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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23. 2022

무주시장 안 노포에서 먹는 피순대국

  무주 반딧불이시장 오뚜기 식당

 무주에 와서 순대국이라니. 


 그럴만한 사정은, 무주가 그리 메이저한 관광지가 오늘날엔 아니라는것. 그래서 먹을만한 이름난 음식이 많지 않다는 것. 우리는 친구네 부부와 1박을 하기로 하고 왔는데 그럼 대강 세끼 식사를 해야 할 것이고 적당히 로컬메뉴, 적당히 시골메뉴 하나씩을 고르고 나니 첫 식사인 점심 메뉴가 남았다.


 나는 아내에게 "그럼 순대국 먹자!"를 외쳤고, 순대국을 먹지 않는 아내는 내가 찾아서 보여준 식당의 메뉴판을 보고 마지못한 기색이긴 했으나, 수긍했다. 순대국말고도 몇가지 메뉴가 있다. 게다가 또 막창구이가 맛집이라나. 그러나 열두시에 먹는 이른 점심에 막창을 굽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일이고, 하여 우리는 첫 방문지로 찾은 인근의 카페에서 무주 읍내로 차를 달렸다. 그리하여 마침 장날을 맞은 시장을 한바퀴 구경하고 원래 방문지인 오뚜기식당을 찾았다.


"온 김에 들기름 사면 좋은데 들기름. 방앗간 없나?"

"있으면 사 오빠."


 시골에 와서, 시장에 와서, 시골에서 직접 짠 들기름 참기름 하나 안 사가면 반칙. 요즘 나는 여행을 하면서는 이런 버릇을 들였다. 잊을만하면 엄마가 태안에 다녀오시면서 하나 큰 통을 안기기는 하지만 그렇게 받아먹는 참기름 들기름으론 마음껏 요리에 넣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바퀴 휘 둘러본 시장에는 방앗간이 눈에 띄지 않았고, 그와 비슷하게 뻥튀기를 많이 깔아두고 파는 집은 있었다. 뻥튀기를 살까. 최근에 아이는 촉감놀이를 시작했다. 빵튀기라도 사두면 자주 촉감놀이를 시켜줄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무주까지 와서 사가기엔 부피가 너무 크고 가성비가 더 좋지도 못하다. 패스.

 무주가 전북의 위쪽 끄트머리라고 할만한데 그래도 전북은 전북. 대창선지순대다. 막 삶아서 촉촉하게 윤기가 도는 피순대가 한 광주리 가득 담겨있다. 야 저거면, 한 접시 모둠 순대를 썰어서 소주와 함께 먹어도 정말 좋겠다. 대전에도 아주 드물게 피순대를 하는 곳이 있었다. 유성의 할머니 순대라고 큼지막한 두부조각도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어린 아이때 아버지 술자리에 끼어 순대 몇점을 먹어보고 그 오묘한 맛을 두고 두고 잊지 못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가보니, 그때 막 가게를 닫은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지금 대전에서 잘나간다는 농민순대나 오문창 순대는 가야지 가야지 벼르고 있는데 순대국을 먹지 못하는 아내 때문에 요원하다. 어쨌든. 대전에서 한시간 거리인 무주에 와 이렇게 피순대를 영접하니 나는 벌써부터 설렌다.


 장날이라 그런지, 장 안에는 크게 야장까지 치고 테이블을 죽 늘어놓고 순대국을 파는 집이 있다. 그리고 그 가게에 손님도 퍽 많았다. 장 구경을 하며 슥 보니 삶아저 건져놓은 돼지고기가 내 마음에 드는 비주얼은 아니었는데, 오뚜기 식당의 경우 비주얼은 매우 만족스럽다. 갓 건져내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저 대창순대를 보고 침이 꿀떡 넘어가지 않으면, 순대버러라고 할 수 없지. 더불어, 고기를 삶는 솥 바로 옆에 국물 솥. 아주 정통 시장 순대국이다. 


 서울에 이런 옛날 순대국집이 이제는 퍽 드물어졌다. 돼지 머리를 삶아 육수를 만들고 순대를 직접 만드는 곳도 있기야 하지만 바뀌어버린 사람들의 입맛 탓에 점점 순대국은 말끔해지고, 심심해진다. 사람들의 입맛이야 말씨 바뀌듯 자연스레 바뀌는 것이지만서도 멀쩡히 잘 먹고 다니던 진한 고기육수에 두꺼운 대창순대가 속속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면서, 이렇게 지방에 여행을 올 때면 꼭 이런 식당을 찾게 되는 이유. 

 아내는 소내장탕을, 나는 순대국을 시켰다. 소내장탕 주문에 냉장고에서 삶은 내장을 꺼내 뚝배기에 담는다. 그런데 삶아둔 막창이 퍽 많다? 점심시간이므로 하루 장사치이겠다만. 삶아둔 양만 봐도 가게의 인기를 알만하다. 가게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해 우리는 문가 자리에 앉았다. 반주를 곁들이고 식사중인 아저씨들이 안쪽 테이블 옆자리에 자리가 있으니 이리 오라고 소리를 치시지만, 아이가 있으니 거절할 수 밖에. 이런 시장 인심이 나는 마냥 재미있다. 한쪽에는 지방선거철이라 유세중에 식사시간을 가는 무리들이 있고, 저마다. 장날의 분주함 속에 바삐 국밥을 먹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젓가락 통에 손을 뻗어 대강 네 가락을 슥 집으니 모두 달라 쌍이 맞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또 피식 웃었다. 장사, 참 오래도 하셨나보다. 

 가득찬 홀에 손님이 퍽 많아 제법 주문도 밀린 모양으로, 5분 가까이 기다렸다가 국밥을 받았다. 흔히 있는 일이다만 대창순대의 순대속이 풀어져있다. 삶아낸 순대를 육수를 붓고 팔팔 끓이면 이리 된다. 피순대의 모양을 간직하며 먹으려면, 뚝배기에 담아서 팔팔 끓이지 말고 어느 정도 뜨거운 정도의 육수를 부어 토렴하듯 순대와 다른 고기를 데우면 된다. 그런데 요 집은, 끓여서 내는 모양. 


 어차피 대창순대라 한입에 먹을 일도 아니라, 그리고 내가 퍽 좋아하는 서대문 근처의 아바이순대국집도 이렇게 대창순대를 팔팔 끓여서 풀어지도록 내는 곳이라서 익숙한 일이고, 그대로 즐기는 편이다. 미지근한 육수로 내면 또 다 먹기 전에 식어버릴수도 있는 일이니. 게다가, 그렇게 순대국을 내면 단점이 있다. 국물 속의 지방이 점차 국물 위로 떠버린다는 것인데, 실제로, 방금 갓 끓여나온 순대국의 육수가 퍽 기름지다. 이 국물을 미지근히 냈다간 다 먹기도 전에 기름이 떠버릴 것이다. 기름기가 듬뿍 들어가 있으니 느끼할 것이고, 느끼함을 덜기 위해 마늘도 한 숟갈 가득, 부추도 가득, 고추양념도 가득. 여러가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 맛은, 대창순대는 고소하고 국물은 기름진 것을 빼면 짜지 않고 오히려 깔끔한 맛. 무주에 와서 굳이 찾아와서 먹을 정도는 전혀 아니다. 그, 피순대 국밥으로 유명한 전주에 가면 이보다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건 정말 좋았다. 꼬다리. 대창 순대의 꼬다리는 먹기 드물다. 순대국이 7천원이므로, 평균적인 대창순대 가격을 고려하면 1000원~2000원 정도 저렴하게 먹는 편인데, 꼬다리가 슥 들어가 있으니 만족도가 두배. 꼬다리가 왜 좋냐하면, 곱창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선지로 만든 순대 속의 비율이 줄고 야들야들한 대창의 비율이 확 늘어나는 지점으로, 대창순대를 먹을 때 드물게 누리는 호사다. 그런데 7천원짜리 한그릇에 이렇게 꼬다리가 들어가 있으니, 이건 운이 좋다 수준을 넘어서서, 아니, 원래 이렇게 꼬다리를 아끼지 않고 넣어주시나? 생각이 드는 지점.  

  그리고 흔히 순대 몇개, 나머지는 머릿고기로 채워지기 마련인 순대국과 다르게 이곳은 머릿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모두 막창이다. 막창. 막창. 먹어도 먹어도 막창. 부들부들 쫄깃한 막창. 세상에나. 


 머리고기수육 메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따로 머리고기를 삶긴 할 터인데 어찌 순대국에 머릿고기 한점 없이 막창만 넣을까. 순대국을 어지간히 많이 먹어봤지만 기이한 경험이다. 그리고 기쁘다. 처음 먹어보는 순대국이기 때문. 


 게다가 흑미가 조금 섞인 공깃밥이 정말 맛나다. 팔팔 끓여나와 뜨거우므로 나와 아내는 먼저 밥을 입에 넣은 뒤 한참을 씹으며 국물을 후후 불어 겨우 한숟갈, 국물을 찍어먹을 수 있었는데 그 동안 입안에는 쌀의 단맛이 확 감돈다. 공깃밥에서 단맛이 느껴지는 곳 역시 드물지. 서울의 큰 식당에서야 쌀을 대량으로 싸게 사다가 쓰겠지만, 사방이 농사짓는 집들인 시골에선 싱싱한 쌀을 식당에서 들여와 이렇게 밥을 할 수 있는 것일 터다. 

 식사를 마치는 사이, 그러니까 대강 우리가 가게에 입장한지 40분이 채 안된 사이, 아까 먼저 사진을 찍었던 순대가 동이 나서 사장님은 스탠 광주리를 가게 안으로 들인 뒤 뒤로 가 앉아 잠깐 다리를 쉬신다. 꽤 많았는데 순대가 분명히. 그 사이에 몇그릇의 순대국밥을 마는 사이에 다 소진되었다는 이야기일까. 비워진 광주맃럼 식사를 마친 손님들도 서서히 가게를 빠져나간다. 먼저 온 객들이 빠져나간 뒤, 이내 또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선다. 그럼 흰 육수에서 대창순대는 또 꺼내어지겠지. 


 시장에서, 낡은 가게에서, 이렇게 큰 솥을 두개씩 걸고 직접 순대를 만들고, 팔팔 끓여 내는 곳. 시골엔 드물지 않다. 특히나 전라도 지방이라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정도 퀄리티의 순대국밥을 7천원에 파는 건, 솔직히 반칙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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