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디스토피아 (3)교사 노동시장 : 파국

학교에 고정적으로 남는 것은 나이든 교사들

by 공존

이 글은 2025년 적용을 앞두고 있는 고교학점제로 인하여 우리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들을 사전에 검토하고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교학점제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현재 고등학교 1,2학년까지, 2020년도에는 고등학교 1~3학년 전체에 적용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체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학생 개인별로 자율선택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선 고등학교에선 적지 않은 혼란과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남은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문제점들이 학교에선 발생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많은 교육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사라는 공무원(사립은 준공무원)직은 학생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여겨진다. 높지 않아 보이는 노동강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직종의 특성, 연간 3개월 이상의 방학 기간이라는 재충전의 기회까지. 전문직이지만 진입장벽도 높지 않아서 4년의 교사대 과정만 마치면 임용고사를 치를 수 있고, 교사대가 아니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 누구라도 2년의 교육대학원만 이수함으로써 교원자격증을 얻고 교사가 될 수 있다. 물론, 임용고사라는 장벽은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나 교사의 노동시장은 90년대 이후 악화되기만 했다. 그 출발은 미국이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기 미국에서는 "단 한명의 학생도 낙오시키지 않는(No One Left Behind)" 교육정책을 발표하고, 교사의 성과급 도입, 자질 부족 교사 퇴출, 단체노동계약 무력화 등 일련의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교육의 문제도 아니었다. 80년대에 일본과 한국 베트남과 중국 등 후발 산업국가들의 수출규모가 미국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서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중공업이 몰락하자, 신자유주의적 산업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적 영역으로 남아있던 교직에도 자본주의의 논리를 들이민 것이다. 곧 교사는 노동자와 같이 매년 성과를 평가받았고 그에 따라 재계약 거부, 해직 등이 당연히 뒤따랐다. 우수한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게 되었고 미국의 공교육은 지금까지도 벗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져있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정부 시기 “5.31 교육개혁"이라는 조치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수용했다. 학생의 과목선택권 다양화, 학교별 교육과정 다양화라는 대주제 아래 교사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도입된다. 교육과정이 다양해지니 학교별로 자유롭게 과목별 교사의 수요를 정할 수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뽑을지도 학교가 정한다. 사립에서는 안정적인 정교사보다는 매년 재평가해서 새로 뽑아 교육의 질을 증진할 가능성이 있는 계약직 교사가 양산되고, 교사의 안정성보다는 정책적으로 교육과정 다양화를 중시하는 공립에서는 정교사 티오가 있어도 계약직 교사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유동적인 교사노동시장이 형성되자 자연스럽게 스펙경쟁이 생겨나고 계약직교사 임용에도 학벌이 크게 작용하는 폐단이 발생했다. 탱자가 회수를 건너와서 탱자 그대로인 채니,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현재의 교사수급 현황에서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면 어떨까?


1. 학생은 줄어들었지만 수업은 늘어난다. 잠시동안은.


긍정적인 부분은 교사 노동시장 전체의 규모는 단기에 커진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는 13명의 학생이 모집되면 수업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콩나물 시루" 교실에서 수업을 듣던 풍경과는 천양지차다. 많은 학교에서 고교학점제를 입시 스펙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소수인원 수업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개설할 수 있고, 대학에서 어느정도 데이터가 쌓이고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까진 소수인원 수업의 확대된 규모는 유지될 것이다. 수업의 질이 향상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항상 우리 교육의 질을 논할 때 교실 당 인원수가 빠지지 않았으니까.


소수인원 수업의 정식 명칭은 "주문형 강좌"다. 주문이라는 개념이 합쳐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하면 개설이 가능한 정규교육과정"이다. 또 다른 긍정적 사실은 학령인구가 충격적인 규모로 줄어들고 있지만 교육재정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미래 교육환경에서는 학생 1명에게 투여되는 교육재정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즉, 학생은 주문형 강좌를 요구할 수 있고, 교육청은 지원해줄 수 있다. 이것을 정책으로 뒷받침 하기 위한 재정은 갈수록 남아돌 것이다. 몇년 전부터 현장에선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입맛대로 골라들을 수 있고, 계약직 교사들은 강의를 구하는 일이 고교학점제 상황에서는 한동안 유지될 수 있다.


2. 교사 노동시장 : 파국


그러나 교사 노동시장은 여전히 파국이다. 주문형 강좌를 교사들만이 하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계약직 교사가 대학 교수와 주문형 강좌 자리를 놓고 경쟁이 가능할까? 학교와 학생 입장에서도 어렵게 학생을 모았는데 굳이 대학 교수를 배제하고 굳이 교사를 강사로 채용해야 할까? 학생부종합전형 준비가 대학 교육과정의 선행 코스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교사들은 지금도 교사양성기관을 통해 과잉공급되고 있다. 학벌 좋은 신규 교원과 학벌에서 장점이 없는 중년의 교원 중 학교들은 어느쪽을 선호할까?


주문형 강좌만이 아니라 정규교과 수업도 마찬가지다. 국영수 수업은 대폭 줄어들 수 있고,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진로 중심의 교과가 대폭 증가할 수도 감소할 수도 있다. 매년 대입정책에 따라, 학종 성과에 따라 출렁출렁할 것이다. 학교로서는 어느 과목의 교사 수요가 증가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쉽사리 교사 수급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4년간 유지되는 계약직 교사의 한 학교에서의 근무 연한조차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학령인구는 줄고 줄어, 치명적인 수준으로 계약직 교사들의 일자리를 줄여버릴 것이다.


교사의 노동시장이 붕괴될수록 교육의 질도 함께 추락할 수 밖에 없다. 겨울방학 기간에 재충전을 하며 새학기의 교육계획을 구상하고 교안을 마련하고 연수를 들을 수 있는 정교사들에 비하여 여러 학교를 떠돌며 선발 시험을 치러야 하는 계약직 교사들의 겨울은 열악하기만 하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새 학기에 가서는 수업의 선택권도, 교육과정과 평가의 재량권도 전혀 발휘할 수 없다. 대체적으로 학교에 적을 둔 정교사들이 이미 짜 둔 교육과정에 올라타, 1년 내내 수업을 그들의 요구에 맞춰서 운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저 교사들의 밥통 이야기일까? 문제는, 이것이 한 두 과목에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니라 수능 과목을 포함, 모든 과목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며, 많게는 국영수사과 교과에서도 교원의 절반 가까이가 계약직교사로 채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학교의 학력 경쟁의 핵심인 수능과목에서 어느 학생들은 안정적으로 수업 준비를 해 온 교사들의 수업을 듣고, 어느 학급은 예측이 어려운 계약직 교사들의 수업을 듣는다. 학급별로 편차가 생길 가능성이 존재한다. 교사의 자질을 떠나서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붕괴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교육평등권 침해다.


교사들에겐 일자리의 문제이지만, 학생들에겐 수업권의 문제다. 모든 계약직 교사들을 최상의 기준에 따라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 별로 다양한 여건이 존재하고, 출산과 육아권을 보장하기 위해 육아휴직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2월 말에 급하게 교사가 교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반대로 급하게 계약직 교사가 다른 교사로 교체되는 경우도 많다. 준비되지 못한 교사 교체는 학생에게나 학교에게나 재앙이다. 그런데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는 전체의 수업의 질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대학 교수에게 치이고 학벌 좋은 젊은 교사에게 치여 몇년 정도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제대로 운영해보지 못한 교사가(아마 이 선생님은 잠시 학원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고, 방과후를 여러군데에서 할 수도 있고, 임용고사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급하게 육아휴직으로 생긴 자리에 들어와 담임을 하거나 1년의 수업을 이끌어간다고 할 때, 수업의 질을 누가 보장할 것이며 수업의 질의 하락을 직격으로 맞는 학생들의 수업받을 권리는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3. 유연성과 안정성의 좁디 좁은 선택지

학생의 교육과정 선택권이 향상될수록, 교사 노동시장의 안정성은 하락한다. 좋은 강사는 월화수목금 여러 학교를 돌며 정규교육과정의 정규교과와 주문형 강좌를 오전, 오후, 방과후까지 운영하며 좋은 수익을 거둘 것이고 그런 준비를 갖추지 못한 교사는 도태될 것이다. 경쟁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차별.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공공성이다. 도태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수년간 협업해야 할 교사들이 매년 출렁이는 교직의 유연성에 고통받고 겨울 휴식기를 이듬해의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투자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교사들은 얼마동안 애쓰고 배려해주겠지만, 홀로 정규직인 그들을 세월에 따라 나이를 먹고 학교에 남고 점점 더 능력있는 계약직 교사들과의 세대차이, 경력차이, 학력차이는 벌어질 것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아이를 낳지 않은 우리 모두의 탓일까 먼저 태어난 노년들의 탓일까, 세계를 뒤엎은 신자유주의의 탓인가 정부의 무능 탓인가. 해결책은 또 무엇일까?


한국인의 지독한 교육열, 그리고 그놈의 "국가경쟁력" 망령 때문에 교육부는 항상 학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택했다. 왜 예비교사는 이토록 과잉양성되는가? 경쟁이 많을수록 교육의 질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왜 수능은 매년 밑도 끝도 없이 어려워지기만 하는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학력은 강화되기 때문이다. 왜 학교의 교원의 안정성을 해치고, 수업권을 침해하는 "자율적 교육과정"에 올인하는가? 그쪽이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사회에 대한 대응력을 길러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정책방향의 자율성은 학생들의 자율성의 발끝에도 못미친다. 한국에서 교육이란 곧 평등과 주권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항상 언제나 모든 국민들이 대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려갈 뿐이고, 그 속에서 교사들의 "밥통"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교사는 교육의 핵심 주체다. 물론 학부모, 학교, 학생, 정책담당자들, 대학...우리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주체는 수 없이 많지만 학생과 면대면의 지적경험을 조성하는 것은 언제나 교사다. 교사들의 수업의 질은 경쟁이 아닌 안정을 통해서 길러진다. 다른 교사들과 협업하여, 아이들의 성장을 장기간 지켜보며, 스스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발전시키는 경험 속에서 매 해 새로운 수업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 그러나 고교학점제는 최상의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정교사들의 수는 대폭 감소하고 계약직교사의 수는 대폭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수업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전제로 해야만 학생들의 자율적 교과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장 최악의 가능성인 만큼, 정책고민도 다양하다. 학교 밖 학교, 학점 인정기관을 다양화하고, 대안교육기관을 늘려나가는 방안이 고민되고 있다. 그러나 정책 담당자들이 과연 학교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교원 노동시장의 붕괴와 그로 인한 수업의 질 저하를 "셀 안의 수" 그 너머의 것으로 체감하고 있는지는, 심각한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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