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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07. 2022

짜장 사먹지 말까

막상 또 오랜만에 해보니 쉬워.

  그날은 금요일쯤이었다. 오늘은 뭐 먹지? 하며 고민하던 퇴근길. 바깥양반에게 전화를 거니, '초밥'이라는 짧고 굵은 답변이 돌아온. 하여, 퇴근길에 초밥집에 들러 모듬초밥을 하나 포장해 가, 바깥양반 앞에 펴놓고 나는 밥과 반찬을 꺼내어 먹다가, 아아- 짜장면이 땡긴다- 했던.


 짜장면이 땡긴다. 청명한 가을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소한 짜장의 냄새가 가을 바람에 넘실넘실 파도치듯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면 그날 저녁은 아주 행복한 시간이 되는 거지. 땡길 땐, 먹어야 한다. 이번엔 오랜만에 짜장 만들기. 간짜장으로. 


 신혼 시절 딱 한번 간짜장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그보다 얼마전 마리텔에서 백종원씨가 간짜장 만드는 장면을 본 바도 있고, 한창 간짜장을 바깥양반과 함께 먹고 다니던 시절이다. 내가 혼자 책임지는 주방이 생겼으니 그때 참 여러가지 음식을 했더란다. 그렇게 자주 할 음식과 이따금만 하는 음식이 구분되고, 특히나 짜장의 경우엔 한번을 해먹고 나서는 또 밖에서도 드물지 않게 먹게 되는 음식인지라 더더욱 집에선 만들지 않게 되었다. 바깥양반의 최애 음식은 탕수육. 미미향 탕수육.

 이날을 위해 준비한듯한 앞다리살과 양파를 충분히 볶은 다음에 양배추를 넣는다. 대파도 파삭 볶아서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대파가 떨어졌다. 장을 한번 또 보러 가야 하는데 대파의 경우엔 짜장에 필수는 아니라서. 대신에 아삭이는 식감은 양배추로, 간짜장의 풍미는 양파를 넉넉히 볶아서 내었으니 준비는 이정도면 될 것 같다. 


 다행한 것은 마침 장을 보면서 소포장된 춘장을 샀다는 것이다. 옛날에 그 박스에 담기던 춘장이 둘이 먹을만큼 만들기엔 너무 커서, 그 춘장을 얼마간 보관하느라 냉장고 공간을 허비해야 했는데 이번엔 딱 만들어서 3인분 정도. 둘이서 먹고 남은 건 도시락으로 싸면 되니까 만사 오케이. 마침 양배추도 반통에 1500원에 사왔다. 

 옛날엔 간짜장이 힘들다고 느꼈는데 지금 해보니 생각보다 쉽다. 이제 짜장면 시켜먹지 말까. 음 면이 문제다. 면도 수타면을 해볼까 말까 싶을 정도로 내가 궁상을 떤다는 것은 그만큼 짜장 소스를 만드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춘장을 미리 기름에 볶고, 그 기름에 양파와 고기를 볶고, 그리고 양배추와 춘장, 넉넉한 분량의 설탕을 얹고 한바탕 볶아내면 끝. 불만이 나거나 하진 못하지만 사먹는 것보단 낫다. 요즘 들어, 간짜장 제대로 하는 집도 없지 않나. 간짜장에 계란후라이 올려주는 집도 없고. 면만 해결되면 되는데 칼국수 면 정도만 마트에서 사오면 해결된다. 만두피와 칼국수 딱 두개만 사서 먹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단가에 비해 들어가는 수고가 너무 많단 말이다.  

 때깔이 마음에 들게 뽑혀진 간짜장 소스를 두고 계란후라이를 시작한다. 중국집 후라이 스럽게 기름을 넉넉히 올리고 뜨거어어업게 가열한 상태에서 계란을 투척하니, 이내 파글파글 계란이 부풀어 오르며 후라이가 완성된다. 사실 이 시점에서 계란후라이를 이쁘게 하려면 자리도 바꿔주고 굴리고 하면서 바삭하게 구우면 좋은데. 바쁘다 밥도 퍼야 하지 간짜장도 담아야 하지. 조금 지나 불을 꺼두고 어찌어찌 튀겨지듯 구워진 계란을 꺼낸다. 


 이렇게 밥을 차리며 설거지도 같이 하고 있으려니 한 시간이 훅 간다. 바쁘다. 이제 아이도 씻겨야 하고, 재우기까지 하고 나면 10시쯤은 된다. 그럼 그제서야 내 하루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한두시간 남짓 겨우 글을 쓰거나 책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굳이 밥상을 차려야 하나, 나 역시 늘 고민은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 나는 내 손으로 밥상을 차리도록 길러져왔고, 성숙된 인간인지라 다른 방법은, 택하지 못한다. 그럼 또 밥 차리고 돈 벌고 하다보면, 아이도 크고 내 갈길도 열리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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