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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11. 2022

충동적이고 계획적인 육회비빔밥

육회 300그램이 단돈 만원!

 그거는 그러니까 해물부추전을 만들려고 낙지와 새우을 사려가던 길. 그러나 당연히 조금 둘러봐야겠지. 하고 생선코너까지 가는 길에 정육코너를 휭 보는데 육회가...만원. 만원이다.


일단 가격이 만원이어버리니까 그걸 무시하는 게 조금 더 웃긴 거 아닌가? 하며 들어본다. 묵직하다. 300g 정도는 되어 보인다. 300g에 만원이면 와 싸다! 할 정도는 아닌 금액. 600g에 저렴한 식당은 한 3만원 안짝으로 판다. 나쁘지 않은 금액이잖아?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금액이다.


 다만, 고민은 되는 것이다. 나 지금 해물부추전 하려고 낙지 사려고 왔는데. 이거 만원이지만, 돈은 문제는 되지 ㅇ낳지만, 이걸 사버리면 육회비빔밥은 오늘 해야하는 거잖아. 해물은 어떡해. 해물은 신선할 때 먹어야 하는데 못 먹으면 어떡해. 잠깐 고민을 하면서도, 육회비빔밥을 우리 바깥양반이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는 문제를 떠올려본다.


 바깥양반이라면, 해물부추천 다섯번을 먹느니 육회비빔밥을 한번 먹는 걸 택할 것이다. 그러니까 육회비빔밥은 바깥양반을 위한 것. 해물부추전은 날 위한 것. 충동적인 고민은 그렇게 계획과 계산으로 끝났다. 오늘, 육회비빔밥을 하자. 그리고 내일은 해물로 뭐든 하자. 그렇게 나는 장을 보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아쁘아아아아!!!"하고, 괴성처럼 아이가 안방에서 튀어나오고,  나는 씻지 않은 손으론 아이를 안을 수 없기에 우선 다리에 달라붙는 아기를 살살 피해 싱크대에 장 봐온 것을 둔다. 그리고 먼저 간단히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늗다. 그리고 다시 손을 씻고 마침내 아기를 안아준다.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나는 보충수업을 하고 오느라 이미 꽤 늦었다. 아니, 나도 늦긴 했는데 뭐라구요? 또 당근 거래까지 하고 오라구요?


 그리하여 저녁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 일곱시반을 넘어서다. 하필...육회비빔밥처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니. 밥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뜨끈한 새 밥. 그리고 가장 먼저...당근.


 당근, 애호박을 차례로 채썰어 들기름에 볶는다. 그리고 나서는 부추를 썰기 시작한다. 고명도 하고, 하는 김에 부추전도 아주 조금만 하기로 했다. 새우를 써버렸으니 내일 해물부추전은 못하겠구나. 그러면...그래. 수제비나 해야겠다. 날도 서늘해지고 이왕이면 오늘 먹은 부추전을 또 내일 먹을 필요는 없잖아.


 부추를 썰어서 반은 참기름으로 버무려 비빔밥 고명을 만들고, 나머지는 보울에 따로 담는다. 준비는 대강 끝. 밥이 지어지기만 기다리면 된다. 새우와 굴을 약간 헐어 부추전을 한다. 두 장 정도 나오겠구나. 부추전을 팬에 올리니 또 시간이 조금 남는다. 뭘 하지. 아. 깻잎이나 썰어놓자. 그리고...김도 좀 올릴까.

  육회비빔밥은 만족도에 비하여 수고가 크지 않다. 늘 하는 말이지만 육회랄 게 별다른 비법이 있는 요리는 아니다. 다만 신선한 쇠고기를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마트에서 파는 육횟거리가 얼마나 맛이 있고 신선하겠느냐만, 그런 문제 역시 비빔밥으로 가려버리면 해결. 그 잘나간다는 광장시장 육회집들도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라 싸게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다. 그런고로 육회는, 신선한 걸 저렴하게만 먹을 수 있다면 맛에는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쇠고기란 게 그렇지.


 내 한끼 먹고 사는 일에 이정도 수고는 말 그대로 이쯤이야 하고 해결되는 문제다. 애호박, 당근, 부추, 깻잎은 다해서 5천원도 들어가지 않았다. 육회 역시 150g씩 나눠도 5천원이므로 나는 만원 안되는 가격으로 쓸~만한 육회비빔밥을 두그릇. 게다가 오늘또, 예전에 비해 더욱 공을 들였다. 재작년쯤에 처음 만들었을 때와는 달리, 몇군데 더 먹어보고, 레시피고 도민해보고. 그게 오늘의 결과다. 들기름으로 볶은 당근과 호박에, 참기름으로 맛을 낸 부추. 그리고 마트에서 육회에 끼워준 간장베이스의 육회 소스에, 고추장 한 스푼.


 그리고 계란 노른자를...올려야 하는데 어? 마침, 두번째 부추전이 팬에 올라가 있다. 나는 냉장고에서 계란 두 알을 꺼내서 부추전에 탁탁 올린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노른자만 떠내, 비빔밥에 올린다. 부추전 땡큐다. 파전에 계란을 두르듯, 나는 남은 흰자를 잘 둘러 부추전을 뒤집엇다. 식사 준비는 이대로 다 되었다.

 요즘 바깥양반과 자주 하는 이야기는 "나는 애기 사다 먹이면서 못 키워."이다. 이유식도 밥도, 나는 아빠로서 내 아이가 먹을 음식을 남의 손을 빌리고 싶지는 않다. 물론 힘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그걸 아이는 배울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 고생을 좀 하더라도 끼니마다 밥은 제대로 차려주는 게 내 일이다. 아빠가 해준 음식을 먹으며, 그만큼 부모의 사랑도 잘 알게 될 것이고 말이다.


 이런 노력을 내가 아무리 한다 한들 "외식을 하고 싶어!"라는 바깥양반의 욕구는 조금 별개의 우주에 존재하는 문제다. 돈의 문제도 노동의 문제도 아니고, 집에서 먹는 거랑은 다른 감정이고 욕구인 때문이다. 물론 나라고 영 외식을 안하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육회비빔밥이라고 하면 집에서 하기에 어렵지 않으면서도 호사스러운 요리다. 이정도면, 나의 욕심, 바깥양반의 욕심, 양쪽 모두를 어느정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요리인듯 싶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부추전에, 전에 넣으려다가 횟감이라 하여 따로 좀 빼서 올린 생굴까지. 그날의 식사도 뭐...마음에 들게 잘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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