 놀라워 먼저 물었다.


"아 손님들이 오셔야죠. 그래야 잘 노시다가 11시엔 정리하고 들어가지."

"아...와아!"


 짧은 대화를 마치고 노래방으로 나는 처음 들어가 봤는데, 정말 놀랍게도 깔끔하고 쾌적한, 6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서 놀, 정통 노래방. 다만 마이크는 한개. 음료수는 당연하게도 별도의 가격 없이 옆 휴게실에서 무한 리필.


"아니...숙박비도 저렴하던데, 이렇게 차리고 손님을 다 받으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안들어가시고?"

"저렴하긴 뭐...저희가 막 방송국에 연락 먼저 하지 않았어요 MBC에서도 와서 사정사정 해서..."


 내가 칭찬을 할 기색이 보이자 사장님은 먼저 방송을 여러번 탄 것을 의식하신듯이, 그에 대해 먼저 방어를 하셨다. 하기사 시골은 지역사회라 방송 한번 타서 그 집이 잘나가면 그게 문제인게 아니라 주변의 인심이 고달프다. 손님들이 찾아와서 잘 놀고 가는 것은 좋지만, 칭찬을 받으면 쑥스럽기도 하고 방송 덕이 아니라 원래부터 손님들 잘 맞이하는 집이다, 떳떳히 밝히고픈 마음이 인지상정.


"아 당연하죠 뭐 이렇게 영업하시는 게 방송 덕으로 되겠어요. 저는 이렇게 노래방 잘 차려준 펜션 처음 와봤어요 사장님께서 이 시간까지 쉬지도 못하시고. 진짜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펜션하시는 분 같은 느낌이..."


 그러니, 사장님의 방어막에 나도 자연스럽게 말이 길어진다. 칭찬이 허례가 아님을 알려는 드려야 하고, 그러면서도 불편함은 서로에게 없어야 하니까. 다행히, 내 의도는 통하였는지 사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으신다.


"아하...그렇게 봐주시면 저희가 감사하죠."

"네네 잘 놀다가 치우고 갈게요."

"네 그러세요."


 코로나 덕분에, 그리고 아이 덕분에 노래방 마이크를 정말로 2년만에는 잡아본 것 같다. 중간에 딱 한번, 작년 8월쯤이었을까 코인노래방에 간 적은 있으나 그때도 몇곡 부르지 못하고 나왔다. 임신한 아내와 단 둘이 코인 노래방에 가서 놀아봐야 얼마나 놀겠어. 이번엔 수박에 막걸리도 먹었겠다, 신나게 소리지르고 나왔다. 코로나 후유증이나 있지 않을까 걱정은 했지만 또, 애초에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데 더 좋은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일찍 움직여야 하니 산책을 마치고 나서 바로 아이를 씻기고 우리도 조식을 먹으러 나왔는데, 작은 펜션에서 제공하는 조식 치고는 뭔가...뭔가...


 뭔가가 뭔가다. 정말 놀랍게 친절하고 자상한 배려다. 멜리타 커피머신에 원두까지 넉넉히 챙겨둘 건 뭐람. 전날 밤, 노래방에 들어가기 전에 휴게실을 먼저 구경하면서 사장님과 나는 커피머신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내가 집에서 쓰는 것의 하위 모델이다. 사장님은 4년째인가, 그 전에도 같은 모델을 쓰시다가 버리고 같은 모델을 새로 사서 쓰고 계시다고. 저렴한 전자동머신이긴 해도 정가가 40만원대다. 이렇게 펜션에 턱 하니 깔아둘만한 물건은 좀 넘는다. 캡슐 에스프레소머신 쪽이 훨씬 관리하기가 편하지. 이렇게 멜리타 전자동 머신을 턱 하니 깔아둘 일인가. 이런 모든 점이 놀라운 점이었다 내겐. 


 이것 말고도 우유에 쥬스, 모닝버터에 딸기잼 등등 튼실하고 깔끔게 차려져 있는게, 야 이건 안먹을 수 없잖아. 10시반에 오픈하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로 해놓고서도 우리는 토스트를 여러장 구워, 벌써 배부르게 먹어버렸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무주 계곡의 청명한 햇살과 투명한 하늘을 구경하며. 세상에 좋은 숙박, 명품 펜션이야 많겠지만 단돈 13만원에 이런 기쁨을 주는 곳이 그리 흔할까. 게다가, 여름밤 반딧불이를 구경할 수 있는. 


 술을 마신다고 밤에 숙소에서만 머물지 말걸 그랬다. 다음에 갈 일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땐 꼭, 길 건너 반딧불이 보러 가야지. 그땐 동백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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