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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28. 2022

들어올땐 맘대로, 나갈땐 발이 안떨어지는 한옥 숙박

나주 한옥숙박 느림

 골목을 꺾어들어가, 이렇게 생긴 유리로 된 대문을 지나면,

 이렇게 생긴, 핑크빛 의자 두개로 포인트를 둔 넓고 아리따운 정원에, ㄱ자 모양 한옥이 나타난다.

 툇마루에 앉으면 이렇게 된 풍경이 보이고, 마당 가운데 평상엔,

 아깽이가.

 아깽이들이.

 한가롭게.

 한가로옵게 놀고있는, 여기는 아마...가 아니라 나주 느림, 한옥숙박. 제주도 여행의 중간기착지로 택한 나주에서 묵기로 한 곳.

"여기 얼마야?"

"그렇게 안비싸. 15만원."

"헐. 완전 싸네."

"제주도 가서 이런 데에서 한달 살이 해야 하는데."

"에이. 지금도 이런 델 갈 순 있지. 그런데가 한달에 350만원할뿐."

"그건 그래."


 툇마루를 감싼 유리벽 안에 아이를 놓아두고 나서 나는 짐을 옮기기 위해 다시 서둘러 차로 돌아왔다. 한달살이는 아니고 하루살이 숙박이다. 그런데 청명한 날씨에 녹음과 어우러진 옻칠 잘 된 나무의 질감이라니. 이렇게 아름답고 평안한 풍경일 수가. 일반적으로 아내의 여행지 선정이나 숙박은 모두 일임하고, 따르고 있지만 이렇게 내 마음에 쏙 드는 곳도 처음이다. 넓은 마당하며, 마당 가운데 평상, 그리고 처마를 연장해 또 하나의 평상.

 날씨가 이리 좋으니, 자연스럽게 이 대나무 평상 아래 누워서 그늘을 피하며 수박을 썰어먹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고양이를 질색하는 아내로 인하여, 마당을 지배하고 있는 고양이 4남매로 인해 마당에서 노는 것은 포기했다.


 그리고 아기가 노는 것이 더 중하기도 하다. 아기는 모처럼 넓은 공간을 만나 쿵쾅쿵쾅 두 손과 두 무릎, 두개의 발을 마음껏 놀리며 방과 방 사이를 달아다녔다. 아이가 질주하기에 세칸의 한옥집 마루는 작지 않다. 방에서 마루로, 다시 마루에서 방으로 아기는 짐을 나르고 푸는 우리를 신나게 따라다닌다. 10개월을 채우기 일주일 전이다. 그런데 어찌 이리 유난스럽고 소란스러운지, 즐거워서 삐약삐약 소리까지 신나게 지르며 집을 누빈다.


 다행한 점은 요 숙박의 청소상태가 완벽했던 것이랄까. 세스코 멤버스까지 가입되어 있어서 뭔가 큼직한 기계도 달려있고, 방방마다 에어컨도 있고 해서, 우리는 이내 짐을 풀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진짜 평상에서 안놀래?"

"고양이 무서워. 그리고 더워. 오빠도 말만 그러지 덥잖아."

"하긴. 나도 더워서 좀 그래."


 갈색 나무를 감싼 흰색 벽과 지붕. 침대에 나란히 누워, 새벽 5시부터 출발해 나주에 당도한 피로를 삭이며 나와 아내는 말을 나눴다. 편하다. 너무 편하다. 그, 한옥이 주는 묘한 아늑함이란 게 있잖은가. 게다가 나의 경우 외가와 친가 모두 이런 시골집들이었어서, 더욱 그립고 정겨운 공간이다. 좁은 방, 낮은 벽에 감싸여 느껴지는 이 소속감, 안정감.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화도 소속감에 대한 이야기로 흐른다.


"아 동백이가, 옛날처럼 식구들 많았을 땐 저렇게 활달해서 사랑 많이 받았을 텐데."

"근데 너무 힘들어. 진짜 너무 이쁜데 너무 힘들어."


 아이의 발달이 빠른 건 정말이지 부모로서 힘겨운 일이다. 남들보다 이앓이도 길고, 구강기도 씨게 오고, 관종 수준으로 활동량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돌을 훌쩍 넘긴 아이 수준으로 아이를 케어하기가 힘이 들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다니고 있으니 시나브로 시나브로 살이 빠지려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지경. 다시 말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자랑으로 보이겠지만, 절대로, 절대로 이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런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니, 이 아름다운 한옥에 들어와서는, 우리는 등짝을 침대에 못박고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편안히 편안히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움직여야 되는데."

"...나가기 싫어지네."


 편하다. 과하게 편하다. 밖은 덥고, 안은 시원하다. 그리고 아이도 마침내 잠에 들었다. 나가기 싫다. 나갈 수가 없다.


"나주 투어..."

"더워 근데."

"어어..."


 호캉스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


 나주에 제대로 여행을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숙박에 오기 전에 먼저 하얀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복합문화공간을 겸한 카페 마중에서 차도 마시고 산책도 했다. 뭐, 세시간 가량은 여행을 하고 이제 집에 당도한 셈이다. 그리고 내일은 아침만 먹고 완도항까지 또 두시간을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날도 화창하겠다 나주를 돌아보려면 영산강도 보고 돛배도 보고, 할 것은 많은데...이리 집이 아늑할 수 있을까.


 겨우 여섯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겨우 결심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당을 잠깐 즐긴 뒤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다시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여덟시쯤.

 그렇다고 빈손으로 온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 복숭아와 배, 막걸리를 사왔다. 나주에 왔으니 나주배에 나주 막걸리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며. 일부러 나는 그것을 마당에 있는 수도를 틀어, 그 아래서 차게 식혔다. 이런 것도 시골집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라고 해야하려나. 이내, 아깽이 두놈이 슬슬 가서 복숭아를 톡톡 건드린다. 아 이건 안되겠네. 아내가 난리를 칠까 두려워, 샤워를 마치자마자 나와서 막걸리와 과일들을 거둔다. 그리고 차근차근 툇마루에 상을 차려, 해가 저무는 것을 바라보며 배를 깎기 시작한다. 아이를 위한 배는 손톱만큼 작게. 그리고 우리가 먹을 것은 큼직하게.

 해는 저물어가고, 막걸리는 시원하고, 배는 아삭하다. 그리고 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배부른 배에 배를 집어넣으며 생각한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고, 낯선 공간에 와서 그것을 분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주는 먼 도시에 와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선 이 공간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야 하겠지. 그러나, 동시에 이런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머무르는 것도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퍽 오래된, 그러나 잘 관리된 한옥에서, 한옥에서 즐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즐기며 말이다. 마침, 욕조도 있다. 그리고 우리 일정 상 식사를 만들어먹지 못했지만 주방에 갖추어진 것도 정말 훌륭했다. 새 칼, 새 식기, 좋은 주방기기들. 숙박이란 여행의 한 요소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 공간은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 집을 나가서, 나주의 골목 골목을 누비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하는 생각. 거꾸로, 집에 주는 것들을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간직하며 이 공간을 아낌없이 즐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지.

 그런 생각으로 맞이한 아침. 나는 나주의 여름 새벽 공기를 맞기보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하는 것을 택했다. 해야 할 일은 많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 먼저 일어나 아이 분유를 좀 챙겨먹이고, 호젓하게 앉아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앗, 이내 아이가 깨었다. 두시간 가량, 놀아주고 나니 아홉시. 30분 정도 겨우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뒤엔 이제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 혼자 아침 반신욕을 위해 물을 한번 더 받았다. 그리고 나니 이제 출발 시간이 되었다. 비록 아기로 인해 분주한 아침이긴 하나, 이곳이어서 그 안에만 갇혀있어도 좋았다.

 그러고 나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모든 짐을 차에 싣고 잠시 티 타임을 가졌다. 주방에서 툇마루로 자리를 옮겨, 몇 해 전 출장에서 사온 TWG 차를 내린다. 장기간 여행 일정이라 커피와 홍차 추출도구를 따로 챙겨왔다. 그리고 그러길 정말 잘했지 뭐야. 좋아하는 일을 한다라면 이왕이면 내가 갖고 있는 최상의 세팅에서 해야한다. 이런 좋은 공간에 왔으니 숙박에서 제공하는 캡슐커피보다는. 티백보다는. 좋은 커피와 좋은 홍차로.


 그리고 마침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잔을 치우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치운 ,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보며 문을 닫았다. 우리는, 다시 여름의 공기에 쏟아져나왔고, 이제  여행길을 다시 준비한다. 중간기착지라는  이름답게, 서울과 제주의 중간 지점, 나주에서 만난  공간에 정말 하루 편안했다. 나가기 싫었을만큼. 나가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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