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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03. 2022

첫 돌, 첫 수수팥떡

그리고 삼신상

"단비아빠도 먹어봐 생각보다 맛있네."

"뭔데 이게?"

"얘가 만든거라는데 맛있어."

"이게 뭔데요?"

"수수팥떡. 얘가 만들었대 나는 한번도 해준 적 없는데 자네도 먹어봐 파는 것보다 맛나네~ 팥고물도 이렇게 묻혀있고."

"그거 내가 팥도 다 쑨 거야."

"진짜요 처남? 팥을 쒔다고?"

"이거 봐 여보. 우리 엄마가 이렇게 칭찬을 해주니까 우리가 자존감이 잘 형성된 거라니까."

"아냐 너도 먹어봐. 진짜 맛있다니까?"

"어어. 맛있네."


 돌잔치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나는 새벽에 삼신상과 함께 만든 수수팥떡을 디저트 겸해서 내어놓았고, 엄마는 홀홀 몇알을 드시더니 아빠에게도,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누나와 매형에게도 하나씩 권했다. 나와 바깥양반이 아침끼니 대신에 넉넉히 먹어두었기 때문에 식사 자리에 가져온 건 열개 남짓. 동백이 역시 한 알을 집어주어서 잘 자란 앞니로 오물오물 몇입 긁어먹었다. 작게 만든 것이라도 한 알을 그대로 아이가 먹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 목에 걸리다간, 찹쌀과 수수로 만들어진 떡이라 한살박이 아이에겐 정말 큰일이지.


"야 근데 이것만 했냐?"

"어어 뭐 다음에 말혀. 누구 생일 때든 만들어줄게."


 나는 네명의 조카들을 보며 시원스럽게 답했고, 그 사이 남은 수수팥떡은 통에 담겨 엄마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누나 다음 생일에 그럼 만들어오련!"


 수수팥떡. 아빠에게도 딸에게도 인생 첫, 수수팥떡.

 내가 팥을 쑤기 전에는 그것은 다만 하나의 바밤바에 지나지않았다. 팥. 엄마는 팥밥을 좋아하셨지. 그래서 결혼을 하고 대보름 쯤이었던가, 오곡밥을 하는 김에 팥도 사서 나중에 팥밥을 만들어본 일도 있다. 그런데 세상에 팥밥은, 평범한 수준의 쌀불리기 정도로는 부드러워지지 않는구나. 팥밥을 통해, 생각보다 팥이 손이 많이 가는 놈이라는 걸 알고 그간 거들떠본 일이 없다. 


 대신 통조림을 두어번 사서 팥빙수를 만들어본 적은 있지. 그러나 작은 통조림이라도 그 달디 단 팥소를 모두 다 먹기엔 한세월이다. 하나의 팥 통조림을 까서 많아봐야 빙수 세번을 만들어먹으면 남은 팥은 곰팡이가 피어 버려지기 일쑤. 그러나 직접 팥을 쑨다면 좀 번거로울지언정 버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대강 밥 한공기 정도의 팥을 불리기 시작했다. 내가 장을 봐서 집에 온 것이 대강 12시. 삼신상 준비는 새벽 3시이므로 시간 여유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스피드업을 하기로 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팥 불리는 물을 계속 갈아주며, 상당한 고온에서 콩을 불렸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빨리 불려지지 않을까. 


 그러나, 나의 수수팥떡의 난관은 단지 팥만이 아니었으니. 

 수수. 수수가루가 필요한데 수수가루는 마트에 없다. 아니, 정말로 집에서들 수수팥떡을 해먹는 세상은 아닌가보구나. 사실 나도 생판 몰랐다. 우리 집이나 바깥양반 집이나 전혀 없던 문화였던지라, TV의 육아예능을 바깥양반과 함께 보고서야 그런 것도 있구나 뒤늦게 안. 동지 섣달에 팥죽을 쑤워먹는 건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는데 아이 생일에 팥떡을 만드는 것은 잘 모르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들지만, 좋은 전통이라면, 그래서 아이의 생일에 아빠로서 뭐라도 하나 더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야. 


 ...라는 생각이긴 했지만 가루가 없다는 건...난감한 문제다. 그래서 마트에 서서 급하게 온라인쇼핑몰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가장 빠른 배송이 내일 새벽이다. 그럼 이미 늦잖아. 삼신상에 올리고 싶은 거라구. 물론 수수팥떡 자체가 붉은색과 붉은색의 결합이라 태양을 상징하는 요소가 둘이나 들어가서 귀신을 몰아내는 의미이니 삼신상에 어울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저 딸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럼 고민을 할 것도 없지. 검색을 해보니 다른 주부님께서 무려, 수수를 직접 가루를 냈다고 하니. 나도 따라해보기로 했다. 먼저 수수를 잘 씻어서 오븐에서 건조하기로. 아 그런데 수수가 붉은 곡물이긴 한지 물에 붉은색이 물씬 배어난다. 신기하네.

 오븐에서 70도에 무려 4시간을 수수를 말렸다. 그때쯤이 되니 가루를 만들어놓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제 이걸 가루를 내야 한다는 건데 사실, 수수를 직접 가루를 낸다는 아이디어를 내가 막힘없이 따르기로 한 것이, 나는 매일 콩을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서 먹는 사람이잖아? 그럼 어려울 것도 없지. 간단하다. 갈고, 채에 거르고, 또 갈고, 거른다. 

 대망의 새벽, 나는 세시에 알람을 맞추었고, 알람이 울리고나서 10분 정도 뭉게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장 먼저 한 일은 12시간 이상 불려진 팥을 팔팔 끓이는 일. 그리고 건조시켜 둔 수수를 믹서에 갈기 시작했다. 


 이게 참, 하면 하는 일인데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다. 수수를 갈고 채에 거르고 또 가는데에만 30분이 걸렸다.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 전에 삼신상까지 다 차려야 하는데 이래서야 너무 타임컨슈밍한 플랜 아닌가. 다음에 수수팥떡을 만든다면 가루를 살까싶기도 하다. 어쨌든 어제 샀던 수수는, 가루를 내릴 분량만 빼고는 잡곡으로 섞여서 플라스틱 텅에 함께 소분되어 있다. 


 컨텐츠 측면에서, 브런치를 한 3년 했나. 그 사이에 요리글이 50편은 넘을 텐데, 유사한 메뉴로 글을 쓴 일을 손에 꼽는다. 평소에 해먹는 것은 많지만 그것들이 사소한 한끼 식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부부의 생활 기록 말고 요리글에 대한 중대한 목적의식은 두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밥 해먹고 사는 일을 글로 쓸 일은 줄어든다. 해먹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같은 음식으로 여러번 글을 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수팥떡이라는 메뉴는, 처음 해보는 메뉴인데다가 그걸 안쓰기엔 너무나, 첫 딸의 첫 생일이지 않느냔 말이지. 


 그러니 하루 하루 밥해먹고 사는 일이 고작이라 할지라도 또 이런 좋은 점은 있다는 이야기. 또, 1년 뒤에 수수팥떡을 만들게도 될 것이고, 그 사이에 아이는 클 테고 그럼 간식도 새로이 이리저리 만들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요리 글만 100편을 채울까 싶기도 하고.  


...라고 하는 생각들이, 30분의 지루한 수수가루 공정을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인내심의 결과물은, 찹쌀가루를 마침내 만나, 뜨뜻한 물에 익반죽이 되기 시작.  

 마침 40분 가까이 가루만 내고 나니 팥도 거진 다 쑤어졌다. 볼에 내어서 조금 식고, 수분도 날아가게 두고 나는 그 냄비를 그대로 씻어서 물을 다시 채워 끓인다. 이제 경단을 만들어서 떡을 끓여낼 차례. 검색해서 찾아본 레시피에 따르면 조금 수분감 있게, 찰진 반죽으로 하라는데 하다보니 찰지겐 됐지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찌는 것도 아니고 물에 바로 끓여낼 거라 수분이 많으면 곤란한 점이 생긴다. 하여 나는 50g 정도 되는 찹쌀가루를 더해 수분을 낮추었고, 그러느라 경단을 빚을 때 조금 빡빡해서 고생을 했다. 그러나 경단을 하나하나 뚝뚝 떼어서, 어린들 입 사이즈로 그리고 동백이도 씹을 수 있는 사이즈로, 잘 만들어서 이제 끓인다. 퐁당퐁당 우수수, 끓는 물에 팔팔. 요즘 아이 책을 읽어주느라 입에 의성어가 좀 붙네. 

 이제, 그렇게, 수수팥떡 완성. 한소끔 떡이 끓여내지는 동안 나는 설탕 한 큰술, 소금 반술을 넣어 팥고물을 숟가락으로 쓱쓱 눌러가며 으깨 문댔다. 내가 뜨거운 물로 불려서 그런가 팥이 생각보다 색이 진하지 않은데, 사실 대개 사서 먹는 걸 집에서 만들다보면 이런 꼴을 꽤나 자주 본다. 파는 사람이야 맛깔나게 색도 내고 향도 내고 하는 것이고, 집에서 하는 입장에선 오로지 음식이 깔끔하고 건강해야 하니, 팥이 색이 많이 빠지기도 하고, 팥을 쑤다가 물을 한번 버리고 나서 새로 끓이는 타이밍이 뭔가 잘 몰랐을 수도 있고.


 팥소를 슬쩍 먹어보니, 야 웃기다. 슴슴하니 고소하고 담백하고 달큰한, 딱 부드러운 팥고물의 맛. 팥고물을 완성해두고 천천히 냄비에 떠오르기 시작한 경단들을, 수수가루를 거르던 거름망으로 하나 하나 건져낸다. 


 수분을 오래 빼면 안될 거야. 수수경단이 팥소에 잘 묻도록, 살짝만 열을 식힌 뒤에 팥 소에 경단을 넣는다. 그런 다음엔 고민하지 않고 경단에 그대로 팥소를 뭉쳐서 쓱쓱. 


 이 마지막 공정은 2년쯤 뒤부턴 동백이랑 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고 재밌는 공정인데다 낼름낼름, 완성된 경단을 하나 입에 쓱 굴려넣기도 딱이다. 아이를 위한 부모님의 사랑 같은 요리가 수수팥떡이지만, 진정 아이를 위한 음식이기도 한 모양새다. 이렇게, 아이에게 하나 하나 구경시켜주기도 좋고, 마지막에 경단을 같이 빚을 때도 좋고, 그걸 팥소에 뭉칠 떄도 좋고. 두루 두루 좋네. 


 그래서 나에게 새벽의 요란과 소동이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수수팥떡을 만드는 두시간. 그 사이에 미역국도 충분히 풀어질 만큼 끓여졌다. 삼색나물은 떡에 비하면 금새 완성되었다. 우리의 한 해. 우리의 일년. 아이의 첫 한살 살이가, 오늘 새벽 그 터닝포인트를 지난다. 


 아무렇지 않을 것 같던 그 하루, 우리는, 어쩌면 생애 가장 길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그런 하루를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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