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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15. 2022

봄 꽃게의 맛은 "게미지다."

태안 신진도, 직접 꽃게 사서 먹기.

 봄에, 부부모임을 한번 하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각자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으며 힘들고, 버겁다. 한번씩 다른 부부들은 목감기며 몸살감기도 겪었다. 세 부부들 중 유일하게 아이가 있는 우리집은, 내내 아이와 씨름하느라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겪었다.


- 놀아도 괜찮지. 놀아도 되겠지.


 하여 벛꽃이 피기 직전, 내가 계획을 세워 외가인 태안으로 길을 잡았다. 사실 태안에서 먹는 꽃게야, 나에겐 젓가락질보다 꽃게 발라먹는 법을 먼저 배웠을 정도로 익숙한 것인데 정작 나이를 먹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외가를 찾듯 찾아지진 않는다. 엄마에겐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 땅이 자식에겐 그저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외가일 뿐이니,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부모와 자식의 발길도 이리 다르다.

 하여, 신진도에서 대강 흡족한 노을을 구경하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태안은 여행을 하기엔 제약사항이 좀 있는 곳이다. 태안군을 중심으로 만리포, 몽산포, 신두리, 안명도 등 몇군데 관광지가 마치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있는 것처럼 갈라져 있다. 비교적 가까운 직선상의 거리도 좁은 시골도로를 타고 빙 돌아서 가야 하니 운전을 하는 입장에선 부조리하다고 느낄법도 한데, 이번에 우리는 그래도 동선을 고려해서 신두리, 만리포, 신진도항 순서로 코스를 잡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몽산포 아래 청포대와 꽃축제 전시회장의 야간조명축제도 보았을 테지만, 다들 코로나를 피해야 할 상황이고 끼니 때도 되었으니.


 엄마에게 나의 태안행을 사전 고지하며 안흥에서 꽃게를 먹겠다 하였더니 엄마는 꽃게? 모항서 먹지 하신다. 모항은 다시 말해 만리포항인데. 실제로 우리 가족은 어릴 때 늘 모항에서 꽃게를 먹었다. 지금은 없어진 만리포 해수욕장 끄트머리의 식당에서. 그러나 모항에 꽃게가 있으면 안흥이나 신진도에도 있을 것이고, 바쁜 와중에 열심히 검색을 해 신진도에서 굉장히 훌륭한 숙소를 찾아뒀기에 신진도의 꽃게도 무난한 선택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훌륭하게, 적중했다.

 일행들이 먼저 숙소에 가 짐을 풀고 씻는 사이, 기획자인 나는 꽃게 저녁식사를 챙기기로. 신진도항 끝에 작은 어촌계 소매상들이 모여있다. 위층에는 먹고갈 수 있는 식당도 두 칸이 있다. 대규모로 손님이 밀려드는 관광지는 아니라서, 시설은 정말이지 작기만 하다. 그래도 맛만 있으면 되지. 건물 앞쪽 몇개의 소매상 중 두곳에서 꽃게를 하길래, 한 곳을 찜해 값을 묻는다.


"사장님 꽃게 얼마씩 해요?"
"3만 5천원유."

"키로당? 와 왜 이렇게 싸요 가격이?"

"이거 원래 5만원씩도 넘는데 지금, 이게 씨알이 크질 않아서."

"아 좋다. 여섯이서 먹으려면 얼마나 해야돼요?"

"4키로면 먹쥬."


 충청도 서쪽 끝 해안가인 태안의 말씨는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별로 특유의 강세와 억양이 있다. 사장님은 태안 말씨로 또박또박 게 값을 부른다.


"네네 4키로 주세요."

"그래유 이게 지금 알이 꽉- 찼어."

"와 좋네요."


 씨알이 크지 않은 중치다. 게장을 담그기에 딱 좋은 사이즈 정도. 그래도 3만 5천원에 알이 꽉 찬 봄 꽃게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거의 땡을 잡은 일이다. 어차피 큰 놈은 큰놈 대로 껍질이 두껍고, 수율은 먹는 사람이 뽑아먹기 나름이다. 오늘 산 이 꽃게 정도면, 그래도 집게발가락까지도 파먹을 크기는 된다. 4키로를 14만원에 샀다. 사장님은 무게를 숨길 생각도 없이 비닐봉지에 살아서 펄떡거리는 꽃게를 차곡차곡 담는다. 나는 그것을 바로 위 식당에 맡겨두고, 숙소로 차를 몰았다.


 이상의 경과는 나와 아내의 폰으로 주로 찍은 사진들이고, 나는 가게의 사진을 별도로 하나 찍었는데, 그것은 함께 온 일행 중에 하루에 수천명 방문객을 받는 파워블로거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퍽, 이 가게에서 만족스럽게 거래를 해서 요, 소매점의 사진도 별도로 찍어두었고, 파워블로거 일행은 내 의중대로 정직하게 가게 사진까지 올렸다.

 그럼 이제 먹을 시간이지.


 말이 나온김에 다시 말하자면 나는 실제로 젓가락질보다 꽃게 발라먹는 것을 먼저 배웠다. 시골 출신들은 으레 그렇다. 내가 시골에서 자란 것은 아닐지라도 외가는 유난히 또 친밀했기에. 가장 어린 기억의 언저리에, 집게를 파먹고 젓가락을 집게껍데기 안에 찔러넣어, 그것으로 집게를 오무렸다 폈다 장난치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의 한 장면일지라도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의 꽃게 미식의 품격과, 꽃게의 수율을 한껏 높여준다. 나는 세심하게 집게다리를 발라, 일행에게도 나눠주고 아내에게도 주었다. 정말로 알이 꽉~찬 꽃게는 등껍데기 양쪽 끝까지 꽉꽉 주황색 알, 아니 사실은 알은 아니지만 알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채우고 있고, 우리가 생각보다 식당에 닿는 것이 늦어서 다소 과숙되긴 했지만, 꽃게는 정말 잘 쪄져서 감칠맛이, 그야말로 최상이다.

 게미지다란 말이 있다. 전라도 말이라는데 나는 이 말을 대학로에 있던 막걸리집에서 처음 알았다. 확 강렬한 맛은 아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 당긴다는 말, 게미짐. 봄 꽃게가, 게미지다는 말의 적절한 사례가 또 아닐까. 이 꽃게는, 작다고 해도 사실 실제로는 그렇게 작지도 않았고, 여섯명의 일행이 4키로를 다 먹지못하고 한두마리를 남겼으니 배가 빵빵할 정도로 꽃게 살로만 배를 채운 참이다.


 특히 꽃게에 대해선 누구보다 전문성 있게 먹을 수 있는 우리 부부는, 이 싱싱한 꽃게를 마음껏, 한껏 먹었고 꽃게 먹기에 서투른 다른 부부들 역시 지금만 맛볼 수 있는 이 각별한 게미진 맛을 천천히 오래 즐겼다.


 적지 않은 인원이 와서 술과 음료도 조금 시키고, 칼국수까지 시켜먹으니 식당 사장님도 꽃게 삶는 값을 조금 빼주셨다. 원래는 이정도로 꽃게를 푸짐하게 먹으려면 왁자글한 곳에서 불친절과 비싼 값을 감내해야 하는데, 정든 고향 땅에 다른 친지들을 이끌고 와 마음껏 꽃게를 먹으니 내 마음은 더욱 기쁘다. 특히 이 신진도는, 우리 가족이 어릴때 자주 찾던 안흥항에 마주 붙어있는 작은 섬이다. 작은 시골의 군 단위이지만 태안에 이렇게 구석구석 가볼곳도, 내 기억이 서린 곳도 많다.


 하여 그날 저녁, 길게 길게 꽃게의 맛을 되새기듯 난 가족들과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두루 곱씹었다.


 게미지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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