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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19. 2022

80년 전통의 커피전문점에서 즐기는 커피 오마카세?!

설득력이 없었는데 설득력이 생겼다

 판교에 위치한 Buono Buono Coffee는(몇가지 이름, 보노보노 라거나 부오노 부노오라거나를 검색해봤는데 정식 이름이 위에 쓴 대로 Buono Buono Coffee다) 빌딩 숲 사이 쌩뚱맞은 위치에, 상가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다. 명망있는 커피 전문점이 빌딩 1층에 자리하고 있다라. 요즘의 커피 문화와 조금 맞지 않는 기분이다. 최근에 가본 훌륭한 카페만 하더라도, 큼지막한 로스팅룸을 별도로 갖춘 작은 건물 하나쯤씩 따로 있는 게 상례였던 것 같은데.

 

 뭐 그런 입지 조건이 내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용인에 사는 친구 부부가 판교에 꼭 같이 가볼만한 카페가 있다고 하며 우릴 초대했고, 우리는 주말을 맞아 멀찍이 카페 투어를 왔다. Buono Buono에 앞서 나무사이로를 방문. "일반적"인 커피 전문점의 비주얼을 한번 즐기고, 역시나 훌륭한 다양한 커피 라인을 즐기고 온 참이다.


 그런데 커피 오마카세라니, 나는 처음엔, 1인당 25,000원 이상의 금액을 내고 1시간 가량 여러가지 커피 맛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이곳 카페의 코스 이름에 의구심을 가득 품고 찾아온 상태다. 그렇지 않은가. 요즘 돼지 오마카세, 한우 오마카세, 이모카세 등등, 어디에 "오마카세"만 갖다 붙이면 좋은 코스요리가 되는건가 싶은 분위기. 이러다가 전주 막걸리카세, 밀양 돼지국밥카세도 생기겠다.


 그러나 일단 Buono Buono의 카페 내부 인테리어부터 바리스타 강좌 등, 꽤나 알차게 꾸려진 가게 모습에 그런 편견은 절반쯤 날아가버리고, 가게를 가득 채운 커피 로스터, 그라인더, 추출 도구엔 살짝 긴장감까지 생기게 된다. 그리고 50대에 접어든 사장님이 바 한가운데를 지키고 우리보다 앞서 자리한 손님에게 커피를 제공하는 모습까지.


 여기에 와서야 제대로 메뉴판을 구경하며 커피 오마카세가 뭔지를 알게 되고나서는 자연스럽게 군산의 커피 리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시 나는 꽤나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커피를 여럿 즐겼다. 단지, 흔치 않은 커피 애호가 손님이라는 이유로.


 그럼 오늘은 어떨까. 군산 카페리즈에서 지불한 가격의 두배쯤을 각오하고 커피를 즐겨야하는데, 나의 남은 절반의 편견, 그리고 만만치 않은 가격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해소될 수 있을까.

"자 어떤 커피를 좋아하세요?"

 

 우리 순서가 되어 나와 친구부부의, 형과 함께 앉았다. 아내들은 따로, 커피를 덜 즐기는 편인지라 뒤 테이블에 남았다. 물론 거기선 아기를 돌보느라 음료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을 터였다.


"저는...컴플렉스한 맛으로 강배전된 거 좋아하는데요."

"어. 이야...쉽지 않은데."


 사장님은 나의 대답에 재미나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커피 좀 많이 드셨어요?"

"네 저...집에서 냄비로 로스팅도 하고...여행 다니면서 좀 먹어도 보고..."

"네 보통 주문이 아닌데...많이 즐기셨네요. 일단 제가 오늘 추천드리는 건 두개예요."


 사장님은 카페의 가장 인기메뉴인 케냐 친가 퀸, 그리고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에 속한 월카허니를 추천해주었다.


"일단 우리 가게는 하이엔드급도 안쓰고 기본 다 스페셜티예요. 일단 게이샤 전문점이라서 손님들이 오마카세로 많이 드시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컴플렉스한 걸 즐기시면 게이샤보단 친가 퀸이 좋을 것 같고..."

"네...저는 게이샤는 썩 맞진 않더라구요."

"뭔데? 게이샤가 유명해?"


 형이 옆자리에서 말을 붙인다. 형은 카페는 어지간히 다니는 편이지만 커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편이다.


"네 저희가 게이샤 전문점이라서 수요랑 공급이랑 좀 맞기도 하구요."

"아...하. 게이샤가 잘 팔려서 가격대가 많이 낮춰졌다는 뜻이예요."

"그런 거야?"


 사장님의 말을 내가 풀어 설명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니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왕중왕 급의 게이샤가 한잔에 9500원. 거저 먹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만 여전히 나는 게이샤 취향은 아니므로 나중에 견문을 넓힐 때나 한번 다시 먹어보기로. 오늘 오마카세로 먹어봐야 하니, 게다가 먼저 나무사이로에서 커피를 여러잔 먹고 온 상태라 게이샤까지 디저트로 즐길 여럭은 없다.

"친가 퀸은 일단 밸런스가 좋아요. 그리고 월카허니는 정향이라고, 가장 고급진 커피 향인데 그게 계속 입안에 감돌 거예요."

"어 그럼 둘이서 하나 하나 시켜봐도 되나요?"

"그건 안돼요. 두분이서 같은 걸 드셔야 해요."

"아하...그럼 월카허니로 할게요. 형 아래거 먹어요."

"이게 더 맛있어?"

"음 맛도 맛인데, 정향을 맛볼 수 있다는 건 아예 새로운 경험이니까...그쪽이 형이 커피 배워보기엔 더 좋을듯해요. 사장님 이거, 로스팅 날짜는요?"

"양쪽 다 3일째입니다."

"음-. 넵."


 우리는 오마카세를 위한 커피 콩을 골랐다. 오마카세로 각각 3만원.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일단 스페셜티 원두라는 점에서 가격대는 우선 납득이 된다.

"자 저희는 분리드립이란 기술을 쓰는데요, 제가 3대이고 1대, 우리 스승님의 스승님은 일본 분이세요."

"오호..."


 오마카세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Buono Buono의 창업자인 1대 바리스타는 일본의 긴자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에이징 커피와 분리추출을 고안한 명인이라고 한다. 그런 설명을 곁들이며 드립을 시작한 사장님의 솜씨는, 말 그대로 변태적인 꼼꼼함으로 유명한 일본의 드립 추출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일찍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일본인지라 커피 문화도 퍽 발전했고, 심지어 블루마운틴이라는 품종을 세계화시킨 것도 일본인이라고 하니까.


 그런 일본에서 시작된 커피 코스이니, 오마카세라는 네이밍이 자연스럽다. 오마카세란 말에 걸맞게 일단 내가 원하는 커피 스타일을 묻고 그에 맞추어 콩을 선택할 수 있게 하니까. 그리고 분리추출은 카페리즈에서도 먼저 경험을 해본 터라 그에 따른 신뢰도 나 역시 갖고 있다.


"이 분리추출이란 게, 커피의 좋은 맛만 순서대로 뽑는 것이거든요."


 원두를 고르고 난 뒤 사장님은 커피를 추출하고 우리에게 서비스하는 내내 쉬지 않고 설명을 하고 계시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열정에, 자신이 계승하고 있는 커피 기법의 80년 역사를 설명하려니 입이 열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설명들이 대부분 매우 유익하고, 사장님은 대체로 커피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초적인 내용부터 반복해 설명해주었다.


"자 지금 제가 이렇게 드립을 하고 있는데, 물을 계속 부어도 아래로 한방울도 안떨어지죠? 이제 3단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뽑을 겁니다. 3차 커피는 솔직히 먹으면 안되는 거라서 버릴 거구요.


 이 집착에 가까운 디테일. 실제로 드립을 할 때 물조절을 통해 서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기술과 인내심을 동시에 요하는 일이다. 이걸 매일같이 하루 대여섯번을 해야 하니 그 인내심이 쉽사리 추량이 되지 않는다.

"제가 나무사이로에서 주로 생두를 사는데요."

"네 나무사이로 정도면 좋은 셀러죠. 그런데 요즘 콜롬비아 쪽 원두가 첨가물이 많아서 그건 조심하셔야 해요."

"아-하."

"뭐 나무사이로는 콜롬비아쪽은 취급 안하기는 하는데."

"네네."


 이야기는 길게 이어진다. 내 커피 여정, 로스팅의 경험들, 넓어지는 커피 견문들. 그러는 사이에 1차 분리추출과 2차 분리추출이 이어지고, 나는 엘카페딸, 커피리즈 등등의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엘카페딸은 어떠셨어요?"

"그래도 여기가 더...오리지널이라는 느낌."

"거기도 잘 하는 편인데, 그래도 다르죠."


 그렇다고 해서 사장님이 우열을 가리려는 인식을 드러내진 않는다. 하기사 또 다들 훌륭한 셀러, 로스터, 바리스타들이니까.

"이게 3차 추출인데, 여기에 나쁜 성분들이 다 들어가있어요. 여기 앞에 두가지 드셔보시면 아주 맛이 다르죠."

"으음. 형 이게 드립으로 내린 건데 에스프레소처럼 진해요."

"사실 에스프레소보다 다섯배는 진합니다. 드셔보세요."


 세번째까지의 추출이 끝났다.


 분리추출의 원리에 따라 먼저 내린 두 종의 농축 커피의 맛이 훌륭한 것이야 자명한 이치지만, 세번째, 카페인과 타르 등의 나쁜 성분이 응축된 커피의 맛도 다른 카페의 커피에 비해 뒤떨어지진 않을 터였다. 카페 리즈에서는 마지막 추출 커피도 맛보게 해주었는데, Buono Buono는 버린다고.

 오마카세 코스는 이렇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번째, 가장 작은 잔으로 조금 희석한 원액을 맛보는 것. 월카허니로 시키길 잘했다. 예가체프의 핵심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정향이 아주 잘 농축되어, 진짜로 향을 목으로 넘기는 기분. 그리고 정향이 잔향으로 몸에 천천히 쌓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처음엔 입으로 코로 즐기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가득 커피향이 채운다.


"사실 이 커피를 옛날 예멘의 수도사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서 몰래 몰래 마시던 건데."


 사장님의 너스레가 재밌다. 낡은 추출도구를 허리춤에 붙이는 시늉까지. 새로운 경험이란 측면에서 분명 이 커피 오마카세는 메리트가 있다. 3만원의 가격으로 커피에 대한 견문을 크게 넓힐 수 있으니, 한시간 커피 강연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무난한 가격대다.


 다음으론 콘파냐. 사실은, "카페 콘 판나"라고 불러야 한다고 사장님께서 또 안내를 해준다. 외래어를 다루는 우리 말 관습이 잘못 된 것이 많지만, 이탈리아의 고유한 커피 문화라고 할만한 카페 콘 판나 정도는, 자주 먹는 것도 아니니 이럴 때 제대로 배울 수 있어야겠지. 우유 크림이 아닌 코코넛 크림에 1차 추출된 농축 커피를 얹어먹는데, 커피의 향이 크림에 전혀 묻히지 않고 어우러진다.


 이게 분리추출된 농축 커피의 매력이랄까. 다음으로 이어진 아메리카노와 아이스커피까지, 커피의 캐릭터와 밸런스, 그 맛이 전혀 무너지지 않고 각 코스에서 맛을 그대로 잘 살려낸다. 특히 아이스커피로 만들어 먹을 때 향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처음 맛과 다르지 않게 마지막까지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은 지금도 여러가지 커피를 접하고 또 모두 한번씩은 맛을 보신다며 자신이 최근 구매해서 갖고 있는 원두들을 보여주셨다. 이 부분에서 요즈음의 커피 세태에 대해 또 둘이서 뒷담화를 제법 했다. 약배전과 강배전 양쪽으로 치우쳐, 먹지도 못할 시큼한 맛을 내는 다크로스팅 커피들에, 그냥 한 없이 시기만 한 약배전 커피까지. 그 와중에 맛을 고루 살린 채로 강배전을 해 풍미까지 충분히 이끌어내는 맛을 추구하는 건, 나름 요 몇해간 커피를 즐기며 쌓아올린 노하우라고 해야 할까. 현재까지 나는 내 커피 취향이 타당하다고 느낀다.


 Buono Buono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했고, 나는 친가 퀸 200g을 샀다. 2만원.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커피의 품질을 생각하면 아깝다고 하기도 뭣하다. 무엇보다도, 200g이면 최소 20잔은 내려먹을 수 있는 분량이지 커피 너댓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건 퍽 넉넉한 사치.


 다시 오게 될까. 뭐 충분히 그런 기회는 또 오리라 본다. 일단 친구부부가 그곳에 살기도 하고, 한시간여, 길이 안막히면 편히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 다만 우리가 커피를 먹는 내내 아기는 신나게 사고를 치며 와장창 소리를 여러번 냈기 때문에, 아이가 좀 크는 걸 기다리며 두고두고 또 방문해야겠다.


. 피크닉앳나무사이로.


 판교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앞에 차를 대면서 생두 쇼핑몰의 홈페이지에서 자주 보던 건물이라 반가웠다. 엄선한 다양한 원두를 훌륭하게 서빙하고 있는 곳이므로 커피 투어를 한다면 이곳을 겸해도 좋다.  종의 커피를 무료시음으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구수한 고구마같은 커피가 인상깊었다. 아쉽게도 생두는 팔지 않는다. 인근의 나무사이로 본사에 가면 파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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