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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자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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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5. 2022

맛집의 조건과 한라산 아래 첫마을 냉면

좋은 재료 + 합리적 가격 + 새로운 맛경험

"그래서 여긴 쓸만 해?"

"음? 독자미감?"


 식사를 마친 뒤 아내의 질문에 나는 대답이 아닌 거꾸로 질문을 했다. 내가 이름지은 독자미감이라는 매거진 명은 '나만의 입맛'이란 뜻이다. 그래서, 남들 다 아는 핫플, 게다가, 10시30분 오픈시간 30분 전인 10시 정각에 도착하고서도 9번 대기순번을 받을 정도의 식당에서 대해서 내가 무얼 적든간에 그것이 '나만의 입맛'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나나 아내나 하고 있다. 실제로 그래서 아주 이따금만 카페나 맛집에 대한 글을 쓰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아내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기도 어렵다. 답변을 하기 위해선 나름의 정직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맛집의 조건이 뭘까?"

"응? 맛집의 조건?"

"그래. 생각해봐."

"어려운데 갑자기 물어보니."

"아까 가게 입구에 나오면서 맷돌 있었잖아. 그거 볼 땐 어땠어?"

"아. 재료를 직접 만든다."

"응. 맛집의 조건으로 맞는 것 같아."


 우리는 첫번째 조건에 합의했다. 맛집의 조건으로 뭐니뭐니해도,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같은 수준의 맛이라도 그 식재료의 생산에 관여한다면 훨씬 맛집의 자격에 부합한다. 예를 들어 커피의 경우에도 바리스타가 직접 생산지까지 가서 콩을 고르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제주메밀이라고 해야할지.오늘 온 식당의 이름을 명확히 하기가 어렵다. 대집합과 소집합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는 것은 메밀식당 이름이 아니라 영농조합법인의 이름이다. 이 식당이 취급하는 메밀을 직접 생산 및 가공한다. 이들이 냉면을 파는 식당의 이름이 제주메밀이다. 그러나, 외부인들에겐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는 이름 쪽이 더 알려져 있다. 나는 귀찮으니까 편의를 택해, 제주메밀이라는 '식당이름'으로 앞으로 쓰기로 했다. 


 어쨌든 이 제주메밀은, 맛집의 첫 조건인 식재료의 생산 관리에 매우 부합한다. 메밀을 직접 길러 수확해 내는 냉면이라니. 그 어찌 맛이 없을 수가. 

"더 생각해보자. 또 어떤 조건이 있지?"

"음...친절했어."

"음 괜찮은 조건이야. 맛집이어도 배짱장사하고 그럼 싫겠다."

"아까 메밀차도 좋았고."

"응."


 10시 30분에 우리는 9번으로 첫 홀 손님들이 만석이 되는 마지막 테이블을 차지했다. 이 순번을 놓치면 첫번째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워줄 떄까지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데 운이 좋았다.


 그런데 정말 소리도 빽빽 지르지, 이것저것 집어던지기 일쑤인 아기를 데려간 우리에게 사장님은 퍽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우리의 양해를 구하고 면을 먹는 아기의 사진을 찍기도 하셨다. 인스타그램에 올리신다고. 우리조차 아직, 우리 아기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없지만 우리는 동의했다. 이정도 서로 돕고 사는 건 필요하겠지. 


 그러나 그보다, 메밀을 직접 만들어서일까, 물을 따르려는데 플라스틱 물병이 따끈따끈하다. 황금색에 가까운 그 물을 따르니 구수한 향이 번진다.


"메밀차네."

"어. 따듯해서 좋네 면수도 아니고 메밀차라니."


 우린 첫 끼니를 먹는 주린 배를 따듯한 메밀차로 먼저 달랬다. 겨울엔 더욱 좋을 것 같은 이런 서비스는, 기대 이상이라고 해야겠지.


 우리는 대화를 계속했다.


"자 다음 조건은?"

"맛있어야지."

"응. 어떻게?"

"맛있어야지 맛집이면."

"그냥 맛있으면 안돼. 그게 새로운 맛경험이어야해."

"아."

 아내는 대표메뉴 두개를 시켰다. 비빔냉면과 비빔작작면이란다. 냉면이면 당연히 물냉은 하나 시킬 것이지, 알아서 시키도록 두었더니 서로 다른 비빔냉면만 두개라니 원망스럽긴 하다. 그러나, 특색있는 면 두개가 모두 맛도 좋고 '새로운 맛경험'이라는 점에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일반적인 비빔냉면류에 비해 고명이 다양하다. 다진고기가 따로 들어가서 마치 츠케멘을 먹는 것과 비슷한 식감이고 하고, 비빔작작면의 통 들깨가 오도독 오도독 입 안에서 터지는 식감도 재미나다. 오이와 무 등 여러가지 채소를 잘 사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건 약간 들기름 막국수 업그레이드 버전 같네."

"응 맛있어."

"그렇다고 남들이 하는 메뉴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안돼. 들기름 막국수 유행하니까 생각없이 고대로 따라하들 하잖아. 여긴 고명도 풍성하고 진짜 맛있게 업그레이드 한 거고. 이런 집이 흔치 않지."

"응."

"그리고 가격도 합리적이어야 해. 터무니 없이 비싸면 안되지."


 가격이 각각 12,000원. 내어놓는 퀄리티에 비하여, 그리고 영농조합법인이 일종의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점도 지출의 만족도를 높인다. 아마, 이 가격 부분이 제주메밀 식당에 사람들이 부지런히 찾아오도록 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 정도 맛의 새로움이나 품격이면 남녀노소 차별 없이 좋아할 맛인데 가격도 부담이 되지 않는 선. 고명이 올라가는 수준을 봐서는 수도권 웬만한 냉면집에서 15,000원 이상은 받을 수준이다. 

 8천원짜리 메밀만두 다섯알도 무난한 가격에 무난한 맛. 에피타이저로 냉면에 앞서 나오는데, 이렇게 먹고 총 32,000원이니 서귀포 윗자락, 제주시에선 멀리 떨어진 산간 마을에 찾아오는 보람이 있다.


 이, 새로우면서 보편적인 맛의 밸런스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막 새로운 걸 시도했다간 다양한 사람들을 충족시킬 수 없기 마련인데 홀을 가득 메운 손님들이 어린 아이부터 옆 테이블에서 우리 아이를 얼러주시는 할머니들까지, 호불호 없이 반가운 맛. 내가 꼭 여름이라서 냉면을 찾는 사람도 아닌지라 겨울방학 때 또 와서 맛을 보면 될 것이지만 서도,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아서 물냉면까지 시켜볼까 잠깐 고민을 해봤다. 여기까지 먹고 배가 퍽 부르지만 않았다면 정말로 시키지 않았을까.


 식사를 마치니 오픈시간 손님대기열이 마감이 되었다 한다. 시간대 별로 인원을 정해서 자르고 있는 모양인데, 10시반에 오픈하여 첫 마감이 채 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접 농사 지은 메밀만 쓰고 있으니 음식 생산량에 제약이 있을 것은 쉽게 예상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사업을 키우지 않는 점도 반갑다. 다시 찾아와도 맛이 쉽사리 변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식사를 마치고 작은 뒷마당과 옆 카페를 둘러보기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는 점이다. 카페에 식사 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많다. 식당이 외진 산간마을이라 주변에 딱히 유명한 카페도 없고, 여기서 그냥 순번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메밀로 만든 상품들이 조금 있어, 구경을 하기도 좋다. 원래 봉평 등, 메밀 산지를 가면 거기서 메밀 가루는 웬만하면 사오는 편인데, 여기선 메밀가루는 아깝게도 팔지 않는다. 아깝다. 있으면 살 뻔 했다. 


 뒷마당은 테이블도 있고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아주 더운 날씨였긴 하지만 아이를 앉히고 사진을 찍었다. 조금 선선한 날엔 여기 앉아서 하늘빛을 즐기는 게 제법 호사가 될 것 같다. 


 나만의 입맛이라. 시간과 돈은 한정되어 있다. 검증되지 않은, 바가지를 씌울지 모르는, 재료를 속일지 모르는 식당에, 특히 여행중이라면 돈을 지출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만의 입맛을 고집하기보단 남들이 많이들 가는, 그래서 검증이 많이 된 식당을 가는 것이 여행자에겐 순리다. 그런 것은 말 그대로 나만의 입맛일 수 없고, 자연히 그런 식당에 방문한 이야기는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와 다를 바는 없어진다. 남들이 하는 말과 같은 것을 떠들어댈 이유는, 그것을 또 누가 읽어줄 이유도, 그리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제주메밀의 경우, 식당이 품고 있는 '나만의 입맛'을 배워 올 수는 있는 곳이었다. 


 자기만의 입맛을, 찾는 손님들에게 맛경험을 늘려주면서, 그 식재료의 생산에도 깊이 관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는 그 맛의 가치를 높이는 것. 그런 곳에서라면야, 방문객은 겸손해진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입맛'을 갖고 있는 사람 또한 흔치 않을 것이니. 도리어 내가 갖고 잇는 맛의 기준, 맛집의 조건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좋은 식당 나쁜 식당을 더 잘 가려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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