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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07. 2022

향긋한 탐식의 맛, 콘치즈 피자

억떡케 맛이 없을 수가 있는가

 오븐 속에서 두시간 반, 그럭저럭 도우가 발효가 되어 부풀었다. 반죽을 해서 넣었을 때는 이보다 2/3 정도 크기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성공도 아니다. 절반 가량의 성공. 피자 도우는 무슨 밀가루로 반죽해야하는지 알아보지도 않았고, 인스턴트 드라이 이스트로 부풀리는데까진 성공했는데 그렇다고 계량을 잘 한 것도 아니고 뭐 베이킹소다라도 같이 넣어서 부족한 발효시간을 보완한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이다 그럭저럭. 그럭저럭, 피자를 만들 수 있을만큼으로만 부푼 밀가루 반죽. 


 예전엔 발효도 없이 피자를 만들었더란다. 동두천에 핫피자라는 썩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집이 있는데, 거길 다녀와서는 또 흉내를 내보겠다고 돼지고기를 썰어다가 몇번이나 피자를 만들었었다. 어떨 땐 너무 짜고, 어떨 땐 도우가 부풀지도 않고. 세번째쯤엔 만족스럽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고 나니 또 피자를 만드는 일은 그만두었다. 디스 이즈 마이 라이프. 맛있게 만들 수 있게 된 순간 흥미를 잃어버리지.

 오늘, 이 콘치즈 피자를 만들게 된 것은 약 한달 전 바깥양반의 친구 부부와 갔던 계곡 속 카페 때문인데, 거기서 메인메뉴로 콘치즈피자를 팔고 있었다. 거의 모든 식사 테이블에선 저걸 시키고 있었다. 바깥양반의 최애 음식 중 하나가 콘치즈이고, 나 역시 피자를 좋아하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 메뉴인 것이냐. 그래서 기회를 넘보고 있다가오늘, 조금 시간이 나서 피자를 만들기로 했다. 원래는 아침에 도우를 만죽해서 내도록 발효시킬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그만 하드코어하게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소분되어 얼려져 있던 옥수수를 해동시켜 팬에 올리곤 도우를 손으로 대강대강 성형한다. 사실 성형이란 것도 웃기지. 밀대도 쓰지않고 그냥 손으로 대강 누르는 판이다. 밀대...정도는 써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되지만...귀찮아...귀찮아...그냥 손으로 눌러도 되는데...귀찮아...


 마트에 타공판도 없어서 애초에 잘 만든 피자와는 궤도가 달라져버린 판이다. 타공판 대신 튀김망에 거름망을 깔고 도우를 올린다. 그리고 버터와 함께 볶아진 옥수수에 치즈를 조금 넣는다. 이렇게 하면 콘치즈까지 절반은 완성. 

 크림소스를 마트에서 아무거나 집어왔다. 생크림도 좋고 크림소스도 아무거나 잘 어울릴 것 같다. 원래는 생크림도 직접 만들어보려던 참이지만 글쎄...아직 생크림으로 뭘 만들어야 할지 계획이 별로 없다. 숟가락으로 크림소스를 넉넉~히 도우에 발라. 그 위에 잘 익혀진 콘치즈를 올려서 다시 편다. 그리고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다시 조금 올린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이제, 굽기만 하면 된다.


 여기까지 사진을 찍고서 딱, 찝찝하여 검색을 해보니 사진에 찍힌 거름망은 오븐에 넣으면 안되는 소재로구나. 뺀다. 어차피 튀김망에 달라붙지 않게 하려던 것이라, 도우를 반죽하면서 보니 달라붙지도 않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아웃. 그리고 나는 남은 반찬들을 장만한다. 

 괜찮다. 마음에 들게 콘치즈피자 완성. 다음엔 타공판을 사서 제대로 해보고, 이스트와 베이킹소다를 계량을 해서 넣어 발효를 넉넉히 시키고, 또한 밀가루도 강력분의 비율을 생각해본다면, 더 맛있는 피자가 되겠지. 지금 이 피자는, 맛이 없지 않다. 제대로 되었다. 도우도 그럭저럭이지만 부풀긴 부풀었다. 꼬투리가 그래도 바삭하게 구워졌다. 크림소스와 배합된 옥수수와 치즈의 맛은, 그야말로 탐식의 맛. 살이 찌는 몰양심과 파렴치의 맛. 그런 피자가 완성되었다. 


 요 근래 밥상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아기 때문에 외식에 제약이 가해지니 그만큼 바깥양반에게 먹는 것에는 충분한 기쁨을 누리도록 하려는 시도이기도 하고, 그냥 내가 이러고 사는 게 좋으니까. 덕분에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도 보다 살뜰히 제 몫을 한다. 예전에 한동안은 밥을 차려먹는 일에 소홀해져 퍽, 음식들을 버린 적도 있다. 지금은 밥을 차려먹는 것 이상으로 제대로, 잘 차려먹으려고 한다. 아직 나에게 익히고 배워야 할 경험과 지식들은 많이 남아있다. 


 다음엔...냉동실에 작년에 술안주로 먹고 남은 살라미가 있는데 그걸로 피자라도 해볼까 제대로 발효시켜서. 옥수수도 넣고 양송이도 넣고 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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