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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05. 2022

김장이 끝나고, 나는 굴김치와 깍두기를 했다.

아들 천재 우리엄마

 어쩌다, 내가, 김장을 다녀와서는 다시 배추를 절이는 신세가 되었는가. 배추를 절여 김치를 할 여건 따위는 내 일과에 전혀 없는데 말이다. 정말 전혀, 전혀 없다고 전혀. 그러니까 이 일은...


"혹시 굴김치는 더 없는가?"


 라는, 장모님의 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1월의 마지막 주말. 우리 집의 김장 일정은 늘 그때로 정해져있다. 올해 우리는 결혼 후 최초로 김장김치를 9월에 쫑내버렸다. 신혼 때는 노상 놀러다니기만 하다보니 집에서 김치가 많이 소비되지 않았었는데, 바깥양반께서 임신과 출산으로 외출이 확 줄어드니 아무리 우리가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놀러나간들, 끼니는, 집에서 해결되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김치는 평소대로라면 11월에도 한통 정도 남아야하는데...김치를 두달 간 거의 못먹긴 했다. 대신 막국수 이벤트가 있을 때를 위해 아껴둔 동치미를 김장철을 맞아 김치냉장고도 비울겸 먹으며 버텼다.


 어쨌든, 그리하여 김장을 해오고, 그날 엄마가 만든 굴김치에 보쌈까지 맛있게 먹고 왔는데...마침, 아기를 돌봐주기 위해 집에 장모님이 와 계셨던 것. 장모님께 굴김치를 내어드리고 나는 하루 이틀 좀 바삐 보냈는데, 수요일쯤 장모님이 굴김치를 더 찾으시는 것이다. 음...장모님을 댁에 모셔다드릴 타이밍에, 이 말씀은, 굴김치를 양보해드려야 한다는 것이겠지. 


 하여 장모님을 모셔다드리는 날 굴김치를, 미련도 없이 탈탈 털어 보내드리고 나서 다음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김치 속 좀 남았지."

"어."

"그거 내가 반만 쓸게. 굴김치 해먹게."

"다 먹었어? 맛있게 먹었냐?"

"어어. 도시락도 먹고."

"얼마나 가져가게?"

"뭐...반이면..."

"그러지말고 야 다 가져가. 그거 빨리 먹어없애야돼. 굴 안끼지 말고 많이 사. 무도 가져간 걸로 깍두기도 얼른 만들어 먹고."

"...어?"


 여기서 아들천재임을 뽐내실 일입니까 최여사님.

 ...그리하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굴을 씻고 있다...대략 굴은 처음엔 한 팩만 샀다가, 너무 작아보여 세 팩을 샀고, 1.4키로 정도 된다. 굴만 3만5천원. 음...매번 아기를 돌봐주시는 장모님의 노고에 굴김치를 드리는 것 정도야...그러니까 내가 새로하는 것 정도야...음...


 바로 지난주쯤에, 어디서였는지는 기억은 안나는데 횟집에서는 굴을 씻을 때 무를 갈아서 그걸로 벅벅 버무린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깍두기도 만들어야 할 것이고 해서, 무 껍질들만 갈아다가 굴을 씻...

...오우...효과는 굉장한 것 같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채반에다가 물로, 맨손으로 벅벅 굴을 닦는 것보단 확실하게 굴이 색이 뽀얗게 되는데, 사실 이건 좀, 간 무의 효과인지는 확실하진 않다. 왜냐면, 간 무를 완전히 털어내기 위해 평소에 굴을 씻는 것보다 훨씬 여러번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가며 굴을 씻었기 때문이다. 무가 아니어도 그냥 이정도 정성으로 굴을 씻는다면 어차피 하얗게 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래도 어차피 무 껍질은 식감이나 위생 문제로 잘 안쓰기도 하고, 만약에 다음에 굴을 먹을 일이 있다면 무 껍질만 썰어내서 갈아서 굴을 닦는데 쓰길 쓸듯 하다. 생활의 꿀팁. 

 전날 밤 자정쯤에 배추를 절였는데, 그럼 그렇지 순탄하게 될리가 있나. 배추 반포기 정도 절일 소금 밖에 없다. 이미 몸은 일으켰는데. 이미 자정인데. 하릴없이 배추를 오래 오래 절이기로 했는데 또 웃긴 것이. 집에 양푼이 없다. 고작 배추 하나 절이기에도 나의 집은 조금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피곤한, 말하기 부끄러운 과정을 거쳐 비효율적으로 배추를 절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도 된 게 어디야. 아들천재 최여사님께서 맛깔나게 만들어둔 김치 속...굴...버무린다...헤헤...요리 재밌다...

  

 먼저 산 굴 한팩...양 너무 적다...배추 한 포깅에 굴 500그램은 택도 없다...다음날 두팩을 더 샀다...이미 만들어둔 겉절이에 굴을 더 넣는 거니까 추가하는 굴엔...김치속을 따로 먼저 버무려서 합친다...

 그래도 완성. 맛을 보니 영 쓰고 맛이 잡히지 않았다. 다른 것보단, 배추를 제대로 절이지 못해서 그렇다. 그래서 굴김치고, 겉절이고 하니 설탁을 넉넉하게 넣었다. 음. 맛이 좋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보쌈을 만드는 것이지. 인플레이션이어도 고기는 값이 요즘 괜찮다. 목살이 100g에 천오백원 남짓이다. 보쌈을 하기 전에 먼저 식감을 좋게 하기 위해 앞 뒤, 바삭바삭하게 굽는다. 그러는 사이에 갖은 양념을 해서 보쌈을 끓일 육수를 만들고, 

 무도 절인다. 방금 전, 굴을 씻을 때 껍질을 벗겨낸 무 들이다. 겨울 무라 시원하고 달다. 아기한데 먹였더니 처음엔 맛있게 먹더니만, 두번째엔 휙 던져버린다. 이런 불효녀 녀석. 뉴 슈가를 쓰는 게 깍두기를 만들 땐 정석이라는데 집에 뉴 슈가가 없다. 아니 솔직히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깍두기 조리법을 물어보기 전까지, 무를 절일 때 설탕이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하여 겸사겸사 사이다로 무를 갈았다.무 하나에 소금 두 큰술, 사이다 150ml정도. 그래서 여러번 뒤집어준 뒤에 30분 정도 두었다. 탄산으로 무 절이면 무가 아주 물러질 수 있어서, 되도록 짧게 절이고 빨리 먹으라 하네? 뭐어 무 두개 정도 깍두기면 일주일도 안 걸릴 양이긴 하다. 

 그래서 완성. 와. 순식간에 김치 부자다. 동치미, 깍두기, 새 김치와 묵은 김치,  거기에 굴김치까지, 집에 갑자기 김치 폭풍이 불어오는데? 근데 김치속이 1000ml 정도 분량은 남았다. 엄마에게 경과 보고도 할 겸, 김치들 사진과 함께 "내일 쪽파나 사다가 남은 김치속 처리할라구."라고 엄마에게 보내니, 엄마는 얼마 뒤 "잘하고 있네" 라고 짧은 칭찬을 남겼다.


 역시 아들천재시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라. 비법 양념으로 만든 목살수육. 거기에, 갓 만든 싱싱한 굴김치에 깍두기. 이거 한다고 두시간 넘게 용을 썼다. 근데 또, 이정도 반찬들이 두시간 만에 만들어진다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보자 이 정도면 굴김치도 1월까지 넉넉히 먹겠다. 김치 한포기에 굴만 1.4키로정도니까. 그리고 깍두기도 무가 두개니까. 그렇게 오늘도, 잘 먹고. 

 내일도, 또 다음날도. 잘 먹는다. 김치 덕분에. 엄마가 내게 넘겨주신 김치속 덕분에. 장모님 덕분에 , 또 이거 만드는 동안 아기 본다고 고생한 바깥양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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