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디스토피아 (4) 철학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철학이 없는 교육은 피상적 지식만 남는 것

by 공존

이 글은 2025년 적용을 앞두고 있는 고교학점제로 인하여 우리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들을 사전에 검토하고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교학점제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현재 고등학교 1,2학년까지, 2020년도에는 고등학교 1~3학년 전체에 적용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체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학생 개인별로 자율선택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선 고등학교에선 적지 않은 혼란과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남은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문제점들이 학교에선 발생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많은 교육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만 정권을 물리친 4.19 혁명은 학생들의 봉기로 시작된다. 3.15 부정선거 직전까지 전국에서 1만명을 넘는 학생시위가 있었고, 김주열 열사 역시 사망 당시 불과 17세의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대학교 자체가 워낙 수가 적어 대학생은 절대적으로 소수였고 그나마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실제로 전국의 민주시위를 주도한 것은 각 지역의 고등학생들이었다. 아무리 가난과 빈곤이 심각해 나이를 가리지 않고 경제활동에 뛰어들던 시대였다 해도, 부모님의 헌신과 형제자매의 희생 속에서 어렵게 학업을 이어나가던 당대의 중고등학생들이 독재퇴진의 최전선에 선 것은 왜였을까? 하루 열네시간을 시장에서 공장에서 일하고와 지친 몸을 막 뉜 형제 자매 곁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위해 밤새 책을 읽던 소년 소녀들이 어째서 자기 한몸 귀한 줄도 모르고 최루탄 자욱한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그것은 일본 패망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이 한국의 교사들과 합작해 세운 "새 교육"의 결과였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을 우민화, 계층화의 경로로 조직화했다. 일본인과 조선인은 교육과정이 달랐고, 대학에서도 수강할 수 있는 학과와 수업이 차별되어 있었다. 지배계층인 일본인은 국가관리에 요망되는 주요과목을 가르치고 피지배계층인 조선인은 공업 노동자로서의 소양에 필요한 실용학문을 중심으로 교육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교육의 기회 자체가 적었고 글씨도 깨우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교육자들은 일본이 남긴 교육의 악습과 폐단을 모두 척결하면서 새 나라의 교육정책을 밑돌 하나까지 처음부터 건설해내야 하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다행히 미군정은 한국의 교육정책 입안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해방 후 불과 10년 사이에 우리 나라의 문맹율은 20%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 네 글자가 교육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다.


민주주의? 맞다 민주주의다. 미군정은 소련과 중국의 강대한 공산주의 세력을 막아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라는 이상적인 이유로 새나라의 교육목표를 “민주주의 교육”으로 확고히 했다. 평등한 교육권, 교육자치 등 지금 우리가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착종되었고 무상교육(미국의 공립교육은 모두 무상이다.)은 합의는 이루었으나 한없이 부족한 당시의 교육재정으로 인하여 후순위로 밀려났다가 7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시대정신에 힘입어 천천히 실현되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교과서는 모두 폐기되고 우리말로 쓰여진, 우리의 교육내용으로 채워진 새로운 교과목과 교과서가 속속 도입되었다. 그렇게 새나라의 학동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건국 이래 최초로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식민지 해방 15년만에 독재정권을 무너트린 민주주의 혁명의 주도세력으로 학생들이 바로선 것이었다. 식민교육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내면화되지 못한 기성세대보다 훨씬 각성된 시민의식을 지닌 신세대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의 가치와 배치된 독재정권의 폭압을 용인하지 않았다.


1. 고교학점제 from where?


철학은 사회를 보는 창이다. 독재정권들의 요구에 따라 학교 교육에서 철학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온 우리 나라의 교육 전통에서 철학은 불경한 것, 대입에 불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철학은 모든 학문과 인식의 기초다. 그리스의 지성인들이 관측도구 하나 없이 지동설을 추론한 것도 철학이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추어 코딩교육을 하자는 목소리도 철학이다. 갓 잡은 신선한 생선을 회로 먹을지 탕으로 먹을지 조림으로 먹을지 아니면 바다로 되돌려줄지 각자의 사용법이 다른 것처럼, 같은 세계에서 같은 현상을 보는 우리 저마다의 행동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해방 후 시작된 민주주의교육의 철학은 새나라의 학생들에게는 강렬한 민주국가의 이상향을 심어두었다. 주권의식, 공화주의, 만민평등, 참정권에 대한 인식이 교육의 결과로 청소년들에게 심어졌다.


그렇다면 고교학점제는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가? 해방 후 신생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민주주의교육의 경우 미국의 교육전통,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현실, 일제 교육 적폐의 청산이라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학생과 교육자들은 민주주의 교육의 철학에 공감하고, 함께 뜻을 모아 우리 교육 건설의 지난한 노력에 함께할 수 있었다. 고교학점제는 어떤가? 철학적 바탕과 그 근거가 있는가? 그 철학이 교육주체들 사이에 널리 소통되고 있는가? 먼저 교육주체들이 토론하고 연구하며 우리 교육의 목표를 새로이 한 뒤에 고교학점제라는 정책이 그 결과로서 잉태된 것인가?


해당 정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학교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고교학점제의 목표와 철학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설명도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개별화 교육, 학력경쟁 해소, 대학과 무관한 사회적 지위 등 여러 키워드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철학을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들이 함께 나누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던져지면 그에 대한 답변은 단호하게 No다. 오늘의 문제제기는 이것이다. 학교를, 교사를, 학생을, 학부모를. 우리 교육의 모든 주체들을 심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는 고교학점제의 철학은 교육주체들 중 그 누구에게도 합의를 얻어낸 바 없고 정확한 과정으로 논의되어진 바조차 없다.


도대체 어떻게 발의되었고 논의되었고 선포된 정책인가.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고교학점제 교육철학의 핵심인물들은 우리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 우리는 우선은 고교학점제가 품고 있는 교육의 이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이 정책을 수용하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어느 드넓은 광야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초인의 일성과도 같이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 명령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닐까?


2. 잘된 사례부터 설명드리자면,


무상급식 이야기를 해보자. 당초 해방기 미군정은 우리 공민들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공교육으로 간주되는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무상교육을 기획했다. 그러나 당대 세계 최저 수준의 극빈국이었던 우리나라로서는 교과서 찍어내는 것조차 심각한 과제였고, 그로 인해 무상교육은 한 없이 뒤로 밀려난다. 경제부흥기라 불리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당연히 “민주주의에 봉사할” 무상교육 따위에 협조할 이유가 하등 없었고 그로 인해 30년의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2009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 후보가 전국 최초로 무상급식의 일반화, 다시 말해 저소득층에게만 허용된 급식비 지급을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한다는 정책을 들고 당선되었던 것을 통해 우리 민주주의 교육의 전기가 비로소 해방구를 찾게 된다. 전 세계 민중을 착취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한 2009년의 한국에서 비로소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이 국민 사이에 확산되었다. 격렬한 논쟁 속에서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민주주의 교육의 바람은 서울로도 옮아갔다. 진보교육감이 약간의 부침 속에 서울에서도 당선되었고, 김상곤 교육감 당산 10년이 지난 지금 무상급식은 모든 공교육 단위에 정착되었고 무상교육도 속속 추진되고 있다.


70년. 자그마치 70년의 세월이 소요된 교육철학의 진전이었지만 그 성취는 극적이었다. 고작 평등한 급식의 권리를 당시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대놓고 반대했다. 주민투표라는 극한대치의 정략까지 동원해 무상급식을 막았지만 시대의 진보는 확고했다. 정권의 훼방을 극복하고 무상교육은 계속 나아갔다.


철학의 확산, 사회적 합의, 반발의 극복. 이것이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이 남긴 “사회적 합의”의 경험이다.


3. 변화의 충격을 감내할 만큼의 인내력


고교학점제와 무상교육을 비교해보자. 어느쪽이 보다 더 심대하게 우리 교육현장을 바꾸고 있는가?


고교학점제는 75년을 이어온 한국 교육의 근간을 뿌리부터 바꾸는 정책이다. 학생들의 선택으로 과목도, 교사도, 수업도, 시험방법도 바뀐다. 이수의 개념과 졸업의 개념도 바뀐다. 매년 바뀐다. 2학년의 선택과 1학년의 선택이 똑같을 리가 없다. 3학년에 수업을 대충하는 교사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그 교사의 평판은 당장 2학년의 과목 선택을 흔든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극심한 변화에 즉각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그교사와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교육체제가 바로 고교학점제다.


이다지 심대한 변화가 고작 급식 문제로 발생한 사회적 논란과 합의 없이,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정책에 대한 합의 없이 추진되어도 되는 걸까. 고교학점제를 시대적 과제로서 동의하고 학교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니,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더 안타깝다. 교육의 민주화는 단 하루도 늦춰선 안되는 우리의 과제이며 고교학점제는 민주주의교육의 하드웨어를 완성하는 중대한 개혁이다. 우리 아이들은 고교학점제의 공간 속에서 자라나면서 단 하나의 학생도 패배자가 되지 않고 모두가 저마다의 성장 코스를 밟아나가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 거대한 변화를 견뎌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인내의 시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는 데에 정책담당자들의 노력은 어찌 이리 소홀한 것인지. 자다가도 일어나 궁금한 일이다. 다시 철학으로 돌아오자. 철학은 사회를 인식하는 저마다의 창이다. 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겨울은 아무리 길어도 견딜만하다. 미군정이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서 한 노력만큼은 고교학점제를 위해 노력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 했던 것처럼, 전국의 교사들이 모임 자리에서 교육정책의 합의를 얻어내고 설득시켰어야 하는 건 아닐까. 무상교육 논쟁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것처럼,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몇년을 허비했더라도 그를 통해 보다 많은 우리 시민들, 교육의 주체들에게 알려내고 설득시킬 순 없었을까? 철학적 합의를 얻어냄으로써 “학생의 교육 주권을 위한 교육과정의 유연화”라는 정책의 목적이 신속히 실현될 수는 없었을까?


4. 교육철학, 교육과 철학


본래 교육의 목적은 시민들이 신분과 빈부의 격차 없이도 저마다의 행복한 삶을 이끌어갈 강인함을 학생 하나 하나에게 심어주는 것에 있다.(굳이 강인함이란 표현을 쓴 것은, 현실의 엄혹함 탓이다.) 이 이상은 “학교”라는 기관이 국가의 사무로 자리잡은 18세기 이후 단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제국주의 시기의 학교조차 학생들에게 기술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교육경쟁의 문제, 교육 민주화의 문제,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인해 교육의 철학이 합의되기 어려운 구조다. 영토는 잘려있고 빈곤의 트라우마는 늘 우릴 쫓았고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은 우릴 둘러싸고 압박해왔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과 품이 드는 “철학” 따위를 심어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교육철학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 없는 교육으로 70년을 달려온 끝에 얼마나 많은 우리 아이들이 고통 받고 스스로 삶을 버렸는가. 교육경쟁, 민주교육, 국가경쟁력의 각 철학이 혼재하고 난립한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교육의 아노미였다. 그런 과거를 고교학점제라는 건국 이래 초유의 교육 개혁이 답습해야 할까? 모두가 인내할 수 있도록 교육자들이 인내심을 보다 더 발휘할 순 없을까?


합의 없이 철학의 공유 없이 취해진 개혁으로 학교는 지금...고교학점제 담당자들과 교육과정 담당자들만이 모든 짐을 떠안고 교사들의 반항을 인내하고 있다. 안그래도 교사들은 학기 내내 행정업무의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교육과정의 변화에 내줄 여력이 없다. 그들에게 합의 없는 개혁을 강요한들 과연 교육이 바뀔까. 흉내는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흉내만 내는 교사들을 12년 동안 수 없이 봐오지 않았나. 철학 없는 교육은 아이들 뿐 아니라 교사들도 병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철학은 중요하다. 국가가 바라보는 공교육의 관점이 국민들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목적과 철학이 이제라도 합의되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철학 없는 교육이란 그저 가축에게 부어주는 사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맛이 있든 없든, 그저 돼지들을 살찌우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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