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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11. 2022

지리산 흑돼지에 녹차 가루 솔솔 올려먹는 흔한 고깃집

구례 북문토종 흑돼지

"장사 여기서 그럼 몇십년은 하셨겠네요?"

"그렇게 오랜 안혔어."

 

 식사를 거의 마쳐갈 무렵 분주히 공깃밥을 푸고 계신 사장님께 나는 가게를 다시금 휘 둘러보며 물었다. 구례의 읍내 한켠에 이정도로 낡은 노포에서 고깃집을 하고 계시니 퍽 장사 경력도 오래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나 사장님은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로 잠깐의 침묵 끝에 짧게 답했다. 하기사 그럴 수도 있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인수했을 수도 있고, 그냥 건물만 낡은 것이지 막상 가게 자체는 얼마 안되었을 수 있다. 


 이런 것도 그저 외지인인 방문객의 편견이겠지. 저마다의 인생이 있고, 저마다의 사정도 있는 법이다. 서울에서 내려와 일부러 노포를 찾아들어와서는, 그곳의 사장님이니 어련히 인생을 이 노포에 고이 앉혀놓았으려니. 그런 자기 멋대로인 바람. 이 맛에 노포를 오기도 하는 것이니 객의 그러한 바람은 나름 일리가 있으나, 나는 그만 무례한 질문을 하고 말았구나 후회를 했다. 불필요한 간섭이다. 도시민의 편견이다. 


 다만, 이 식당에서 보낸 시간은 퍽 그런 친근함과 푸근함을 내게 선사하기는 했다. 




 북문토종흑돼지 식당은 하동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숙소에서 조식을 간단히 먹고 나와 산책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올라가기로 했다. 대여섯시간을 차를 몰아야 하니 든든히 먹어야 하겠다. 그리고 하동이나 구례에서 몇가지 다른 음식들은 먹어보아서 마땅히 다른 먹을거리가 없기도 했다. 점심에 흑돼지 삼겹살이니 과하긴 하다만, 또 블로그 소개글들을 보면 묘하게 구미가 당기기도 한다. 특히 주물럭과 김치찌개가 맛있다나.


 그러나 나는, 아내의 고집을 알기에 김치찌개와 주물럭을 먹을 수는 없으리란 걸 안다. 아내는 무조건 삼겹살이다. 하기사 가장 맛난 부위이기도 하지만 다른 별미를 취급할 수도 있는 것이지. 나는 구태여 말은 않고 아이와 아내를 먼저 들여보낸다. 그리고 차를 근처 공영주차장에 대고 느슨한 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가게에 들어갔다. 


 낡다. 오래되었다. 입구 위편의 낡은 양철 슬레이트도, 나무로 된 미닫이 문도 모두 수십년은 되어보이는 것들. 옛 시골 점포 딱 그대로다. 어지간한 퇴락한 시골에 가면 이런 건물들은 모두 낡아서 먼지 속에 버려져 있을 정도다. 이런 곳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흥겨운 일이지. 가게 안은 낡은 것에 비하면 깔끔하다. 그리고 냉장고도, 식기세척기도 큼지막한 것들이 깔끔하니 최신식이다. 장사가 제법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기사 외지인이 삼겹살 먹겠다고 굳이 들를 정도니. 

 소금을 살짝만 치고 그 위에 녹차가루를 뿌린 삼겹살. 그리고 통마늘이 나왔다. 그리고 전기버너에 묵직한 철판이 올려진다. 이 시점에서 "별것 아니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게 안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주방을 낀 메인홀에서는 사장님의 따님이 엄마에게 존댓말을 꼬박 쓰시며 가게 일을 돕고 있는데, 일하는 차림은 아니다. 한 눈에 주말이라 가게 일을 돕고 있는 것을 알았다. 가게의 옆칸에는 7,8명의 일가족이 와서 식사중이다.사장님은 우리 상을 차리는 한편 김치찌개며 반찬이며를 나르느라 분주하다. 


 시골의 낡은 가게에서 느껴지는 그런 정취다. 작은 가게라 코 앞에 사장님과 따님의 대화가 다 들린다. 어느 반찬을 내어가야 하냐며 따님은 묻고, 사장님은 반찬통을 열어 우리에게 내갈 것들을 일른다. 잠시 뒤에는 임신을 한 여성이 와서 사장님께 인사를 한다. 사장님은, 손을 휘저으며 어여 올라가라 하였고, 작은 따님으로 보이는 여성은 반찬 통을 하나 가리키며 이것을 싸들고 간다고. 그러자 언니인, 먼저부터 가게에서 일을 돕던 따님이 봉지를 하나 챙겨 반찬을 담는다. 그리고 우리의 반찬이 함께 깔린다.


 고기를 구우며 나는 천천히 반찬을 하나씩 맛보는 한편 모녀들의 대화를 살짝씩 염탐했다. 딸들은, 저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모인듯했고 이제 일요일이니 각자 흩어지기 전에 가게를 들르고 있는 모양. 그리고 맏이는 먼저 와서 가게 일을 돕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반찬은, 깔끔하니 맛나다. 파래무침은 신선했고 곰취는 지리산에서 캐온 것인지라 향이 아니 좋을 리가 없다. 


"야 이거 곰취 하나만 놓고도 밥 한공기 다 비우겠다. 맛있네."

"응 맛있어."

"내가 나물을 하면 좋은데 귀찮아서."


 밑반찬 중에서도 유독 나물은 귀찮다. 손질부터 데치고 무치고 하는 과정이 영, 특히 마늘도 빻아야 하고 하니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물 하나만 있으면 싹싹 밥을 비워내면서도 막상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니 지리산까지 와서 이런 별미는 싹싹 긁어먹어야지. 


 사장님의 음식 차림이 재미있다. 삼겹살집 반찬이라기보단 그냥 밥집 반찬이다. 그도 그럴것이, 하루 장사를 하고 있노라면 고기를 사먹는 사람들보다 찌개들, 식사류를 찾는 현지인들이 적지 않을 터다. 그러니 이웃들을 위해서는 이런 깔끔한 반찬들이 제격이지. 

 그런데 방심을 했다. 곰취무침을 한접시 맛있게 먹고 조금 더 달라고 하려 하니, 딱 마침 떨어졌단다. 방금 작은 따님이 챙겨간 것이 곰취!


"아-하. 아 맛있는데."

"싹 긁어가버렸어 둘째가."

"아하하. 손주들 데리고 주말이라 모이신 거예요?"

"응. 큰애는 인천서 오고 둘째는 여수서 오고 막내는 여기서 살지 근처서."


 딸부잣집이시구나. 슬쩍만 들어도 아들은 없고 딸이 셋.


"막내 사우가 처음 와서는 척 하니 어머니 제가 모시고 살겠습니다 하는데 됐다혔어."

"하하 요즘은 다들 그렇죠 모시고 산다고 해도 어른들이 부담되고."

"으 그려."


 어머니는 여전히 분주하시다. 그 사이에 큰따님도 남편이 와, 몇번이나 허리를 숙이며 사장님께 인사를 하며 상경길에 오른다. 가족이라. 그냥, 사는 모습 구경하는 것만 해도 보기 좋다. 70은 족히 넘어보이시는 사장님은 건강하게 작은 가게를 누비셨고, 마침, 그때쯤 큰 솥에 밥을 해서 나오신다. 


"바깥양반, 밥 두공기 시키자."

"응?"

"지금 새 밥 해서 나왔잖아. 이건 안먹으면 손해야. 밥 두개 시켜."

"응 그럴까."

"사장님 밥 두개요."

"이이."


 나는 가위를 들어 마지막으로 올려진 철판 위 고기들을 자른다. 녹차 가루가 뿌려진 고기가 싱싱하다. 


 큰 기대 없이 온 곳이고, 맛으로 치면 기대를 넘어서진 않았다. 기름소금이 있냐고 하니, 가게 일을 거들던 큰 따님이 "기름장이요?" 하고 당황하는 기색이라 이내 요청을 취소했다. 그냥 이 상태로 구워 쌈장만 살짝 톡톡 올려 먹었다. 그래도 맛나다. 고기 그 자체의 풍미가 참기름 없어도, 추가적인 염분 없어도 입맛을 돋운다. 여기에 콩나물 무침, 파래 무침이면 다 했지 뭐. 

 식당을 평가하는 기준은 많다. 우선은 맛, 그리고 돈이 아깝지는 않아야 한다. 고기 3인분, 밥공기 두개. 그렇게 둘이서 먹고 나온 금액은 5만원이 약간 안되는 값. 식사를 하면서 내내 사람 내음, 삶의 향기를 맡는 기분. 이 낡은 가게에서 자식들을 키우셨겠지. 그리고 딸 셋이 모두 아이를 낳아 손주만 다섯. 게다가 곧 태어날 아기도 있는 모양. 그러니, 하루 하루 이 낡은 가게에서 고기를 썰고, 반찬을 무치는 삶이 조금도 고단하지 않을 터다. 


 그것도 다만 우연한 인연일 따름이라. 좀 더 분주한 시간대라서 사장님이 나와 이런 저런 말대거리를 하기 어려운 때였다면 그런 즐거움은 덜했을 것이다. 대게는 혼자서 손님을 맞아야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딸들이 와서 엄마를 거드는 그런 풍경은 못봤겠지. 아 그랬으면 곰취나물은 좀 더 얻어먹었을 수는, 있다. 음 이런 부차적인 요소를 가게에 대한 평가에 고려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세상에 갈 곳은 워낙 많고 첫 방문에서 좋은 기억이 있다면, 그 가게는 내게 좋은 가게로 남는 것이겠지. 


 헌데 또 생각해보면, 어느 그게나 방문에서 내가 갖는 경험은 그 가게의 최대치일수도, 최소치일수도 있다. 그것을 균일하게 끌어올리는 것이 경영능력일 테지만, 말이 길다. 나에겐, 싱싱한고기 그 자체의 맛에서, 또 소금이나 참기름으로 버무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던 식당이라는 점에서, 또 지리산에서 캔 나물들로 차려낸 집이란 것에서, 언젠가 또 들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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