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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14. 2022

가장 제주도다운 이탈리안, 옹포83

"어디 가지?"

"그러게...마지막 날 식사로 적절한 게 뭐가 있을까나."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공항에 모셔다드리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나서 이제 제주를 떠나야 한다. 제주에서의 사실상의 마지막 저녁이고, 우리는 뭔가, 그에 값한 의미있는 식당을 고르고 싶었는데, 적어도 그게 지금까지 먹어본 그런 음식이면 곤란하다는 생각.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바다에 발도 담구고 왔기에 우리는 에어컨을 쐬며 한동안 검색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내내 아기는 침대를 타고 화장대에 기어서 올라가 왕왕 소리치며 놀고 있다. 괜찮은...식당이...뭐가 있을까...하다가, 발견했다. 작은, 그리고 맛난 식당.

 제주도에 올 때마다 내 눈에 밟히는 것은 집채만한 카페들이다. 외지인들이 제주도 곳곳 땅마다 비싼 돈을 주고 매입해서는, 고래등만한 카페를 지어놓고 아메리카노 한잔에 6천원 씩을 판다. 그리고 그런 카페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먼저 와 자리잡고 있던 카페들을 경영악화로 밀어넣는다. 돈 놓고 돈 먹기의 성찬이, 이미 수십년 전 비극으로 물들여졌던 땅에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노라면 그곳에 머무는 것은 조금도 휴양이 아니다 나에겐.


 하여, 내가 바라는 제주도 식탁, 혹은 카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작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지불하는 커피 한잔, 밥 한그릇이 제주도의 돌뿌리를 걷어낸 포크레인의 기름값으로나 거대자본가들의 통장의 아주 작은 비율의 숫자로 치환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것이 아내의 여행 스타일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부분이라 할지라도.


 옹포83은 그런 부분에서,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제주도다운 이탈리안이었다.

 한림에서 협재 방향으로 한발짝만 향하면 나오는 옹포리. 한림항과 옹포리 포구에 접해 한적한 도로 한켠의 작은 골목에 무척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얼마나 집을 지은지 오래된 것인지, 식당 안에서 기지개를 크게 켜면 천장에 손이 닿는다. 그리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은 자동차가 하나 지나가기도 힘든 작은 골목에, 골목 입구에서 보면 이것은 완벽한 민가 골목이다. 길눈이 나쁜 사람은 지도를 보고도 식당을 찾기 어려운, 그런 작은 길목에 작은 식당. 하여, 테이블도 고작 네댓개. 한번에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수가 열 명을 겨우 넘는다. 너무 작은 골목이라 인근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2,3분은 걸어와야 하는 곳.


 작은 옛집의 마당엔 귤나무들이다. 그리고 예서 본채와 바깥채를 연결하는 공간에 차양이 설치되어, 식사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햇볕을 잠시 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섯시 반을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 앞에 한 가족이 대기하고 있다. 다행히, 4인 가족인 그분들이 양보해주셔서 2+1인 가족인 우리가 10분 이내로 기다려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다 시키면 안되나? 여기 너무 다 맛있을 것 같은데."

"아 무리야. 적당히 시키고 맛있으면 다음에 와."

"응 그런데 1번은 다들 먹는 것 같아. 그리고...2,3,4 중에?"

"돈까스도 맛있을 것 같긴 한데...크림파스타랑 크림 리조또랑 괜찮나."

"시켜보자. 크림 크림이어도 뭐 돈까스보단 특색이 있겠지."


 우리는 가장 대표메뉴로 꼽히는듯한 상하이파스타와 톳크림 파스타, 그리고 전복게우리조또를 시켰다.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도 하고, 제주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니 그래도 좀 무리를 해서라도 다 먹어는 봐야겠지. 


 그러나 나에겐, 오이조각 하나 서빙도 되기 전에 이미 이곳은 만족스러운 식당이었다. 딱 내 취향. 내가 바라는 가장 제주도스러운 모습이 이곳을 찾아와, 식당에 앉는 내내 관측되어왔기 때문이다. 한적한 동네, 작은 골목, 50년은 되보일법한 낮은 천장의 작은 집, 그곳을 고쳐서 만든 알뜰살뜰한 공간에, 특색있는 시푸드 파스타와 리조또다? 이건 맛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여,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세 음식이 차례 차례 서빙되었다. 샐러드가 개인마다 작게 서빙되는 점이 무척 반가운 점. 첫번째로 나온 상하이 파스타는 수르르에서 먹어본 것과 비슷하게, 조개 육수를 베이스로 한 국물 파스타다. 새우, 조개, 올리브, 시어링된 마늘이 조합된 칼칼하면서도 맛깔난 매콤한 국물. 거기에 탱글하게 잘 삶아진 스파게티면이 어우러진다. 


"어 이게 만원이라고? 굉장한데?"

"이거 치즈가루인가?"

"응. 그런데...이 단가에 치즈가루를 뿌릴 일인가?"


 놀랍다. 다른 것보다도, 평균 만오백원 정도 하는 단가의 단품메뉴들이 이렇게 정성이 들어갈 일일까? 시어링된 마늘도, 올라간 새순이나 치즈가루도 이 단가에서라면 굳이 넣지 않아도 되고 빼거나 줄여도 얼마든지 손님 입장에서 만족하고 먹을 수준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음식이 워낙 맛나다. 그런데 이렇게 부재료를 넉넉히 쓰는 집이 있나?

 그 놀라움은 이어진 두 메뉴에서도 그대로 간직되며 새로워졌다. 톳 크림 파스타는 톳이 정말이지 넉넉하게 들어갔는데 거기에 패스트리 스틱까지 크림소스를 즐길 수 있도록 토핑되었다. 


"허어. 이거 정말. 패스트리는 구우신 건가?"

"피자도 있다며."

"응 근데...오븐이 있으니 피자를 하실 테고, 페스트리도 구우실 테지. 근데...이럴 일인가."


 이럴 일인가. 이게 정작 음식이 맛이 없으면 그리 큰 메리트가 아니다. 그러나 톳크림에서도, 이어 나온 전복 게우 리조또에서도, 톳과 게우의 그 향긋한 바다향과 눅진한 고소함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치즈가루, 새순, 리조또엔 구운 단호박에 채 썬 파푸리카들까지?


"맛있지?"

"응 리조또가 되게 고소하네."

"게우니까."


 좋은 재료를 써도, 재료에서 맛을 뽑아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알이 잘잘한 전복 두개에서 나온 게우로도 이토록 맛있는, 그리고 양도 넉넉한 리조또 한그릇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날의 식사는 정말,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내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가장 넉넉한 식사였다.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여행을 하며 느껴온 거대 자본의 그림자, 그로 인한 피로감을 벗어내기에도, 그리고 제주도의 맛과 멋을 느끼기에도 완벽한. 그리고 좀 쓸데없는 이야기인데, 호기심에 슬쩍 가게 안에 걸린 사업자 등록증을 보니 옹포83의 의미는 사장님이 나랑 동갑이신듯. 어찌됐든. 


 가격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가격이 책정되는 구조가 더욱 중요하다. 비싼 음식이어도 그 가격구조가 명쾌하고 의미가 있으면 지출을 할만하다. 반대로 저렴한 음식이어도 그 단가가 산출되는 내역이 문제가 되면, 그것이 아무리 값 싸도 지출은 꺼려진다. 그런데, 옹포83에선, 이 가격에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맛과 꾸밈새가 고유성을 갖춘 음식들과 함께 제공되고 있었다. 


 어떻게 이 퀄리티의 음식에서, 이 가격이 가능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쓸데없이 비싼 땅에, 고래등같은 건물을 지어놓지 않았고, 그래서 온전히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고, 그런 곳에 감춰진 식당이니, 오로지 맛에. 맛과 멋에,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것일 터다. 그러므로 옹포83은 제주도에서 발생한, 가장 제주도스러우면서도 맛난 그런 식당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식사를 마치고 나와, 일부러 주차를 한 곳을 빙 돌아서 골목을 통과해 지났다. 저물녘의 제주바람은 시원하면서도 습해, 걸을만하면서도 걷기 고달프다. 옹포의 작은 집들, 사람이 사는 곳들, 오래된 옛집을 돌아보며 우리는 정든 숙소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그리고 오태식 해바라기 치킨을 먹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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