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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09. 2022

깊어가는 늦가을은 해물 수제비의 계절이랄까

 낙지를 손질하다가, 두 놈이 모두 알배기인 걸 발견했다. 나는 왜 이게 알배기인 걸 알고 있는 걸까. 사실 나도 이게 알인지 알게 될 줄 몰랐다. 낙지가, 머리, 아니 몸통을 먹는 생선, 아니 해물은 아니지 않나. 그것도, 보통은 이미 채를 쳐서 꾸물꾸물 거리는 걸 참기름에 깨소금에 소금을 쳐서 먹는 음식이지. 나도 여태까지 일반적으로 그래왔고 말이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만 친한 형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즉석요리로 낙지 숙회를 내주고 있었다. 나는 접시를 들고 빙글빙글 피로연장의 요리들을 구경하닥, 쉐프께서 뜨끈한 물에 낙지를 즉석에서 담갔다, 꺼내서, 썰어서 내는 것을 구경하다가, 아니 저건, 낙지 머리도 썰어주시네, 하고, 그 자리에서 한 대여섯개나 낙지 머리를 받아다가 맛있게 먹은 일이 있다.


 쭈꾸미 머리가 고소한 맛이라면 그보다 훨씬 큰 낙지머리는, 눅진함의 결정판이랄까. 너무 진한 맛에, 또, 일반적으로 먹지 않는 건 먹지 않는 이유가 있는 거니까. 요즘처럼 바다가 중금속에 미세플라스틱에 걱정이 많은 시기에 많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침 그 당시가, 중국산 낙지에서 중금속이 과다추출되었다는 뉴스가 나온지도 얼마 안되고 해서, 나는 넉넉히 낙지머리를 먹은 뒤엔 다른 요리로 마저 배를 채웠다.


 어찌되었든 그것이 나와 낙지 머리의 인연인 셈인데, 그날 그 낙지머리에도, 몇개의 알주머니가 있었다. 

 흐음. 육수를 미리 먼저 끓이면서 낙지를 손질하다가 그만 딴 생각을 하고 말았다. 전날 밤 두시간쯤 국물멸치를 넣고 푹 우린 국물에, 아침이 되어 당근과 호박 그리고 양파를 넉넉히 넣었다. 이쯤만 해도 아주 맛깔진 국물이 만들어진다. 이유식에 넣어도 될 만큼. 그러나 아직은 멸치국물조차도 혹시나 아이에게 해로울까 싶어 참고 있는 아빠의 마음이긴 한데, 그래봐야 몇달 지나면 애랑 같이 더 많은 걸 같이 먹겠지. 


 부글부글 육수를 끓이는 동안에 낙지를 먼저 손질한다. 원래 해물부추전을 하려고 사 온 낙지, 두마리에 만원짜리인데 이때쯤 조금 귀찮아졌달까. 이걸 또 굳이 남겨서 부추전을 하기엔, 이미 전날 조금 부추전을 해 먹어버렸다. 그냥 넣어버릴까. 고민을 조금 하다가 그냥 두마리 모두 수제비에 넣기로. 


 그리고 어제 회로 조금 먹은, 싱싱한 굴도 넉넉히. 그리고 칵테일 새우는 여섯마리. 이렇게 금새 해물도 완성. 

 시작은 이...부추였다. 원래 부추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마트에 가서 부추를 충동구매를 하고 나면 그것을 먹는 게 일이다.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부추란, 한 단이, 요즘엔 반단씩 묶어서 주로 팔긴 한다만, 그게, 잘 줄어드는 양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부추를 처분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부추전을 먼저 하려다가, 내친 김에 수제비까지 하기로 했다. 수제비. 시원한 국물에 부추 넉넉히 넣어 한소끔 끓이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 가장 맛있는 아침식사가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칼국수를 하고 싶긴 했다. 그러나 나에겐, 수제비든 칼국수든 만들기 위한 반죽을, 하루 전날에,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다 해놓고 논문을 쓰다가 반죽을 만들기 위해 또 20분 가량을 투자할 그런 의지는 있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반죽을 칼국수로 뽑을 의지까지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수제비에 비하여 칼국수는 넓직한 도마에 밀가루를 뿌려가며 넓게 넓게 펴는 공정이...응? 글을 쓰다보니 그냥 다음에 해볼까? 


 어쨌든. 


 어쨌든 어쨌든. 나는 충분히 우러난 멸치채소육수에 불을 조금 더 세게 올려, 수제비가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해두고 하나하나 툭툭 떼어서 넣는다. 수제비의 덕목은 뭐다? 얇게 펴서 띄우는 거. 풍선껌을 쫙쫙 불 때 만큼이나 얇게. 종잇장처럼 얇게. 나는 수제비를 한 땀 한 땀 떼어서 띄운다 물 위에. 그리고 아침 낮잠을 자던 아기는 일어나서 내 다리에 달라붙고, 나는 바깥양반을 소리높여 부르며 아이를 떼어낸다.

 마지막 공정. 수제비까지 다 익을 무렵에서야 해물을 넣는다. 새우 굴 낙지 모두, 절대로 오래 끓여선 안되는 해물들. 나는 딱 익힌다기보단 데칠 정도로만 해서 3분 이내에 불을 껐는데, 그것만으로도 진국이다. 수제비를 띄웠어도 맑던 국물이 단숨에, 굴과 낙지, 새우라는 강력한 천연조미료의 힘으로 진한 우윳빛을 띈다. 


 여기까지 내가 국물에 한 짓이라곤 매널 탕탕 떨어넣고, 채소로 육수를 내고, 소금과 후추 간을 한 것 뿐. 그 외에 조미료라곤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 바로 요, 해물 칼국수, 아니 수제비. 다음엔 정말 칼국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도 그럴것이 사실 이거 투머치한 해물수제비다. 야채는 건져냈어도 되었고 해물의 양은 반절이어도 되었다. 아침의 귀찮음, 아이를 끼고 이짓을 하는 분주함이 복합적으로 얽혀, 양조절을 할 생각도 않고 그저 빨리 끝내야겠다는 의지가 발휘되었다. 그래서 국물반 건더기 반이 아니라...찌개 수준으로 건더기의 양이 국물에 비해 압도적이다. 


 다음엔, 바지락을 좀 넣고 좀 더 파는 것처럼 할까. 부추도 그럼 넉넉히 넣고 보기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테지. 


 아. 낙지알. 참 째깐키도 하다. 괜히, 이거 먹기가 미안할 지경인데, 맛은 또 쭈구미 알에 비해 별로 없다. 역시 알배기는 쭈꾸미만한 게 없어. 

 아침. 오늘은 우리 아기가 태어난지 400일이 되는 날이다. 한, 800일 쯤 되면 이거 같이 먹여도 되려나. 조미료 하나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놓고도, 이걸 아이에게 먹일까 말까 고민을 하는 마음이 헛헛하다. 


 그러나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헛헛한 고민을 달래듯, 맛있어. 좋은 맛이야. 이 늦가을에 이보다 환상적인 맛이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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