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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29. 2022

차돌을 굽는다고 목기에 불쑈를 하면 등짝이 불탑니다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구

 그것은, 바깥양반이 결혼선물로 친한 언니에게 받은 목기였다. 혼수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시집을 오며 들고 온 것이니 혼수에 준한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식기일 터이다. 


 그리고 이 식기는 신혼 때 우리의 손님맞이를 위해 제법 역할을 했다. 다른 목기들과 함게 손님맞이 상에 제법 쓰였다. 나는 나만의 주방을 가진 기념으로 여기에 여러가지, 요리들을 담아 손님에게 내놨다. 


 그리고 오늘 그 목기는 불에 그을러, 본래의 형태를 잃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급함에서 일어난 화일러니. 금요일이었고, 당근마켓 거래를 하기로 했다. 문화센터를 마친 바깥양반과 동백이를 픽업해서 우리는 제법 먼 동네까지 원정거래를 했고, 그러고 나니 저녁 먹기에 대강 늦은 시간이다. 뭐라도 먹여야지, 하며 마침 또 그날은 월급날이었던지라 나는 오랜만에 차돌박이를 샀던 것이다.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음식인. 그리고 차돌박이도 한우로다가 샀겠다 한달의 노고를 치하하며, 또 한주의 육아와 근로를 치하하며 맛난 저녁식사를 해주기로 했던 것이다.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건 나에게나 바깥양반에게나 씀씀한 일이다. 매일 같이 아침은 뭐 해먹지, 저녁은 뭐 해먹지 고민을 하는 것도 고달픈 일이지만은, 그래도 총알같이 머리를 스치우는 아이디어로 그래 오늘은 이걸 해야지 결단이 내려지면 집에 가는 길은 신바람이 난다. 


 나도 배가 고프고, 바깥양반도 배가 고프고. 아이는 내내 활달하게 차에서 놀고. 하니, 오늘은 금요일. 맛있는 저녁을 해주는 날.


 또, 급하게, 옷도 마저 갈아입지 못하고 우선 팬에 버터와 양파부터 쑹덩쑹덩 썰어 올린다. 


 메뉴는 크림차돌파스타.

 패투치노를 끓이면서 양파가 살짝 갈색으로 그을렀을 즈음에 팬에 고사리와 도라지 나물을 올린다. 약간, 한국식이야. 퓨전이지. 영월에서 살롱드림이라는 식당에서 이렇게 산나물들을 곁들인 파스타를 판다. 맛이 정말 좋았다지. 그래서 크림파스타를 만드는 길에 한번, 추석 때 엄마가 해준 나물을 얼렸다가 해동시킨 것을 넣어본다. 고사리나 도라지나, 크림의 향을 억누르는 맛들은 아니다. 오히려 기름지고 느끼할 수 있는 크림 소스의 맛을 중화시켜 줄 수 있을듯하고, 여기에 차돌박이를 올릴 것이니 딱 어울릴 것 같다. 으음. 차돌을 크림파스타, 그리고 도라지와 고사리와 함께 한입이라니. 즐거운 일이야. 

 파스타는 뭐 손쉽게, 만들어졌고 나는 그것을, 모처럼이니 목기를 꺼내서 차돌박이를 한장한장 떼어 펼쳤다. 


 원래 계획은 이랬다. 토치를 가지고 여기다가 화르륵~해서, 그대로 파스타 위에 토핑된 차돌박이를 익히는 것. 그럼 편리하면서 오늘의 요리의 화룡점정이 될 수 있는 조리법에 비주얼이 될 수 있을 것이어서, 한 손엔 폰을 들고 사진을 찍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


"...!?"


 망했다. 속 시원하게 망했다. 


 꽁꽁 얼어있던 차돌박이는 생각보다 늦게 익었고, 토치의 엄청난 불길에 그릇이 화르륵 하고 그을러버렸다. 아니, 탔다. 불이 화르륵 하고 오른 것은 아니지만, 탔다. 검댕이 됐다. 아앗, 바깥양반이 결혼선물로 받아온 것이!


"아 배고파."

"어어. 어. 기다. 려."


 아이와 놀아주느라 집에 와서도 칼로리를 끊임없이 소모하고 있는 바깥양반은, 아이를 안고 나에게 다가왔고, 이 시점에서 나는 다급하게 파스타 위에서 차돌박이들을 건져 팬에 옮기던 참이다. 그리고 다시 토치를 켜, 불쑈를 구경은 시켜주었지만, 말을 할 순 없었을 거야. 누가 봐도 혼날 일이잖아. 


 차돌박이는 지글지글 끓는 숯불에서야 3초면 익는다지만, 토치의 불길에서는 전혀 그런 나긋나긋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목기는 차돌보다 먼저, 그보다 먼 곳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차돌박이에게 끼얹고 있는, 바로 토치와 같은 등짝의 불길을 예감한다. 대체 왜 그랬던 거냐며. 목기는 왜 꺼낸 거냐며. 

 하여, 나는 그 목기 그대로, 다만 키친타올로 그을린 부분을 닦아내서 상에 올렸다. 차돌박이는, 따로 팬에서 바싹바싹 구워다가 파스타 위에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생각과 같이 도라지와 고사리 그리고 파스타면과 같이 쑹덩쑹덩 우리의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그리고, 이 목기 녀석은, 아직은 살아있다. 


 불타오른 등짝의 흔적을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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