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디스토피아 (1)우열반 부활

기존의 학급은 사라지지만 학교 내 학력격차와 서열화는 뚜렷해질것

by 공존

이 글은 2025년 적용을 앞두고 있는 고교학점제로 인하여 우리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들을 사전에 검토하고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교학점제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현재 고등학교 1,2학년까지, 2020년도에는 고등학교 1~3학년 전체에 적용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체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학생 개인별로 자율선택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선 고등학교에선 적지 않은 혼란과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남은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문제점들이 학교에선 발생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많은 교육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8년 전국 교육청이 일제히 고교 우열반 편성 금지를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4.15 학교 자율화 조치'에 맞선 대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수준별 이동수업 및 우열반 편성을 자율화하였고, 0교시 및 오후 10시 이후 자율학습을 학교에 허가했다. 학교의 자율성보다는 입시경쟁을 대폭 허용하는 조치에 전국 학교 구성원들은 반발하였고, 지자체 교육감들은 0교시와 우열반 편성은 반대, 학원강사의 학교방과후수업 참여와 학교에서의 사설 모의고사 시행은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모든 학습자의 동등한 수업권을 부정하는 우열반을 금지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조치다. 우열반 편성 금지의 원칙은 그 뒤 10여년간 대체로 잘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특목고와 자사고를 대폭 늘리며 고교 간 서열화가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단위 학교 내의 우열반 편성이 "공교육 정상화"라는 가치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았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고 사실상의 고교등급제가 대학집단 내부에서 시행되면서 일반고의 박탈감은 커져갔다. 학생 수 감소로 교실과 교사가 속속 줄어들고 일반고 사이에 학생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입시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감이 커져갔다. 공식적인 우열반이 아닐지라도 제2외국어 및 수능 대응 선택과목을 통해 사실상의 우열반 편성을 하는 학교도 속속 발생했다. 문/이과 계열별로 선택과목 3~4개로 학급의 편성이 달라지는 고등학교 2,3학년에서는 학급별 성적격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우열반 문제는 어떻게 될까? 우열반에 관한 전망은 현재까지는 상당히 어둡다.


1. 학교별 교육과정 "특성화"

2015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학교별로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포함, 10개 정도의 학교가 모여있는 하나의 교육권역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고등학교는 평준화되어 있으므로 학생들이 어느 학교에 가도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은 줄고 있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우리 학교만의" 커리큘럼을 학생들에게 제시할 필요성이 있고, 교육부는 그러한 학교의 노력을 권장하며 특수목적 예산을 배정해주고 있다.


(모든 학교가 학년별로 12학급이라고 가정할 때)

A고 : 체육교육 특성화과정 2학급 + 일반학급 10학급

B고 : 과학집중 교육과정 3학급 + 일반학급 9학급

C고 : 인문학 특성화교육과정 6학급 + 일반학급 6학급

D고 : 음악특성화 교육과정 2학급 + 일반학급 10학급

+ 기타 8개교는 일반 교육과정으로 운영


이런 형태다. 특목고와 자사고라는, 입시위주의 학교분화에서 진로별 학교 교육과정 다양화라는 관점에서는 의미있는 조치이지만 학교 내 소수 특성화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특성화반"이라는, 다른 일반학급의 학생들과는 상당히 다른 정체성을 갖고 학교생활을 이어나간다. 특히 인문계 대학생의 취업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반대로 이공계 대학생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적 조류에서 과학집중 교육과정은 10여년 전 최초로 도입된 이래 대부분의 운영학교에서 사실상의 우등생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대로 일반교과목보다 예체능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체육교육과 음악특성화 교육과정은 지역에 따라서 부자학급과 문제아 학급으로 판이한 취급을 받는다.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을 다양화함으로써 폭넓은 진로계발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은 대학 진학 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에서 바람직한 정책변화이지만 그로 인하여 교육권역 내에 학교별 서열화가 또다시 발생하고, 학교 내부적으로도 일반학급과 특성화학급이 구분되고, 담임 및 교과지도교사 배정에도 차별이 발생하는 점에 대해선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생부종합전형에 유리한 특성화반의 교사들은 생활기록부와 진로활동 관리에서 훨씬 많은 업무부담을 안게 되고, 일반학급 교사들은 더 많은 학교폭력 발생 빈도, 학생의 출석관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학생의 교과목 선택 "자율화"

앞서 지적했듯 2015 개정교육과정은 고교학점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여 학생들의 개인별 교과목 선택에서 폭넓은 자유를 보장토록 하고 있다. 학교별로 여건이 달라 편차가 크지만, 학기당 11과목을 배운다고 가정할 때 국영수와 체육 이렇게 필수 4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과목을 학생이 자기 입맛 따라 고를 수 있는 학교도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이 체제는 고교학점제에서는 더욱 확고해진다.


학생들은 어떻게 교과목을 선택할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교과목 선택의 다양화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현장 교사들이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 대체적으로 입시에 매몰된 우리 고등학교 공교육의 현실에서, 학생들의 진로역량을 길러내고 동시에 지적수준을 향상시키며, 13명에서 30명 가량의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업을 한학기에서 1년동안 지속할 수 있는 교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도는 이미 현장에 안착해 있고 교육부는 다양한 과목을 편성하도록 학교를 지도하고 있다. 눈치빠른 학교들은 학생부종합전형에 활용될 수 있도록 특색있는 과목들을 개설하여 학생을 편성한 뒤 실제로는 수능 강의를 하고 있다.


교과목은 다양하게 풀려있고, 그 수업을 진행할 교사들은 너무 빠른 제도도입에 뒤쳐져 수업을 이끌어갈 역량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개인별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학교는 언제나 모든 정책에서 입시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그 결과는? 현재까진 우열반의 경향으로 드러난다. 딱히 학교가 의도하진 않더라도, 학업의욕이 낮은 학생들은 7~8개의 선택과목 중에서 한두개의 과목만을 진로에 맞추어 선택한 뒤 나머지는 자신의 진로와 무관하게 아무렇게나 친구들과 일치시킨다. 같은 반에 모여서 놀기 좋도록 모이는 것이다. 30명 학급에 이런 학생들이 서너명만 뭉쳐있어도 학급의 면학분위기는 쉽게 잡히지 못한다. 이 학생들이 어디로 뭉치는지는 학교에서 가늠하기 어렵고, 학년별로 학급을 편성하기 위해 7~8개의 선택과목이 조합된 경우의 수는 100가지가 넘기에 이런 뭉침학급을 전혀 억제하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열"반이 먼저 발생하고, 그 학급에서 탈피하기 위해 민원을 제기하는 학생, 그리고 몇달이 지나 "우"반으로 확인되는 학급이 나온다. 2학년에선 몇개월, 3학년에선 학기 초에 뚜렷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고교학점제는 모든 학생이 적당히 학교만 나오면 학력이 미달되어도 졸업장을 딸 수 있는 기형적 교육제도를 해결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있는 정책이다. 대학처럼 과목별 이수기준점을 정하고,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정하여 학생들의 내실있는 학업활동을 돕는다. 그러나 교사의 다양화된 수업지도 역량이 마련되지 않은 현재시점에서 부작용이 크다. 그렇다고 정책추진을 교사 연수 뒤로 미룰 수도 없고, 현재 각 학교별로 어렵게 적응하며 교육개혁의 타협점을 마련하고 있다. 정책을 미룰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과잉된 교육경쟁 여건에서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확산되고 있는 우열반 현상에 대해선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3. 학급 해체 이후의 대안, 몸으로 해결할까요?

고교학점제의 시행이 다가올수록 학급의 해체는 확고해진다. 담임학급은 의미가 없어진다. 담임학급에 교과수업을 듣는 아이보다 안듣는 아이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종합적인 관찰과 관리는 어려워질 것이고 학생관리의 행정적 업무만 남을 것이다. "교육"보다 "양육"에 가까운 우리 교육문화에서 담임교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대비책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교사의 업무는 줄지 않을 것이며 학생 지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 역시 쉽사리 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교학점제 시대에는 "양육"이 아닌 오로지 "교육"만을 학부모는 요구할까? 경제 여건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역시 불가능하다. 학급이 사라져 담임교사의 통제력은 약화되는 상황에서 학생의 비행을 막을 대책은 더욱 난망하고, 자율선택으로 뭉친 저학력군의 생활지도에 진력을 소진하는 "행정담임" 교사들의 고충은 커질 것이다.


근대교육이 착종된 이래 100여년간 이어져온 담임학급이라는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교전담경찰관 같은 별도의 관리인력 증설, 진로교사 증편으로 입시지도 뿐만 아닌 인성 및 생활지도 역할 분담, 1홈베이스 2담임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교사의 교육역량을 강화하는 데 획기적인 재원 및 인력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에서 양육 기능을 떼어놓지 못할 것이라면, 확실하게 양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교육에서 우열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수 있다. 우수한 아이들이 저학력학생들에게 피해받느니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가 모두 폐지되는 마당에 또 다른 계층구조를 학교 내에 남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학교 내에서 학력으로 이미 1차적인 계층분화를 겪는 아이들이, 학급편성으로, 교사배치로, 각종 우대정책으로(특성화학급은 각종 행사로 급식을 일찍 먹는 일도 있다. 이런것도 아이들에겐 차별로 받아들여진다.) 2차 3차의 계층분화를 겪어야 할까? 이미 확대되고 있는, 그리고 갈수록 심화될 학급의 해체 속 학교 내 학력에 따른 집단의 계층화를 우린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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