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제목이 유인원의 혹성 탈출이네
시리즈의 완성
본래 단편영화로 제작되었던 <혹성탈출(The Planet Of The Apes)>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자 제작자들은 2년 뒤 속편을 만들기로 결심, 무려 5부작의 대작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물론 2편에서 불거진 논리적 모순도 존재하지만 영화는, 단단한 철학적 기초를 바탕에 깔고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한다. 그리고 본편 제 3부,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에서 영화는 극적 대반전을 마련하며 상상하지 못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영화가 이렇게 깊이있는 시나리오를 써 나갈 수 있는 것에는, SF문학의 튼튼한 토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력을 제약받지 않으며 그들은 얼마나 많은 창의성을 풀어냈던가. 그래서 <혹성탈출> 5부작은 매 작품 하나하나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튼튼한 고리로 엮여 있는데,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는 시나리오의 과학적, 인과적 근거를 쌓아올리는 당대의 과학지식의 일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광속 우주여행에 의한 시간 및 차원 이동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진지한 얼굴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하슬레인박사의 목소리는 70년대 과학자들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그렇게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는 시리즈 5부작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임과 동시에 시나리오의 완결성을 부각시키는 토대이기도 하다. 1,2편을 갈무리하며 4,5편을 예고하는 시리즈의 핵심이면서, 현대 인간문명에 대한 가장 예리한 비판서로도 자리한다.
이야기는 미국의 한 해안에서 시작된다. 우주비행선 한척이 불시착하고, 이를 포착한 미군 당국은 외계문명인의 방문으로 인지하고 출동한다.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호기롭게 외친 그들이었지만, 우주복을 입고 땅을 딛고 선 그들은 원숭이. 2700년 후의 미래로부터 찾아온 인류의 지배자였다.
그 충격적인 모습에 놀라 황급히 발을 돌리는 군 간부들의 모습은, 의외로 쉽게 깨지곤 하는 우리들의 지식구조를 풍자하는 듯 하지만 우리들의 지도자들이란 그렇게 순진한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곧 군부대로 후송되어 철장에 갇힌 채로 조사를 받는다. 원숭이 문명에서 인간을 가지고 마음껏 실험을 하던 그들이지만 인간 문명에서는 실험체에 불과하다. 또 한번의 신발 바꾸어 신기. 차이점이 있다면 자이라와 코넬리우스에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일까.
영화 초반 자이라와 코넬리우스의 운명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 하다. 청문회에서 심문을 받는 그들은 뜻밖에도 인간들의 뜨거운 호감을 사게 되고, 이후 유명인사가 되어 각계의 초청을 받는다. 짧은 행복의 시간. 그러나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하슬레인박사는 집요하게 미래의 역사를 파헤치고 머지 않아 미래 지구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이라 부부를 제거할 것을 대통령에게 요청한다. 고뇌하는 대통령이지만 인류의 안위가 유인원의 안위보다 중요할까.
결국 자이라부부는 갇히게 되고 임신 중인 아이는 유산될 상황. 이들은 탈출을 감행하고 줄곧 이들을 지켜주었던 동물심리학자 딕슨과 스테파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치게 된다. 그러나 하슬레인박사의 추격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데.
소름끼치는...
영화의 결말은 러닝타임이 한시간을 넘어가는 순간 누구나 상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시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말 컷에서 단 한마디 대사가 터져나오는 순간 그것은 소름끼치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슬레인은 말한다.
"시간을 끝없는 차선이 나있는 고속도로로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서 미래로 향해 있지만 같은 미래는 하나도 없습니다 A차선 운전사는 사고가 나도 B차선 운전사는 살아남죠. 차선을 바꿈으로서 미래를 바꿀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역사의 다원성을 근거에 둔 박사의 노력은 절망적 상황을 막으려는 시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원숭이라는 존재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가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으며, 원숭이는 원인보다는 결말로서 역사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3부가 1부의 패러디이자 오마쥬로써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부각된다. 1부가 원숭이 문명에 떨어진 과거의 인간이 맞닦뜨리는 현실이라면, 3부는 인류 문명에 떨어진 미래의 원숭이가 마주치는 현실이다. 그리고 두 작품들은 개인의 시련보다는 그를 다루는 사회구조를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다. 1부에서 영화는 온갖 물음표들을 뿌리며 그것을 하나의 결말을 통해 터트리지만, 3부에서는 하나하나 콕콕, 마침표를 찍어나가며 "인간이란 이런 존재야."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3부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는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뒷맛을 남긴다. 살생을 통한 목적달성, 역사의 가변성은 영화가 끝나고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골칫거리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오점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2부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논리적인 모순을 꼽을 수 밖에 없는데, <불시착한 테일러를 브랜트가 추적했다>는 점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불시착한 혹성에 대한 정보를 브랜트는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테일러가 타고 떠난 우주선을 브랜트가 쫓아온 것인데 이는 브랜트가 테일러의 항로를 완벽히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미 미군 당국은 미래 지구의 좌표를 입수했어야 한다. 적어도 자이라 일행이 지구에 도착한 시점에서.
또한 이 사실은 이후에 미 정부가 인류의 미래를 바꾸려 하는 데에서도 문제를 남긴다. 테일러가 타고 떠난 우주선을 자이라가 타고 왔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이 성공했다는 증거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이 미래 역사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로를 수정하여 우주선을 다시 보내면 되는 것이다. 보다 철저히 대비해서 2년간 진보된 기술력을 동원하여 시간여행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다.
인간은 무엇인가
영화 전체에서, 시간상 당대에 속하는 것은 본편이 유일하다. 그에 대해 제작진들은 감추지도 빼지도 않고, 냉정하게 미 정부를 조명하고 있다. 정보조직에 의한 심문, 조작, 예방활동. 신문명에 대한 인간들의 이중적인 태도. 영화가 쏘아내는 그 날카로운 시선에, 40년 전 지성인들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더 나아가지 못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자주, 되새겨진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부끄러움을 배울 수 있는 영화.