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자미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Aug 05. 2022

제주도민이 애정한다는 흑돼지 수비드 스테이크

작년에 생긴 찐 신상 로컬맛집이라 합니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오늘은 대정 다녀왔어요."

"아 멀리 다녀오신 건 아니네요."

"네 아직 동부까진 가지 않고 있어요."

"동부에 좋은데 진짜 많은데."


 묵고 있는 펜션의 젊은 호스트는 10개가 넘는 호실에 있는 다종다양한 숙박객들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기와 가방 세개를 들고 계단을 올랐고, 그 뒤에선 체크아웃한 객실을 청소하고 난 뒤 큼지막한 이불 보따리를 들고 호스트께서 따르고 있었다.


"잠깐만. 호스트님한테 로컬맛집 좀 물어볼까?"

"응 그래."


 나는 앞서가며 아내에게 살짝 말했고, 소소하게 애월 주변만 주로 돌며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였기에, 모처럼 로컬맛집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왜 진작 생각을 못했지. 호스트께서 꽤나 친절하니 먼저 말도 붙여주시며, 여러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 그럼 수르르 가보세요. 흑돼지 수비드 스테이크거든요. 진짜 맛있어요."

 그래서 오늘 와보았다. 수르르.


 그런데 정말이지 위치가 쌩뚱맞다. 말이 바닷가지, 앞엔 공사판이고 좁은 골목을 차로 겨우 들어와서 보면 덩그러니 제주도 한적한 시골길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는 식당. 게다가 차에서 내리면서 보면 좌우의 낮은 건물 사이 혼자서 네모낳게 덩그러니 신축 빌라건물이고, 가게 앞은 심심하기 이를데가 없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금요일 5시 30분. 손님이 하나 둘 저녁을 먹기 위해 찾기 딱 좋은 시간인데, 아무도 없단 말이지.


 좋아. 마음에 든다. 호기심이 샘솟는다.

 도민이 추천하는 맛집이니 일단 맛과 가성비에선 어느정도 믿음을 갖고 온 집이다. 그런데 그런 집이 금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손님이 없다? 그렇다면 좋은 집에서 홀가분히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고,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방문하는 기분이니 더욱 좋다. 그리고 밖에서 보기에도 안이 퍽 깔끔한데, 간판에 꽤나 신경 쓴 로고, 그리고 음식 사진들이 있어서 감각을 갖춘 식당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저 로고 이미지가 재미있다. 돈마호크 같은데, 퍽퍽한 등심살을 갈빗대를 남겨 만든 부위. 저것도 물론 제대로 조리하면 맛있다. 퍽퍽하지만 장시간 조리해서 부드러움과 육즙을 모두 살린 수비드나 바베큐론 제격이다. 언젠간 돈마호크 메뉴도 개발하시려나.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입장.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아내가 이미 주문을 끝냈다. 여러가지 메뉴가 있는데, 거의 모든 첫 방문객은 안심 수비드 스테이크와 해산물 국물 파스타를 시킨다. 프라이드 립은 아무래도 뼈 때문에 가성비가 불안하고, 파스타 중에선 그래도 미트볼이나 라구보단, 떠먹는 파스타가 이곳의 시그니쳐 같은 느낌. 나와 같이 상의해 정했어도 이 이상의 무슨 대안이 나올 것 같진 않다.


 1인 운영식당에, 수비드 조리라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랑 놀아주며 실내를 이곳저곳 구경한다. 아기용 테이블과 식기도 있고, 포크나 스푼이 디자인이 조금 독특하다. 그리고 그래도 창가에 앉으면 저 멀리 비양도가, 푸른하늘 하얀 구름 아래 내려앉은 모습이, 공사판과 돌무더기 너머로 보이기는 한다. 오션뷰 같지 않지만 어찌 보면 오션뷰인, 도민에게라면 익숙할듯한 풍경.

"어 이건 무슨 파스타예요?"

"길리에입니다."

"네? 무슨 파스타요?"

".길.리.에입니다.”

아…폼힐리에…?”

"오빠, 메뉴판에 있잖아."

"아...하. 콘길리에."


 아내가 주문을 먼저 해놔서, 내가 메뉴판을 제대로 보지 못해 쉐프님께 불편을 드렸다. 못알아들어서 두번이나 여쭤보았는데 민망하게도, 메뉴판에 또박또박 콘길리에라고 적혀있다. 길리에! 검색을 해보니, 애초에 조개라는 뜻의 파스타다.  과연, 감각 있는 집이구나. 국물을 먼저 떠먹는다. 시원하고 칼칼한,  만든 해물국물. 그리고 메인디쉬인 수비드 스테이크를 맛봤다.  

 시어링이 잘 되어 있어서 씹는 순간 불 향이 확 난다. 가니쉬 채소구이도 불향이 살아있고, 소스를 많이 찍어먹는 편인 내가 고기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스의 맛과 향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다. 무슨무슨 이름의 치즈를 곁들인 매쉬드 포테이토는, 음 매력적이야.


"안심이겠지? 음 안심이군."

"소스는 어때?"

"둘 다 괜찮네. 그런데 왜 이렇게 못먹어."

"음료를 너무 먹었어 물배가 찼나봐."


 우리는 아침을 조금 늦게, 그러나 넉넉히 먹고, 아내의 카페투어를 위해 세군데를 돌고 온 참이다. 오로지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나와는 달리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아내는, 설탕이 포함되어 포만감이 오래 가는 단음료들로 카페투어를 계속했고, 그로 인해 이 맛있는 스테이크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아 맞다. 그리고 아까 케익."

"맛있었어 오랜만에 먹어서."

"아니...이거 맛있는데 말이지."

"괜찮아 오빠 많이 먹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말이야, 또 오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외식 한번 한번은 전쟁이다. 카페에서는 그나마 아이를 안고라도 차는 마실 수 있다지만, 식당에 와서는 동백이를 보랴, 밥을 먹으랴, 한끼 한끼가 거의 전쟁이다. 지금도, 나도 음식을 편하게 감상이나 할 틈은 없다. 아이에게 과자 주랴 떨어트린 치발기 주워서 닦아주랴, 아주 전쟁통도 아닌 상태.


 그렇게 되고 나니 이 각별한 스테이크도, 반쯤은 코로 넘어가고 있지만 다른 손님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게 더욱 고마운 일. 아내는 배가 차서 더 먹지 못하겠는지 아이를 돌보는데 집중했다. 나는 천천히 스테이크를 마저 먹었다. 피타 브레드에 스테이크와 매시드 포테이토를, 소스와 함께 듬뿍 담아서 먹으면, 야 이거 정말 맛있잖아.

"야 이거 좀 귀여운 단점이 있네."

"응?"

"해감이 덜 된 애들이 있어 조개가."

"진짜?"

"응 근데, 괜찮아 조개를 그날 그날 들여오면 그렇지 뭐. 대신 싱싱하잖아. 귀여운 단점이네. 그런데, 군산 조개짬뽕집 이름이 뭐였지?"

"쌍용반점."

"어 맞아. 난 다시 군산 간다면, 거기를 먼저 갈 것 같아."

"왜?"

"그때도 얘기했잖아. 조개탕이 생각이 나고 땅길 때가 있다니까."


 떠먹는 파스타를 놓고 나는 아내에게 술술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이거, 술 안주로 딱 좋을만큼 칼칼하고 쫄깃하니 별미다. 포인트로 올려진 칵테일 새우는 앙증맞고, 아래 깔린 오징어는 탱글하다. 해감이 덜 되어 조금씩 모래가 씹히는 조개는 귀여웠다. 14,000원이라. 파스타 단품으로 가격대가 적지 않지만, 값을 한다. 맛집의 기준을 따져본다면, 새로운 맛경험이라는 데에 특히 가치가 있다.


 조개탕은 조개탕만의 독자적 영역이 있다. 바다의 풍부한 염류를 담은 그 국물이 주는 마약같은 중독성이 있어, 제대로 된 조개육수는 내내 기억에 남아 술에 대한 유혹과 함께 입맛을 돋운다. 페퍼론치노를 조심조심 치워내며 다른 허브가 또 풍성히 들어간 요 국물을 홀홀 마시며 스테이크를 또 한입. 또 한입 먹다보면, 입 안에 부드러움과 감칠맛이 화사하게 어우러지는 느낌.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응."

"비가 오면 역시 소주에 뜨끈한 조개탕이야. 겨울에 와도 좋겠다 그땐 미트볼도 먹어보고."

"응 그건 괜찮아."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요청할 즈음, 쉐프님은 예약손님의 음식을 서빙하고 있었다. 아하 미리 예약하고 오면 조리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군. 나는 천천히 샤베트를 먹으며 식당에 대해서 검색해봤다. 아직 덜 알려져서 리뷰는 많지 않지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식당을 방문하고 나서 기쁜 나머지 별점을 후하게 주고 인증샷과 함께 좋은 평들을 써놓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구성으로 식사메뉴를 주문했던 탓에, 미트볼 파스타나 프라이드 립 사진을 구경하려고 조금 헤맸다.


 원래는 식전에 단호박스프를 내었었다고 하는데, 단가가 너무 올라 가격을 올리진 못하고 구성에서 빼셨다고. 아쉽다. 이정도 수준으로 음식을 하는 곳이라면 단호박스프도 정말 맛있었을 텐데 말이지. 장사가 조금 더 번창하고, 수익이 개선되면 단품으로라도 스프를 취급하실 수 있을 것이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지불한 가격이 37,000원이었으니 제주도의 평균적인 외식 단가를 생각할 때, 부담이 가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 스프 하나를 추가해도 4만원대 초반이면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도 떠나기 아쉬워 괜히 가게 여기저기에 사진을 조금 더 찍었다. 이 로고에 대해 물어보고 싶지만 친절하시되 과묵한, 거구의 남자 쉐프님과 '해감이 덜되었어염'하는 대화를. 기분 좋은 식사에 대한 평가와 함께 조심스럽게 전달하다보니 어찌 어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뭐 역시 또, 장사가 번창하다보면 돈마호크 수비드 스테이크도 추가될 수도 있는 거고 또 와서 식사를 하다보면 저 로고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는 거고. 작년에 개업한 식당인데, 저런 로고까지 따로 제작해서 장식품을 만들어둔 모양새를 봐서는, 음식에나 장사에나 진심이 느껴지니 말이다.

 날은 청명하니 무더웠다. 사진에 담기지 않는 찜통 같은 습하고 더운 제주도의 여름. 그런데 찜통이라고 하니, 더위라고 하니, 마치 제주도의 여름은 수비드 같다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한다. 그러니, 찜통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흑돼지의 마음도 느껴보면서 방문해볼만한 집이다.


 로컬맛집 혹은, 도민맛집이라는 딱지가 떨어지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맛집의 조건과 한라산 아래 첫마을 냉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