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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19. 2022

순대국밥 그 미각의 주관성

사골도 아니고 머리고기 육수도 아니고

“여기 산 탔던 덴데.”

“아 그래요?”

“그리고 여기도 갔었어.”

“갔었구나. 어땠어요? 맛있지 않았나. 난 여기 괜찮더라고요.”

“으음 난 그닥이었는데.”


 일요일 아침에 동료 선생님과 약속을 잡았다. 기말 과제 작성을 위해 교사 인터뷰를 할 목적이었다. 겸사겸사 밥부터 먹기로 하고 차를 끌고가 만났더니, 순대국을 먹자고 한다. 원래 나는 1순위 해장국집, 2순위 버거킹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지만, 오케이. 일전에 맛있게 먹었던 순대국집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와봤던 곳인데다가 맛도 그닥이었다고라.


 그러나 이미 온 길이니 어쩌겠어. 우린 순대국 특으로 두개를 주문했다. 각 만원. 야 세상에 만원이라니 비싸다. 보통도 9천원.

 원래는 인터뷰를 할 목적이었으므로 나는 녹음 어플을 켜려고 했는데, 우리가 들어갔을 땐 텅 비어있던 식당이, 자리에 앉자 옆에 10명 정도 들어와 자리를 채웠고, 조금 더 있으니 홀의 여덜아홉 정도 되는 테이블이 꽉 찼다. 인터뷰 녹취는 카페에서 해야겠다. 대신에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 학교 이야기로 운을 떼며 깍두기를 먹었는데…일단 깍두기. 맛있다.


 오늘 찾아온 이유가 있다. 동료교사, 오늘은 편의상 자서라고 부를 생각인데, 나와 자서가 사는 동네에서 살짝 멀리 떨어진 데다가 가격도 조금 있는 편이라, 평소엔 손이 닿지 않는다. 오늘처럼 일요일에, 아침에, 차를 몰고 나온 김에 오기에 적당한 가격대, 적당한 위치다. 순대국을 즐기는 나로서도 9천원, 만원 하는 순대국을 아무렇지 않게 사먹진 못하니까.


 그러나 그렇게 와서 먹기에 맛이 없냐 하면, 그렇진 않다. 식당 내부는 깨끗하게 리모델링 되어 쾌적하고, 우선 밑받침을 하는 깍두기가 맛이 무척 좋다. 거기에 내 기준에선 훌륭한 순대국인데, 자서는 지난번에 먹어보고 그리 인상깊지 않았다 하니 나도 신중하게 맛을 보기로 한다.

“오 두부 봐.”


 팔팔 끓여져나온 순대국이 어김없이 순대가 조금 풀어져있다. 대창이 아닌 소창을 썼으므로 그렇다고 마구 흩어진 것은 아니고 몇조각 순대속이 좀 튀어나와 있는 정도. 직접 담는 순대는 시레기며 두부가 풍족히 들어가 있어서 육수와 잘 어우러진다. 그중에서도 이 두부. 젓가락으로 집어 살펴보니 두부를 덮은 무명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반갑지.


“꼭 만두 먹는 것 같네.”

“음…그렇군요.”


 내 말에 자서도 수긍한다. 나는 넉넉히, 만원짜리므로 넉넉히야겠지만 당연히, 순대를 착착 입에 넣으며 구수한 그 맛을 만끽해본다.


“여기 국물이 말입니다.”

“네.”

“사골이 아냐. 사골이면 찐득해.”

“음…그렇네요.”

“근데 돼지머리 육수도 아냐.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식으면 엄청 기름지거든요 돼지머리 육수가.”

“맞아요.”

“여긴 돼지머리 육수도 아니고 사골도 아니어서 깔끔하잖아요. 다 먹고 나서도.”

“오…그러네요.”

 뜻밖에 순대국밥은 육수가 중요하다. 을지로의 그 유명한 산수갑산의 경우에도, 순대며 머릿고기며 맛이 탁월하지만 국물이 식으면 지방이 많이 떠서 인상을 나쁘게 한다. 머리고기 육수를 쓰는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정통 시장식 방식이고,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맛이지만 한그릇의 뚝배기가 아니고 술안주로 천천히 두고 마시고 있다보면, 나중엔 기름진 맛이 입에 감돌아 씁쓸한 것이다. 사골 육수도 비슷하다. 순대국에 잘 어울리는 그 고소한 국물도 나중이 되면 미끌찐득한 감촉이 혀에 감돈다. 그것을 잡기 위해 물을 많이, 사골육수를 묽게 하면 맛이 아무래도 떨어진다.


 순대국. 국물. 육수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이 식당의 경우엔, 고기육수다. 그것도 기름진 돼지머리 육수가 아니라 냄새가 나지 않게 잘 잡힌 돼지 내장들로 육수를 내는 집이다. 그래서 육수 색이 진하지만 사골과는 다르고,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다. 간이 살짝 되어 있어서 새우젓을 아주 약간만. 그리고 대파를 넉넉히 부어 먹으면 만원 값, 한다. 돈이 조금도 아깝지가 않은 한끼 식사다.


 처음 여길 찾았을 때는 육수가 워낙 인상이 깊어 반쯤 먹고난 뒤에 매운양념을 풀어보았다. 그런데 후회했다. 깔끔한 육수의 깊은 맛이 양념의 매운 맛에 완전히 가려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새우젓을 여러번 더 부어 먹어야 했다. 국물 맛이 워낙 깔끔하다보니 생긴 헤프닝이다.


비단 그때만이 아니라 오늘도 그랬다. 첫 입맛에 짭짤하게 느껴지길래 새우젓 간을 아주 살짝만 했는데, 김치며 깍두기며 함께 와구와구 먹다보니 이내 국물이 싱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대로 먹었다. 이 식당에서 느껴지는 그 맛이 소금으로 혀를 찔러대는 맛과는 딴판인 것임을 알고 있으니, 마지막 한 숟갈까지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어 얘길 듣고 보니 맛있네.”

“그죠? 맛집이라니까.”

“오 역시.”

“그리고 난 미식가고.”

“…역시.”


 자서도 수긍한다. 미각이란 주관의 세계에서 우리가 공감대를 이루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지난 첫 방문에서 그가 가진 경험보다는 나은 경험을 나와의 식사에서 얻었다니 다행한 일이다. 나 역시도, 모처럼의 두번째 방문이 매우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일어나며 해장국을 포장했다. 다음엔 순대국을 먹지 못하고 선지해장국은 잘 먹는 아내와 함께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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