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초였지요 그것은
나와 아내는 공통점이 그리 많지 않다. 생"일"이 같다. 생년월은 다르다. 아버지 쪽이 형제들 중 막내다. 어머니가 양가의 성이, 본관까지 같다. 직업도 같다. 이쯤 하면 공통점이 많나? 싶어보이지만, 이런 주변부 정보 따위 결혼생활에 하등 쓸모가 없다. 양가 부모님의 특징 몇가지가 겹친다고 해서, 부부싸움이 덜어지나 금슬이 좋아지길 하나.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아내는 커피를 아예 못마신다. 나는 조용한 곳을, 아내는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한다. 나는 순대국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선지와 곱창은 좋아하면서도 순대는 못먹고, 아내는 TV를 좋아하나 나는 거의 보지 않는다.
부부가 성격이 반대여야 잘 산다는 속설이 있다지만, 그거야 사는 속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각자의 주관이 확고하고 또렷해, 우리는 여러가지로 의견이 팽팽하다. 신혼 때까진, 연애 시절 몰랐던 것도 아니려니와 상호 노타치 원칙에 의해 그럭저럭 결혼생활은 굴러갔다. 그러나 그게 아름다운 결혼생활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각자의 삶이 결혼생활보다 더욱 중요했다.
그렇게 결혼하고 3개월쯤 되었나. 데이트를 다녀와 밤 늦게 거실에서 쉬면서 TV를 켰는데, 백종원 씨가 가게를 탐방다니는 썰렁하고 조용한 포맷의 TV프로그램이 방영중이었다. SBS의 골목식당의 첫 방송을, 우연히 틀어버린 것. 백종원씨가 요리와 장사 컨설팅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라, 맛집과 요리에 진지한 편인 나라서 오랜만에 TV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아내가 잠시 뒤에 거실로 따라나와 이게 무슨 프로그램이냐 묻고는 잘 준비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그 프로그램은 아내의 관심에서는 멀어져있었다. 나 혼자 이따금 틀어놓고 폰을 하거나 하며, 그 겨울을 보내고 어느 봄.
"오빠 골목식당 요즘도 봐?"
"아니 잘 안보지 나도 바쁜데."
"성수동에 골목식당 나온 밥집 같이 가보자-."
"뭐? 내가 보잘 떈 보지도 않고?!"
정말로 갑자기 뜬금없이 아내가 골목식당에 방영된 성수동의 경양식 식당에 가보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이 시점이 골목식당 네번째 골목이었나, 성수동으로 옮겨 그 빌런 식당들로 인해 주목도가 크게 올라간 시점이었다. 그때까지 아내는 거의 골목식당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성수동에 카페거리도 있고 해서, 요즘 뜨는 맛집이니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와 아내의 '골목식당 동행'이 시작되었다. 골목식당 방송도 함께 보고, 맛집도 다니게 된 것이다. 아내는 원래 TV를 하나 꽂히면 본방사수를 꽤 하며 몰입해서 본다. 그래서 뒤늦게 골목식당 에피소드를 챙겨보며 빌런들, 장인들, 백종원 그리고 다른 패널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에 빠져들었고, 그와 함께 여러 골목식당 출연 점포들을 들러보았다. 해방촌의 알탕, 원주의 칼국수, 대전 청년몰, 철원 콩나물국밥, 일산 아구찜, 해미의 김치찌개집, 포방터의 닭도리탕(나는 닭볶음탕이란 새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돈까지. 굵직한 맛집들은 두루 섭렵했다.
영원한 건 없는 법이라 그런 골목식당 방송도 재미도 떨어지고 빌런도 겹치고 하니, 자연스럽게 우리도 각자 즐길거리나 데이트로 인하여 방송을 느슨하게 보기 시작했고, 부부의 수요일 밤, 반드시 골목식당을 함께 본다는 규칙도 불규칙하게 바뀌어갈 즈음,
골목식당의 종영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아니따 파스타는 그런 우리의 결혼생활 내내 이어진 골목식당 동행의 마침표와 같은 곳이다. 방송은 끝났고, 이제 골목식당 맛집이라고 찾아갈 곳도 새로이 없다. 종영 에피소드인 고대 골목은 방송 막바지라 참여한 식당도 많지 않고 특별히 땡기는 집도 없다. 다만 막방까지 성실히는 봤다. 그보다는 제주도 창업 스토리. 여기에서 1등을 해 개업한 식당이고, 생면파스타라는 메리트도 있다. 방송을 보면서 저기 개업하면 꼭 가자고 같이 이야기를 했던 것이, 지난해 10월. 그러니까 딱 우리 동백이가 태어날 무렵이었다. 오늘은, 아이가 태어난 뒤 첫 제주도 여행. 그러니까 늦지 않게 온 셈이다.
아니따에 도착해 용케 제일 먼저 웨이팅 리스트에 등록을 했다. 11시 오픈인데 10시 40분쯤 가니 근소한 차이로 내가 1번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당 테이블에 앉아서 아이와 여름 그늘 아래 바람을 맞고 있으니 조금 뒤 검은 조리복을 입고 오너쉐프님이 몇가지 식재료를 들고 후다닥 입장. 그리고 또 10분 정도 더 기다리니 입실을 할 수 있었다.
창가의 두 테이블이 제일 좋은 자리일 터인데, 그 두 자리가 차고 나면 홀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앉게 된다. 어디서나 오픈키친이 잘 보이고 구석구석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 눈에 콕 띄는 것은 제면기. 방송에 나왔던 것과 똑같은 제면기가 한쪽 벽에 걸려있다.
흑돼지라구 파스타와 감태 페스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가격은 둘이 합쳐 3만원을 조금 넘는다. 감태를 먹어본 사람은 알 테지만, 바다내음이 김보다 훨씬 강하다. 그 강한 바다 내음이 호불호를 유발하는 것이 것이 감태보다 김이 대중적 식재료가 된 이유다. 그러나, 그런 감태를 페스토로 만들어 크림파스타로 만드는 것은 감태의 강한 바다향을 활용하는 매우 신선하고 뛰어난 아이디어다. 제주도 여러 맛집들에서 톳이나 미역 등을 퓨전 요리에 활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색감이나 풍미을 살리며 전체적으로 짭짤한 밸런스를 잘 살린다.
흑돼지라구 파스타의 경우, 말 그대로 흑돼지다보니 이게 라구인가? 하는 생각은 들게 한다. 그러나 리가토니 생면을 먹어볼 수 있다는 점이 메리트이고, 제주도의 흑돼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 마케팅 구실을 하고 있으니 여행객들의 입장에서는 후회는 없는 선택일 터. 게다가 라구라고는 하지만, 고기가 많다. 상당히 많다. 생각보다 아주 고기가 넉넉히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 동안 충만한 느낌이 내내 든다.
두개 합쳐 3만원을 살짝 넘는 가격에, 생면 파스타라는 메리트나 감태나 흑돼지라는 특색있는 식재료까지 아니따에서 맛본 두 메뉴가 모두 충분한 만족감을 줬다. 재미난 점, 혹은 미스인 점이 식전빵이라고 해놓고 음식과 같이 서빙된다는 점. 이는 방송을 본 사람은 알 테지만, 감태가 들어간 크림 소스가 상당히 메리트가 있어서 식전빵을 여기 소스에 찍어서 남김없이 먹는 것이 아니따 파스타를 잘 즐기는 요령 같이 공식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스를 싹싹 둘 다 긁어먹는 용도로 식전빵이 많이 쓰일 것이고, 그러다보니 2천원의 요금이 부과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 그러나 식전빵은 식전빵인 게지,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오일을 주고 끝내는 것이 낫지 않으려나.
생면파스타의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에 두가지 훌륭한 소스와 버무려진 파스타는 화창한 여름 햇살을 창문으로 받으며 즐거운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단지 이것은 맛 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의 결혼생활에, 함께 해온 TV 감상 시간에, 그와의 마지막 추억을 함께 함에 말이다. 의미있는 식사로 손색이 없다.
라면과 타코, 돼지강정 중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바로 옆 돼지강정을 선택해 저녁에 먹었다. 지도 앱에서 평점 가리기가 왜 되어 있나 했더니, 양념을 너무 아낀다. 그리고 다음날 먹었을 때 튀김이 퍼석한 편. 튀김이 퍼석하니 양념을 아끼고, 양념을 아끼니 퍼석한 튀김이 강정 답지 않게 식으면 맛이 반감된다. 개선이 필요하다 튀김옷을 바삭하게 만들고 양념을 넉넉히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