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디스토피아 (2) 서울학교 지방학교

학교 단위 교과목 개설, 지방은 가능한 선택지가 없다.

by 공존

이 글은 2025년 적용을 앞두고 있는 고교학점제로 인하여 우리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들을 사전에 검토하고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교학점제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현재 고등학교 1,2학년까지, 2020년도에는 고등학교 1~3학년 전체에 적용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체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학생 개인별로 자율선택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선 고등학교에선 적지 않은 혼란과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남은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문제점들이 학교에선 발생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많은 교육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교학점제는 학교 별로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자기의 진로와 흥미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여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꾸릴 수 있게 한다. 대학의 학점과 유사한, 미국의 고등학교와 유사한 시스템이다. 이런 제도는 왜 필요한 것일까? 모든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현재의 교육제도는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물론이려니와, 학생 개인의 행복권을 추구하는데에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교육제도에서 고등학생의 졸업에 필요한 지표는 단 하나, 출석이다. 1년 출석일 중 2/3만 학교에 출석하면 졸업이 가능하다. 3년간 모든 과목을 백지를 내도, 노트 한번 연필 한번 책상에 올려놓지 않고 잠만 자도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했다는 자격증명을 따낸다. 이런 비정상적인 제도가 시작된 이유는 첫째가 근대산업사회의 노동력만 빠르게 생산해내기 위한 조치로써 일제시대 교육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우리 교육과정의 최종 목적지가 대학이기 때문에 그 통과의례에 불과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고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했는지 않했는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 지점이다. 각 과목별로 한 학기의 이수점수를 정한다(다시 말하지만 이수점수는 과목별로 다르다). 수업 때 내내 자거나 백지를 낸다? 당연히 해당 과목은 이수하지 못한 것이다. 한 학기에 26에서 40학점까지를 이수하고(학기당 이수학점은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3년간 150에서 160학점, 혹은 그 이상의 학점을 이수함으로써 졸업을 인정받게 되기 때문에 각 과목에서 필수 최저학력을 통과해야 하고, 그러고도 이수학점을 미달했다면 방학이나 방과후를 활용하여 재수강 및 추가 이수과목을 선택하도록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환경에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잠이 들거나 학습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흥미나 적성에 관계 없이 강제로 모든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므로, 졸업학점에 여유를 두고 과목을 폭넓게 선택하여 학생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들로 학교 생활을 꾸리게 하자는 것이 고교학점제의 주된 정책 취지다.


그런데 말입니다.


1. 과목을 선택할 수 있으니 스펙으로 만들자


고교학점제에 대비해 2015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미리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늘려두었다. 현재 고등학교 2,3학년은 모두 공통과목인 국영수와 체육 이외의 모든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매 학기 30시간의 교과수업 중 절반 이상이 선택과목이다. 그리고 과목 개설은 학교가 폭넓은 재량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교육청에선 그 과목의 내실보단 폭넓은 선택에 주안을 두어 고등학교를 지도감독하고 있다. 어떤 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지, 아래 표를 보도록 하자. 전체 선택과목군의 일부이다.

당연히 고등학교는 이를 입시 스펙으로 활용중이다. 최근에 발표된 대입 공정성 강화방안에서는 "정규 교과 외" 비교과활동을 대입 평가지표에서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과목들은 모두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되는 것이니 늘리면 늘릴수록 좋다. 이들 선택과목은 모두 방과후에도 편성이 가능하다. 때문에 한 학교에서 20개의 선택과목을 방과후에 배치한 사례도 있다. 교육청에서 경끼를 일으켜 학교당 6과목 이내로 제한을 두었다. 과목이 실제 교육부의 개설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교육청의 인력부족으로 관리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국제정치, 국제법 등의 과목을 개설하고 수능과목으로 수업을 진행한 뒤, 생활기록부를 허위 작성하여도 이를 파악해 처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이미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수업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미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교수업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이들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방과후에서 "정규수업"을 들어야 하고 지각, 조퇴, 출석이 동일하게 생기부에 반영된다. 오후 8시에 정규수업이 종료된 학생들은 지친 몸으로 학원에 가야하는데, 남들이 다 하니 나만 안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현재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즉 과목별 생기부를 가장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앞으로 "과목 이수 경쟁"은 줄어들 수도 없다.


2. 서울학교 지방학교


더 큰 문제는 과목 운영에 앞서 과목 개설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무역학과를 지망하고 아랍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서울에선 얼마든지 전문강사를 구할 수 있다. 인근의 대학교에서 무역학과 교수와 아랍어과 교수를 초빙해오면, 그들은 연구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교실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에선 우선 수업을 개설할 규모의 학생들이 모집이 어렵다. 최소한 13명의 학생이 하나의 교육청 관할지역 내에 모여야 하는데, 인구밀도가 낮고 통학거리가 긴 지역일수록 우선 학생 수 모집이 안된다. 학생과 교사, 장학사까지 나서서 여기 저기서 학생들을 모아서 겨우 강의가 개설되었다. 그런데 강사가 없다. 아랍어과 교수는 커녕 무역학과 교수도 먼 지역에 와서 강의를 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실제로 서울에서 멀수록 강사는 커녕, 단기간으론 계약직 교사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는 곳에 따라 "정규교육과정"의 불일치가 심각하게 발생하는 풍경이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정책차원에서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지역별로 다양한 과목을 지도 가능한 교사진을 육성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응모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정교사들은 지금, 학교에 불어닥치는 교육과정 변혁의 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평가 지침과 생활기록부 작성 지침이 동시에 바뀌어서 업무량이 크게 증가했는데, 과목 다양화로 일과 중 정규 수업도 개인당 1~2과목에서 2~3과목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기초과목인 국영수는 그나마 덜한데, 진로와 연관성이 큰 사회와 과학 교과의 교사들은 1인당 4개 과목을 1년 내내 지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여건에서 교사들이 신규 개설된 과목을 하나 더 지도하기 위해 별도의 자격연수를 듣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강사진 확보를 위해 지방 교육청에서 별도의 강사풀을 운용할 수도 있다. 학생 수 감소, 교실 감축으로 계약직 교사의 일자리 불안이 심화된 상황에서, 선택과목에서 전문성을 가진 강사진을 육성하고 그들을 학교 및 학생과 연결해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자리는 극심히 불안정하다. 학생들의 과목 개설 신청이 해마다, 학기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방의 경우 코딩이나 법률 분야가 아니라 요리, 댄스 같은 과목이 수요가 더 있다. 그러나 이런 과목의 경우 해마다 강의 개설 여부가 달라진다. 지역도 그때 그때 다르다. 그 때문에 교육청에서는 강사풀의 육성이 큰 난제다. 1년 임용한 뒤 타 지역으로 보내야 할지 모르는 강사를 육성하고 관리하기 위해 예산을 집행하기 쉽지 않다. 어떻게 해서라도 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학교는 저마다 강사를 찾아달라고 장학사에게 협력을 구하는데 장학사 역시 십수개 학교의 교육과정을 다루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강사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하기도 어렵다.


고교학점제 상황에서 서울 학교와 지방 학교의 과목 개설의 격차는 인구 밀도와 강사의 통근거리라는 근본적인 제약으로 인해 해결이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대학 입장에서는, 갈수록 평가에 반영할 지표가 줄어들고 있는데 과목별 생기부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지 않을 수 없고,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늘리는 부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교육경쟁이라는 상위 변수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부조리가 모든 단위에 확산되고 있다.


3.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불이익 받는 시스템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저렇게 다양하게 개설된 과목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하는 게 이득일까 수능 수업을 하는 게 이득일까? 지방에 비해 학력이 고도화되어 치열한 내신경쟁을 감당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정시를 준비해야 하는 서울지역에서는 방과후 정규수업에서 과목의 본래 목적에 맞게 수업을 하기 보다는, 생기부를 조작하고 수능수업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반면에 내신 경쟁이 덜하고 수능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에서는, 입학사정관들이 올바르게 평가해줄 것만 믿고 선택과목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수능 고득점자의 조작된 생기부와 수능 저득점자의 내실있는 생기부, 그리고 이 두가지 수업. 실제로 학교에 가서 확인을 하지 않고서는 잡아내기 어렵고 거듭 강조하지만 교육청은 이들 수업까지 감시 감독할 여력이 없다. 대학에서 학교마다 점검을 할 이유도 없다. 대학은 어느 쪽의 학생을 뽑을까? 같은 선택과목을 이수한 서울 학생과 지방 학생, 이들을 5:5로 뽑는다면 합리적일까? 그것으로 선택형 교육과정을 정상운영한 쪽의 불이익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은 이미 실패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사례들이 관측되고 있다. 마침 교육부에서 서울대를 포함한 일부 대학의 정시 확대를 제안한 마당에, 고교학점제 도입의 취지를 해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선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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