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정선 가서 먹어봐야징
"아니, 야. 만둣국 있었으면 그걸 시켰어야지."
"아아니 여기 강원도 대표음식이라고 하니 콧등치기 시켰지."
뜬금없는 논쟁이 식사를 마친 밥상에서, 정선의, 정말로 한적한 시골마을의, 슈퍼였다가 식당이 된, 낡은 가정집 안방에서, 온 가족들이 출연한 십여개의 가족사진들, 그 액자들 주렁주렁 달린 벽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아...이 솜씨면, 만둣국도 보통이 아닐 텐데."
"만둣국 엄청 좋아하는구만."
그래 나 만둣국 좋아한다, 왜.
그러니까 번영식당의 경우, 이 밥상이 5천원. 그리고 이 콧등치기 칼국수도 5천원. 그러니까, 둘 네 여섯...11개의 산채나물 밥상에 옛날된장에 두부조림에 푸짐한 보리밥 두 그릇에 칼국수 한 그릇이, 단 돈 만원.
나중에 여력이 생기면 독자미감에도 쓰려고 했지만서도, 야 이게 진짜 참맛이다 싶은 맛집에 모처럼 와서, 이토록 착하고 아리따운 식단에 내가 좋아하는 만둣국이, 메뉴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돌보느라 바깥양반이 메뉴를 시키는 것을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나는 뒤늦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다가, 이 곳이 만둣국도 만드는 곳임을 그제서야 알았고, 이 정도 솜씨면 분명히 만둣국도 맛이 없을리가 없다고, 이야! 나는 왜 몰랐느냐! 하며 뒤늦게 가슴을 치는 일이 있었던 것이, 지난주.
그리고 오늘,
"저녁에 떡만둣국 됩니까."
"어? 왜? 갑자기?"
"아니 좀 따끈한 국물 생각나네."
"어휴...하면 되지 뭐."
바깥양반이 외출 길에 떡만둣국을 갑자기 신청하시는 이 시점에서 내 사정을 말씀을 드리자면, 석사과정이 끝나가고 있는 관계로 논문을 쓰기 위해 몹시 바쁜 나날에, 더더군다나 글을 쓸 짬도 나지 않아서 이태원 참사도, 교육에 대한 고민도, 하루 하루의 아이들과의 이야기들도, 감히 올릴 짬이 나지 않는 판국이다.
그런데 이제, 논문 초안 제출이 딱 2주 남은 오늘 바깥양반은 저 멀리 왕복 세시간이나 걸리는 코스로 마실을 나가자고 하시고, 아비이자 지아비 된 도리로서 그런 가족을 위한 헌신을 아니할 수 없느고로 나는 우선 외출을 하러 나간 뒤, 떡만둣국을, 신청대로, 만들기로 했다.
집에 와서 한시간 쯤 자는둥마는둥, 체력을 보충한 뒤에.
그-으...그러니까 요리인간에게 만두와 같은 요리는 참으로 타임컨슈밍하면서도 그 노고와 시간 투자가 그리 나쁘지 않은, 가성비템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요리인간이라 함은, 근래 들어 주위 어딜 보아도 이처럼 미련하게시리 밥을 해먹고 사는 요즘 사람들이 없는데다가, 각종 배달 서비스와 밀키트 덕으로 하던 사람도 안하던 판국이며, 그그더더욱이나, 남자잖아 나는. 여기서 나는, 요리를 하고 요리에 진심인 사람이 마치 별도의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그런 족속들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였고, 요즘 들어 나는 어쩔 수 없는 요리인간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습관이 사람을 만들듯 나의 이 버릇은, 진짜로 잠을 줄이고 수명을 줄여가며 숨쉬듯 밤샘 논문작성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이때에도, 다른 요리도 아니고 떡만둣국이라면, 이 아니 기쁠소냐 하며, 아직 체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이 판국에도 과감히 일어나서, 몇가지 재료를 챙겨 싱크대 앞에 서도록 하게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만들기 시작한 만둣속이란, 부추에 대파 흰 부분, 매널, 두부반모, 돼지고기, 갈빗살, 내가 손수 다진약 300g 정도로, 손쉽게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리인간에게 만두가 이-지한 가성비템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냥 다지기만 하면 된다. 뭐 얼마간 졸이고 얼마간 삶고 하는 둥의, 구구절절한 조리법이란 없는 요리가 만두.
만둣속을 꾸미는 것이 버라이어티하다. 고기를 내가 손으로 다지는 건 미친짓이고 그냥 마트에서 5천원 짜리 간 돼지고기만 사면, 나머지, 뭐어 숙주나물을 넣어도 되고 당면을 넣어도 되고, 레시피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되는대로" 요리를 하는 사람도 만들기 쉽다.
만두피는 파는 걸 사면 되고, 만두는 대강 아무렇게나 빚으면 된다.
딱 하나 어려운 게 간일 터인데, 대강, 대강, 비빔밥 분량의 만둣속이 있다면 거기에 적절한 분량의 참기름의 분량만큼 소금을 넣으면 된다. 그보다 조금 쉽게 설명을 하자면, 짜장면을 한그릇 정도 되는 만두속이라면 완두콩 네 알 정도의 소금이면 된다. 아 쉽다.
해동은 좀 덜 되었지만, 만두를 샥샥 빚는다. 반으로 접어서, 다시 한번 반으로. 육수는 미리 내 두엇다. 아까 잠깐 눈을 붙이기 전에 소고기 국거리 한 줌을. 그리고 만두를 빚기 전에 떡도 넣어두엇기 때문에, 이제 만두만 퐁당퐁당 넣고 한소끔 끓이면 땡.
사실 이보다는 조금 더 성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계란 지단도 만들고, 당근과 부추로 만둣국에 꾸미도 좀 올려주고 하면, 이보단 먹기 좋겠지. 그러나 그럴 여력은 나지 않아서, 나는 금새 만들어진 만둣국을 잠깐 두고, 설거지도 하고 이유식도 만들며 시간을 보내다가, 도저히 아기가 잘 기미가 안보여서 그만, 바깥양반에게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하고 아이와 함께 거실에 앉았다.
아쉬움이 남는 만둣국. 맛은 정말 최상의 그것이야. 이 한그릇의 만두국에 조미료라곤 다시다 티스푼 하나 분량이 조금 안되게 들어가 있다. 그러나 국거리 양지를 푸욱 고아내고, 거기에 돼지고기, 부추, 두부 등등...아, 두부는 초당두부다. 어쨌당간에 좋다는 재료들이 두루 제 몫을 해 놨으니 국물부터 진국이다.
비록 고명은 올리지 못했지만, 그리고 부부가 같이 앉아서 먹지는 못했지만, 요리인간에게 끼니란 이런 것이기도 하지. 한 상, 잘 만들어 차렸으면 뒤에 앉아서 식구들이 먹는거나 구경을 하다가, 뒤늦게 적당히 식은 음식을 훌훌 들이키는 것.
이만하면 되었다. 이만하면 최상의 한끼다. 내년에, 정선에 가거든 번영식당에서 만둣국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